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녀, 고향이 옌가? (박정란 <황금동 엘레지>에서)
몸이 욱신거렸다. 달빛 때문이었다. (조헌용 <어머니는 어느 강을 흐르고 있을까>에서)
어, 왜 이래. 지금 재미없다고 자는 거야? 그런 거야? (신승철 <밀레니엄 버그>에서)
그랬더니 매장의 관리를 도와주는 할아버지 두 분이 사갔다구 하더라구. 물론 꼭 그 두 분만 사간 건 아니겠지만. (김선영 <성인소설>에서)
안지언씨. (신경숙 <우물을 들여다보다>에서)
주인을 잃은 아버지의 칼은 조용한 정물처럼 단정하다. (김경원 <칼>에서)
'고드름을 조심하시오!' (이나미 <부활제>에서)
판교 톨게이트에서 버스는, 잠시 멈춘다. (심석구 <두 대의 버스가, 나란히 질주하는>에서)
--- p.28-414
이제 나는 더 이상 문에 기대어 살 재주가 없습니다. 무의 힘을 빌려야 할 것 같습니다. 나는 못질을 거의 하지 않아 깨끗하게 보관되어 있는 쇠망치를 책꽂이에서 찾아내어 가방에 넣었습니다. 김두봉의 큰 수박만한 대두를 때려부술 심산입니다. 나의 살인사건 사실이 신문에 기사로 나오더라도, 제발 아버지가 보지 못하셨으면 좋겠습니다. 아아, 자식의 무를 무섭도록 실감시켜 드려야 하는 그만한 불효는 더 이상 없을 것입니다.
--- p.241
사막을 걷는 꿈이었다.
걸어도 걸어도 눈앞에 보이는 거라곤 거대한 사구뿐, 간신히 하나를 넘어가면 또다른 언덕이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알몸으로 눈부시게 서 있었다. 작열하는 태양과 무한대라고 해도 좋을 사막 위를 나는 비틀거리며 한발 한발 힘겹게 걸어가고 있었다. 사막은 자꾸 내 발목을 붙들었다. 내 몸의 백만분의 일도 안 되는 작은 알갱이들이 필사적으로 나를 잡아당겼다.
꿈에서 깨어났을 때 등은 축축하게 젖어 있었고 얼마쯤 발이 저렸다. 목구멍에 불이 붙은 듯 심한 갈증이 몰려왔다. 머리맡에 놓여 있던 주전자를 통째로 들고 주둥이에 입을 갖다 대었다. 시원한 느낌 - 생리적인 갈증이 해소되었기 때문이라기보다는 이제 사막을 걷지 않아도 된다는 안도감 때문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담배를 찾아 물었다. 한 모금 길게 들이마셨다가 숨을 내쉬었다. 약간 푸른빛을 띤 연기가 창문으로 새어드는 햇살 기둥 속으로 흩어지는 게 선명하게 보였다.
무엇이 내 발목을 당겼던 것일까. 그 작은 모래알들에게 무슨 힘이 있다고.
나는 담배를 입에 문 채 방금 전까지 사막을 걸어가던 꿈을 떠올렸다. 어디로 가는 길이었는지, 왜 하필 그 길을 택했는지, 무엇을 하려고 했었는지, 아무 기억도 나지 않았다. 그중에 하나라도 기억할 수 있다면 그것을 실마리로 나머지를 떠올려볼 수도 있으련만, 머리와 꼬리가 뭉떵 잘려나간 생선토막처럼 흉물스럽다는 느낌만 들었다.
---pp.125~126
더구나 성인소설 사이트에 함께 소설을 올리고 있는 듣도 보도 못한 이름을 가진 작가들, 왜 그 모양인지 모르겠습니다. 소설이 아니라 숫제 포르노그라피를 올리고 있는 것입니다. '아아 찢어져' '더 세게 쑤셔줘 헉헉 아음아음' 하는 이따위 것들 있지 않습니까. 상업 경쟁하느라 이 따위 것들을 주책없이 올려대는 걸 보면 IP사의 대표나 운영자들이 미쳐 있는 게 틀림없습니다. 영화에서도 전도연이 전나체로 나오는 <해피엔드>와 진주희가 전나체로 나오는 <미스코리안의 섹스 내막 비디오>가 다르지 않습니까. 말하자면 <해피엔드> 같은 수준의 소설을 올려야지 <미스코리안의 섹스 내막 비디오>보다도 못한 소설을 올려서야 될 노릇이겠습니까.
결국 그럴 줄 알았습니다. 검찰이 인터넷 성인 사이트 전면 내사에 들어가자 이참에 아예 막을 내려 버렸군요. 돼먹지도 않은 '아아 찢어져' 따위들 때문에 나의 소설이 연재될 공간이 사라져 버렸군요. 그나마 나를 먹고 살게 해줄 PC통신 성인소설 원고료를 앞으로 꽤 오래도록 만져볼 수 없게 된 것 같습니다.
그런데, 도대체 도서출판 두봉의 김두봉 사장은 20만 원 넣어준다고 한 지가 언제인데 왜 1주일이 다 가도록 돈을 넣지 않는 건지 모르겠습니다. 내 소설을 출간해 준 여러 출판사 가운데 그런 이상한 출판사는 정말 처음 봅니다. 이제 나는 더 이상 문(文)에 기대어 살 재주가 없습니다. 무(武)의 힘을 빌려야 할 것 같습니다. 나는 못질을 거의 하지 않아 깨끗하게 보관되어 있는 쇠망치를 책꽂이에서 찾아내어 가방에 넣었습니다. 김두봉의 큰 수박만한 대두(大頭)를 때려부술 심산입니다. 나의 살인 사건 사실이 신문에 기사로 나오더라도, 제발 아버지가 보지 못하셨으면 좋겠습니다. 아아, 자식의 무(武)를 무섭도록 실감시켜 드려야 하는 그만한 불효는 더 이상 없을 것입니다.
--- p.240-24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