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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행전

사도행전

: 피터 럭크만의 주석서

[ 개정판 ] 피터 럭크만의 주석서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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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21년 03월 19일
쪽수, 무게, 크기 766쪽 | 970g | 152*223*34mm
ISBN13 9791185910642
ISBN10 1185910646

책소개 책소개 보이기/감추기

목차 목차 보이기/감추기

저자 소개 (2명)

책 속으로 책속으로 보이기/감추기

2:1 그후 오순절 날이 되자 그들이 다 하나가 되어 한 장소에 모였는데
2 갑자기 하늘에서 거친 강풍 같은 소리가 나더니 그들이 앉아 있는 온 집안을 가득 채우더
라.
3 거기에 불 같은 모양으로 갈라진 혀들이 나타나 그들 각 사람 위에 머물더니
4 그들 모두가 성령으로 충만하여 성령께서 그들에게 발설하게 하신 대로 다른 방언들로 말
하기 시작하더라.
5 당시 예루살렘에는 신앙심이 깊은 유대인들이 천하 각국으로부터 와서 머물고 있었는데
6 그때 이 소문이 퍼지자 무리가 함께 모여 혼란이 생겼으니 이는 각 사람이 자기 나라 말
로 그들이 말하는 것을 들었기 때문이라.
7 그러자 그들이 모두 놀라고 이상히 여겨 서로 말하기를 “보라, 말하고 있는 이 사람들은
모두 갈릴리 사람이 아니냐?
8 그런데 어떻게 해서 우리 각 사람이 우리가 태어난 곳의 고유 언어로 말하는 것을 듣게
된단 말인가?
9 파대인과 메데인과 엘람인과, 메소포타미아, 유대와 캅파도키아, 폰토와 아시아,
10 프루기아와 팜필리아, 이집트와 쿠레네에 가까운 리비아의 여러 지방에 사는 사람들과, 로
마에서 온 타국인들, 즉 유대인과 유대교로 개종한 자들과
11 크레테인과 아라비아인들인 우리가 그들이 우리의 언어로 하나님의 위대한 일들을 말하는
것을 듣고 있도다.” 하니
12 그들이 모두 놀라고 의아해 하며 서로 말하기를 “이것이 어떻게 된 일인가?” 하더라.
13 그러나 어떤 사람들은 조롱하며 말하기를 “이 사람들이 새 포도주에 취하였다.”고 하더라.

사도행전 2장은 오늘날의 기독교계에 존재하는 가장 큰 논쟁 중 두 개의 배경이 되는 장이다. 사도행전 2:38은 “그리스도의 교회”의 창시자인 알렉산더 캠벨(Alexander Campbell, 1786-1866)이 나타나기 약 13세기 전부터 로마카톨릭 교회에서 가르쳐 온 교리인 침례에 의한 중생의 근거 구절로 내세우는 구절이다. 한편 위의 본문(1-13절)은 에이미 셈플 맥퍼슨(Amiee Semple McPherson, 1890-1944)이 처음으로 조직한 단체인 순복음 친교회(Full Gospel Fellowship) 및 로스 엔젤레스의 아주사 거리 미션(1904)에서 시작된 “글로살라야”(Glossalaia) 즉 “은사주의”(Charismatic) 운동에서 자신들의 교리를 뒷받침하기 위해 사용한 구절이다. 이 은사주의 운동은 후에 캔자스 주 토페카에서 널리 퍼져 나갔으며(1910-1930) 현재는 “체험의 나눔”을 통해 근본주의 진영을 로마로 연합시키려는 로마카톨릭의 의도와 연계되어 있다.

본문에서 생겨난 두 가지 이단 교리는 다음과 같다.

1. “성령 세례”를 받지 않으면 구원받지(또는 “성화”되지) 않은 것이다.
2. “성령 세례”를 받은 첫 번째 증거는 “다른”(또는 “알지 못하는”) 말로 말하는 것이다.

본문을 주석하기에 앞서 성령께서 친히 기록하셨으며, 성경대로 믿는 사람이라면 이 진리에 대해 어떤 실수도 할 수 없도록 기록하신 분명한 진리에 대해 살펴보도록 하자. (성경에 있는 모든 단어 하나하나에 주의를 기울이려는 우리를 사람들은 “성경을 갈기갈기 찢어 놓는다”고 비난하는데, 이는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 있는” 그리스도인들에게 모든 구절과 단어를 적용시키지 않기 때문이다. 마치 그럴듯한 비난처럼 들릴지도 모른다. 그러나 만일 욥기 12:6, 말라키 2:7, 레위기 11장을 자신의 삶에 직접 적용시켜 보면, 성경의 모든 구절을 그리스도인에게 적용시키는 것, 적어도 교리적으로 적용시키는 것은 미친 짓임을 알게 될 것이다. 그리고 우리가 여기서 논하는 것은 “교리”임을 잊지 말기 바란다.)

1. 이스라엘을 향한 베드로의 메시지 이전이나 이후에는 그리스도인이 하나도 없다. “그리스도인”이라는 용어 자체가 사도행전 11:26 이전에는 나오지 않는다. 이 점을 잘 생각해 보기 바란다. 언제나 “주님께서 나를 인도해 주십니다” “성령께서 나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주님께서 나에게 이런 부담을 주셨습니다” “이런이런 일을 하도록 인도함을 받는 것 같습니다” “주님께서 나를 위해 예비하신 모든 것을 그대로 받기 원합니다”라고 말하는 사람들에게 나는 이렇게 질문하는 바이다. 당신은 성령께서 기록하신 것을 믿으려는가, 그렇지 않은가? 당신의 대답이 “예”라면 사도행전 2장에 있는 모든 남자, 여자, 어린아이가 유대인이거나 유대교로 개종한 사람들이라는 사실을 숙지해야 할 것이다(1,5,8,9,10,11,14,22,36절 참조).

