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년 전에 출간되었던 이 책이 다시 개정판의 이름을 빌어 재출간된다는 것은 사실 사회적으로 매우 부끄러운 일이다. 책의 내용이 여전히 유용하다는 것은 그만큼 환자와 시민들이 처한 보건의료환경이 그리 나아지지 않았다는 반증이기 때문이다.
이 책의 초판이 나올 때만 하더라도 한국의 의료보장율은 약 65% 정도였었다. 그리고 정권이 바뀌면서 중증환자의 본인부담금이 10%에서 5%로 줄고, 상급병실도 4인실까지 보험적용이 되었으며, 선택진료비도 약 반으로 줄었건만 현재의 의료보장율은 오히려 약 62%로 더 낮아졌다. 왜 이런 기이한 현상이 생긴 걸까? 그건 바로 보장성이 좋아진 만큼 어디선가 우리도 모르게 비급여 항목들이 도처에 생겼기 때문이다. 그래서 제로섬이 아니라 오히려 더 악화된 상황에 환자와 시민들이 내몰린 것이다. 나 같은 사람들이 일을 제대로 못한 것이다. 책의 재출간이 부끄러운 이유다.
처음 책이 출간되었을 때 독자들의 반응은 극과 극이었다. 한쪽은 환자와 시민들이었고, 다른 한쪽의 극은 의료계였다. 환자와 시민들은 내게 고맙다는 인사를 수없이 보냈고, 의료계의 어떤 인사는 내 면전에서 책을 집어 던지며 환자와 의사를 이간질시키는 나쁜 책이라고 소리 지르기도 했다.
그러나 그런 책을 이렇게 다시 출간할 수 있는 유일한 이유는 아픈 환자들이 보여준 그간의 지지와 여전히 그들이 처해 있는 암울하고 불확실한 보건의료의 미래 때문이다.
--- pp.7~8
그는 환자복을 입고 다국적 제약회사 노바티스 앞에서 뼈만 남은 몸으로 경찰 병력과 대치하다가 분노에 못 이겨 상의를 벗어버렸다. 온몸이 백반증으로 얼룩덜룩한 그 절망스럽다고 한 몸을 보여 준 것이다. 그리고 소리쳤다.
“자, 봐라. 이놈들아. 난 백혈병 환자다!”
“난 백혈병 환자다… 난 백혈병 환자다….”
그가 자신을 극복하기 시작한 외침이었다. “봐라. 이게 나의 정체성이다”라고 소리친 것이다. 그 이후 그는 환우회를 만들고, 적십자사의 혈액 문제, 환자들이 피를 구하러 다니는 것을 끝내겠다던 혈소판 투쟁, 선택진료비, 호텔보다 비싼 상급 병실료, 병원 밥값, 의료 기관들의 부당 청구 등등 제도를 바꿔보겠다며 많은 일을 하다가 갔다. 특히 환자 운동의 시작을 그가 알렸다는 점에서 그는 항상 특별했다. 그가 에이즈 환자들에 대해 남달리 각별한 애정을 쏟은 것은 아마 그 환자들이 사회에서 차별 받고 소외당하는 것이 자신의 처지와 그리 다르지 않음을 느꼈기 때문이리라.
그래서 그는 환자다. 그리고 그것은 그의 정체성이기도 했다. 그 이름 앞에 환자 운동가라는 수식을 붙이지 않아도 그에게는 ‘환자, 김상덕’이 가장 아름답다. 그런 그가 간 지 벌써 9년이 됐다.
날짜만으로는 3일 후, 그리고 김상덕보다는 1년 먼저 다른 한 명의 환자가 이 세상을 등졌다. 바로 원폭 피해 2세 환자인 김형률이다.
--- pp.31~32
진료를 받고 나오는 환자들이 입원을 하고 적게는 수십만 원에서 수백만 원, 수천만 원을 내고는 달랑 영수증 한 장 받아가지고 오면서 ‘뭔가 찝찝한’ 기분이 드는 것은 한두 해의 일이 아니다. 슈퍼마켓에서 단돈 만 원어치의 물건을 사더라도 콩나물 값, 두부 값이 쭉 찍혀 나오는데 몇백, 몇천만 원을 내는 환자들은 내가 왜 이 돈을 내는지 또 이 돈을 다 내야 할 돈인지 잘 모른다. 이런 환자들을 누가 보호해주랴. 국민의 건강을 보호한다는 그래서 환자를 위한다는 의료계가 먼저 할 일이고 그중에서도 의사가 제일 먼저 할 일이다.
