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슷한 옷을 입고 비슷한 표정을 짓는 사람들이 잔뜩 모여 있는 광경은 좀, 아니 몹시 충격적이었다. 하얀 머릿수건을 쓰고 탐스러운 사과나무 아래서 웃던 언니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한쪽 다리를 트랙터에 걸친 채 하얀 이를 드러내며 서글서글하게 웃던 오빠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하얀 블라우스에 빨간 스카프를 매고 머리에는 커다란 꽃을 꽂고 생글거리던 여학생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짧고 단호한 외침이 터져 나왔다.
“속았다!” --- p.46~47
숨기려고 해도 숨겨지지 않는, 일본어 투의 어색한 조선말은 아무리 물속으로 밀어 넣어도 떠오르고 마는 풍선처럼 드러났고, 그들은 그걸 꼭 집어서 놀렸다. 그들의 말은 독화살처럼 오빠의 심장을 정확히 쏘았고 오빠는 순식간에 화르르 타올랐다.
반쪽바리.
조센징이 반쪽바리로 바뀌었다. 반쪽바리에 비하면 조센징은 차라리 정겨웠다고 해야 하나. 반쪽바리는 어머니와 아버지까지 욕보이는 말이었다. --- p.57~58
고개를 한껏 젖혀 꽃을 바라보던 소녀. 하이쿠를 읊으며 가슴이 저미도록 슬퍼져 강물처럼 울음이 차올랐던 소녀. 나는 그 소녀를 만나고 싶다. 그 소녀를 만나러 가고 싶다. 살아서……. --- p.66
일본인과 결혼한 사람들은 모두 이혼하라는 교시가 북한에서 내려올 정도로 극단적인 민족주의로 몰고 갔어. 우리 아버지는 그때 어머니와 이혼하지 못하겠다고 해서 조총련에서 숙청당했는데 그래도 다행히 살아남아주었어. 그 파문이 우리학교에까지 몰아닥쳤어. 일본국적을 가지고 있거나 조선말을 잘 못하는 아이들은, 총화시간에 집중적으로 비판의 대상이 되었어. 그거, 아이들 잘못 아니잖아. 그런데 아이들을 마치 민족의 반역자들처럼 몰아붙여서, 아이들이 테러를 당하거나 집단 린치를 당하기도 하고 거기에 선생님이 가담한 경우까지 있었어. --- p.80
강호가 북한에 가지 못하는 진짜 이유? 그건 나도 몰라. 총련이나 룡해에게 물어봐도 모르겠다는 대답만 돌아와. 그 사람들은 정말로 모르는 거야. 룡해라면 짐작은 하겠지만, 그걸 말할 수는 없으니까. 그래서 위에 물어봐달라고 부탁해봤어. 그랬더니, “고강호 선생님이 이미 알고 있을 거라는데요” 이러는 거야.
나는 어떨 거 같아? 나는 이명박 정권 이후로 한국에 못 가는데, 강호는 마음대로 갈 수 있잖아. 한국에 마라톤대회가 그렇게 많은지 난 처음 알았네. 준이 강호 대신 마라톤대회 접수해주기 시작한 게 언제부터였지? 5년쯤 됐지? 북한에 가지 못하게 되면서부터였으니까. 그런데 오사카 한국영사관에서는 강호가 북한에 다녀온 걸 알고 협박을 하더래. 국보법에 저촉된다고. 그럴 때는 자국민 취급을 하려는 걸까? 아니면 재일동포 간첩조작 사건이라도 만들겠다는 건가? --- p.108
“테레비에서 남조선이 나오는데, 대학생들이 데모를 하는데, 대통령 물러가라고, 독재자 물러가라고 데모를 하는데, 그거 보라고 보여주는데 아버지는…….”
“아버지는요”
“서울이, 건물이, 대학생들이 입고 있는 옷이, 신발이 왜 저렇게 좋으냐고, 한국이 저렇게 발전했냐고…….”
“그리고요”
“그리고……, 자유가 있구나, 자유가……. 데모를 하고, 대통령 물러가라고 데모를 하고, 자유가 있구나…….” --- p.153~154
사무실의 전화기가 쉴 새 없이 울리기 시작하더니 사람들이 찾아오기 시작했다. 아들과 연락이 안 된다, 편지를 보낸 지 1년이 다 돼가도록 답장이 없다, 연락을 해달라. 그러나 그들을 대하는 총련의 모습은 동포들을 북송선에 태울 때와는 너무나 다른 고압적인 태도였다. 같이 불안해하고 걱정하고 어떻게든 조치를 취해주는 모습은, 상대의 재산에 따라 달라졌다. 그는 조선인 사이에서 도로포장 공사를 하며 건설업계에서 크게 성공한 사람이었다. 일본에서 더 이상 희망이 없다고 생각해서 아들 가족을 북으로 보냈고 아들이 갈 때 엄청난 돈과 물자를 실어서 보낸 실력자였다. 가난하고 힘없는 동포들을 무시하던 간부들은 그를 안심시키고 달랬다. 그러나 그뿐, 간부들도 아들의 소식을 알아내지는 못했다. --- p.326
외삼촌의 편지를 다시 한 번 찬찬히 살피다가 우표 뒤에 쓴 글을 발견한 게 그 무렵이었다.
‘절대로 오지 마라.’
그때의 충격이 남은 생을 결정해버렸다. 절대 오지 말라는 그곳에 나는 꼭 가봐야 했다. 젊음과 청춘과 순정을 고스란히 바친 일이었다. 그 열정으로 수많은 사람들을 떠나보낸 곳이었다. 나는 첫 방북 신청서를 냈다. 내 나이 서른다섯 때의 일이다. --- p.327~328
그날 밤 나는 가방을 꾸렸다.
다행스럽게도 내겐 돌아갈 비행기 티켓이 있었다.
그리고 더 늦지 않게 써야 할 글이 있었다. --- p.354
우리 근현대사를 통해서 가장 밑바닥에서 희생당했으면서 국가로부터 버림받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통해, 과연 국가라는 것이 무엇인지 묻고 싶었다.
---「작가의 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