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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15년 08월 31일
쪽수, 무게, 크기 쪽수확인중 | 294g | 125*190*20mm
ISBN13 9788932027692
ISBN10 89320276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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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1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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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가 그녀의 집에 머문 날은 겨우 닷새였다.
어머니는 다시 윤슬에게 전화를 걸었지만, 그녀는 응답하지 않았다. 할 수만 있다면 영원히 어머니에게서 숨어 살겠다고 다짐했다. 나도 살아야 해,라고 그녀는 중얼거렸다. 마치 어머니가 그녀의 숨통을 틀어쥐고 있다는 듯, 그녀가 틈을 보이기만 하면 언제든 그 끔찍한 삶을 전가할 것이라고, 하지만 누구도 타인의 삶을 대신 살 수는 없다고 변명했던 것이다.
---「그랜드 망상 호텔」

아빤 먹는 입밖에 관심이 없어요? 딸애는 지겹다는 듯 고개를 가로젓곤 했다. 그래, 그에게는 그것이 신앙이고 삶이었다. 택시를 몰 때는 손님을 한 명이라도 더 태우기 위해서 주먹밥을 먹고 페트병에 오줌을 받으며 달렸다. 그는 그런 자신이 부끄럽지 않았다. 마지막에 아내는 점점 침묵 속으로 내려앉았지만, 그는 문제가 뭔지도 몰랐다.
아내는 쪽지 한 장 남기지 않고 그를 떠났다. 그녀가 가방도 꾸리지 않고 오직 몸만 빠져나갔다는 것을 알았을 때, 그는 비로소 부끄러움을 느꼈다. 아내는 자신을 떠나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원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것이 무슨 의미였을까? 그는 아내에게 묻고 싶었다.
---「애니」중에서

별 보기가 끝난 후, 그녀는 나를 데리고 부엌 옆방으로 갔다. 짐작건대 아들이 쓰던 방인 것 같았다. 방 안에는 ㄷ자 모양으로 나무 책상과 옷장, 침대가 놓여 있었다. 그 방은 빈방 같지 않았고, 외출한 주인이 금방이라도 돌아올 것처럼 보였다. 옷장 앞에 걸려 있는 스웨터, 뾰족하게 깎아놓은 연필이 가득한 연필꽂이, 침대맡에서 째깍거리는 소리를 내는 알람시계가 그랬다. 문득, 그가 지금 어디 있는지 몹시 궁금해졌다. 하지만 어쩐지 그런 것을 물을 수는 없었다. 그 방에 고인 무게가 내게도 느껴졌던 것이다.
---「빈방」중에서

캄캄할 때 집을 나간 어머니는 해가 뜰 무렵에야 두 손 가득 무거운 짐을 들고 집으로 돌아왔다. 어머니가 집에 들어올 때 함께 묻어 들어오는 차가운 새벽 공기의 냄새, 어머니의 끙 하는 신음 소리, 그리고 사각거리며 겉옷을 벗는 소리…… 그제야 지은은 안도하며 다시 잠들 수 있었다. 지은은 그때 어머니의 나이가 지금의 자신보다 어렸다는 것을 알고 있다.
언젠가 지은은 어머니에게 무슨 생각을 하며 그 세월을 보냈느냐고 물었던 적이 있다. 어머니는 지은을 이상스럽다는 듯 바라보았다.
“생각 같은 것은 해본 적이 없다.”
그것이 어머니의 대답이었다.
“너무 많은 걸 생각하지 마라. 누구나 자기 덫에 걸리는 거란다.”
---「예언의 땅」중에서

미로는 방 안을 정리하는 데 별로 신경 쓰지 않았고, 청소 상태도 썩 깨끗하지 않았지만 침대만큼은 성역을 지키듯 관리했다. 외출했던 옷을 입고 그 위에 앉지 못하게 하는 것은 물론, 몸을 씻지 않으면 시트 안에 들어가지도 못하게 했다. 그녀의 유일한 사치는 좋은 이불과 베개를 사들이는 것이었다. 그녀는 퇴근 후, 뜨거운 물로 씻고 나와 깨끗한 이불을 덮고 누우면 죽어서 천국에 간 기분이라고 말하곤 했다. 그것이 그녀의 두 가지 소망이었다. 고통 없이 죽는 것과 천국에 가는 것.
---「러브레터」중에서

아버지는 가족들을 두고 혼자 떠나는 일을 다시는 하지 않았다. 그는 삶을 되찾기로 마음먹었고, 이영과 일영은 그에 부응하고자 노력했다. 이영은 미대에 가서 아버지를 실망시켰지만, 일영은 명문대 공과에 수석으로 입학했다. 그들은 어머니에 대한 이야기를 입 밖에 내지 않았다. 그 상처는 너무나 끔찍해서, 꽁꽁 싸매고 잊어버리는 수밖에 없었다. 시간이 지나자, 어머니는 깊이 가라앉아버린 섬처럼 느껴졌다. 가끔 그곳에서 기포가 떠오르거나 물 밑으로 뭔가가 스쳐 지나가는 듯해도, 애써 들여다보지 않는 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신행(新行)」중에서

제이유에게는 부족함 없이 자란 사람 특유의 밝은 빛이 있었다. 그것은 그가 고급 외제 차를 타고, 일련번호가 붙은 라이카 카메라를 들고 다니며, 한도가 없는 신용카드를 쓴다는 차원의 ‘빛’은 아니었다. 그것은 그보다 훨씬 단순하게, 얼굴에서부터 드러나는 것이었다. 당시 우리의 얼굴이 뭔지 모를 불안과 조급함, 분노로 가득 차 있었다면, 그의 얼굴은 늘 느긋한 장난기로 반짝거렸다. 그는 어떤 일도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다르게 말해서, 그는 세상만사에 무심했다. 나는 그와 같은 전적인 무심함, 자아도취적인 무심함은 이전에도 후에도 본 적이 없다. 그는 오직 즐거움을 찾기 위해 사는 사람이었고, ‘크눌프’에 온 것도 그 때문이었다.
---「해먹」중에서

나는 블랙커피 한 잔으로 끼니를 때우고, 비스킷 한 조각으로 하루를 견뎠다. 살이 빠지면서, 내 몸은 점차 그 윤곽을 드러냈다. 골반이 솟아올랐고, 팔꿈치 뼈가 튀어나왔고, 구슬처럼 동그란 손목뼈가 도드라졌다. 연구실에 들어서면, 동료들이 즉각적으로 내 몸을 훑어보는 시선을 느낄 수 있었다. 실장과 완전히 헤어질 무렵 내 몸무게는 35킬로그램으로 떨어져 있었다. 그즈음엔 이미 내 몸에 대한 관심이 더욱 나를 사로잡고 있었다. 알몸으로 거울 앞에 서면, 갈비뼈를 하나하나 세어볼 수 있었다. 단단하고, 깨끗하고, 영원한 뼈……
---「오픈하우스」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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