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도 나는 조, 그리고 조에게 소개받은 스웨덴 친구 크리스토퍼와 함께 예테보리 대학 옆에 위치한 카페에서 세월 좋게 퓌까를 즐기고 있었다. 꽤나 많은 나라를 여행한 크리스가 아시아에서 겪은 이런저런 모험담을 다소 허풍을 섞어 늘어놓는 동안, 역시나 조는 깔깔거리며 친구의 흥을 돋웠다. 그런 조에게 묘한 경쟁심이 발동했을까? 사실 뭔가 엄청 궁금했던 것도 아닌데, 나는 짐짓 심각한 표정으로 크리스에게 물었다.
_ 그나저나 스웨덴의 가장 큰 매력이 뭘까?
_ 응? 글쎄, 뭐 별다른 매력이랄 게 있을까? 특히 넌 한국에서 왔으니까 여기가 엄청 지루하고 느리게 느껴질 텐데.
_ 그래도 스웨덴만의 뭔가 특별한 게 있을 것 같은데…….
_ 어디 보자……. 아, 다른 건 몰라도 이거 하나는 확실히 말해줄 수 있겠다. 우리가 전 세계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들인 거?
그는 퓌까의 분위기에 맞게 아주 천천히 커피를 한 모금 마시며 아무렇지 않게 말했다. 우리가?세상에서?가장?행복한?사람들이라고.
나는 잠시 멍한 기분이 들었다. 수많은 신문, 잡지, TV에서 스웨덴을 가장 행복한 나라 중 하나로 꼽고 있다는 것은 알았지만 그것을 활자로 읽는 것과 아주 평범한 스웨덴 청년이 이렇게 일상적인 대화 속에서 스치듯 말하는 것의 느낌은 전혀 달랐다. 마치 미국은 아주 큰 나라지, 서울은 정말 바쁘게 돌아가는 도시야, 라고 말하듯 ‘우리는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국민들이야.’라고 말하는 사람이라니!
: 지구에서 가장 행복하다/ 03/ ‘왜 북유럽을 좋아하나요’ 중에서
_ 마리, 네가 질문할 때 보면 무슨 전사 같다는 생각이 들 때가 많아.
어느 날 퓌까를 하면서 내가 말했다. 아시아에서 온 학생들은 금세 무슨 뜻인지 알아듣고 키득댔지만, 북유럽 친구들은 대체 무슨 소린가 싶어 고개를 갸우뚱했다. 베트남에서 온 친구까지 합세해서 왜 그녀의 질문 공세가 우리에게 낯설고 놀라운지 설명해주자 마리는 이렇게 말했다.
_ 글쎄. 만약 교사가 ‘A는 B다’라고 했다고 쳐봐. 그럼 한국에서는 A가 B라는 걸 아는 게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 아닐까? 우리는 A는 왜 B여야 하는지 묻거나 아님 A가 B는 아닐 수도 있다고 비판할 줄 아는 걸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거고.
(중략)
스웨덴은 대한민국의 네 배가 넘는 영토를 가졌지만 인구수는 천만 명에도 못 미치는 작은 국가다. 그래서 사람이 귀한 나라. 특별한 자원이 없는 한국과 마찬가지로 좋은 사람들을 길러내는 것이 국력을 키우는 것 이고 미래를 여는 열쇠가 되는 나라이다. 하지만 어떤 사람을 길러낼 것인가에 있어서 한국과는 목적과 방법이 꽤나 달랐다. 그들 교육의 가장 중요한 목표 중 하나는 혼자 뭔가를 이루는 사람보다는 공동체의 문제를 적극적으로 발굴하고 해결해 나갈 수 있는 사람을 길러내는 것. 그러니 무엇보다 사회와 사람, 삶의 본질에 대해서 끊임없이 고민하고, 비판하고, 질문하는 교실이 필요했던 것이다.
이 사회는 항상 “네.”라고 말하며 칭찬받는 아이보다 비뚤어진 세상을 비뚤어지게 볼 줄 알고 그걸 바꾸는 데 용기를 더할 수 있는 아이들을 더 바라고 있었다.
