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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를 잊기로 결심했다

나는 그를 잊기로 결심했다

제로노블(Zero Novel)이동
김다함 | 동아 | 2015년 06월 19일   저자/출판사 더보기/감추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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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15년 06월 19일
쪽수, 무게, 크기 416쪽 | 488g | 147*210*30mm
ISBN13 9791155113806
ISBN10 1155113802

책소개 책소개 보이기/감추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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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만 마시고 돌아 가주세요. 피아노는 그만두기로 했으니까.”
피아노를 보기만 해도 눈물이 날 것만 같은 상황에서 낯선 사람과 살롱에서 단 둘만의 티타임이라니. 나는 어머니의 강요로 만들어진 이 자리가 무척이나 거북했다. 물론 그것은 나에게만 통용되는 이야기일 뿐으로, 맞은편에 앉은 아스테어는 불편한 기색을 내뿜는 낯선 여자가 거북하지도 않은지 단정한 태도로 차를 마시고 있었다.
“이유를 물어도 될까요, 아스트리드 양. 부탁을 받은 입장이라 납득할만한 말을 듣지 않으면 돌아갈 수 없습니다.”
그는 태연하게 웃으며 찻잔을 내려놓았다. 평민 출신으로 예법에 서툴던 시오와 달리 자에 잰 듯 반듯한 자세였다. 찻잔이 소리도 없이 탁자에 안착했다.
“딱히 말하고 싶지는 않은데요. 하지만 누구나 이유는 있겠죠. 베르너 씨 역시 피아노를 그만두고 싶다고 생각하신 적이 있으실 텐데요.”
“물론 있습니다. 하지만 그만두진 못했죠.”
“이유를 물어도 될까요?”
반사적으로 나간 물음에 그가 작게 웃음을 흘렸다.
“그거 조금 전에 제가 했던 질문 아닌가요?”
아스테어가 그렇게 지적하고서야 정확히 그가 했던 질문을 반복했다는 걸 깨달았다. 민망한 기분에 얼굴에 열기가 올랐다.
“뭐, 크게 상관은 없지만요. 그럼 이렇게 할까요? 이야기를 하나씩 교환하기로.”
잠시 고민했지만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왕도에서도 제법 유명하다는 음악가가 왜 피아노를 떠날 결심을 했는지 보다도, 떠날 결심을 하고서도 왜 여전히 그 곁에 머무르고 있는지가 궁금해졌다.
“피아노를 그만두고 싶다고 생각한 건 바우어 예술대학에 입학한 뒤였습니다.”
아스테어는 이미 내 대답을 예상하고 있었다는 듯 천천히 이야기를 이어갔다.
“거기서 시오 리즐로테를 만났거든요. 나름대로 피아노에 재능이 있다고 생각했었는데, 이건 뭐, 비교불가였죠.”
시오는 바우어 예술대학에 입학하기 전부터 유명한 음악가였지만 변변한 후원자가 없었던 탓에 대중 앞에 나서는 일이 극도로 적었다. 덕분에 아스테어는 대학에서 처음으로 그의 연주를 들었다고 했다. 그전까지 소규모 살롱에서 흘러나오던 시오에 대한 소문을 관객들의 과장이라고 생각했었지만, 직접 그의 연주를 목도한 후에는 오히려 소문이 그의 실력보다 못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는 말도 덧붙였다.
“말하자면 뛰어넘을 수 없는 어떤 한계를 느낀 겁니다. 예술가는 만들어지는 게 아니라 태어나는 거라던데. 전 그 말이 딱 그 녀석을 두고 한 말이라고 생각했죠. 한 때는 내가 그 선택받은 사람이라고 믿은 적도 있었지만.”
한 때는 내가 선택 받은 사람이라 믿었다. 대상은 다르지만 가졌던 믿음은 같았다. 나는 어쩐지 절박해진 심정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아스테어는 어떻게 배반당한 믿음을 견뎌내고 그 곁에 머무른 것일까.
“하지만 베르너 씨는 아직도 음악을 하고 계신 걸로 알고 있어요.”
“평생 배운 게 어디 가겠습니까. 하루라도 피아노를 치지 않으면 손이 간질거려 참을 수가 있어야지요. 그러니 적당히 한계를 인정하고 계속 가는 쪽을 택한 겁니다.”