2. 오순절이나 베드로가 메시지를 전한 이전과 이후에 그 누구도 방언의 은사, 또는 성령 세례를 받기 위해 기도하지 않았다. 열두 사도(1절)들은 앉아 있었지(2절) 무릎을 꿇거나 기다리고 있지(눅 24:49) 않고 기도하고 있지 않았다. 또한 그들의 메시지를 듣고 회심한 사람들 중 아무도 방언으로 말하지 않았다(41절). 오늘날 은사주의자들이 행하는 방언이나 소위 “성령 세례” 등은 전혀 성경적인 “오순절의 경험”이 아니다. 왜냐하면 심지어 방언을 다루고 있는 고린도전서 14장 전체에서도 성령 세례라는 말은 나오지 않을 뿐더러, 오순절 사건 때 회심한 사람들 중 누구도 그 “체험”을 갖지 못했기 때문이다.

3. 사도행전 2장 어디에도 “알지 못하는 방언”으로 말하는 사람은 없다. 그들이 무슨 언어로 말했는지가 본문에 나열되어 있으며, 그 자리에 있던 사람들은 그들의 말을 이해했다(8-11절).

4. 2장 어디에도 우리들의 죄들을 위해 그리스도께서 돌아가셨다는 언급이 없으며(고전 15:1-5 참조), 아무도 그런 의미에서 어떻게 구원받는지에 대해 묻지 않고 있다. 17절은 그 문제를 논의조차도 하지 않으며 여기서 말하는 “구원”은 “세대”(40절)로부터 받는 것이지, 지옥이나 불못으로부터 받는 것이 아니다.

5. 누구도 “성령과 불”로 침례를 받지 않았다(사도행전 1:1-3과 주석 참조). 갈라진 혀들(3절)은 “불 같은 모양”이지 불이 아니었다.

6. 120명의 제자들 중에서(1:15) “열둘”만이 외국어의 은사를 받았으며(7절), 사도행전 4:4; 17:34 및 다른 허다한 구절에서 구원받은 사람들에 대한 “첫 번째 증거” 같은 것은 없다.

이러한 사실들을 살펴보고서도 왜 문맥에서 떼어낸 40구절 정도를 짜맞추어 자신의 이단 교리를 뒷받침하는 자들의 주장에 귀를 기울이는 것인가? 그들은 사람들로 하여금 그들의 교리가 “성경이 말씀한 바”라고 생각하도록 할 뿐이다. 성경은 “춤출 때”가 있고 “죽일 때”가 있다고도 말한다. 독주를 마시고(신 14:26), 하나님을 시험하는 것도 괜찮다고(말 3:15) 말한다(?!)

우리는 성경 전체를 믿는다. 하지만 성경의 모든 부분을 기록된 그대로 행해야 하는가?

문맥에서 떼어내거나 적당히 속임수를 쓴다면 그 어떤 주장이라도 성경으로 뒷받침되지 못할 것이 없다. “Hang all the Law and the Prophets”[“율법과 선지자들을 목매달아라”(마 22:40)] 또 “Top not come down”[“정상에 오르고 내려오지 말아라”(마 24:17)]이라는 명령은 어떤가? 그런 것은 고린도전서 14:2을 사도행전 2:4에 맞추고, 사도행전 2:7??11을 떼어내서 사도행전 2:18을 요엘 2:23에 맞추는 것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후자는 팔레스타인에 비를 내려 주시는 내용인 반면 전자는 환란 시대에 이스라엘과 연관된 성령의 사역을 말하고 있다. 이런 것을 바로 이해할 수 없으면서 “알지 못하는 방언”으로 말할 때 입에서 나오는 것이 무엇인지 어떻게 알겠는가?

사도행전 2:38과 에베소서 2:8-10의 차이나, 이스라엘 집을 향한 메시지(행 2:36)와 이방의 한 죄인을 향한 메시지(행 16:30,31) 사이의 차이나, 유대인의 표적(고전 14:22)과 바벨(창 11:1-6) 사이의 차이점을 이해할 수 없으면서, 성령의 이름으로 뜻모를 말을 하면서 그것을 “성령 세례”의 증거라고 주장할 만큼 자신이 영적이라고 생각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최소한의 것도 할 수 없으면서 최대한의 것을 할 수 있단 말인가?

사도행전 2:17에는 소위 “늦은 비”가 없는 이유를 아는가? 동일한 사람들이(야고보를 제외하고) 같은 명절인 오순절에 같은 장소에 있는데도 말이다.

오순절은 매년 정해진 때에 오는 한편, 성령께서는 어떤 해, 어떤 정한 때(1절)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사람들을 유기체인 하나의 몸 안으로 침례 주시는(고전 12:13) 세대를 열고 계심을 알려 주시기 위해 강림하셨다. 이 “한 침례”(엡 4장)에는 방언들이 수반되기도 했고(여기서처럼) 수반되지 않기도 했으며(41절에서처럼) 일부 그리스도인들은 방언들을 말했다(고전 12:30). 때로 이 “한 침례”는 안수가 수반되면서도(행 8:17) 방언들이 없을 때도 있었고(행 8:17) 때로는 안수와 방언이 다 있을 때도 있었다(행 19:1-6). 때로 “한 침례”는 물침례와 동시에 일어나기도 했고(여기서처럼) 때로는 그렇지 않기도 했다(행 10:47).

