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살로니가전서 4:16-17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 소리로 친히 하늘로부터 강림하시리니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그 후에 우리 살아 남은 자들도 그들과 함께 구름 속으로 끌어 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하시리니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
성경을 보면 본격적인 종말은 그리스도의 공중 재림과 그와 함께 일어날 성도들의 공중 들림, 즉 ‘휴거(携擧)’로 시작됩니다. ‘휴거’는 ‘이끌려 올라간다’는 뜻입니다. 휴거되는 날은 성도들에게 있어서 최고의 날이 될 것입니다. 모든 슬픔과 괴로움에서 벗어나는 날이요, 앞서간 성도들을 공중에서 만나는 날이며, 무엇보다도 우리를 위해 피 흘려 돌아가시고 부활하신 우리 주님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는 날이기 때문입니다.
휴거를 영어로는 ‘rapture’라고 하는데 이 단어를 영어사전에서 찾아보면 ‘황홀’ 또는 ‘황홀감’으로 나옵니다. 그런데 원래 의미는 이것이 아닙니다. 데살로니가전서 4장 17절에 ‘끌어 올려’라는 표현이 나오는데, 이 말을 뜻하는 라틴어에서 ‘rapture’라는 영어단어가 나왔습니다. 지금은 ‘황홀(감)’의 뜻으로 쓰이는데 그 이유는 이 날이 믿는 자들에게는 큰 기쁨과 환희의 날이기 때문입니다.
휴거에 대해서 가장 잘 설명하고 있는 말씀은 데살로니가전서 4장 16-17절입니다. 이 말씀은 예수님의 공중 재림, 성도들의 부활과 몸의 변화, 그리고 성도들이 공중으로 들림 받는 것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세 가지는 거의 동시에 이루어지지만 편의상 하나씩 분리해서 생각해보겠습니다.
1. 예수님의 공중 재림
먼저 예수님의 공중 재림에 대해서 생각해보겠습니다.
데살로니가전서 4장 16a절입니다.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 소리로 친히 하늘로부터 강림하시리니.”
여기서 말하는 ‘강림’은 지상 강림이 아닌 공중 강림을 의미합니다. 예수님의 재림은 ‘공중 재림’과 ‘지상 재림’으로 나뉘는데, 지상 재림은 공중 재림이 있고나서 7년 뒤에 있게 됩니다. 예수님께서 공중으로 재림하실 때는 몇 가지 소리가 동반됩니다.
먼저 ‘호령’이 있다고 했습니다. 호령은 지휘하기 위해 크게 소리 내어 명령하는 것을 말합니다. 이 호령이 누구의 호령인지 명확히 알 수 없으나 예수님의 호령이라고 생각됩니다. 요한복음 5장 25절에 보면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죽은 자들이 하나님의 아들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듣는 자는 살아나리라” 하는 말씀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께서 ‘음성’을 내어 죽은 자들을 살릴 것을 말씀하고 있는데, 이 음성이 여기서 말하는 호령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내용은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을 깨우면서 “위로 올라오라”는 명령일 것입니다.
요한복음 11장 43절에 보면 예수님께서 죽은 나사로를 살릴 때 “큰 소리로 나사로야 나오라” 부르셨는데 이런 것이 일종의 호령입니다. 요한계시록 11장에는 7년 대환난 기간 중에 두 증인이 복음을 전하다가 적그리스도에 의해 죽임을 당하는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 시체가 땅에 버려진 채로 3일 반 동안 방치되다가 3일 반 후에 하나님께서 생기를 불어 넣어 살려주십니다. 그리고 하늘로부터 “이리로 올라오라!” 하는 ‘큰 음성’을 듣고 구름을 타고 하늘로 올라가는데(계 11:12) 그들이 들은 큰 음성도 호령입니다.
예수님께서 공중으로 재림하시는 그날, 죽은 자들을 향해서 그리고 이 땅에 살아 있는 성도들을 향해서 “살아나라!” “이리로 올라오라!” 하는 음성을 우리가 듣게 될 것입니다.
다음으로는 ‘천사장의 소리’가 있다고 했습니다. 천사장의 소리는 예수님의 공중 재림을 알리는 소리 아니면 천사들을 지휘하는 소리일 것입니다.
