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여기' 우리 예술비평의 새로운 지평을 위하여
영화평론가 변성찬은 우리 영화의 풍성해진 텍스트들을 바탕으로, 우리 자신의 의식-무의식 속에 내장된 근본적인 검열 장치를 비롯하여 일체의 검열에 도발하는 것을 '극한성'의 자의식으로 규정한다. 그리고 극한의 미학은 가리면서 보여주는 '타협의 산물인 환상'을 뛰어넘어, 꿈꾸는 '도발의 무기'라 진취적으로 평가한다. 그에게 한국영화는 아직 너무 착하다.
미술평론가 박영택의 '식물성'의 분량은 식물성의 근저에 놓인 동양적 세계관에 대한 재확인 서설로 시작된다. 사군자와 산수를 화폭에 담는 일은 동양 사상의 응축을 표현하는 실천 행위였으며, 자연과 인간은 존재의 사슬로 연결된 '유통하는 존재'가 된다. 동시대 작가들의 현재(대)적 화법을, 서구의 인식론적 패러다임을 극복하려는 생태적이고 전체론적인 사고로 해석해 보인다.
미술평론가 심상용은 현대 예술(해석/비평)의 극단인 '해체성'을 해체하고자 한다. 자유방임과 소득 없는 피곤한 지식들이 양산해낸 협소한 논쟁들과 그로 말미암은 관객 차원의 무지와 무감각, 유행처럼 떠다녔던 해체의 폐해는 그곳에서 비롯되엇다. 소비만능시대를 격파하고 진정한 의미 향유의 문화시대를 복원하기 위해서는 또 다른 통합적 사유의 메스는 반드시 필요한 것이다.
사진평론가 박주석은 개인, 혹은 개인적 삶의 연속으로서의 일상 자체를 예술의 주요한 주제로 올려놓는 데 기여한 사진 작품을 통해 '일상성'을 탐색한다. 일상 기록의 보통 예술로 출발한 사진은 일상성이라는 특질이 예술적 지위 확보에 걸림돌이 된다고 보고 고립화, 비통속화, 비일상화의 길을 걷는다. 하지만 그동안 오히려 전통 시각 예술은 사진이 끌어들인 일상이라는 주제를 진지한 성찰의 대상으로 삼는다. 가장 대표적인 예가 팝아트이다. 사진은 다시 그에 자극받아 다시 일상에 눈을 돌린다.
미술평론가 윤범모는 우리 미술에서 정체성 혹은 자생성을 논의할 터전조차 마련되어 있지 않음을 직시한다. 그에게 가장 중요한 문제는 현실을 분명하게 인식하는 것이며, 국제무대의 동향에 대한 주체적 소화능력의 배양이다.
미술평론가 심영옥의 우리시대의 '해학성'에 대한 평가도 이와 비슷한 반성적 태도에서 비롯된다. 인간이 자신의 상황에서 반성하게 될 때, 즉 자신의 삶으로부터 스스로를 해방시킬 때 진정으로 흥미로울 수 있는 것처럼, 자신이 속해있는 현실 사회에 대해 제대로 반성할 수 있을 때 해학적 삶은 영위될 수 있는 것이다.
문화평론가 정윤수는 우리시대의 '퓨전' 현상을 살피며, 급변화한 우리의 역사 시계를 다시 돌리며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은 있는 법!'이라 압인을 찍는다. 이전 시대로부터 이어져온 문화예술의 언어들, 특히 자신의 내면이 지향하는 장르의 문법에 대하여 그 극한까지 추구하는 것, 그 과정에 동반하여 당대의 삶의 꼴과 내면의 감수성에 대하여 끊임없이 성찰하는 것, 이러한 바탕에서 나타나는 문화 현상은 비록 그것이 이것과 저것을 합쳐놓은 '퓨전'이라 말하더라도, 그러한 표현과 상관없이 늘 미래를 향해 상상하고 성찰하게 만드는 새로운 것은 항상 있다고 말한다.
문화평론가 이원곤은 '대화성'의 문제를 하이테크놀로지 시대의 첨단 텍스트 공간인 '현실세계Reality-복합현실Mixed Reality(MR)-가상현실Virtual Reality(VR)' 속에서 규명한다. 그에 따르면 VR 혹은 인공현실감(기술)은 오로지 현실세계를 인공세계로 대치하고자 하는 것임에 반해, MR은 현실세계를 그대로 두고 그것을 증강·확장하고자 한다. 따라서 현실공간과 가상공간 사이에 두 세계의 상호 교류가 일어나는 복합현실의 공간에서 예술작품은 감상을 위한 오브제가 아니라 관객을 포함하는 시스템이 된다.
문학평론가 심진경은 (문학에서) 규정적 개념으로서의 '여성성'을 거부하고 전복시킨다. 여성성은 형식의 결여 자체를 의미하며, 형식을 거부한다는 것은 단순히 문학적 형식 그 자체에 대한 부정이라기보다는 특정 형식에 부여된 특권에 대한 거부다. 문학이 끊임없는 자기 부정을 통해서만 가능하다고 한다면, 여성성 또한 그러한 부정성을 자기 존재의 근거로 삼는다고 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여성성은 더 이상 여성성이 아니다.
미술평론가 박진호는 우리 예술계의 시간을 '순간성'으로 포착한다. 그에 따르면 시간들은 우리가 원하는 대로 섞이고 조작된다. 이제 시간 안에 내가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 시간들이, 기억들이 존재하고, 예술 또한 절대적인 시간 속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내 안의 사적인 시간 속에 존재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