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라톤의 국가론도 원 제목은 “정의란 무엇인가?”입니다. “우리 삶이 건강하지 않다. 건강하게 살려면 어떻게 살아야 할까? 올바르게 산다는 건 뭘까?” 이런 질문에서 인문학이 시작된 것입니다.--- p.9
인문학을 알기 위해 몇 십 년씩 전공을 해야 할 이유는 없습니다.
과거에 석가모니께서 계셨다면, 그 당시 농사짓던 사람, 장사하던 사람들이 바로 활용할 수 있는 이야기를 해 주셨지, “내 밑에서 오래 배워야 좀 알게 될 거야!” 이런 식으로 말씀하시지는 않았을 겁니다. 공자님께서도 소크라테스도 바로 현장에서 지도를 했습니다. … 책도 귀하던 그 시대에, 말로 그 자리에서 상대방을 못 바꾸어 놓으면 도움이 안되는 그런 시기에 철인들께서 말씀하신 것들을 모아 놓은 것이 지금의 인문학인데, 그런 인문학을 공부하는 데 몇 십 년씩 걸린다면 뭔가 맞지가 않는 것이죠.--- p.11
고전들을 연구해 보면 ① 사랑 ② 정의 ③ 예절 ④ 지혜 ⑤ 성실 ⑥ 몰입의 6가지가 ‘양심의 원칙 · 기준’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여러분 양심은 이렇게 생겼습니다. 그리고 이게 인문학의 결론입니다. 이제는 이 답을 가지고 인문학을 보시기 바랍니다.
지금은 인문학을 처음 연구하는 시대가 아니니까요. 몇 천 년의 연구 결과가 쌓여있는데 답도 모르고 새롭게 인문학을 공부한다는 것은, 만유인력 법칙도 모르면서 내가 또 한 번 새롭게 과학을 연구해 보겠다고 시도하는 것과 같아서 발전이 없습니다.--- p.17
인간이 만든 문화, 즉 ‘인문人文’이라는 것은 이 우주에서 엄청나게 중요한 의미가 있습니다. ‘문文’이라는 글자는 본래 ‘무늬’라는 뜻입니다. … 자연은 늘 질서정연하게 하늘은 하늘대로, 땅은 땅대로 무늬를 통해 계속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인문人文’은 뭘까요? 이 우주에 ‘인간만이 표현하는 무늬’를 말합니다. … 인간의 문화라는 것은 인간만의 독자적인 영역이고, 천지와 대등하게 표현되고 있기 때문에 더욱 의미가 있습니다.
다만 인간은 ‘욕심’으로 문화를 만들어 내느냐, ‘양심’으로 만들어 내느냐에 따라 그 결에 천지차이가 나게 됩니다. 결국 인문학이 지향하는 바는 욕심보다는 양심으로, 즉 이성으로 이 문화를 이끌어 보자는 것입니다. 우리 인간도 하늘과 땅처럼 멋진 고차원의 ‘양심문화’를 한번 만들어 보자는 뜻으로 연구했던 분들의 지혜가, 지금까지 전해 온 것이 인문학의 대상이 되는 것이죠.--- p.21~22
이 문제의 해법은 모두가 조금씩 ‘양심’을 지키는 것 밖에는 없습니다. 우리의 본성인 양심으로 욕망을 통해 펼쳐지는 수많은 역경을 극복해 가야 합니다. 인문학은 이런 삶의 답을 찾기 위해 하는 것입니다.--- p.26
‘양심’은 본능적으로 대아적 효율성을 계산하며,
‘에고’는 본능적으로 소아적 효율성을 계산합니다.--- p.38
양심의 분개는 언제 어디서나 늘 정당하며,
에고의 분개는 언제 어디서나 늘 위태롭습니다.--- p.39
무엇보다 ‘깨어 있음’을 통해
‘양심’을 정밀히 밝히고,
언제 어디서나 ‘양심’에 최고의 가치를 두어야 합니다.
그래야만 우리는 나와 남을 하나로 보며,
남을 나처럼 배려하고 사랑하는 양심적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이를 추구하는 것이 ‘군자의 길’입니다.--- p.52
‘양심’의 힘을 무시해서는 안 됩니다.
날로 세상이 혼탁하게 되는 것은
각자 자신만 살겠다고 서로 ‘술수’를 부리기 때문입니다.
혼탁한 중에도 희망이 있는 것은
남의 아픔도 함께 느끼는 ‘양심’이
우리 모두의 마음에 있기 때문입니다.--- p.57
사람은 본래 양심적으로 살아야만
‘참된 행복’을 맛보도록 프로그램되어 있기에,
군자가 자신의 ‘양심’을 실천할수록
참된 행복을 끝없이 맛보게 됩니다.
…
우리가 남을 행복하게 할 때
나 자신이 행복해지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양심’이 좋아하는 일을 할수록
우리는 진정으로 행복해질 것이며,
우리 사회 또한 살맛나는 사회로 바뀔 것입니다.--- p.67~68
『맹자』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사람이 짐승과 다른 부분은 아주 적다.
그런데 일반 사람들은 이 부분을 버리고,
군자는 이 부분을 잘 보존한다.”
그 아주 적은 부분은 바로 우리의 ‘양심’입니다.
우리의 ‘참마음’인 양심을 버리는 순간
우리는 짐승과의 차이를 잃어버리고 맙니다.
아니, 얼마든지 짐승보다 더한 존재가 되고 말 것입니다.
그러니 ‘사람다운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이 양심을 보존해야 합니다.--- p.163~164
‘군자’는 요즘 말로 ‘리더Leader’라는 뜻입니다.
그것도 일반적 리더가 아닌
‘양심’으로 자신을 닦고(수기修己),
남을 올바로 다스리는(치인治人) 리더입니다.
리더는 남을 다스리기 전에
자신을 먼저 다스려야 합니다.
자신을 다스린 뒤에야 남을 다스릴 수 있으니까요.--- p.217
짐승들도 이익이 좋고
손해가 싫다는 것은 압니다.
이런 차원의 삶을 사는 이들에게
과연 ‘인간의 긍지’란 것이 있을 수 있을까요?
‘인간’은 무엇보다도
‘양심’을 이해하고 지킬 수 있어서 인간입니다.--- p.253
‘영성지능’이 계발된 사람은
언제 어디서나 나와 남의 행복을 위해 일하고
언제나 자명한 진실만을 주장하기 때문에,
나와 남에게 두루 도움이 되는
‘선행’만을 추구하고 실천합니다.
--- p.27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