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혼여행 마지막 날, 우리는 아쉬운 마음에 발이 부르트도록 와이키키를 걸었다.
“우리 언젠가 하와이에 다시 올 수 있을까?”
“글쎄, 언젠가 올지도 모르지….”
“아니면 평생 못 올 수도 있겠지? 그럼 오늘 보는 와이키키가 평생에 마지막일지도 모르겠다.”
하와이를 떠난 지 딱 6개월만에 이렇게 다시 돌아와 질리도록 와이키키를 볼 줄 알았다면, 그때 조금 덜 아쉬워해도 되었겠다는 생각이 든다. --- p.51
하지만 주변을 둘러보면 모두들 꿋꿋이 잘 버텨내고 있었다. 어젯밤에 나보다 더 많이 취한 과장님, 이제 돌쟁이 아기가 있는 대리님, 주변에 같이 입사한 동기들 모두 매일 아무렇지 않게 출근을 하고 일을 했다. 모두 누군가의 남편이고 아빠고 아들이었다. 나를 포함한 모두가 자신만의 톱니를 가지고 해당 톱니가 빠지면 안 된다는 심정으로 버티고 버티는 것 같았다. 왜냐하면 우리는 그렇게 길러졌고 그렇게 교육받았으니까. 대한민국이라는 나라는 그렇게 살기 위해 존재하니까.
직장에서 실갱이를 벌이고 집으로 돌아오면 우리는 둘 다 녹초가 되어 침대에 널부러져서 우리 일이 아닌 주변의 일들로 얼굴을 붉히고 언성을 높였다.
“오빠, 어머님이 이번 주말에 밑반찬 가지러 오라고 하시는데 시댁에 가야겠지…, 그치?” --- p.56
세계적인 경기침체로 회사에 감원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그 즈음 일전에 권고사직한 차장님이 닭갈비집을 열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딱히 친분이 있지는 않았지만 평소 인품이 좋으셨기에 꼭 성공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닭갈비집을 열고 한 달 정도 지났을 때, 조류독감이 발생했다. 어쩜 이럴 수 있을까. 차장님은 몇 십 년 근무한 퇴직금을 모아 차린 닭갈비집을 곧 처분했다.
아내가 물었다.
“오빠는 회사에 얼마나 더 다닐 수 있을 것 같아?” --- p.58~59
“그래서, 한국에서 회사 다닐 때보다 편해?”
아니, 회사 생활할 때보다 10배는 힘든 것 같다. 그때보다 돈도 더 못 번다. 그렇지만 예전 회사 생활에서 느꼈던 권태와 무기력감은 더 이상 없다. 일요일 밤, 개그콘서트를 보면서 내가 웃는 게 웃는 게 아닌 그 기분, 내일 해가 뜨지 않았으면 좋겠는 그런 기분은 더 이상 없다. 예전보다 일도 도 많고 걱정도 더 많지만 계속 하와이에 살고 있는 이유는 바로 내 인생의 주인공이 나일 수 있기 때문이다. --- p.167쪽
“하와이는 왜 다 비싸지? 하와이에서 싼 게 뭐가 있을까?”
“글세…. 바나나? 하와이에서 자라는 파인애플도 싸고, 파파야도 싸다.”
“그러게. 그렇다고 바나나랑 파파야만 먹고 살 수도 없고….”
손잡고 와이키키 해변을 걸으며, 우스갯소리로 시작한 대화 중에 아내가 가슴에 파고드는 말을 했다.
“여기 이 와이키키에 오려면 왕복 비행기표에 호텔 값까지 200만 원도 넘게 들여야 하잖아. 우리는 이 비싼 와이키키를 공짜로 즐기고 있네! 이게 하와이에서 제일 싼 거네.”
