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광사는 나에게 하늘 아래 가장 아늑한 곳이자 남방 극락 정토이다. 새 둥지처럼 아늑한 조계산 풍경 안에 포근한 스님들이 같이한다. 송광사는 여름엔 내 몸과 마음에 삼베 이불처럼 시원한 그늘을 주고 겨울엔 오리털 이불처럼 따스함으로 나를 덮어 주었다. 나에겐 친정과 같은 곳이라 송광사가 목적지가 아니었다가도 남쪽으로 가면 으레 고향에 가듯, 친정에 들르듯 잠시라도 머물다 오게 된다. 송광사에 오래 살았던 스님들 말이 조계산 꼭대기에서 송광사 경내를 내려다보면 엄마가 아기에게 젖을 물린 모습을 하고 있다 한다. 그만큼 경내는 아늑하다. 그 아늑함에 매료되어 난 송광사와 지난 십오 년에 가까운 역사를 같이 한다. 송광사 법당의 부처님은 내 지난 역사를 다 알고 있고 나는 최근까지 절에서 일어난 일을 다 꿰고 있다.
사람에게 마음의 고향이 있다면 그건 마음 한켠에 언제나 같이 있어 떠올리기만 해도 위로가 되는 곳일 것이다. 나 같은 사람은 서울서 태어나 서울에 처음 아파트가 생길 때부터 아파트에서만 살았으니 “고향” 해도 떠올릴 만한 것도 없고 시골에 묻혀 뛰어 놀던 기억이 없다.
송광사를 갔을 때까지 난 한 번도 서울 밖을 나가 본 적도 없었다. 그러다 보니 고향을 그리워하는 노래들은 남의 이야기만 같다. “나의 살던 고향은 꽃피는 산골 복숭아꽃 살구꽃 아기 진달래 울긋불긋 꽃대궐 차리인 동네 그 속에서 놀던 때가 그립습니다.”는 그저 아는 노래일 뿐, 가슴에 와 닿지 않는다. “진달래 먹고, 물장구 치고, 다람쥐 쫓던 어린 시절” 옛 추억도 없고, “내 고향 남쪽바다 그 파란 물 눈에 보이네 꿈엔들 잊으리요. 그 잔잔한 고향바다” 하고 노래 부르며 그리워할 바닷가도 없다. “넓은 벌 동쪽 끝으로 옛이야기 지줄대는 실개천이 휘돌아 나가고……” 하고 흥얼대도 실개천이 어떻게 생겼는지도 몰랐다. 실향민이라도 고향은 있는데 그리워할 고향이 없어 난 송광사를 내 고향으로 만들어 버렸는지도 모른다. 송광사는 나에게 있어 일생 동안 가장 아름다운 추억을 떠올릴 수 있는 마음의 고향이다.
--- <송광사 내 고향 남방의 극락 정토> 편에서
서울은 소음의 도시이다. 난 내 귀를 좀 쉬게 하고 싶다. 소음에 익숙해진다지만 왠만한 것은 잘 참는 나도 듣고 싶지 않는 원치 않는 소음을 참을 수 없어 서울에서 도망치고 싶었다. 소음에 시달리니 떠난다. 그런데 대부분의 사람들이 모두 소음에 중독되어 있는 듯하다. 무슨 소리에든 정신이 팔려 있지 않으면 안 되는 걸까. 온 신경이 밖으로만 치달아 있어 소리의 지극을 받아야 하나 보다. 소리가 없으면 불안이 가중되기도 하는지 주위가 조용하면 불안하다는 사람도 있다. 난 이래저래 소음의 도시에서 살기엔 장애인이나 마찬가지이다. 그 내가 집을 비우는 건 우선 소음에서 피신하는 것이기도 하다. 귀를 막고 싶을 정도의 소음에서 정신을 차리고 싶어 ‘소리 없음’을 찾아 나선다. 그러니 조용한 곳으로 갈 수밖에. 그래서 떠나 주기적으로 조용한 곳으로 공간 이동이라도 해 그 동안 시달린 소음병을 자가 치료한다.
서울은 먼지의 도시이다. 아늑한 곳으로 떠났다가 서울만 진입하면 우선 먼지 때문에 눈이 따갑고 차를 타면 차멀미도 한다. 보통 집에서 하루만 쓸고 닦지 않아도 컴퓨터 자판 위에 쌓이는 먼지의 양이 놀랍다. 창문을 모두 닫아 두고 갔는데도 집을 비운 동안 집 안에 쌓이는 먼지의 양을 보면 내가 어떤 도시에 살고 있는지 안다. 난 떠나면서 종종 폐 청소하러 간다는 말을 자주했다. 집 안 청소는 안 해도 폐 청소는 자주 했다.
이것만이 아니다. 너무나 빨리, 또 바쁘게 돌아가는 것들 때문에 어지럽다. 서울은 한 달이 다르다. 두어 달 정도 인도에 갔다 오면 서울은 다른 얼굴을 하고 있는 다방 마담 같다. 너무 빨리 변한다. 몇 초, 몇 분을 앞당기는 속력이 빠른 것이 자꾸 출현하는 것 때문에라도 도시에서는 세월이 더 빠르게 가는 것 같다. 최첨단, 초고속, 고성능, 다기능의 시대에 맥을 출 수가 없다. 빨라지는 속도와 다양한 기능 때문에 전기제품이라도 사면 설명서만 더욱 복잡해져 머리가 아프다. 자리를 비웠다가 돌아와 처진 것을 따라가려니 마음이 분주해져 되는대로 그냥 산다. 나에겐 무엇보다도 컴퓨터의 최근 성능을 따라 잡는 것이 가장 힘겨웠다. 컴퓨터로 보자면 난 286 이 가장 적당한 사람이다.
--- <에필로그>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