“성령 세례”를 받으면 방언을 한다고 주장하는 은사주의자들이 이와 같은 혼란을 어떻게 처리하고 교리적으로 바로잡을 수 있겠는가? 상황을 바로잡는 유일한 방법은 “성경 전체”를 믿는 것이며, 그들이 끊임없이 외치는 성령님을 참으로 의지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분이 바로 사도행전의 저자시기 때문이다.

그러면 이제 본문의 한구절 한구절을 그 문맥 속에서 살펴보겠다.

『그들이 다 하나가 되어 한 장소에 모였는데』(1절). 여기서의 “그들”이 1장의 120명일 수도 있다. 그러나 모임에서 여자들은 방언이 금지되어 있기 때문에(고전 14:34), 마리아가 방언을 하고 있었을 가능성은 희박하다(행 1:14 주석 참조). 더구나 1-4절 본문은 알 수 있는 방언(외국어를 말함-역자 주)의 은사를 받은 사람이 그 구절에서 열둘임을 암시하고 있다.

오순절은 유월절로부터 50일 후에 온다[Pentecost(오순절)에서 pente는 “다섯”을 뜻하며 헬라어로는 십진법 접미사인 “에콘타”이다]. 레위기 23:15,16은 이 유대인의 명절에 대해 기록하고 있는데, 이는 호렙 산에서 율법을 받은 것을 기념하는 것으로서(행 1:5 참조) 유대인들은 이 날을 “shimchath”라 부른다. “Fully Come”이라는 표현은 성경을 처음 공부하는 사람에게는 중요하고 기본적이다. 왜냐하면 유대인의 하루는 오후 6시에 시작하여 저녁이 먼저 오기 때문에 오전 9시(행 2:15)면 날이 “완전히 왔다”(fully come)고 말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블래스(Blass), 해킷(Hackett), 바이스(Weiss), 프레드릭(Friedrich), 힐젠펠트(Hilgenfeld), 슈미트(Schmidt), 달만(Dalman), 그리고 학자 연맹은 자신들의 무지의 책임을 엉뚱하게 A.V.의 어휘에 돌리고 있다.

1. 빈센트 : 그것은 “[날이] 차고 있었다”(was being fulfilled)로 바뀌어야 한다.
2. 로버트슨 : “차고 있는 중에”(in the being fulfilled)로 바뀌어야 한다.
3. 브래스 : 그 날이 아직 오지 않았다.
4. 해킷 : 그것은 50일의 기간에 관한 말이다.

“...그 때 당시에” F.F. 브루스의 말에 따르면 이것은 “서방원문”의 본문이다. 계속해서 우리는 (시리아인이 삭제시킨) 바로 그 본문이 사도행전에 너무나 많은 첨가를 해서, 그 책을 “사도들 및 로마카톨릭 바티칸 서기관들의 행적”이라고 불러야 할 정도이다.

“바티칸”이란 표현은 좀 지나쳤다고 생각하는가? 그렇다면 “오순절 날들이 끝나가고 있었다.” 이 본문은 어떤가? 이것은 1941년 로마카톨릭 성경에서 나온 것으로, 이는 “오순절 날들이 되었을 때...”라고 되어 있는, 1582년에 나온 예수회의 공식 성경인 [림즈 듀웨이]에 근거를 두고 있다. 로크만 재단(NASV)은 카톨릭이 첨가시킨 부분을 그들의 성서의 본문에는 넣지 않았지만 각주에 그것을 달았다. RSV(1952)와 ASV(1901)도 마찬가지로 각주에 그것을 달았다. 그들은 결국 동류면서 하는 말만 다를 뿐이다.

펜사콜라 신학대학을 비롯해 많은 주간 신학대학들이 지지하는 NASV는 이 구절에서 어느 정도 예수회 본문을 따르고 있다. 왜냐하면 예수회 사제들은 사도행전 2:1에서 “하나가 되어”를 삭제시켰으며, 모든 카톨릭 성서들도 이 부분을 삭제했기 때문이다. 린치버그, 미드웨스턴, 사우스 이스턴, 하일스 앤더슨, 트리니티, 클리어워터, 달라스, 휘튼, 무디, 풀러 등이 지지하는 NASV에도 그 단어들은 없다. [복음주의 주석]은 각 역본들에 차이가 있는 이유는 웨스트코트와 홀트가 “헬라어 필사본들을 27년간 연구한” 끝에 그 말을 삭제시켰기 때문이라고 말하고 있다. 카터와 얼은 말하기를 웨스트코트와 홀트는 “그들이 만든 헬라어 본문”이 “가장 뛰어난 증거”에 의해 지지되는 것을 확인한 후에야 비로소 그들의 성경을 출판했다고 한다(Ibid., p.24).

웨스트코트와 홀트에 대한 이런 “칭찬”은 존더반, 어드만즈, 베이커 출판사에서 펴낸 교과서로 배우는 학생들에게는 익숙한 일이다. 이런 교과서들을 읽은 젊은 사역자는 웨스트코트와 홀트가 “경건할”(그들이 늘 쓰는 진부한 표현이다) 뿐만 아니라, 지금까지의 모든 학자들 중에 가장 두드러지고 똑똑하고 근면하고 성실한 학자들이라고 생각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그들이 구원받았다는 증거는 어디에도 없다. 그들이 행한 “연구”를 그들의 최대의 적(딘 버간)이 연구한 것과 비교해 보면, 그들의 연구는 고려할 하등의 가치도 없다고 말할 수밖에 없다.

