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으로 하나님을 증명할 수 없는 것은 과학으로 나폴레옹을 ‘증명’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그 이유는 과학의 한계와 역사의 특성에 있다. 과학적인 방법으로 어떤 것을 증명하려면 반복실험이 가능해야 한다. 과학자가 딱 한 번 실험해보고 난 뒤에 새로운 것을 발견했다고 세상에 공표할 수는 없다. 그런데 이 세상 아무도 태초로 돌아갈 수 없으며, 나폴레옹을 오늘날로 데려올 수 없고, 링컨의 피살사건이나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을 반복할 수가 없다. 그러나 그 사건들이 반복실험에 의해 ‘증명’될 수 없다고 해서 그 사건들이 실재하지 않았다고 할 수는 없다.--- p.20
구약시대에는 사람들이 맹세를 할 때 자기보다 더 큰 존재를 걸고 맹세를 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유대인들에게는 그 높고 큰 힘이 하나님이었다(참조 창세기 14:22, 21:23~24, 24:3). 그리고 그런 식으로 맹세한 사람은 반드시 그것을 책임지고 지켜야 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런 맹세를 하실 필요가 없었다. 그분은 진리 그 자체이시며 하나님보다 더 큰 힘을 가진 존재는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설사 하나님이 맹세를 해주시지 않는다 해도 아무 의심 없이 하나님 말씀을 받아들여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맹세를 통해 아브라함에게 약속을 보장해주셨다. --- p.52쪽
하나님은 모든 것을 알고 있다. 하나님은 모든 것을 즉각 알되,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에 관한 지식은 물론이요, 광대한 우주 어느 한 구석에 존재하거나 존재할 수도 있는, 그리고 과거에 존재했던 또는 미래에 존재할 수도 있는 그 모든 것을 충분히 그리고 완벽하게 안다. 하나님은 모든 원인, 모든 생각, 모든 비밀, 모든 불가사의, 모든 느낌, 모든 갈망, 모든 나라와 권세, 모든 인간, 하늘과 땅에 있는 모든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을 … 전부 아신다. 하나님은 모든 것을 완전하게 알기 때문에 어떤 것을 다른 것보다 더 잘 알거나 하지 않는다. 하나님은 모든 것을 완벽히 알고 계신다. 하나님께서 새로운 것을 발견하신다는 것이 있을 수 없고, 하나님은 절대로 놀라시지 않으며, 절대로 감탄하시지 않는다. 하나님은 더 많은 정보를 원하시거나 질문하시지 않는다(선한 것을 해주기 위해 사람들을 이끌어주실 때를 제외하고). 하나님은 자존(自存)하시며, 자족(自足)하시며, 아무 피조물도 알지 못하는 것을 스스로 완벽하게 아신다. … 왜냐하면 무한한 존재만이 무한의 세계를 알 수 있기 때문이다. --- p.89~90
우리가 사는 이 우주는 우연히 생겨난 것이 아니다. 하나님이 그것을 붙들고 계신 것이다. 하나님은 각 부분을 결합시키시는 결합의 원리이다. 하나님은 시계 기술자가 시계를 만든 후 그것이 자동적으로 잘 가면 그 다음에는 전혀 간섭하지 않는 것처럼 그렇게 세상과 구분되어 저 멀리 계시는 분이 아니다. 우주가 카오스(혼돈)가 아니라 코스모스(질서, 조화)인 것은, 다시 말하면 우주가 오류와 온갖 예측할 수 없는 것들로 뒤죽박죽된 상태가 아니라 질서정연한 체계를 유지하는 것은 하나님의 힘이 그것을 붙들고 있기 때문이다. --- p.140
대부분의 사람은 하나님의 선하심을 인정하지 않는다. 그것은 정말 서글픈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들은 세상에 일어나는 나쁜 일들을 보며 어떻게 하나님이 그런 나쁜 일이 일어나는 것을 허용할 수 있는가 하며 의아해한다. 그러나 그들은 우리가 죄를 지을 때마다 하나님의 선하심이 우리를 사망의 나락으로 떨어지지 않도록 지켜주신다는 것을 알지 못한다. 아담의 타락 때문에 하나님이 인류를 세상에서 멸하신다 해도 사실 그렇게 하시는 것이 하나님 입장에서는 얼마든지 타당한 권리였다. 그러나 하나님의 선하심으로 우리는 숨 쉬며 살아갈 수 있게 되었다. 이것은 자비가 심판을 이긴 경우이다(야고보서 2:13). --- p.183
그러므로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 정말 알고 싶다면 우리는 그리스도가 하나님에 대해 했던 말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우선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거룩하심에 대해 말할 때 하나님을 “거룩하신 아버지”(요한복음 17:11)요, “의로우신 아버지”(요한복음 17:25)로 칭했다는 사실부터 생각해보자. 그리스도는 주인의 아들을 죽이고 그의 유업을 빼앗으려 했다가 그 악한 농부들이 벌을 받았다는 비유에서 하나님의 공의에 대해 말했다(마태복음 21:33~46). 그리스도는 “하나님으로서는 다 하실 수 있느니라”(마가복음 10:27)라고 하나님의 능력에 대해 말했다. 그리스도는 “나라가 임하시오며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마태복음 6:10)라고 하나님의 주권에 대해 말했다. 그리스도는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너의 아버지”라고 말했다(마태복음 6:4).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선하심과 사랑을 자녀에게 필요한 모든 것을 공급해주시는 은혜로운 아버지로 묘사했다(마태복음 7:9~11).
그러한 것들도 정말 놀랍지만 그 모든 것을 뛰어넘는 한 가지가 있다. 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의 어떤 다른 면모보다도 아버지로서의 하나님을 가장 강조했다.
--- p.2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