신자유주의 프로젝트의 전체적인 실패는 그 바탕에 있는 경제모델 자체에서 비롯됐다. 왜 그러냐 하면, 이 경제모델은 달성될 수 없는 조건들을 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신자유주의 모델에 입각해 세계화된 경제는 스스로의 존속을 위해 ① 저렴한 자원의 끊임없는 확대 공급 ② 새로운 시장의 끊임없는 확대 공급 ③ 저렴한 노동력의 꾸준한 공급을 필요로 한다. 더 나아가 이 모델은 많은 나라 정부들이 신자유주의 프로젝트에 협조할 것을 요구한다. 단기적으로는 이런 조건들이 충족될 수 있다. 실제로 1980년대와 1990년대에는 특히 이 모델을 앞장서 받아들인 나라들에서 위와 같은 조건들이 부분적으로 충족됐다. 그러나 장기적으로 보면, 한계가 분명히 있는 지구상에서 위와 같은 조건들이 계속 충족되기란 불가능하다. 지구상의 자원들 가운데 많은 것들이 이미 심각하게 줄어든 상태이고, 그 가격이 비싸지고 있다. 석유가 대표적인 사례일 것이다. (‘들어가는 글: 전환점’ 31쪽)
공동자산의 형태를 정확하게 범주화해 규정하기란 어려운 일이다. 왜냐하면 몇 개의 지역이나 나라들을 거치며 흐르는 강물, 지역적일 수도 국가적일 수도 있는 생물다양성, 지역적이거나 국가적인 것일 수도 있지만 세계적인 것일 수도 있는 방송 주파수 대역, 생명의 유전자 구조와 같은 것들은 여러 범주를 넘나들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공동자산을 파괴하는 무기나 유독물질의 무역으로부터 사람들을 보호하는 것은 국가 차원의 문제로 볼 수도 있지만 결국은 국제적인 문제일 수밖에 없다. 이처럼 공동자산의 범주화는 어려운 일이지만, 여기서 우리는 공동자산과 관련해 반드시 지켜야 할 하나의 중심 원칙을 제시하고자 한다. 그것은 이런 것이다. “그 어떤 세계 무역체제도 인간 활동의 모든 측면을 모조리 그 중앙집중적인 규칙에 종속시켜서는 안 되며, 그 어떤 종류의 세계 무역이나 투자에도 포함되지 않고, 무역과 투자를 규제하는 그 어떤 규칙에도 들어맞지 않는 인간 활동의 측면이 많이 존재한다는 사고방식을 인정하고 수용해야 한다.” (5장 ‘공동자산 이해하기’ 157쪽)
세계화가 문제라면 지역으로 돌아가야 함은 논리상 필연의 결론이다. 다시 말해 지역사회들이 각자 스스로가 선호하는 경제와 정치의 진로를 결정하고 그 과정을 통제하는 힘을 회복할 수 있어야 하며, 그렇게 되도록 해주는 조건들을 복원해야 한다. 초국적 기업들의 지휘 아래 생산의 특화, 비교우위, 수출지향 성장, 단작농업, 그리고 경제적, 문화적, 정치적 동질화가 강조되는 글로벌 모델에 모든 체제를 순응시켜서는 안 된다. 이런 방향과는 정반대로 가는 길을 뒷받침하는, 우리 자신의 제도와 기구들을 창출해야 한다. 이런 방향전환에서 원칙으로 삼아야 할 것은 부차성(Subsidiarity)이다. 부차성의 원칙이란 가능한 지역을 지향하자는 것이다. 어떤 결정이든 그 결정을 담당할 능력이 있는 가장 낮은 수준의 행정단위에서 내려야 한다. (6장 ‘부차성 이해하기’ 210쪽)
미디어 개혁을 지향하는 진지한 운동이라면 그게 어떤 운동이든 동시적으로 추구해야 한 몇 가지 목표들을 설정해야 한다. 그 중 하나는 상업적 글로벌 미디어의 위력과 집중을 세계적으로나 각국 내부적으로나 대폭 줄여야 한다는 것이다. … 아울러 미디어, 특히 방송의 비영리적, 비상업적 부분의 위력과 생명력을 현저하게 강화시켜야 한다. … 활동가들과 활동가 단체들이 해야 할 일 가운데 가장 우선적인 것은 바로 미디어 개혁의 문제를 우선적인 과제로 설정하는 일이다. 만약 상업적 미디어가 계속해서 압도적인 영향력을 발휘하면서 대중의 눈을 가리고, 신변잡기적이고 사소한 내용의 비중을 높이고, 극도의 상업주의와 최종적으로는 자기이익만을 관철하도록 놔둔다면 환경이든 건강이든 정치든 어떤 분야에서도 의미 있는 목표를 달성하기가 어렵다는 점을 깨달아야 한다. (8장 ‘더욱 민주적인 미디어를 실현하는 단계들’ 242~243쪽)
지속가능성과 민주주의의 관점에서 보면 햄버거 가게를 운영하고, 옷과 장난감을 만들고, 책이나 잡지를 발간하고, 농산물을 재배, 가공, 유통하고, 필수품을 만들고, 만족스러운 삶에 기여하는 것들을 공급하는 데 거대한 초국적 기업들이 왜 필요한지 그 이유를 알 수 없다. 사실 거대 기업들도 자신의 생산공정 가운데 많은 부분을 소규모 독립 생산자들에게 하청을 주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시장에 접근하는 문제에 관한 한 지배적인 글로벌기업들은 자신들의 통제권을 지키려고 한다. 그래야 거래의 조건과 가격을 사실상 좌우할 수 있는 능력을 유지함으로써 이익을 챙길 수 있고, 사업에 따르는 위험을 소규모 생산자들에게 전가할 수 있기 때문이다. 글로벌기업들의 이런 행태는 시장의 기본원칙을 어기는 것이라는 점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그들의 이런 행태는 효율성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이 갖고 있는 힘을 지나치게 휘두르는 것이다.
(9장 ‘대안의 사업구조를 향해’ 405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