웨스트코트와 홀트는 “우세한” 필사본 증거를 바탕으로 한 것이 아니라, 필사본 증거가 부족한 가운데 자신들의 본문을 만들었다. 그들은 1,000번 이상이나 성경에 있는 그대로의 구절들과 단어들을 거부한 자들이며, 그들이 만든 헬라어 신약의 유명한 서문은 그라프(Graf), 벨하우젠(Wellhausen), 아스트룩(Astruc), 스트라우스(Strauss)의 사상과 너무도 흡사하다.

『갑자기 하늘에서 거친 강풍 같은 소리가 나더니...』(2절) 이런 일은 성령 세례를 부르짖는 자들이 모이는 곳에서 결코 일어난 적이 없으며 “그들이 영 안에서 기도”할 때에도 일어나지 않는다. 즉 사도행전 2장이 고린도전서 14장과 연결된다는 주장은 전혀 성경과 맞지 않는 것이다.

“바람”(wind)은 요한복음 3:8에서 예수께서 하신 말씀과 연결되며, 에스겔 37:9-14과 짝을 이룬다. 이것은 또한 주님께서 열왕기상 19:11,12에서 “미세한 음성”으로 엘리야를 찾아오신 것과도 비교될 수 있다.

ASV는 “a rushing mighty wind”(거친 강풍)에서 “a”를 “the”로 바꾸었다가 NASV에서는 그것을 다시 “a”로 바꾸었다. 필립스(Phillips)는 “mighty”를 “violent”(폭력적인)으로(NASV도 마찬가지임) 바꾸었고, NEB는 “rushing mighty”(거친 강풍)을 “strong driving”(강한 추진)으로 해 놓았다. 이렇게 변개된 것 중 어느 것도 본문에 더 많은 조명을 주지 못하며 이 변개자들 중 누구도 에스겔 37장과 열왕기상 19장에 대한 주석을 향상시킬 수 없다.

『불 같은 모양으로 갈라진 혀들(cloven tongues)이...』(3절)는 “성령과 ‘불’ 침례”에 관한 모든 거짓 교리를 일소시키고 있으며, 시몬 베드로 또한 사도행전 11:16(“너희는 성령으로 침례를 받으리라”)에서 이와 같은 오류를 바로잡아 준다. [킹제임스성경]에 “갈라진 혀들”로 번역되어 있는 것은 의미를 제대로 전달하지 못한 번역이라고 사람들은 말하지만, 이런 비방을 들은 후에 “축자적으로 영감받은 최초의 원본...” 등을 운운하는 렌스키(Lenski)를 소개받는다. 그는 “그 부분을...라고 바꿀 수 있을 것...”이라 말한다. 그러나 그런 말은 이쯤으로 충분하다.

헬라어 “디아메리조메나이”는 “몇 개 부분으로 나누는 것”을 의미한다. 학자들은 토의 끝에 “동사의 뜻을 철저히 고수하기”로 결정하고(노울링, Ibid., p.72) 이 단어를 “distribute”(분배하다) “spreading”(퍼진) “separated off”(분리된) “parted”(나누어진) 등으로 번역한다.

예수회 신부들은 1582년판에 이것을 집어넣었고, 그 본문이 1941년의 [챌로너 역본]에도 그대로 남아 있다. 이것을 또한 ASV, NASV, [현대인을 위한 기쁜 소식], 필립스, 모펫, 굳스피드, [리빙 레터스, Living Letters], NEB, RSV, [공동 성서](1973) 등이 그대로 따랐다. 결론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변개시키는 일이라면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

어떤 문맥에서는 “디아메리조”를 “나누어진”(parted)으로 번역할 수 있지만(마 27:35, 행 2:45) 어느 경우에나 그렇게 번역할 수 없다는 것은 어떤 번역자라도 알고 있는 사실이다. 1880-1980년 사이의 어떤 번역자도 그렇게 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같은 단어를 매번 같은 식으로 번역하지 않았다. 그들은 자신들은 마치 어떤 한 단어를 한 가지 뜻으로만 일관되게 번역한 척하지만, 그들도 그렇게 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고 속지 말아야 한다. “디아메리조”는 다음과 같은 뜻으로 해석될 수 있다.

1. 여러 조각으로 나누는 것
2. 구획, 부분, 구역 등으로 나누는 것
3. 대체되는 것
4. 나누어 부분을 이루는 것

“동사의 뜻을 철저히 고수할 것”을 주장하는 비평가들의 열심은 NASV의 요한복음 1:18과, 카톨릭 성서들의 누가복음 2:33과, RSV의 디모데전서 3:16과, [현대인을 위한 기쁜 소식]의 요한복음 9:35과, NASV의 사도행전 1:10,11을 읽어 본 사람에게는 우스꽝스러운 일이다. “단어의 뜻을 철저히 고수한다”는 것은 또 다른 거짓말로, “좋은 사람들”인 것처럼 보이려고 고안하는 말에 지나지 않는다.

1. “뱀의 혀”(욥 20:16)를 생각해 보자. 내가 동물학에 대해 제대로 기억하고 있다면, 어떤 뱀들은 “갈라진” 혀를 가지고 있다.
2. “double tongue”(이중 혀, “일구이언” - 딤전 3:8)은 뱀의 혀를 닮았다.
3. 주께서는 시편 55:9에서 “혀들”을 가르신 것처럼, 시편 29:7에서 불의 “화염을 가르셨다.”
4. 주의 음성이 “미세한 음성”(왕상 19:12)인데 마귀의 음성도 주의 음성과 유사하다면(사 29:4), 주께서는 큰 음성(눅 1:42)으로 사람들에게 말씀하시는데 마귀들의 음성도 이와 같다면(막 5:7), 주의 혀들이 진짜이고 뱀의 갈라진 혀는 모방(고후 11:11-14)이 아니겠는가? 그렇지 않다면 그것을 증명할 수 있는가? 성경에서 그것을 증명할 수 있는가?