그러면서 그는 제 손을 들어보였다. 하얗고 큰 손. 영락없는 음악가의 손이었다. 문득 내 손은 어떻게 생겼을까 궁금해졌다. 찻잔을 쥐고 있는 손을 내려다보니 군데군데 박힌 굳은살과 길게 늘어난 손가락이 눈에 들어왔다. 고된 연습의 흔적이었다.
“자, 이제 아스트리드 양 차례입니다.”
그의 시선이 내 손에 닿았다가 다시 얼굴로 향했다. 나는 차마 그 시선을 바라볼 수 없어 고개를 떨어뜨렸다.
“피아노를 생각하면 떠오르는 사람이 있어요. 난 그 사람을 잊기로 결심했고, 그러니 피아노는 칠 수 없어요.”
“그 사람이라는 게 시오 리즐로테입니까?”
굳이 물음에 대답하지는 않았지만 침묵이 답이 되리란 건 알았다. 그 은근한 대답에 아스테어가 설핏 웃음을 흘렸다. 그 웃음에는 예상하지 못한 안도감이 섞여 있었다.
“아스트리드 양께서 생각보다 극단적인 분이셔서 놀랐지만, 아무튼 피아노가 싫어진 건 아니란 거군요. 그렇다면 다른 방법을 생각해볼 수도 있을 것 같은데요.”
아스테어가 턱을 매만지며 생각에 빠졌다. 고개를 갸웃거리며 한참이나 고민하던 그가 이내 자리에서 일어섰다. 이제 떠나려는 것인가 싶어 덩달아 몸을 일으키니 아스테어가 활짝 미소를 지었다.
“요컨대 피아노를 생각했을 때 그 사람이 떠오르지 않으면 아무런 문제가 없는 거 아니겠습니까?”
아스테어는 이해할 수 없는 말에 미간을 찌푸리는 나를 지나쳐 피아노 앞까지 걸어갔다. 그의 걸음이 피아노에 가까워질수록 내 얼굴이 점점 굳어졌다.
“제게 피아노를 연주해주시겠습니까?”
아스테어가 피아노 뚜껑을 열었다. 하얀 건반이 드러나자 미간이 찌푸려졌지만 아스테어는 아랑곳 않고 조율 상태를 확인하듯 건반 몇 개를 눌러보았다. 그의 손을 따라 음들이 규칙 없이 허공을 떠돌았다.
“피아노는 이제 안 할 거라고 말씀드린 것 같은데요.”
“연주를 해주신다면 조용히 돌아가겠습니다.”
지능적인 제안이었다. 나는 잠시 말을 아끼다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앞으로 찾아오실 일도 없다고 약속하시면 연주하겠어요.”
“아스트리드 양의 생각이 변하지 않는다면 기꺼이.”
어서 살롱을 벗어나고 싶었던 나로서는 결코 거절할 수 없는 거래였다. 나는 불만을 가득 담은 채 터덜터덜 걸어가 피아노 앞에 앉았다. 머뭇거리던 내 손이 건반 위에 닿음과 동시에 건반을 누르던 아스테어의 손가락이 떨어졌다.
“이왕이면 가장 그 사람을 많이 떠올리게 되는 곡으로 부탁드립니다.”
시오를 가장 많이 떠올리게 하는 곡이라면 단연 야상곡이다. 내가 처음 시오를 보았을 때 그는 야상곡을 연주하고 있었고, 그리하여 내 안에 야상곡은 오롯이 시오로 남았다. 입술을 질끈 깨물고는 움직이지 않는 손을 억지로 움직였다. 빠른 곡이었다면 무리였겠지만 원래부터 느린 곡이라 머뭇거리는 손길을 감출 수 있을 것 같았다.
“야상곡. 그 녀석의 대표곡이로군요.”
망설임과 함께 시작된 초반부를 들은 아스테어가 작게 중얼거렸다. 시오는 뛰어난 음악가답게 다양한 곡들을 소화해 냈지만, 그 중에서도 그의 대표곡을 꼽으라면 사람들은 두말할 것도 없이 야상곡을 꼽았다.
내면 깊은 곳의 슬픔, 슬픔을 이겨내려는 간절함, 간절함으로 붙잡은 희망. 사람들은 그의 연주 속에서 그런 것들을 읽어 냈다. 그렇다면 나도 이 야상곡에서 그런 것들을 찾을 수 있을까. 믿음이 배신당한 것이 슬펐고, 간절하게 이 배반으로부터 벗어나고 싶었다. 나는 이 간절함이 나를 희망으로 이끌어주길 바라며 손을 놀렸다.
