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체적인 증상이 나타나지 않았다고 해도 공포와 증오와 모든 앙신이 정상적인 건강의 유통을 긴장시키고 치유력을 방해한다는 것은 이미 널리 증명되어 있다. 이 두 가지는 마음을 흐리게 하는 것이요, 혼탁한 마음은 항상 문제아의 마음이다.
이런 감정들은 신체적인 불안을 초래시키는 것이다. 한때 하버드 의대(Harvard Medical school)의 사회윤리학 교수로 있었던 어느 유명한 의사는, 의사가 행하고 있는 75%에 달하는 병 고치는 일은 목사가 해낼 수 있는 것이라는 말을 한 적이 있다. 미래에 의사가 될 젊은 인턴들은 치료를 받기 위해 병원에 찾아오는 사람들 중 50-75%는 조직적으로 아무 잘못이 없다고 추산하고 있다. 그들은 자신의 증상을 스스로 고칠 수 있는 사람들이다. 정신작용적인 약물 분야가 다루는 영원한 치료는 몸(body), 마음(mind), 그리고 영(spirit)을 다룸에 달려있다.
그래서 1951년도에 레드랜드스 대학(University of Redlands)에서 처음으로 기도가 특별한 요법이거나 치료적인 수단이라는 사실을 의학적인 조건까지도 충족시킬 수 있도록 집중적으로 실험을 실시하게 되었다. 그것은 기도의 특별한 ‘방법들’을 찾기 위한 것이었다. 이 분야에 대한 모든 지식이 다 들어있는 특별한 방법들 말이다. 우리는 공포로부터 믿음으로 여행하는 방법을 발견했다.
어느 부인은 우리의 기도반에 들어올 때, 남편이 병원의 의사로부터 앞으로 육 개월밖에 살 수 없다는 진단을 받은 후였고, 죽음에 대한 준비를 하려고 왔다가 남편의 생명이 연장되는 축복을 얻게 되었다. 오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그녀의 남편은 여전히 건강하게 살아있다. 이점에 대해서 의사들은 어떤 설명도 하지 못했다.
진실을 나에게 보여주십시오!
이 책은 그런 질문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해답을 안겨주는 것이다. 우리의 해답은 과학적인, 정확한, 저울질할 수 있는 여러 가지 실험에 근거한 것이다. 그러므로 첫 단계로 우리는 레드랜드스 대학(University of Redlands)에서 우리가 9개월간 실험한 끝에 찾아낸 기도의 힘을 대담하게 생명을 걸고 강조하려고 한다.
은퇴한 어느 전직 은행원은 이 소식을 듣고 다음번에 있을 기도요법 반에 들어오려고 나에게 인터뷰를 요청했다. 그는 우리 실험적인 기도요법 그룹(Prayer Therapy Group)의 일원이었던 어느 사람을 만났는데 이 사람은 은행원에게 우리의 기도에 대한 기술과 심리학의 도움으로 완성된 열쇠가 “그의 질병을 고치는 것이요, 그의 마음과 몸을 혁신시키는 것이요, 그의 생활 속에 있는 태풍을 진정시키는 것”이라고 말해주었다고 했다.
간단히 말해서, 그것은 여기서 지금 그에게는 풍성한 인생, 이해가 넘치는 평안이 있는 천국으로 인도하는 것이 가장 필요했다. 외부적으로, 물질적으로는 전혀 걱정이 없어 보였다. 그는 품위 있고, 자기 자신을 다스릴 줄 알았고, 소위 부분 부분이 빈틈이 없는 사람처럼 보였기에, 그는 성공이라 불리는 모든 것을 가진 것 같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아내는 그를 버리고 떠날 지경에 있었고, 외아들과의 관계는 좋아지지 않아 항상 가슴 아픈 날을 보내고 있었으며, 그가 축적한 재산 또한 의미가 없는 것 같았고, 그것을 얻느라고 보낸 세월은 낭비된 세월 같았다.
그의 다행히 정상적이고 지적인 사람이었다. 그는 ‘조용한 절망(giet desperation)’의 인생을 이어가고 있는 상태였다. 추구하면 할수록 그만큼 더 절실한 해답이 필요했고, 실망이 그만큼 더 컸기 때문에 그에게는 어떤 새로운 해결안이 시급했다. 이 은행원은 그가 하나님이라 부르고 있는 원칙이라는 믿음에 집착한 나머지 하나님에 대해 의심을 갖게 되었다. 하지만 그것은 건전한 의심이었다.
그가 말했다. “저는 돈 버는 기계도 만져보았고, 특허를 받은 여러 가지의 약도 사용해 보았고, 여러 가지 새로운 철학도 시험해 보았고 기도를 통해서 도움을 간절히 추구했습니다. 그리고 정신과 의사들도 만났지만 효과가 없었습니다. 나를 여기로 보낸 친구는 내가 ‘기도를 잘못하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왜 그렇게 생각할까요? 그는 정신의학은 한계가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가 어떻게 그것을 알까요? 그는 기도요법이 나의 해답이라고 생각합니다. 교수님은 제가 집중할 수 있도록 저에게 어떤 혁명적인 제안을 하셔야 됩니다. 아니면 교수님의 말씀은 세상에 흔해빠진 ‘진실성이 없는 웅변’에 불과한 것입니다. 저는 개방적인 사고를 가지고 있는 사람입니다. 교수님은 저에게 그 진실을 보여주셔야 합니다!”
당황하기는커녕, 이것만이 건전한 접근일지도 모른다는 지극히 주관적인 생각이 들었다. 이 책을 읽고 있는 당신도 나와 똑같은 느낌을 가졌으면 한다. 나는 이런 정신으로 실험을 지휘했다.
나는 개인적으로 놀라운 경험을 가지고 있다. 병의 치유가 정말 효과적이고 감동적인 것이었기 때문에 나는 ‘그것을 볼 수 있게’ 되었다. 나는 나의 불신 탓에 나에게 도움이나 방법이 되기 위해 나타난 힘의 현실성을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그것은 반복될 수 있을까? 그것은 증명될 수 있을까? 그것은 원칙에 근거한 것일까?
기도 요법(Prayer Therapy)을 사용하면 효과적인 결과가 생긴다는 사실을 한번 상상해보라(기도와 심리학은 올바르게 이해하고 실천하면 효과적인 결과를 맞는다). 솔직하게 말해서, 아무런 기도 없이, 심리요법만 사용한다면 어떤 더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을는지 누가 말할 수 있는가? 아니면 어떤 심리학이나 새로운 테크닉 없이, 경건한 개인의 기도가 문제에 대해서 더 빠른 그리고 더 완전한 적응이 생기도록 영향력을 끼치지 못할지 누가 말할 수 있는가? 여기에 학문적이고도 심오한 질문이 있다. 첫째로 기도 요법이 효과성을 임상적으로 증명할 수 있는가, 그 다음(그것이 효과적인 것이라고 증명되었다면), 그것의 효과성은 평범한 기도(Just-Plain-Prayer)와 평범한 심리학(Just- Plain-Psychology)에 비교할 수 있는가?
--- 본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