성경은 성경에 나오는 용어를 스스로 정의하고, 그 선례들을 정해 놓고, 그 상징들을 해석하고, 그 뜻을 말했는데, 왜 어떤 사람들은 “비둘기 똥 사분의 일 캅”(왕하 6:25)의 가치밖에 없는 “철저한 고수”에 매달리고 있는가?

개정자가 “능숙한 작가의 펜”(시 45:1) 대신 “독사들의 혀”를 가진 것이 아니라면 A.V.를 변개시키는 목적이 무엇인가? 있는 그대로 내버려 두라.

『그들 모두가 성령으로 충만하여... 다른 방언들로 말하기 시작하더라』(4절). 이 부분은 매우 중요한 부분이다. 본문은 “충만하여”라고 말하고 있으며, 이것은 또한 “침례”(행 1:1-5)임이 분명하다. 자신들이 “카리스마”(은사)를 가진 것을 증명하려고 서두르는 바람에 은사주의 형제들은 “충만”은 빼버리고 “침례”만 남겨 두었다. 그들이 이렇게 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여기서 세 장도 채 못가서 동일한 제자들이 다시 “성령으로 충만”(4:31)했는데 이번에는 방언들을 말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종종 성령과 거룩한 생활에 대해 말하는 해석가들에게서 이런 표리부동을 보게 된다]. 더욱이 “성령 충만”은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주신 명령인 반면(엡 5:18) 방언의 은사는 그렇지 않다. 또한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성령으로 침례를 받았으며(고전 12:13) 어떤 이들은 방언들보다 훨씬 더 나은 은사들을 받았다(고전 12:31). 방언은 성경에서 가장 작은 은사로 묘사되고 있다.

윌리엄과 벌링거는(스템, 베이커와 더불어) 이때가 그리스도의 몸의 생일이 아니라고 말한다. 오순절 사건은 ‘히브리’ 교회의 “거듭남”(rebirth)이라는 것이다. 벌링거는 여기서 더 나아가 거듭남은 이스라엘에게만 적용되는 것으로 말했고(요 3:3-5 참조) 따라서 거듭남은 “이 세대만”을 위한 것은 아니라고 가르쳤다. 그러나 스템과 베이커는 그렇게까지 성경을 난도질하지는 못했다. 왜냐하면 바울은 분명히 거듭났기 때문이다(고전 15:8). 그렇게 해서 현대의 벌링거 추종자들은 어쩔 수 없이 그리스도의 몸이 바울과 함께 시작됐다고 말한다. 윌리엄(William)은 바울 서신으로 계시된 교회는 “하나님 안에 감추어져” 있었기 때문에 오순절에는 교회가 있을 수 없었다고 말함으로써 진리를 거부한다. 그러나 이런 말들은 창세기 3장에서 이브가 했던 것과 다를 바가 없다. 윌리엄은(주석, p.822) 에베소서 3:9에서 “신비”라는 단어를 빼버리고는 어떤 것에 대한 “계시”와 그것의 “기원”(시작)은 동시적이라고 생각하게끔 한다. 이것은 성경에 대한 지극히 전형적인 현대적 접근 방법, 즉 거짓말을 해서 곤경에서 빠져 나가는 것이다.

앞서 말한 바와 같이 스템 추종자들의 걸림돌은, 어떤 일이 계시되기 전에는 존재할 수 없다는 것이다. 물론 스템 추종자들은 이 규칙을 수없이 많이 범하고 있다(행 1:3-8 주석 참조). 그러나 “한 몸 된 교회”의 문제에 있어서 그들의 한결같은 주장은 어떤 것이 누군가에게 계시되기(행 9-15장의 바울처럼) 이전에 존재하는 것은(행 2장에처럼) 결코 있을 수 없다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유기체적 몸이 사도행전 2장에서 시작되었다는 근거는 많이 찾아볼 수 있다. 사도행전 2장에서 지역 교회(이미 세워졌다)의 모든 구성원은 “제자들”이었다.

1. 그리스도께서는 대제사장으로서 하신 기도(요 17장)에서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이 그분 안에서 동일한 지위를 갖게 해 달라고 기도하셨는데, 바울은 골로새인들에게 보내는 서신에서 이 지위를 점유하고 있었다(1:27; 2:10 참조).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이 “그분의 몸 된 교회” 안에 있지 않았다면, 그리스도의 기도는 응답되지 않은 것이다.
2. 그리스도의 몸이 “눈깜짝하는 순간”에 이 세상을 떠날 것이라고 말하는 서신서는 동시에 성도가 “한 침례”로 그 몸 안으로 들어간다고 말하고 있다(고전 12:13과 15:49-55 비교).
3. 그리스도의 몸이 수백만 명과 더불어 갑자기 사라질 것인데 어째서 그것이 한 사람으로부터 “점진적으로” 형성되었다고 생각하는가?
4. 오순절이 유대인의 명절이라는 것과 본문에서 말하고 있는 사람들이 유대인 청중에게 하던 말 외에는 자신들이 하던 즉각적인 메시지에 대한 지식이 없었다고 인정한다 하더라도, 오순절 제사에서 흔드는 빵이 “두 덩어리”(레 23:17)인 것은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그리스도의 부활을 유형적으로 보여 주는 레위기 23:11에서는 한 단만이 나온다. 율법 하에 있던 히브리인 구약 성도가 “첫열매들인 그리스도”(고전 15:23과 마 27:50-54 비교)와 함께 올라갔고 이들이 “한” 단을 나타낸다면, 오순절 때 드리는 “두” 덩어리의 의미는 무엇인가?
5. 이방인 개종자들이 있었는데도(행 2:10), 단지 “그때 당시에” 하나님께서 시몬 베드로에게 그것에 대해 계시하지 않으셨기 때문에 이것은 그리스도 안에서 “유대인과 이방인”이 하나된 것(갈 3:28)이 될 수 없다고 말하는 사람은 어떤 사람인가?