| 진료비 확인 제도 이용하기 |
진료비 액수와 관계없이 누구든 이용할 수 있다. 심사한 후 아무런 내용이 안 나오더라도 궁금하고 의심이 들면 청구해 본다. 돈을 어떻게 왜 냈는지 알고자 하는 건 환자의 당연한 권리다. 영수증만 있으면 된다. 영수증이 없다면? 영수증은 5년간 재발부가 되니까 해당 병원 원무과에 가서 재발부를 요구한다. 그리고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전화(문의전화: 1644-2000)를 하거나 홈페이지(www.hira.or.kr)를 방문해 진료비 확인 요청칸에 신청을 하면 된다. 그런데 심사 후에 병원에서 돈을 줄 테니 취하해달라고 전화할지 모른다. 그러나 취하하는 것보다 심평원에서 진료비 심사가 끝날 때까지 기다리는 게 훨씬 더 이익이다. 환자가 개인적으로 보기 힘든 부분까지 모두 심사를 하기 때문이다. 물론 병원은 싫어한다. 그래도 그렇게 해야 한다. 이런 사실을 주변에 널리널리 알려서 반드시 하도록 하자.
--- p.51~52
2001년도에 만성 골수성 백혈병 치료제인 ‘글리벡’이라는 약이 나왔었다. 골수 이식이 아니면 거의 대부분 사망할 수밖에 없었던 환자들이 이 약을 먹고 지금까지 거의 살아 있다는 것을 생각하면 정말 ‘기적의 신약’이라고 불러도 좋을 만한 약이다. 게다가 주사제도 아니고 캡슐로 된 알약이다 보니 간편할 뿐더러 일상생활도 대부분 무리 없이 할 수 있으니 맞는 골수가 없어서 골수 이식도 못하고 그저 죽기만을 기다렸어야 할 만성 백혈병 환자들에겐 정말 ‘기적’ 그 자체였다.
그런데 문제는 약값이었다. 너무 억울하고 중요해서 다시 한 번 이야기한다. 당시 한 달 약값이 300만 원이었다. 이런 약을 그럼 언제까지 먹어야 할까? 죽을 때까지다. 결국 돈 없으면 죽으라는 이야기였다. 어쩔 수 없이 환자들은 집을 팔아서 약을 먹기 시작했고, 전세에서 다시 월세를 고민하였다. 일흔이 된 아버지가 아들을 붙잡고 ‘나는 이제 살만큼 살았는데 네게 짐이 되고 싶지 않다’면서 약 먹기를 거부했고, 아들은 그런 아버지를 붙잡고 울었다.
--- pp.56~57
선택진료비는 경증 환자의 경우 본인이 부담하는 진료비의 약 7~10퍼센트 정도, 그리고 암 등 중증 질환자의 경우에는 약 15퍼센트 정도를 차지한다. 암 환자가 약 1,000만 원 가량의 진료비를 냈다면 그 중 선택진료비가 약 150만 원 정도 차지한다는 말이다. 물론 백혈병 환자들처럼 수천만 원을 병원비로 낸 환자들의 경우에는 선택진료비만 400~500만 원이 훌쩍 뛰어 넘는다.
다음의 경우, 돈을 얼마를 냈던 모두 불법이다. 읽어보시고 예전에 입원해봤던 경험이 있는 분들은 영수증을 다시 보고 모두 돌려받기 바란다.
● 해당 과목의 의사만 선택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마취, 검사 등 다른 과의 진료비에도 마찬가지로 선택진료비가 부과되는 경우.
● 자신이 선택한 의사가 아니라 인턴, 레지던트 등 다른 의사가 진료를 하거나 수술 처치 등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선택진료비가 부과된 경우.
● 선택진료 신청서를 작성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선택진료비가 부과된 경우.
아마 글을 읽는 분들은 “에이, 그럼 거의 다네” 할지 모르겠다. 맞다. 거의 다일지도 모르겠다.
영수증만 있으면 건강보험심사평가원(www.hira.or.kr) 홈페이지에 들어가서 진료비 확인 신청칸을 클릭한 후 심사 요청을 하면 된다. 물론 불법적으로 징수 당한 금액은 몇만 원이든 몇백만 원이든 모두 환불 받을 수 있다.
--- pp.93~9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