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상구(flypaper@yes24.com)
이 책에는 '문학과 지성 13/21 소설책'이라는 타이틀이 달라 붙어 있다. 처음엔 뭔가 했다. 21권의 알짜 소설을 기획한 것 중의 13번째인가? 하는 멍청한 생각을 거쳐, 결국 이 숫자는 '책 크기를 지칭하는 것'임을 확인할 수 있었다. 폭이 13센티, 높이가 21센티인 소설책, 지하철에서도 버스에서도, 선채로 가볍게 한손에 쥐고 읽을 수 있도록 크기가 조절된 소설책인 것이다. 단행본 소설책으로는 그렇게 흔하지 않은 크기이지만, 외국에서는 아주 보편화된, 아니 거의 표준으로 자리잡고 있는 크기이다. 대표적인 것으로는 대학에서 영문학과 학생들이 원서 교재로 많이 보는 'Norton Critical Edition' 시리즈가 있는데, 폭과 높이는 똑같지만 두께에서 좀 차이가 난다. Norton쪽이 두배, 내지는 세배 정도 더 두껍다.
그런 계산을 하면서 책꽃이를 훔쳐보니 'Tess...', 'Moby Dick', 'Scarlet Letter'같은 고만고만한 타이틀의 Norton시리즈 네다섯권이 나란히 꽃혀 있는게 보인다. 솔직히 제대로 읽은 건 하나도 없다. 아니 읽었다고 할 수도 없다. 누가 'Moby Dick' 읽어 봤어? 하고 물어보면 읽었다고 해야할지, 안 읽었다고 해야할지 도무지 난감하기만 할 뿐이다. 우선적으로 내 게으름이 가장 큰 탓이겠지만, 원서에 대한 정독을 피해갈 수 밖에 없는 대학교육에도 문제는 있다. 나 역시도 대학을 졸업하고 나서 읽었던 원서가 훨씬 기억에 남고, 신나는 독서경험이었다. 물론 보고 싶은 책을 선택해서 볼 수 있다는 장점 때문이기만, 그러나 그밖에도 감각적으로(?) 쉽게 다가 설 수 있는 현대문학작품들이 대학교육에선 '문학사적으로 검증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학생 개개인의 선택적인 독서에 맡겨 진다는 이유도 있다. 놀기 바쁜 학생들이 언제 수업 텍스트 외의 원서를 읽겠는가? 당연히 읽지 않는다. 노느라, 술마시느라, 연애하느라 그럴 시간도 없거니와, 영어공부하는 셈치고라도 원서를 손에 잡는건 거의 일어나지 않는 일이다.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그런걸 생각하다 보면 '역시 어떤 종류의 책이든지 자기가 원해서 손에 든 책이 가장 읽기 쉽고, 독서효과도 가장 크다는' 아주 상식적인 진리를 새삼스럽게 깨닫는다. 그러한 이유로 나에게 기억에 남는 영어책은 군 제대후에 놀면서 읽었던,Sallenger의 'Catcher In the Rye', Thomas Harris의 'Silence of the Lamb', Umberto Eco의 'Foucault's Pendulum'같은 신나는 대중소설들이다.
송경아의 <테러리스트>라는 이 책은 여성의(?) 상상력치고는 좀 뜨악한 면이 있는 책이다. 우선 피로 점철된 커버 타이틀의 제목이 그렇고, 소설 곳곳에서 주제의 큰 기둥을 이루고 있는 '살부의식'이라는 테마가 그렇다. 소년의 눈을 빌어 행해지는 자의적인 폭력이 그렇고, 감성이 배제된 해설조의 딱딱한 그로테스크적 디테일이 그렇다.
