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이 차다.
꽁꽁 얼어버릴 것만 같은 손은 주먹을 꽉 쥔 채 점퍼주머니 속에 넣었다. 나연이 집으로 가는 길이다. 좁은 골목골목이 너무 복잡해서 집을 찾기다 어렵다. 이사 온 지 얼마 되지 않아 두어 번 가보았지만 길치인 탓에 여전히 헤맨다.
데리고 가야 한다. 내가 포기하면 이 아이의 인생도 포기하는 것이다. 의지도, 사랑도, 의망도 꿈도 없는 이 아이의 영혼을 포기하는 것이다.
---「1부 노답은 없다_ ‘예수님은 니가 좋다 하시드라’」중에서
“그런 콩나물을 없습니다. 계속 물을 부어주면 반드시 자랍니다. 그럴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제가 밑 빠진 독이라서 잘 압니다. 저도 종자부터 글러먹은 콩나물 대가리였습니다. 저도 노답이었습니다. 하지만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물을 부어준 사역자들이 있었기에 지금의 제가 있는 겁니다. 그게 예수님 사랑 아닙니까? 내같이 호래자식 소리 듣던 놈도 인간으로 만들 수 있는 게 예수님이 지독한 사랑 아닙니까.”
---「1부 노답은 없다 _ ‘콩나물은 밑 빠진 독에서 자란다’」중에서
그렇게 일년 반이 지난 게다. 페이스북으로 나연이 사연이 알려진 후 관심을 받고 사랑을 받았지만 여전히 그 자리에 머물러 있다. 이불을 미라처럼 둘둘 감고 10시 30분이 되어도 일어나지 않는다. 씨루고 달래며 깨우다가 나도 깜빡 졸아버렸다.
“뛰라!”
“아, 숨차요!”
“교회 가다가 숨차서 죽으면 순교다. 뛰라!”
달리자, 나연아! 전도사님도 방향도 모르고 달리고 있다. 달리다가 힘들면 고마 드러누워뿌도 된다. 사는 거 짜다리 별거 있겠나. 좀 힘들게 살아도 이래 달리다가 하나님 품에 안기면 되는 기다. 하나님 품은 윽수로 따시다. 윽수로 포근하고 윽수로 좋은 데다. 쪼매만 참고 살자. 알았제!
---「1부 노답은 없다 _ ‘달리자 나연아’ 」중에서
‘예수님 오늘은 고마 기분이 별로 안 좋습니다.’
어디서 ‘상현아, 상현아!’ 부르는 것 같다.
‘고마 됐고요. 오늘은 별로 말 안 할랍니다.’
‘나는 맨날 금마들 하고 같이 있다 아이가.’
‘…….’
‘천국 델꼬 가주셔야 됩니데이. 진짭니데이. 임마들 진짜 천국 델꼬 드가주셔야 됩니데이. 못 드가면 예수님이고 뭐고 쌍거, 욕해뿝니데이.’
‘니가 그래 델꼬 드가고 싶으면 나는 어떻겠나. 임마, 니가 그렇게 간절하면 내 마음은 얼마나 더 간절하겠나 이말이다!’
1부 노답은 없다 _ ‘천국에서는’ 중에
“막상 뛰어내리려고 하니까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아버지는더 이상 손을 쓸 수 없는 병으로 인해 요양원에 들어가 있고, 엄마는 할머니를 돌봐야 한다며 떠났다. 란이는 백수인 두 오빠 밑에서 집안일을 하며 살아가고 있었다. 선영이와 마찬가지로 란이도 자살 충동으로 인해 정신과 치료와 상담을 받았다.
“학교는 잘 못 나가서 한 번 퇴학당했다가 다행히 복학이 되어서 다니고 있어요. 근데 영어 선생님이 자꾸 아이들 앞에서 이런 쉬운 단어도 모르냐고 창피를 주고 무시하는 말을 해서 너무 힘들어요.”
쌍거, 욕이 턱밑까지 차올랐다. 부모의 관심이나 손길을 받아보지 못한 여자아이들은 남자이이들보다 더 자손감이 낮다.
---「1부 노답은 없다 _ ‘한 번만 안아주세요」중에서
일두도 처음에는 말하지 않으려 했다. 꿈이 뭐냐고 묻자, “그냥 사는 거.”라고 쿨하게 답했던 일두다. 하지만 한 번만 찾아올 줄 알았던 촌스러운 전사님이 또 찾아가고 또 만나러 오자, 작은 가슴에 응어리져있던 것을 내뱉기 시작했다.