그 다음으로는 ‘하나님의 나팔 소리’가 있다고 했습니다. 이 나팔소리가 어떠할지 저는 굉장히 궁금합니다.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는 성경을 통해서 어느 정도 상상할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나팔 소리는 상상하기가 힘듭니다. 제가 개인적으로 가장 듣고 싶은 음악이 바로 주님께서 오실 그날 울려 퍼질 하나님의 나팔 소리입니다. 이 나팔 소리는 지금까지 우리가 들어보지 못한 가장 웅장하면서도 아름다운 소리일 것입니다. 세상의 어떤 오케스트라도 연주하지 못하는 기가 막히게 멋있고 아름다운, 그러면서도 웅장하고 위엄 있는 소리일 것입니다. 여러분 중에 음악 하는 분, 특히 작곡하는 분이 계시면 상상력을 총동원해서 이날 울려 퍼질 나팔소리가 어떨지 작곡해 보시기 바랍니다. 잘하면 기가 막힌 작품이 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 소리와 함께 공중으로 재림하십니다. 구원받은 성도들은 이 소리를 다 듣게 될 것입니다. 살아 있는 성도들도 듣고, 죽은 성도라 할지라도 이 소리를 듣고 부활하게 될 것입니다.
그렇다면 구원받지 못한 사람들에게는 이 소리가 들릴까요, 안 들릴까요? 제 생각에는 그들도 들을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 “나사로야 나오라!” 하셨을 때 주위에 있던 사람들이 다 들을 수 있었고, 요한계시록 11장의 두 증인에게 하신 “이리로 올라오라!” 하는 말씀도 다 들을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침례 받으실 때 하늘로부터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하는 말씀도 주위에 있던 사람들이 들을 수 있었고, 예수님께서 높은 산 위에서 변화되었을 때 하늘로부터 들려온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으라” 하는 말씀도 제자들이 들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호령과 나팔소리가 울려 퍼질 때 구원받은 사람들은 당연히 들을 것이고, 구원받지 못한 사람들도 듣게 될 것입니다. 믿는 사람들에게 들리는 이 아름다운 소리가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 들리지 말아야 할 이유가 없습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그들이 그 소리를 들어도 아무 소용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 소리가 오히려 그들에게는 저주의 소리로 들릴 것입니다. 그 소리와 함께 그들은 가슴을 치게 될 것입니다.
2. 성도들의 부활과 몸의 변화
성도들의 부활과 몸의 변화에 대해서 살펴보겠습니다.
데살로니가전서 4장 16b절을 보면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라고 되어 있는데 이것은 교회시대, 신약시대 성도들의 부활을 말합니다. 구약시대 성도들은 언제 부활하는 줄 아십니까? 7년 대환난 직후에 부활합니다. 다니엘서 12장 11-13절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제5강 참조).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 즉 교회시대, 신약시대 성도들만 부활하게 되는데 그 수가 엄청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지금 오신다 해도 이미 2,000년이 지났습니다. 2,000년 동안 얼마나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죽었겠습니까! 그들이 일순간에 다 일어날 것을 상상해보시기 바랍니다. 어떤 사람은 죽어서 흙이 되고, 재가 되고, 연기가 되고, 물고기 밥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하나님의 능력으로 그들을 살리실 것입니다.
그런데 궁금한 것이 있습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할까요? 이미 썩어서 흙이 되고, 재가 되고, 사라져 버렸는데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께는 그것이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지금도 새로운 생명들을 계속 창조해내고 계시는 하나님이신데 죽은 사람 살리는 것이 문제이겠습니까! 그리고 알아야 할 것은 하나님은 이미 썩어서 없어진 그 재료들을 다시 모아서 부활시키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어떤 원리로 부활시키시는지 고린도전서 15장 42-44절의 말씀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죽은 자의 부활도 그와 같으니 썩을 것으로 심고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아나며 욕된 것으로 심고 영광스러운 것으로 다시 살아나며 약한 것으로 심고 강한 것으로 다시 살아나며 육의 몸으로 심고 신령한 몸으로 다시 살아나나니 육의 몸이 있은즉 또 영의 몸도 있느니라.”
이 말씀을 보면 죽은 자의 부활을 ‘땅에 심은 씨앗에서 싹이 나오는 것’으로 비유하고 있습니다. 씨를 땅에 심으면 그 씨가 다시 나옵니까? 땅에 심은 씨는 썩고 그 씨에서 새로운 생명이 나오는데 전혀 다른 것이 나옵니다. 썩은 씨에서 싹이 나고 꽃이 핍니다. 전혀 씨의 흔적은 찾아볼 수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은 분명히 그 씨앗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성도들의 부활도 이런 원리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죽은 성도들의 뼈라든지 살이든지, 흙이 된 이런 것들을 다시 모아서 부활시키는 것이 아닙니다. 썩어진 것은 그것으로 족합니다. 썩어 없어진 것에서 새로운 생명을 하나님께서 만들어 내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상상도 할 수 없는 새로운 몸으로 부활시켜 주실 것입니다.