유대인과 이방인 사이에 있던 “중간 벽”은 사도행전 2장에서 성령께서 강림하시기 50일 전에 깨졌다(엡 2:13-16 주석 참조). 참석한 사람 중 누구도 이런 일을 “알지” 못했다는 것은 세대적으로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사도행전 3:19에서 시몬 베드로도 개인의 구원을 위한 피의 속죄가 완성되었음을 몰랐기 때문이다. 베드로가 몰랐다고 해서 그것이 완성된 사실이(히 10:8-10) 아니라고 말하는 것은 세대주의적 난센스이다.

사도행전 2:1-4는 한 시대의 시작으로, 이 시대는 휴거 때 끝나게 될 것이다.

벌링거와 스템(베이커, 발링거와 더불어)은 ‘계시’와 ‘기원’을 혼합시키고, 어떤 것에 대한 지식과 그것 자체를 혼합시켰다. 그들은 사도행전 2장의 상황에서 유대인의 측면에 너무 매달린 나머지 사도들이 어떤 일을 알지 못하는 상태에서도 어떤 일이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는다. 이 세대는 율법을 받았을 때와 마찬가지로 표적과 기사로 시작되는 것이 분명하다. 또 이 부분의 문맥은 이스라엘의 마지막 날들(20절)과 관련되어 있으며, 거기에 있던 사람들 중 누구도 유기체적인 몸의 형성을 알지 못했음이 분명하다. 그러나 이것으로 극단적 세대주의자들은 잘못된 추론을 하게 된다. 즉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골 1:18)가 구약 예언에서 선지자들에게 계시되지 않았으며(벧전 1:10-12), 계시될 때까지는 교회가 시작될 수 없다는 것이다. 이것은 더욱 심한 세대주의적 난센스이다. 돼지고기와 바닷게를 먹는 것이 합법적이라는 사실이 구약 선지자들에게는 계시되지 않았다. 그러나 베드로가 사도행전 10장에서 그것을 알아내고 나서야 골로새서 2:14의 효력이 생겼다고 생각하는 바보가 어디 있겠는가?

[내 주머니에 동전이 얼마나 있는가? 얼마나 있는지를 내가 꺼내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동전이 하나도 없다는 말이 되는가? 동전 일곱 개가 있음을 꺼내서 보여 주면, 그것들을 꺼내기 전에는 동전이 없었다는 말이 되는가? 아무도 그것에 대해 알지 못했기 때문에 사도행전 2장에서 그리스도의 몸이 시작되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말하는 것은 논리적으로도 말이 되지 않는다.]

“방언들”이 수반되지 않고도 “성령충만”했던 예가 사도행전에서 여러 번 있었음을 주목하라(4:8; 4:31; 6:3,5; 7:55; 9:17; 13:52).

코넬리우스 스템(Ibid., p.68)은 오순절이 이 세대의 교회인 그리스도의 몸이 역사적으로 시작된 때라고 보는 것이 잘못된 가정일 수밖에 없는 아홉 가지 이유를 제시했는데, 성경을 공부하는 학생이 이들을 조심스럽게 검토해 보면 그것들 중에 하나도 합리적 주장이 아님을 알게 될 것이다. 그가 제시한 첫 번째 이유가 “오순절에 대한 기록은 그리스도의 몸에 대해 아무런 언급도 하지 않고 있다.”라는 사실은 오히려 재미있기까지 하다.

사도행전 9-23장 사이의 어떤 부분도 그리스도 몸에 대해서 아무것도 말해 주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템은 사도행전 23장 이전에 그리스도의 몸이 시작되었다고 한다. 사도행전 2장의 “기록”은 “그리스도 안에” 있는 성도들이나 성도들 안에 있는 그리스도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는다. 사도행전 9-20장에서도 마찬가지다. 요한복음 17장의 기도 이후로 그리스도께서 시몬 베드로 안에 계시지 않았다고 생각해야 하는가?

하나님께서 바울에게 보여 주시기 전까지는 아무도 알지 못했던 어떤 것(엡 3:1-5)에 대해 오순절의 기록이 무엇인가를 말해야만 한다고 믿는 이유는 무엇인가? 오순절의 기록이 조개를 먹어도 된다고 그들에게 말했는가? 골로새서 2:16에 따르면 그들은 요한복음 21장에서 그리스도와 함께 물고기를 먹었던 날 아침에라도 조개를 먹을 수 있었다.

스템은 그 일이 일어났을 때 그것에 대한 기록이 없었기 때문에 그것이 일어날 수가 없었다고 생각한다.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에 충실하다고 고백하는 것과는 상관없이 이것이 모든 극단적 세대주의자들 사이에서 발견되는 기본적인 오류이다.