간단하게 줄거리를 따라가 보면,우선 로마자 Ⅰ,Ⅱ,Ⅲ로 나누어지는 굵직한 장에서는 각기 세명의 중심인물이 등장하게 된다. 타이틀을 차지하고 있는 '테러리스트', 사회의 위선과 지적 스노비즘을 비꼰 '서적 수집인', 그리고 장정일이 '신버지'라고 불렀던 마스터로서의 신격화된 아버지의 상징인 '주인님' 이렇게 세명의 나래이터가 등장한다. 그밖에 소설의 주제를 꿰맞추기 위해 부가적으로 삽인된 인물들이 몇 있지만, 전체적으로는 이 세명의 등장인물들이 회상과 오버랩을 섞어가며 나래이터로서 읇조리며, 때로는 분노와 증오를 뱉어놓은 형식이다.
로마자 Ⅰ,Ⅱ,Ⅲ의 굵직한 장 밑으로는 약 10개 정도의 아라비아 숫자로 기입된 또 다른 장이 펼쳐지는데, 여기서는 각각의 나래이터들이 자신의 과거와 현재를 이야기한다. 물론 각각의 굵직한 장에는 중심 나래이터가 위치하지만, 사이 사이 그들과 겹쳐지는 인물로서 다른 장에 위치한 나래이터들이 까메오 연기를 펼치며 등장한다. '테마게임'이나 옛날 미니시리즈 '달팽이'에서 봤던 방식을 떠올리면 된다. 이렇게 얽히고 섥힌 인물들이 서로의 애증과 상처, 분노와 사랑을 교환하며, 때로는 빼앗으며 소설의 끝을 향해 달린다. 테러리스트는 '도의적인 폭력'을 짊어진 채, 서적수집인은 '상처받은 영혼'의 외상을 간진한 채, 주인님은 '오만과 도도함'이라는 파멸의 씨앗을 뿌리면서 서서히 그들의 마지막을 향해 달리는 것이다. 그렇게 달린 이들이 만나는 곳은 당연히 로마자 Ⅲ의 마지막 장이고, 서로의 애증이 뒤섞인 파멸의 결과는 '서적수집인'과 '주인님'의 죽음으로 나타난다. 오직 테러리스트만이 살아남아 알듯말듯 애매한 테러리즘의 메니페스토를 남긴다.
'나는 힘의 정점에 서서, 누구보다도 자유로우면서 누구보다 예속되는 자가 될 것이다. 그 구조 안에서 누구보다 굳건하게 서 있으나, 그것이 흔들리는 순간 가장 먼저 무너져 내리는 자가 될 것이다. 그리고 내가 가졌던 이상은, 이순간부터 더 이상 나의 것이 아니다'
범작이다. 별로 치면 3개 정도의 평균작이다. 구조에 재미를 강화하기 위해 좀 더 추리소설다운 기법을 적극 차용했으면 훨씬 좋았겠다 싶은 흔한 작품이다. 의외로 진득하고 성실하게 읽었지만 별로 기대볼 건 없는 작품이었다. 13/21...계산해 보니 61.9% 정도 되는데....책 값의 61.9% 정도 건진 작품이라고 심술궃게 둘러대고 싶다.
P.S. '주인공의 마누라는 죽여도 개는 절대 죽이지 않는다' 이 명제는 헐리우드를 특화시켜 주는 흔한 사실 중의 하나이다....보면 알 수 있다. 천재지변이 일어나도 개는 죽지 않고 어디선가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며 나타난다.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이 두동강 나고, 백악관이 파괴된다 하더라도 개는 절대 죽지 않는다. 애타게 개를 찾는 사람들의 안타까운 목소리는 그냥 지나쳐도 상관 없다. 어차피 개는 죽지않고 나타나게 돼 있으니까 말이다. 그런 이유로, 영화에서나 소설에서나 사람을 죽이는 장면은 많이 봤지만, 개를 죽이는 장면은 흔히 보지 못한게 사실이다. 이 작품에서는 정말 깜짝 놀랄 정도로 섬찟하게 개를 죽이는 장면이 나오는데, 그러한 상황설정이 테러리스트라는 주제를 가장 잘 전달해 주는 의도임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이 작품 전체를 통해서 가장 흡족했던 부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