기독교인들은 전통적으로 부활에 대한 생각 때문에 매장을 선호해 왔습니다. 그런데 화장을 하건 매장을 하건 전혀 문제가 안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썩어 없어지는 씨앗에서 새로운 생명이 나오게 하시는 것처럼 썩어 없어진 몸에서 새로운 생명으로 부활시켜 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살아있는 성도들은 어떻게 될까요? 고린도전서 15장 50-52절입니다.
“형제들아 내가 이것을 말하노니 혈과 육은 하나님 나라를 이어 받을 수 없고 또한 썩는 것은 썩지 아니하는 것을 유업으로 받지 못하느니라 보라 내가 너희에게 비밀을 말하노니 우리가 다 잠 잘 것이 아니요 마지막 나팔에 순식간에 홀연히 다 변화되리니 나팔 소리가 나매 죽은 자들이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아나고 우리도 변화되리라.”
예수님께서 나팔 소리와 함께 공중으로 재림하실 때 살아남은 자의 몸이 변화될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휴거되기 위해서는 지금의 몸으로는 곤란합니다. 휴거되기 위해서는 우리 몸이 먼저 변화될 필요가 있습니다. 어떤 몸으로 변화되는 줄 아십니까? 부활하신 예수님의 몸처럼 변화됩니다.
빌립보서 3장 21절에 “그는 만물을 자기에게 복종하게 하실 수 있는 자의 역사로 우리의 낮은 몸을 자기 영광의 몸의 형체와 같이 변하게 하시리라” 말씀하고 있습니다. 요한일서 3장 2절에는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지금은 하나님의 자녀라. 장래에 어떻게 될지는 아직 나타나지 아니하였으나 그가 나타나시면 우리가 그와 같을 줄을 아는 것은 그의 참모습 그대로 볼 것이기 때문이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의 몸은 어떤 몸이었습니까? 자연법칙에 제한받지 않는 신기한 몸이었습니다. 늙지도 않고 죽지도 않는 몸이었습니다. 시공을 초월하는 몸이었습니다.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부활하신 예수님은 제자들이 문을 닫고 있었는데도 그들 앞에 나타나셨습니다. 또 갑자기 사라질 수도 있었습니다. 엠마오로 가던 두 제자와 함께 음식을 나누시다가 갑자기 그들의 시야에서 사라지셨습니다. 또한 예수님께서 허락해주시지 않으면 사람들이 알아보지 못하는 몸을 가지고 계셨습니다. 엠마오로 가던 두 제자는 예수님과 계속 말을 하면서도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막달라 마리아도 부활하신 예수님을 처음 만났을 때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나중에야 알아보았습니다. 또 예수님의 몸은 중력도 무시하는 몸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어떻게 하늘로 올라가셨습니까? 몸이 떠서 공중으로 올라가셨다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예수님의 몸은 실제적인 몸이었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유령이나 투명인간 같은 것으로 연상하면 안 됩니다. 예수님의 몸은 만질 수 있는 몸이었습니다. 음식도 드실 수 있는 몸이었습니다. 그러면서도 자연의 법칙을 초월할 수 있는 신기한 몸이었습니다. 저와 여러분의 몸도 그렇게 변화될 것입니다.
이런 몸을 가지면 늙지도 않습니다. 죽지도 않습니다. 병들지도 않습니다. 공중으로 올라갈 수도 있고 주님과 영원히 살 수도 있습니다.
지금 병으로 고생하는 분, 늙는 것을 두려워하는 분이 계십니까? 머지않아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몸을 늙지도 않고, 죽지도 않는 몸으로 만들어 주실 것입니다. 그날을 사모하며 삽시다.
3. 성도들의 공중 들림
끝으로 성도들이 휴거되는 것을 살펴보겠습니다.
데살로니가전서 4장 17절입니다.