스템이 제시한 나머지 여덟 가지 이유들도 단순히 기록되지 않은 것은 존재할 수 없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제시된 것에 지나지 않는다. 스템은 레위기 23:17의 두 “덩어리”를 이스라엘과 유다로 보고 고린도전서 10:17의 “빵”이라는 단어가 “한 덩어리”를 의미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레위기 23:17의 두 덩어리는 고린도전서 10:17이 그것을 언급한 것과 마찬가지로 “그 빵”으로 불린다. 고린도전서 10장의 “빵”을 “한 덩어리”로 보는 것은 오류이다. 레위기의 빵은 두 덩어리이다.

극단적 세대주의자들이 이 구절을 가지고 하는 일이란 간단하다. 열두 사도들이 알지 못했던 것을 본문에서 배제시키고, 구약에서 이스라엘을 위해서 예언된 것만을 본문에 적용시키는 것이다. 그러한 설명은 그럴듯하게 들리기는 하지만 앞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계시’의 때와 ‘기원’의 때를 혼란케 만드는 것이다. 안식일의 기원은 B.C. 4000년경이지만 B.C. 1500년 전까지 누가 그것에 대해 알았는가?(겔 20:12,20, 느 9:14 참조)

“베뢰아파”와 “벌링거 추종자들”의 교리는 오류에 기반하고 있으며, 성경의 기본 법칙들 중 하나인 ‘점진적 계시’를 무시하는 비이성적 전제에 바탕을 두고 있다. 예를 들어 죄인 개개인이 지은 죄들에 대한 피의 속죄의 중요성을 이해한 것은 사도행전 8:30-37이 지난 후였다. 그러나 그 일 자체는 그것이 “계시”되기 5년도 더 전에 일어났다. 스템은 (칼빈처럼) 하나님의 활동을 하나님께서 일어나리라고 계시한 것에만 국한시키는 버릇이 있다. 그러나 주께서는 이미 일어난 일이 일어나지 않았다면 어떤 일이 일어날 것인지도 아셨다(행 1:5-10 주석 참조).

5절은 특별한 설명을 요하지 않는다. “천하 각국”(every nation)에서의 “every”는 “구별 없는 모두”를 뜻하며(롬 1:8, 엡 6:21 참조) “예외 없는 모두”를 의미하지 않는다. 열두 사도가 14,15개 언어로 말하고 있다. 정확한 수를 말할 수 없는 것은 “메데인과 엘람인”(9절)과 “유대인”(Jews)(10절)과 “유대”(Judea)(9절)의 언어의 차이에 대해 논란이 있기 때문이다.

1. 제롬(Jerome)은 “유대”(Judea)가 “시리아”로 되었어야 한다고 말한다. 터툴리안(Tertulian)은 그것이 “아르메니아”로 되었어야 한다고 말하고, 다른 사람들은 그것이 “비시니아”나 “인디아”일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2. 블래스(F. Blass)는 “유대”(Judea)는 “확실히 잘못된 것”이라고 말한다.
3. 렌돌(Rendall), 노울링(Knowling), 웬트(Wendt), 바틀렛(Bartlett)은 이 책에 나열할 가치도 없는 많은 가정을 한다.

본문에는 극동에서부터 시작해서 “파대인, 메데인, 엘람인...” 등이 나오는데, 이들은 포로기 때부터 그 지역에 퍼져 그곳에 살던 유대인들이다(왕하 17장). 이 지역은 카스피 해와 페르시아 만, 그리고 티그리스 강 너머 현재의 페르시아로 추측된다. “메소포타미아”(9절)도 티그리스와 유프라테스 사이에 있던 유대인들이 거주하던 지역으로 포함될 수 있다.

『이집트.와 쿠레네... 리비아...』(10절)에서 온 사람들은 남서쪽으로 퍼져 아프리카 지역에 정착해 살던 유대인들일 것이다. 필로(Philo)와, 알렉산드리아에 있던 “그리스화 된 사람들”이 이 집단에 속하는데, 그들은 외경과 “아리스테아스의 서신”을 기록한 자들이며, 신약이 완성된 후 소위 “칠십인역”을 쓴 오리겐의 등장을 예비시킨 세력이다.

『캅파도키아, 폰토와 아시아, 프루기아와 팜필리아』(9,10절)에서 온 사람들은 북쪽으로 퍼져 소아시아에 정착했던 유대인들일 것이다.

로마에서 온 『유대인과 유대교로 개종한 자들』(10절)은 서방 집단이고 『크레테인과 아라비아인들』(11절)은 섬 지역 사람들과 남동쪽 집단을 말한다.

참으로 이상하게도 “유대”라는 단어는 문맥에서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인데도(14절- “너희 유대 사람들”) 비드(Bede, A.D. 672-735) 시대 이후로 계속해서 공격을 당해왔다. 브루스는 유대인들이 이 명절에 참석했다는 점은 “별 의미가 없다”고 말하지만, 14절과 사도행전 1:8의 명령에 비추어 볼 때 그의 말이 맞지 않음을 알 수 있다.

한편 성경을 가지고 최대의 혼란을 야기시키는 사람들은 근본주의 헬라어 학자다. 특히 그가 노울링, 브루스, 데임, 라이스, 로버트슨, 커스터, 닐과 같은 보수주의자일 때는 더욱더 그렇다. 브루스는 “유대”라는 단어가 팔레스타인 전체, 또는 더 나아가서 처음에 아브라함에게 주어진 땅 전체를 뜻한다고 말한다. 에더쉐임(Edersheim)은 “유대”에 시리아를 포함시키고, 페이지(Page)는 ‘소아시아 전체’를 포함시킨다. 성경대로 믿는 사람이 그들의 우스꽝스러운 주석에 뒤지지 않으려면 “아사아”라는 단어가 아일랜드와 텍사스를 의미한다고 말하면 된다. A.V. 본문에 열거된 목록은 정확하며, “최초의 원본”을 누군가가 발견한다 하더라도 그것과 다른 점이 전혀 없이 완벽하다. 본문에 주어진 지역들은 유대를 중심으로 해서 지중해 주변에 하나의 완전한 원을 형성한다. 대다수의 보수주의자들은 주께서 시리아를 포함시키는 것을 잊으셨기 때문에 더 훌륭한 지식인들의 도움이 필요하다는 환상을 가지고 본문에 시리아를 집어넣고자 하는 것이다.