하지만 아무리 건반을 눌러보아도 돌아오는 것은 그날 시오가 내게 남긴 강렬함뿐이다. 그가 몇 개의 음으로 보여준 그 감정들이 내게 남아 주변을 맴돌았다. 흩날리는 머리칼, 유려한 손, 가라앉은 눈동자. 연주가 이어지는 동안 내 안의 모든 것은 시오였다. 눈물이 날 것 같았다.
그 순간 아스테어가 내 턱을 붙잡아 얼굴을 제게로 돌렸다. 깜짝 놀라 눈을 뜨자 아스테어의 얼굴이 바로 눈앞에 있었다.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기도 전에 그의 얼굴이 내게 다가왔다. 당황하여 몸을 뒤로 뺐지만 내가 물러선 만큼 그가 다가왔다.
“베르너 씨. 이게 뭐하는.”
다급한 말이 입 밖으로 채 나오기도 전에 그의 입술이 입을 막았다. 벌어진 입술 사이로 그가 들어왔다. 입안으로 들어온 생소한 느낌에 고개를 돌려보았지만 그는 턱에 머물렀던 손으로 뒤통수를 붙잡아 간단하게 나를 제압했다.
갑작스레 밀려온 그의 무게에 몸이 기울어지자 단단한 그의 팔이 등을 받쳐왔다. 거리는 무척이나 가까워져 있었다. 온 몸에 닿아오는 그의 온기와 입 안의 부드러운 움직임에 도무지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그나마 자유로운 손으로 그의 가슴을 밀어보았지만 그는 꼼짝도 하지 않았다.
어느새 선율은 끊겨 있었다. 그날의 정경도, 시오의 얼굴도 사라졌다. 오로지 지금 닿은 생경한 감각들만이 내 안에 가득했다. 벌어진 틈 사이로 질척이는 소리와 함께 옅은 신음이 흘러나왔다. 그 소리에 아스테어가 슬쩍 얼굴을 뺐다.
“자, 방금 피아노 앞에 앉아 있으면서도 그 녀석의 얼굴 따위 생각도 못했죠?”
뭐라고 말을 해야 하는데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아스테어의 말처럼 그 순간 나는 시오의 얼굴을 떠올리지 못했다. 당황하여 시오를 떠올릴 새가 없었다는 말이 더 옳았지만 어쨌든 그 순간 시오의 얼굴이 내 속에 없었던 것만은 분명했다.
멍청하게 입을 뻐끔거리는 나를 보며 아스테어가 작게 웃음을 흘렸다. 여전히 입술이 가까이 맞닿아 있었기 때문에 그 숨결에 입술이 간지러워져 몸을 떨었다. 그 모습에 다시 한 번 아스테어가 웃음을 흘렸다.
“아스트리드 양은 거짓말을 못하는 점이 귀엽네요.”
뒤통수를 붙잡고 있던 아스테어의 손길이 떨어졌다. 그는 엄지손가락으로 내 입술에 묻은 타액을 정성스레 닦아 내고는 흐트러진 머리카락을 손으로 쓸었다. 등을 붙잡고 있던 손까지 떨어지자 힘없이 몸이 기울었다. 의자 손잡이에 손을 짚어 겨우 중심을 잡고 멍한 얼굴로 그를 올려다보니 그는 더없이 해사한 웃음을 짓고 있었다.
“이제 피아노 앞에 앉으면 그 녀석이 아니라 오늘이 먼저 떠오를 겁니다. 그럼 아스트리드 양이 피아노를 그만 둘 이유도 없지요.”
“이봐요. 베르너 씨.”
황당한 마음에 아스테어를 불러보았지만 그는 이미 내게서 한참이나 떨어져 있었다.
“다음에 볼 때는 아스테어라고 불러 주십시오. 개인적으로 그 쪽을 좀 더 선호하거든요. 오늘은 정신이 없으신 것 같으니 그만 물러가겠습니다. 부디 저질렀던 무례는 너그러운 마음으로 용서해주시길.”
그는 그렇게 말하며 내게 인사를 건넸다. 오래 전 기사들이 하듯 오른손을 가슴에 얹고 깊게 고개를 숙이는. 거칠었던 입맞춤과는 달리 무척이나 신사적이고 단정한 인사였다.
---본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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