“그 후에 우리 살아남은 자들도 그들과 함께 구름 속으로 끌어 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하시리니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
이 말씀은 성도들의 몸이 공중으로 들림 받는 ‘휴거’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휴거될 것을 생각하면 신나지 않습니까? 저는 상상만 해도 신이 납니다. 이 땅에서의 모든 수고와 슬픔, 고통과 눈물에서 벗어나는 순간이기 때문입니다. 먼저 간 가족들과 성도들을 만날 것이기 때문입니다. 무엇보다도 우리 주님을 만날 것이기 때문입니다.
성경에는 휴거되는 광경에 대해 자세히 나와 있지 않기 때문에 여러 가지 궁금증이 생깁니다. 어떻게 이 상황이 전개될지 굉장히 궁금합니다. 특별히 더 궁금한 것은 이 땅에 남을 사람들이 성도의 휴거 장면을 목격할 수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휴거에 관한 영화를 보면 어떤 것은 볼 수 있는 것으로 처리하고, 어떤 것은 볼 수 없는 것으로 처리하고 있습니다. 볼 수 없는 것으로 처리한 것이 더 많은 것 같습니다. 작업하기가 어려워서 그런 것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제 생각에는 이 땅에 남을 사람들이 성도가 휴거되는 장면을 볼 수 있습니다. 왜 그렇게 생각하는가 하면 예수님께서 공중으로 올라가실 때 사람들이 볼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요한계시록 11장에서 두 증인이 구름을 타고 올라가는 것도 사람들이 볼 수 있었습니다. 엘리야가 불병거와 불말을 타고 하늘로 올라갈 때도 엘리사가 볼 수 있었습니다. 이런 것을 종합해 보면 성도가 휴거되는 것도 땅에 남을 사람들이 당연히 볼 수 있을 것입니다.
볼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그들은 휴거가 ‘순식간에 홀연히’ 일어날 사건으로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성경을 잘 보면 ‘순식간에 홀연히’ 일어날 일은 들림 받는 것이 아니라 몸이 변화되는 것입니다.
“보라 내가 너희에게 비밀을 말하노니 우리가 다 잠 잘 것이 아니요 마지막 나팔에 순식간에 홀연히 다 변화되리니”(고전 15:51).
‘순식간에 홀연히’ 올라가는 것이 아니라, 순식간에 홀연히 ‘변화’됩니다. 공중으로 올라가는 것도 서서히 올라갈 것 같지는 않습니다. 어느 정도 빠른 속도로 올라갈 것입니다. 그렇다 해도 땅에 남은 사람들이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성도의 휴거처럼 영광스러운 일이 비밀리에 일어나야 할 이유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그 일을 비밀리에 하실 리가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휴거되는 장면을 사람들이 볼 수 있느냐 없느냐가 아니라, 내 자신이 들림 받는 사람들 속에 포함되느냐 이 땅에 남을 사람들 속에 포함되느냐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어느 쪽에 포함될 것 같습니까? 공중으로 들림 받는 사람들 속에 포함될 것 같습니까, 아니면 이 땅에 남을 사람들 속에 포함될 것 같습니까?
예수님께서 공중으로 재림하시고 휴거가 일어날 때 공중으로 들림 받을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지금까지 그리스도의 공중 재림과 그와 함께 일어날 휴거에 대해서 알아보았습니다. 그날은 구원받은 성도들에게 최고의 날이 될 것입니다. 먼저 간 사랑하는 사람들도 만나고 우리를 구원해주신 예수님도 만나게 될 것입니다. 그러니 얼마나 기쁜 날입니까!
그러나 반대로 예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그날이 저주의 날이 될 것입니다. 휴거가 일어날 때 이 땅에 있을 수많은 사고들을 생각해보기 바랍니다. 구원받은 성도가 운전하는 차, 비행기, 열차들이 어떻게 되겠습니까? 운전자가 갑자기 사라졌으니 부딪치고, 떨어지고… 엄청난 사고가 일어날 것입니다. 믿지 않는 사람들은 그 재난 속에서 두려워하며 공포 속에서 떨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그때로부터 무서운 7년 대환난이 이 땅에서 일어나게 됩니다. 이 환난은 이전에도 없었고 이후에도 없을 정말 무서운 환난입니다(제3강 참조).
7년 대환난에 들어가지 아니하고, 예수님께서 공중으로 재림하실 때 들림 받으려면 예수님을 믿고 구원받아야 합니다. 아직 예수님을 믿지 않고 계신다면 예수님을 자신의 구주로 영접하여 구원받고, 예수님께서 다시 오시는 날 구원받은 성도들과 함께 공중으로 들림 받으시기를 바랍니다.
---「제1강 그리스도의 공중 재림과 휴거」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