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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향

귀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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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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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일 2001년 03월 31일
쪽수, 무게, 크기 222쪽 | 368g | 크기확인중
ISBN13 9788932903446
ISBN10 89329034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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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로니카, 당신은 가까이, 아주 가까이, 손을 뻗으면 닿을 것 같은 곳에 있어. 당신을 만난다는 두려움, 그러나 그 두려움은 천천히 사라지고 있어. 베리노카, 당신은 알고 있을까. 내가 당신에게 달려가지 않은 것은 그 열병, 시작하면 마지막 순간까지 도달하게 만드는 그 빌어먹을 열병 탓이었지.
--- p.166
바야흐로 나의 하루는 오후 6시 이전에 멋지게 시작될 참이었다. <생일 축하합니다> 나는 마음속으로 그렇게 중얼거리며 왼발을 뻗었다. 동시에 캔맥주 상자가 허공을 날았다. 그때서야 대낮부터 알코올에 젖은 애송이들이 적당한 거리를 두며 뒷걸음질치기 시작했다. 나는 <생일 축하합니다>라는 말을 마음 속으로 연신 중얼거리며 바닥을 나뒹구는 캔맥주를 하나하나 밟아 터트린 뒤, 재빨리 지하철 승강기로 내려갔다.

지하철 안은 여느때처럼 말 없는 승객들로 만원을 이루고 있었다. 그들은 늘 그렇듯 말이 없었다. 몇 사람이 못마땅한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더니 그림책이 제공하는 초보자 독서 과정에 다시 열중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다섯 개 역을 더 가야 할 나의 동행자들이었다. 어쩌면 내 생각이 틀릴 수도 있겠지만 나는 그들을 하나같이 똑같은 사람으로 보았다. 그들은 공장이나 사무실에서 8시간 동안의 일에 지쳐 있었다. 그들은 따스한 카페에 앉아 적당히 쉬면서도 충분한 수입을 올릴 수 있는 직장이 어디인지 찾고 싶은 능력은 고사하고 그럴 만한 의욕조차 없었다. 그들은 하나같이 미지근한 캔맥주를 홀짝이는 연금술사들이었다. 그들은 침묵의 가정에서 오이 조각과 소시지 쪼가리를 넣은 지독히 슬픈 빵 조각으로 내장을 채웠다.
--- pp. 30-31
동전의 일면밖에 몰랐던 사람은 그 나라를 떠나 자신의 실수를 또 다른 곳에서 생각하지만, 반면에 터널을 뚫어 본 사람은 그것이 양쪽으로 막혀 있다는 사실을 알기에 꿀이 잔뜩 발라진 띠에 달라붙은 파리처럼 떠나지않고 스스로를 구속한다. 그 터널 속에는 빛이 존재하지 않았다. 그 빛은 뜨거운 열이 만들어낸 빛에 불과했다. 지금 당신이 거주하는 곳의 정형 외과 수술실 같은 빛은 당신이 출구도 없는 영토에 살고 있다는 것을, 그래서 해가 바뀔때마다 그곳을 탈출할 수 있는 평온함과 지혜로움을 말해 주는 대신에 당신을 옭아매는 고리보다 더 참혹한 노예의 발목을 매단 쇠사슬로 변해 있다. 그런데도 당신은 어느 때나 움직일 수 있고, 어느 방향으로든지 나아갈 수 있다고 믿고 있다. 그러나 모든 국경은 당신이 다가가면 갈수록 역시 그만큼 멀어지고 있음을 당신은 왜 모르는가.
--- p.36
길은 생각보다 간단치 않았다. 밝은 달빛 아래 드러나는 도로는 온통 구덩이투성이었다. 게다가 칼파테로 뒤덮힌 광활한 회색빛 들판은 단조롭다 못해 황량하게 느껴졌다. 그러나 그는 자신이 티에라 델 푸에코의 밤 경치를 즐기기 위해 2만킬로미터를 여행한 것이 아니라며 스스로를 토닥거렸고, 작전에 임할때마다 수없이 시도했던 경험을 떠올리면서 즉시 온몸에 근육을 팽창시켰다. 사지에 기력이 일면서 힘이 솟구치고, 그 힘이 두 다리 사이로 집중되면서 고통스런 발기로 이어지는데 걸리는 시간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그는 그순간에 사냥꾼들이 표적의 움직임을 좇고 그 표적물을 겨누는 동안 극도의 긴장감 속에서 무의식적인 발기와 사정을 경험한다는 기억을 떠올렸던 것이다. <하지만 그게 사냥꾼에게만 일어나는 현상이 아니었어.> 그는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사실이 그랬다. 그것은 군인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알렉산더 대왕은 전투에 들어가기 직전에 장교들을 모아 놓고서 전투원들의 샅을 살피도록 지시하지 않았던가.
--- p.186-1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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