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고 있네'하고 화가는 말을 이었다. '이 미치광이들은 이것이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는 모양이다. 창작 금지라니! 저들은 아마 방해를 하기 위해 갖가지 방법을 동원하겠지. 해보라지. 그러나 이 한 가지, 그림그리는 것을 막진 못할걸. 이건 이미 다른 사람들이 써먹었던 방법이야, 벌써 오래 전에. 하지만 저들은 이걸 알아야 될 거야. 원치 않는 그림에 대해 금지시킬 방법이 없다는 사실을. 국외로 추방을 한다거나, 또는 눈을 후벼 파버리는 한이 있더라도. 손이 잘리면 그들은 입으로 그렸으니까. 이 바보들은 또 눈에 보이지 않는 그림이 있다는걸 모르고 있단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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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기다리고 있는 풍차 쪽을 나는 건너다보았다. 주머니속의 빵들은 점점 무게를 더해 가며 그것들의 존재를 알려주고 있었다. 나는 창틀 위에 놓아둔 푸른 깃발을 들고 아버지의 면전에 잠시 흔들어보았다. 일어나는 바람에, 그리고 계속되는 깃발 신호에 아버지는 머리를 들었다. 그리고 아버지가 나를 자신의 생각 속에 끌어넣고 있다는 사실을 곧 알게 되었다. 아버지는 짤막한 파이프 담배에 불을 붙였다. 오른쪽 눈에 난 다래끼를 어루만지며,작은 파열음과 함께 입술 사이로 담배 연기를 풀썩 내뿜었다. 그러곤 다시 그 의미심장한 정관의 자세, 나는 이렇듯 위압적으로 앉아 있는 그의 모습이 싫다. 저의가 깔려있는 이 침묵이 두렵고, 그 엄숙한 무언의 상태를 증오한다. 먼 곳을 바라봄으로써 자신을 드러내지 않는 제스처, 내면으로 귀를 기울이며 더 이상 말하지 않는 우리네의 습벽이 나는 진정으로 두렵다.
루크뷜의 파출소장은 담배 연기의 막을 통해 환각에라도 걸린 듯, 끊임없이 벽을 응시하고 있었다. 만일 거기에 얼룩점이 하나 생겨난다 해도, 또는 벽돌 한 장이 빠져나온다 해도, 나는 역시 놀라지 않았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