“아빠는 어릴 때 집을 나갔고, 엄마는 공장에서 기숙사 생활을 해요.”
“그라믄 엄마를 봇 보는 거가?”
“한 달에 한두 번 집에 오세요.”
“밥은 우째 해먹고 있는 긴데?”
“할머니가요.”
“…….”
차마 묻지 못했다. 엄마 안 보고 싶냐고. 그 말을 하면 울어버릴 것 같았다. 일두가 아니라, 내가 울어버릴 것 같았다.
---「2부 계란으로 바위치기 _ ‘은색 궁전’」중에서
어깨가 축 처져있다.
참 내, 사랑도 많이 받으며 자랐고 남부러울 것 없는 좋은 학교에 합격했는데, 고민과 염려가 끝이 없다. 그리고 무엇보다 예수님을 어떻게 믿어야 하는지, 뭘 믿고 뭘 해야 하는지 갈등한다. 절벽 아래로 떨어져 꿈틀거릴 때, 그 기간을 지루할 만큼 길고 고생스러워서 내가 죽었는지 살았는지 분간도 못 한다는 거다. 그래서 사람이 겸손을 알게 되고 자기 꼬라지를 잊지 않고 살 수 있게 도와주시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다들 자기 삶의 자리가 힘겹고 무거워서 지쳐있는 것 같다. 좋은 곳이든 나쁜 곳이든 환경과 상관없이 거기 나름대로의 절벽이 있는 게다.
---「2부 계란으로 바위치기 _ ‘절벽 밑에 계신 예수님 중에
“나는 두 환경에서 자라는 아이들 다 만나봤는데요. 아, 물론 전부 그렇다는 거는 아니고요. 내가 만나본 아이들은 다 그렇더라고요. 실제로 내가 추구하는 가치를 따라서 사는 가정의 아이를 보니까, 세 남매였는데 천사들 같은 기라요. 얼굴이 그렇게 밝을 수가 없으예. 항상 웃고 감사하고 즐거운 기라요. 집도 좁고 가난한데 매일 아빠 엄마 손잡고 기도하고, 같이 찬송 부르고 잘 때 머리 감싸주고 기도하고 천국이 따로 없는 기라요. 식탁에 앉으면 고기반찬 별로 없어도 맛있게 뚝딱 해치우고 즐겁게 이야기 나누고요. 근데 잠실에 커다란 아파트 사는 집 애는 보니까 완전 쩔어 가지고, 학원 좀 안 다니고 싶다고, 좀 구해달라고 울더라고요. 밥도 같이 안 먹는다고 합니다. 다 바빠 가지고 따로 밥 묵고 대화도 안 한다카드라고요. 쌤은 누가 더 행복하다고 생각합니꺼.”
---「2부 계란으로 바위치기 _ ‘개미와 베짱이’ 」중에서
“선영이 집에 있심니까?”
“전사님, 내가 알아서 간다니까 왜 오셨어요?”
“내 취미다.”
“아, 크크크크. 그런 취미가 어딨어요!”
예수님이 교수님이었다면 강의 제목은 아마 ‘문 앞에 서서 기다리기 학(學)’이었을 것이다. 돌아올 때까지 문 앞에 서서 비가 오나 눈이 오나,폭풍이 쓸고 가나 홍수가 지나가나 항상 거기 조용히 서서 가만히 서 계시는, 그게 예수님 전공분야였을 것이다. 그게 참 간지나고 멋있어 보여서 나도 따라 해보고 싶어서 그렇게 문 앞에 서 있다.
---「끝나지 않은 이야기 _ ‘천국이 느그 꺼다’」중에서
놀랍습니다. 이 불공평하고 무지막지한 세상을 살아가는 저 어린 영혼이 당신을 만나자 공평해져 버렸다고 고백하는 것을 보니 당신의 기적이 틀림없습니다. 선한 일을 시작한 내가 이룬다 하시더니 참말로 그리하셨군요.
진짜로 당신은 능력자시군요. 제 귀에 들려주셨던 그 이야기를, 지난 2천 년 동안 수많은 사람들에게 들려주셨던 이야기를 지금 저 아이의 귓가에 속삭이셨군요.
---「끝나지 않은 이야기 _ ‘주님이 지켜봐 주시면 좋겠어요.’」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