: 질문의 탄생/ 01/ ‘아주 삐딱한 물음들’ 중에서
드디어 찾아온 것이다. 순전한 어둠의 시간, 바로 ‘극야(Polar night)’다. 겨울이 오면 북유럽 중에도 특히 최북단 지역에서는 놀랍게도 이메일에서 언급한 것처럼 태양이 지평선 아래로 영원히 사라진 듯 숨어버리는 날들이 시작된다. 정오 즈음 동이 트는 듯하다가 한두 시간 뒤면 이내 칠흑 같은 밤. 스칸디나비아 남부 지역이라고 해도 해가 뜨는 시간은 고작 서너 시간. 이렇게 밤이 계속되어 거리 전체가 눈과 암흑으로 덮이고 긴 동면에 들어가는 날들을 사람들은 극야라고 부른다. 북유럽 북단에 이민을 온 사람들이 가장 힘들어하는 것이 다름 아닌 이 극야라고 한다. 첫 한두 해는 오히려 이런 신비한 날들을 즐기고 재미있어 하지만, 이내 그 깊고 낯설고 긴 어둠에 지쳐버리는 것이다.
(중략)
길고도 깊은 어둠의 겨울 때문에 백야의 여름과 햇빛을 대하는 북유럽 사람들의 마음과 태도에는 애착과 애틋함이 묻어난다.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모두 밖으로 나와 햇빛에게 시간을 온전히 내주는 것. 얼마나 오랫동안 기다려온 태양인가? 그렇게 긴, 게다가 햇빛도 없는 겨울을 이기고 피는 꽃과 나무와 숲, 이들을 가득 채우는 빛의 온기가 얼마나 사랑스럽고 기특해 보이겠는가. 또 얼마나 아름답고 장엄하겠는가.
: 그 모두를 벗고 춤추는 당신/ 01/ ‘영원과 같은 낮과 밤’ 중에서
북유럽 국가들은 서구 어느 나라에 비교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성에 대해서 개방적이다. 그러니 북유럽 사회에서 사랑하는 사람들이 함께 사는 것은 조금도 흠이 되지 않는다. 더 많이 시간을 보내고 싶은 두 사람이 같이 살고 싶어지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고, 그러면 집값과 생활비도 아낄 수 있으니 일거양득이라고 생각한다. 부모들도 굳이 반대하지 않고, 오히려 커플이 서로 한 도시에 살고 있는데 동거를 하지 않으면 그게 더 이상하게 비춰질 정도.
_ 한국에서는 말이야, 동거를 한다면 당장 부모님과 한바탕 전쟁을 치러야 할 걸?
_ 왜? 그럼 사랑하는 사람과 같이 살지도 못한단 말이야?
_ 조금씩 변해가고 있기는 한데, 나중에 결혼을 할 때 배우자의 동거 경험에 신경을 쓰는 사람들이 많거든.
_ 거 참 알 수 없네. 누군가를 열심히 좋아해봤다는 게 왜 흠이 되지?
그렇다. 녀석들에게는 사랑한다는 것과 함께 산다는 것 사이의 거리가 우리만큼 멀지 않은 거다. 함께 아침을 먹고, 같은 침대를 쓰고, 생활방식을 공유하는 게 곧 사랑하는 일의 일부인 것이다. 그리고 동거를 하다가도 다른 사정이 생기면 따로 나오기도 하고, 그러다가 사정이 바뀌면 다시 동거를 시작할 수도 있는 일.
(중략)
사랑하는 사람들은 언제든 함께 살 수 있는 곳. 그리고 그 삶에 확신을 가지면 또 언제든 가족을 만들 수 있는 곳. 그 외에도 이런저런 대안가족들이 공동체를 이루는 곳. 여기는 바로 그런 곳이다.
: 그 모두를 벗고 춤추는 당신/ 07/ ‘당신과 한번 살아보고 싶어’ 중에서
_ 주말에는 다 문을 닫으니까, 주말 동안에 먹을 것들은 금요일에 미리 사두어야 해요.
