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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벽한 계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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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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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일 2015년 08월 05일
쪽수, 무게, 크기 432쪽 | 522g | 147*210*30mm
ISBN13 9788997336982
ISBN10 89973369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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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다 이번 주말을 꼼짝없이 산에서 보내게 됐을까? 얼마 만이지……. 로뮈알을 몇 년 만에 만나는 거지? 12년인가, 13년인가? 이 ‘재회’는 어떤 모양새를 띠게 될까? 어쩌다 우연히 만나 다시 연락이 오갔고, 상황이 맞물리다 보니 결국 여기까지……. 로뮈알의 초대에 응한 이유를 사실 테오 자신은 정확히 알고 있었다. 다른 도리가 없었다.
---- p.23

부질없다.
열두 살쯤이었을 것이다. 너는 글을 읽다 우연히 이 단어를 발견했다. 그냥 지나칠 수도 있었다. 너는 의미를 모르는 말이었으니까. 그런데 단어가 너를 덥석 물었다, 이렇게 밖에는 달리 표현할 길이 없다. 애잔한 울림을 던지면서 허공으로 흩어지는 소리. 너를 비추는 거울 같은 단어. 입속에서 흐물흐물해질 때까지, 똑똑히 발음할 수 없을 때까지 너는 열 번이고 백 번이고 이 말을 되풀이했다. 너는 바늘과 먹물을 구해 방에 들어앉아 단어를 샅에 새겼다. 지저분하게 점점이 이어지는 글자들, 너 혼자만 해독 가능한 얼룩. 딱히 내세울 명분이 있는 행동도 아니었다. 너는 목적을 따지지 않고 마치 의무를 다하듯 행동을 취했을 뿐이다.
약간의 출혈, 곪지는 않았다…….
문신한 자리는 가벼운 상처처럼 금세 아물었지만 징글징글한 가려움증을 불러왔다. 그 후로, 상처가 아물고 나서도 오랫동안, 이 단어는 이따금 네 안에서 다시 깨어나곤 했다. 공존할 수밖에 없는 기만과 배신의 짐승처럼.
세 달이 지나고 나서야 앞부분이 떨어져 나간 너덜너덜한 국어사전을 펼쳤다. 너희 집에 있던 몇 권 안 되는 책 중 하나였다.
‘대수롭지 아니하거나 쓸모가 없다.’
순간 뱃속에 커다란 구멍이 뚫리는 듯했다. 안으로부터 널 집어삼키는 느낌.
---- p.70~71

테오는 지극히 평범한 네 얘기를 대단히 흥미로운 소재인양 열심히 들었다(테오는 지루하면 금방 티를 내지 결코 아닌 척 남의 얘기를 들어주는 사람이 아니다). 계급적 호기심 때문이었을까? 네 인생 역정이 그에게는 사회학적인 흥미의 대상이었을지도 모른다. 아니면, 정말로 너라는 사람에 대해 알고 싶었을 수도.
---- p.159

도로테의 눈빛이 어두워졌다. 언짢거나 생각에 잠길 때 짓는 표정.
“로뮈알이 나한테 당신과는 프레파에서 만났고, 자기는 프레파를 1년도 채 못 마쳤다고 했어. 정확히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테오가 불을 붙이지 않고 들고만 있던 담배를 손가락으로 꾹 눌렀다.
“압력을 못 견딘 것뿐이야. 로뮈알은 자기 학년에서 머리는 아주 좋은 축이었지만 날라리였어. 게다가 사고도 몇 번 쳤고. 출신 동네를 알면 놀랄 일도 아니야. 과거에 발목이 잡힌 거지.”
“어떤 사고였는데”
“내용을 잘은 모르겠는데…… 마약이 연관된 문제라던가…….”
산을 타고 내려온 바람 한 줄기가 두 사람을 부드럽게 훑고 지나갔다. 테오는 갑자기 등줄기가 서늘해지는 것을 느꼈다. 열 때문인가 아니면 과거를 떠올리는 고통 때문에? 애초부터 이게 문제였어…… 그는 아직 로뮈알과 허심탄회하게 얘기를 하지 못했다. 결론적으로, 이번 산행은 어딘가 비정상적인 구석이 있었다.
---- p.203~204

모의시험(이건, 엄마한테 말한 그대로다. 정말 모의시험이 있었다) 결과는 참담했다. 장학금 지급이 취소돼 펠릭스-포르에서 2학년을 못 다니게 될지도 모르는 결과였다.
정신 차려! 네 안의 목소리가 끊임없이 경고했다. 하지만 이성의 힘으로 너를 장악해 버린 무기력감과 싸우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그러면서도 너는 미래를 송두리째 날려 버리고 있다는 불안감에 시달리고 있었다. 너에겐 어떤 안전망도, 너를 자기 회사에 취직시키거나 든든한 빽이 돼 주거나 다달이 돈을 대 줄 수 있는 부모도 없었다. 너는 그런 세계에 속하지 않았다. 테오야 개판을 쳐도 언제든 원상회복이 가능하지만 너는 달랐다.
그해는 인생이 네게 준 최고의 기회였는데, 그걸 맥 놓고 앉아 놓칠 순 없었다.
---- p.2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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