『그때 이 소문이 퍼지자(noised abroad)...』(6절). 빈센트와 로버트슨은 이 표현이 맞지 않다고 말하며, 캠벨 모건도 이에 동조한다([사도행전], p.36). 브루스와 더멜로우는 이 부분이 “이 소리(sound)가 들렸을 때”로 바꾼다. 그들이 이렇게 한 이유나 그 결과는 불을 보듯 뻔하다.

ASV, NASV, RSV, [현대인을 위한 기쁜 소식], [새 영어 성경], 필립스, 케네스 웨스트의 번역본, [확대역본] 등은 하나같이 손에 손을 잡고 1611년에 끊어진 원을 잇고 있다. 그들이 “noised abroad” 대신에 “sound”로 번역한 것은 1941년 로마카톨릭 성서의 본문을 따른 것이며, 1582년 예수회 성경은 그 단어를 “목소리”(voice)로 번역했다. 1880-1980년 사이에 “훌륭한 사람들”의 “방대한 노력”의 궁극적 목적이 암흑 시대의 변개된 본문을 회복시키는 것이었으므로, 우리는 계속해서 알게 될 사실들에 놀라서는 안 된다. 로버트슨은 본문의 단어가 “목소리”(voice)로 되어야 한다고 하며 이는 방언들을 뜻하는 것으로 해석한다. 그는 “목소리”는 단수이며 “다른 방언들”은 복수(서문 참조)라는 사실은 언급도 하지 않는다. 한편 빈센트는 그것을 “소리”(sound)로 번역한다.

틴데일(1525), 그레이트 성경(1539), 제네바성경(1560), 비숍 성경(1568)은 모두 A.V.와 마찬가지로 “noised abroad”로 번역했다. 예수회가 나중에 그들의 성서를 출판했을 때(사실상 1882년의 웨스트코트와 홀트의 본문과 동일한), 그들은 그 단어를 “목소리”로 변개시켰다. 그러나 본문을 통해서 볼 때(2절), “소리” (noise)가 없었는가? “거친 강풍 같은”을 “폭력적인 바람”이나 “폭풍 같은” 또는 “회오리바람 같은” 등으로 바꾸고서는, 갑자기 단순히 어떤 “소리”(sound)가 들렸고 이 소리는 “열두 사도”가 방언들로 말하는 소리였다는 것인가?

그것을 “목소리”로 한다면 바람은 어떻게 되는가? 그것을 “소리”(sound)로만 한다면 목소리들은 어떻게 된 건가? 목소리들은 “소리”일 뿐만 아니라(고전 14:8,9, 참조) 언어들이다.

이것이 영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을 위한 종교개혁 성경들이 단어를 현명하게 선택했다고 말할 수 있는 이유이다. 종교개혁 성경들의 번역자들은 빈센트(Vincent)나 다이어(Thayer), 트렌치(Trench), 커스터(Custer), 웨스트(Wuest)보다 더 현명했으며 그들은 본문과 문맥을 훨씬 더 잘 이해했다. 그들은 지성과 예지에 있어서 모울튼(Moulton), 하우슨(Houson), 렌돌(Rendall), 로버트슨(Robertson), 메이첸(Machen), 데이비스(Davis), 네슬(Nestle)보다 훨씬 더 우수한 지성과 통찰력을 소유했기 때문에 “헬라어 원문”으로 돌아서기보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것(1??4절)에 주의를 기울였다.

『그때 이 소문이 퍼지자...』(6절)에서 “이”(this)는 2,3,4절 전체를 언급한 것이다. 바람 소리가 들렸고 소리를 들은 사람들은 그 소식을 들불처럼 퍼뜨렸다(행 2:22).

『이것이 어떻게 된 일인가?... 이 사람들이 새 포도주에 취하였다』(12,13절) 첫 번째 질문은 참으로 다양한 의견들로 답변되었기 때문에 그것들을 논하려면 많은 지면이 필요할 것이다. G. 캠벨 모건은(다른 대부분의 근본주의자들과 마찬가지로) 해답은 16절 “이것은 선지자 요엘로 말씀하신 바니”에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요엘이 말했던 것은 2-4절에 묘사된 현상과 일치하지 않는다. 또 베드로도 여기서는 “이 성경이 이루어진 것은 당연하도다”(행 1:16)라고 말하지 않는다. 1장에서 성취된 예언에 관해 말할 때는 그렇게 말했었다.

『새 포도주에 취하였다』(13절, 엡 5:18과 그 주석 참조). “새 포도주”는 포도나무에 달려 있는(창 40:10) 포도의 즙(사 65:8)을 말한다. 그것은 짜서(창 40:11) 발효가 일어나기 전에 잔에(마 26:29) 담긴다. 그것은 “오래된 술”(눅 5:39)이 아니다. 그러므로 비난은 비꼬는 것이다. 그러므로 성령께서는 『어떤 사람들은 조롱하며 말하기를...』(13절)이라고 하신 것이다(pp.75-95).
--- 본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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