“그렇네. 먹는 것도 사는 것도 병원에 가는 것도 다 비싸지만, 그래도 우리는 그 비싼 값을 지불하고 남들은 평생 한 번 오기도 힘들다는 이 천국에 살고 있구나. 우리가 계속 이곳에 살고 싶어 하는 것은, 비싼 만큼의 값어치는 충분히 된다는 것을 의미하겠지? 이곳에 언제까지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충분히 즐기고 충분히 누리고 살자!” --- p.176
하와이에는 뱀도, 개구리도, 갈매기도 없다. 개구리도 외지인 따라 들어와 조금 있기는 하지만 여름 한국에서처럼 개구리 울음소리를 들을 수는 없다.
사람 사는 곳 다 비슷하다고는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참 다른 점이 많다. 기후가 다르니 나무 모양이나 종류도 다르고, 자라는 풀이나 꽃도 한국에서 보던 것과 전혀 다르다. 가끔 집 뒷산에 오르면 체리구아바를 따먹을 수 있고, 바닥에는 마카다미아 열매가 한국의 도토리처럼 바닥에 떨어져 있기도 하다. 옆집 망고나무에는 철이 되면 주렁주렁 망고가 열리고 건넛집 나무에는 파파야가 열리니, 하와이는 매번 새로운 모습에 즐겁고 신기한 곳이다. --- p.183
계속 까매지는 피부에 아내는 걱정을 하기도 한다. 한국에 있었으면 주말에 쇼핑몰이나 영화관 정도 왔다갔다했을 우리들. 하와이에 와선 주말마다 햇볕 받으며 물놀이다 등산이다 다니다 보니 구릿빛 피부와 더불어 건강도 덤으로 얻었다.
“맨날 이렇게 사는 거야? 진짜진짜 좋겠다!”
한국에서 손님들이 놀러올 때면 우리가 가장 좋아하는 카일루아비치에서 함께 바비큐파티를 하곤 하는데, 다들 이런 얘기를 한다. 하지만 우리라고 어떻게 매일 이러고 사나. --- p.197
계속 까매지는 피부에 아내는 걱정을 하기도 한다. 한국에 있었으면 주말에 쇼핑몰이나 영화관 정도 왔다갔다했을 우리들. 하와이에 와선 주말마다 햇볕 받으며 물놀이다 등산이다 다니다 보니 구릿빛 피부와 더불어 건강도 덤으로 얻었다.
“맨날 이렇게 사는 거야? 진짜진짜 좋겠다!”
한국에서 손님들이 놀러올 때면 우리가 가장 좋아하는 카일루아비치에서 함께 바비큐파티를 하곤 하는데, 다들 이런 얘기를 한다. 하지만 우리라고 어떻게 매일 이러고 사나. --- p.197
하와이에 사는 지인이 아이를 처음 유치원에 보냈다고 한다. 하얗고 귀여운 여자아이였는데 한 달 지나고 본 아이는 하와이 원주민마냥 새까매져 있었다.
“여기 유치원은 뭘 안 가르쳐. 하루종일 밖에서 놀다. 오후에 데리러 가서 보면 손톱이 새까매져서는 흙 파고 놀고 있어. 하하하.”
하루종일 신나게 뛰어놀고 오니 아이는 예전보다 밥도 잘 먹고, 잠도 잘 자고, 떼 쓰는 것도 줄었다고 한다. --- p.229
‘내 아이를 행복한 아이로 키우고 싶다’는 생각은 우리가 앞으로도 하와이에서 계속 살고 싶어 하는 가장 큰 이유이기도 하다. 사시사철 따뜻하고, 공기 좋고, 바다 좋으니 이만큼 아이들이 뛰어놀기 좋은 곳이 세상에 또 있을까 싶기 때문이다. 아이와 함께 바닷가에서 놀고, 함께 산에 오르고, 함께 캠핑을 가 쏟아지는 별을 보여줄 수 있는 곳. 적어도 어린 시절만이라도 공부나 경쟁에 대한 스트레스 없이 마음대로 놀 수 있는 아이로 키우고 싶다. 그런 행복한 어린 시절을 보낸다면 혹여 공부를 잘하지 못한다 해도, 좋은 대학을 가지 못한다 해도, 더 풍요로운 인생을 살 수 있는 사람이 되지 않을까.
--- p.23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