북유럽에서 첫 주말을 맞을 때, 기숙사를 청소하는 아주머니가 내게 가장 먼저 해준 말이다. 그렇게, 저녁이 깊어지고 휴일이 찾아오면 잠시 모든 것을 정지하는 사람들.
그러나 이들에게 이런 정지는 멈추는 시간이 아니라 각자가 자기 자신에게 돌아가는 시간이다. 가족에게, 친구에게, 사랑하는 사람들이나 자신만의 세계로 온전히 돌아가는 시간.
느리게 산책하기. 사색하기. 삼삼오오 누군가의 집에 모여 이야기 나누기. 가족이나 친구와 함께 요리하기. 아주 천천히 갖는 식사시간. 근처 마을이나 바다로 소풍 가기. 공원에서 낮잠 자기. 이 모든 것들을 되도록이면 사랑하는 사람들과 같이 하기. 이것이 저녁이나 주말이 되면 도시가 멈춘 시간에 이들이 하는 일들이다.
(중략)
그가 말하는 ‘열심’과 ‘느긋함’ 역시 그들과 우리 사이에 분명한 의미 차이가 있다. 내가 그곳에서 관찰한 ‘열심’이란 사랑하는 사람들과 삶을 열심히 나누는 것이었고, 그들의 ‘느긋함’이란 막상 알고 보니 인생에서 별로 중요하다고 생각되지 않는 것들에게 함부로 쫓기지 않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나는 그들을 통해 속도를 해석하는 새로운 방법을 배우고 있다는 생각이 들 때가 많았다. 24시간 멈추지 않는 도시가 필요한 사람들. 이것은 우리가 결국 어떤 속도의 삶을 지금 살아가고 있는지 짐작할 수 있는 단서이다. 그리고 우리의 속도에 관한 북유럽의 속삭임은 아마도 이런 것.
_ 때론 가속도의 페달에서 발을 뗄 줄 알아야 행복의 속도를 지킬 수 있는지도 모르죠.
: 함부로 쫓기지 말라/ 02/ ‘멈춰야 하는 시간’ 중에서
나는 뭔가에 쫓길 때가 많았다. 왜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항상 그래 왔다. 특히 내 비슷한 또래의 친구들이 높은 연봉을 받으며 격렬하게 성공을 향해 매진하고 있는 것을 지켜볼 때 묘한 조바심이 일었다. 언제나 비슷했다. 지금도 실은 크게 다르지 않다. 다른 길, 다른 가치, 다른 삶의 가능성에 대한 고민과 궁금함으로 나는 이곳에 왔지만 여전히 내 안에는 크고 작은 염려와 의심이 자주 솟아올랐다.
(중략)
_ 북유럽에서 지낸 시간 동안 당신은 어떤 사람이었나요?
누가 묻는다면 나는 첫째로 이전보다 훨씬 느린 사람으로 살았다고 답하고 싶다. 시간을 멈추고 북유럽 친구들과 함께 느리게, 그러나 부단하게 거리를, 숲을, 운하와 낮은 산들을 허투루 걷고 헤맸다. 대체 왜 그렇게 열심히 뭔가를 이기고 싶어 했는지, 자신을 끊임없이 개발해야 한다고 믿었는지, 그 당연하던 부지런함과 치열함, 때론 강요된 열정을 더 자 주 더 많이 의심했다.
속도는 언제나 불안정을 동반한다. 고속으로 달리는 자동차와 조금도 다를 것이 없었다. 나는 쉼표를 발견했을 때 잠시 숨을 고르고 마음을 가다듬어야 한다는 그 문장부호의 뜻을 미처 읽지 못하고 되레 속도를 높였다.
(중략)
그러나 나는 멈추는 것, 질문의 본질을 따지는 것, 다른 해답을 고민하는 것, 이 모든 걸 음미하는 것을 놓치고 말았다. 진작 배웠어야 했던 속도 연습을 북유럽에서 이제야 배우는 기분이 들었다.
속도를 늦추고, 때로 기꺼이 멈춰서는 즐거움이었다.
---함부로 쫓기지 말라/ 03/ ‘숨을 고르는 자리’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