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부 강호에 고수가 나타났다
박주영은 천재인가? 박주영이 이동국처럼 대포알 슛을 날릴 수 있을까? 이천수의 그라운드를 휘젓는 능력과 최성국의 드리블 능력, 정조국의 돌고래 같은 호쾌한 슈팅력과 비교해보면 어떨까. 한마디로 박주영이 모든 면에서 못 미친다. 그런데도 전문가들은 박주영이 이들을 훨씬 능가하는 천재라고 말한다. 왜 그럴까? 그는 소리 없이 공을 찬다. 그는 스스로 골 기회를 만든다. (23쪽)
조훈현과 박지성, 유착형과 박주영. 축구 천재 박주영은 ‘화려한’ 공격을 자랑하는 바둑 기사 유창혁과 비슷하다. 유창혁의 행마는 화사하다. 봄날 벚꽃처럼 가볍고 작은 고추처럼 맵다. 그래서 별명도 일지매다. 세계 최고의 공격수를 자랑한다. 그의 칼바람에 한 번 갇히면 천하의 전신 조훈현도 결코 빠져나오지 못한다. 박주영의 슛은 짧고 예리하다. 부드러운 바람처럼 달려와 소리없이 급소에 정확하게 단검을 찔러댄다. 결코 서두르지 않고 한 발 한 발씩 숨통을 조여간다.·······박지성은 조훈현과 같다. 끊임없이 판을 흔들어댄다. 이곳 저곳 휘저으며 불을 질러댄다. 판을 흔들다가도 벼락같이 카운터펀치를 먹인다.(62쪽)
2부 박지성 휘젓고 박주영 쏜다
한국 축구사를 다시 쓰는 two Park. 박지성이 울창한 대숲 사이를 요리조리 미끄러지듯 빠져다니는 날다람쥐라면 박주영은 대숲에 몸을 깊숙이 감추고 있다가 한 순간 달려드는 자객이라고 할 수 있다. ‘웟 샷 원 킬’ 자객의 칼은 한번 맞으면 치명적이다. 박지성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신형 엔진이다. 그의 지칠 줄 모르는 에너지에 무서운 비수까지 품고 있다면 공포의 신형 무기가 될 것이 틀림없다.(87쪽)
박주영을 위한 변명. 박주영과 메시(아르헨티나 대표팀, 바르셀로나)는 경기 스타일이 비슷하다. 타고난 신체능력보다 볼의 흐름과 간결한 볼 처리로 ‘영리한 플레이’를 펼친다. 유연한 드리블과 경기장 전체를 아우르는 넓은 시야가 일품이다. 창조적 플레이로 예리한 킬패스를 찔러준다. 하지만 메시는 갈수록 펄펄 날고 박주영은 제자리에 머물고 있는 느낌이다. 왜 그럴까. 그건 일단 무대가 다르기 때문이다. 메시는 어릴 때부터 ‘세계적 눈높이’의 프리메라리그에서 직간접 경험이 많았다면 박주영은 ‘우물 안’ K리그에서 겨우 1년 동안 성인무대를 경험한 것뿐이다.(131쪽)
3부 알고 보면 짜릿한 축구
센터라인이 승부를 가른다. 축구에도 백두대간이 있다. 센터라인은 골문을 지키는 골키퍼, 수비를 총지휘하는 센터백(중앙수비수), 수비와 공격을 연결하는 수비형 미드필더, 중원의 지휘자이며 플레이 메이커 노릇을 하는 공격형 미드필더, 최전방 센터포워드(중앙공격수)로 이루어진다. 한마디로 우리 몸의 등뼈라고 보면 된다.이들은 체격에서 좌우 날개들보다 큰 편이다. 특히 중앙공격수와 중앙수비수는 마치 우람한 한 그루 나무 같다.(149족)
끝내주는 사람 수비형 미드필더, 야전 사령관 공격형 미드필더. 수비형 미드필더는 수비의 키 플레이어지만 공격의 시발점이기도 하다. 단 한 번의 송곳패스로 골을 만들어내는 경우가 많다.(176쪽) 공격형 미드필더는 시야가 넓고 개인기가 빼어나야 한다. 볼 키핑령은 물론이고 패싱과 크로스도 날카로워야 한다. 때로는 드리블로 단독돌파를 할 수 있어야 하며 공격이 안 풀릴 땐 기습 대포알 슛을 날릴 수 있어야 한다.(182쪽)
킬러들의 웟 샷 원 킬. 페널티에어리어에서 느끼한 표정으로 어슬렁거리는 골잡이들. 그들은 평소 게으른 것처럼 어슬렁거리다가도 공이 주위에 오면 동작이 전광석화처럼 빨라진다. 그들은 동료의 결정적 패스를 받을 수 있는 위치로 슬며시 들어가거나, 상대가 실수하거나 서로 공을다 툴 때 공이 흘러나올 만한 곳에 어떻게든지 가서 대기한다. 그러다가 공이 흘러나오기만 하면 그저 한번 가볍게 건드리거나 인사이드로 툭 차서 골을 넣는다.(191쪽)
슛은 들어가야 맛이다. 최근 2년간 잉글랜드, 독일, 이탈리아, 프랑스 등 유럽 8개국 A매치 경기내용을 분석한 자료에 따르면 148골 중 오른발 슛 55%, 왼발 슛 33%, 헤딩슛 12%로 나타났다. 특이한 것은 경기가 일단 중단되었다가 재개되었을 때 골 득점이 40~50%나 된다는 것이다.·····이 결과를 토대로 한국이 프랑스, 스위스 등 유럽 팀과 경기할 때 참고할 점을 추려낼 수 있다. 유럽 팀은 중·장거리 미사일 슛보다 페널티에어리어 안이나 골에어리어 안에서의 짧은 슛으로 득점한다. 왼발보다는 오른발 슛, 골키퍼는 공중 볼보다 골대 중간 아래로 오는 오른발 슛을 조심해야 한다. (201쪽)
감독은 CEO다. 영국축구에서 선수가 감독과언쟁을 벌인다면 그 선수는 조만간 보따리 쌀 각오를 해야 한다. 그러나 네덜란드에서는 다르다. 네덜란드에서는 스무 살이 된 풋내기 선수도 자신이 감독만큼 축구를 많이 알고 있다고 생각한다. 전술을 놓고 감독과 다투는 선수는 네덜란드 선수들밖에 없다. 감독은 작전을 세운 뒤 먼저 선수들부터 설득해야 한다. 그들이 모두 고개를 끄덕인 뒤 그들 스스로 생각하면서 공을 차면 환상적인 축구를 한다. 그러나 그렇지 못할 땐 엉망이 된다.(221쪽)
스리백이냐 포백이냐. 축구에서 명수비수 1명 만드는 게 명공격수 10명 만드는 것보다 더 힘들다는 말이 있다. 그만큼 수비수는 하루아침에 길러지지 않는다. 더구나 포백은 ‘축구의 공간 개념’을 이해하지 못하면 할 수 없는 포메이션이다.(251쪽)
4부 한국 축구는 왜?
여름밤 축구의 마법에 걸리다. 학자들은 세계를 정복한 몽골군의 강점을 보통 3S로 요약한다. 기동성(Speed), 단순성(Simplicity), 자신감(Self-assurance). 축구도 흡사하다. 축구의 매력은 바로 이 3S에서 나온다.
둥글게 차고 부드럽게 이겨라. 한국 축구는 ‘아시아의 독일 축구’다. 강한 체력을 바탕으로 톱니바퀴 같은 조직력을 추구한다. 그래서 축구가 좀 뻣뻣하다. 일본은 프랑스에 가깝고 중국은 잉글랜드와 비슷하다. 히딩크 감독 이후 한국은 네덜란드 축구를 많이 닮아간다. 강한 체력을 바탕으로 한 끊임없는 ‘압박’과 공을 오래 소유하며 기회를 노리는 ‘게임의 지배’가 바로 그렇다. 즉, 네덜란드식 토털 축구를 지향한다. 하지만 아직 멀었다. 골 결정력이나 순간순간 상황대처 능력이나 창조 능력은 네덜란드 선수들에 비해 훨씬 뒤떨어진다.(297쪽)
관객은 열두 번째 선수. 독일월드컵에서 한국 대 스위스전은 한국 11명 대 스위스 13명의 경기를 하게 될지도 모른다. 스위스 팬들로 가득한 경기장에서 스위스 쪽에 유리하게 휘슬을 부는 심판들을 감안해야 하기 때문이다. 축구는 선수 11명만 그라운드에서 뛰는 게 아니다. 열두 번째 선수인 팬들의 열화 같은 응원이 없으면 ‘죽음의 경기’가 된다.
--- 본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