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요커들이 이 정체를 알 수 없는 ‘아점’에 마음을 내주는 이유는 무엇일까? 브런치는 일종의 반항일까? 우리는 일정한 식사 시간을 따르도록 강요당해왔다. 하루에 세 번, 정해진 시간에 어느 정도 정해진 범위 안의 음식을 먹는다. 제때에 적당한 음식을 먹지 못하면 문제가 해결될 때까지 아우성 친다. 불안하고 초조해하는 십대와 다름없는 뉴요커에게 브런치는 규칙을 어길 수 있는 기회다. 브런치는 9시에 출근하고 7시에 퇴근하는 평일의 단조로운 틀에서 벗어나는 것을 허락한다. 우리는 변명을 둘러댈 필요 없이 오후 3시에 아침 식사를 하고, 눈치를 볼 것 없이 대낮에 술을 마신다. 그리고 우리에게 주어진 책임에서 잠시 벗어나 소박한 식사를 길고 여유로운 만남의 시간으로 바꾼다. 우리는 “나는 이제 어른이고, 내가 원할 때 원하는 것을 한다.”고 말한다. 그것이 평소보다 조금 늦게 리코타 팬케이크와 로즈메리로 향을 더한 감자튀김을 먹는 것이라면 우리는 기꺼이 그 원하는 일을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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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븐 앨런 : 원단을 고르는 것으로 작업을 시작합니다. 구체적인 실루엣을 머릿속에 그리려면 먼저 원단을 봐야 해요. 저는 늘 이런 식으로 작업하죠. 아주 재미있어요. 원단을 메모판에 꽂아두고, 아이디어를 끌어내고, 원단에 맞는 제품을 디자인합니다. 아이디어에서 출발해 제품을 만드는 디자이너들이 많겠지만 저희는 원단을 먼저 고른 다음 가공 과정을 거쳐 원하는 상태로 만들죠. 바로 여기에서 디자인이 시작됩니다.
시리얼 : 또 다른 무엇에서 영감을 얻으시나요?
스티븐 앨런 : 저는 뉴욕에서 자랐고, 뉴요커의 관점에서 디자인을 바라봅니다. 뉴욕 생활은 제게 영감을 줍니다. 사람은 저마다 자기가 자란 곳에서 영감을 얻는다고 생각합니다. 스스로 인정하건 안 하건 자신이 자란 곳은 DNA처럼 자신의 정체성을 결정합니다. 날마다 지하철을 타고 번화한 거리를 걸으며 도시에서 자란 사람은 자연스럽게 도시 분위기에 젖어들 수밖에 없어요. 어디에 있는 고객이든 저희 제품에 어린 도시 감성을 함께 나눌 수 있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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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무시무시한 지형에도 불구하고 브리스틀은 자전거 도시Cycling City다. 브리스틀은 2008년 영국의 첫 자전거 도시로 선정되었고 400억 원에 달하는 투자를 유치했다. 공용 자전거 대여 시스템, 무상 수리, 자전거 이용자를 위한 탈의실과 샤워장 마련, 저소득 지역 주민을 위한 자전거 지원 등 다양한 자전거 도시 프로젝트가 7년이 지난 지금도 활발히 진행 중이다. 브리스틀은 네덜란드식 자전거 길을 완벽하게 갖춘 영국의 첫 도시가 될 것이다(계획대로라면 160km에 이르는 자전거 길이 브리스틀을 누비게 될 것이다). 2015년은 브리스틀에게 있어 새로운 전환점이 되는 아주 중요한 해다. 브리스틀은 스톡홀름, 함부르크, 비토리아-가스테이스Vitoria-Gasteiz, 낭트Nantes, 코펜하겐의 뒤를 이어 유럽의 여섯 번째 녹색 수도Green Capital로 선정되었다. 브리스틀은 시민들이 자전거에 올라탈 수 있는 환경을 만들고자 약 7천 억 원에 달하는 엄청난 자금을 쏟아붓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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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곳곳의 박물관과 미술관은 귀한 진품 의자를 소장하고 있다. 그러나 특이하게도 모조품을 자랑하는 미술관이 하나 있다. 1963년 사진작가 루이스 몰리Lewis Morley는 벌거벗은 몸으로 아르네 야콥센Arne Jacobson의 3107에 앉아있는 런던 쇼걸 크리스틴 킬러Christine Keeler를 카메라에 담았다. 훗날 그가 사용한 의자가 싸구려 가짜라는 사실이 밝혀졌지만 그 덕에 3107은 더욱 유명해졌다. 런던에 위치한 빅토리아 앤드 앨버트 뮤지엄Victoria and Albert Museum은 몰리가 사용한 모조품 의자를 매입해 이를 보다 만족스러운 ‘오리지널 모조품original fake’이라고 불렀다. 진품 3107과 모조품은 서로에게 영향을 미치며 하나가 되어 의자에 담긴 강인한 힘을 오롯이 드러낸다. 진품이 작가의 의도를 고스란히 품고 있다면 그 사촌격인 모조품은 어딘가 어설프지만 그 나름의 매력을 지닌다. 디자인 역사에 길이 남은 다른 모든 의자와 마찬가지로 진품 3107과 모조품은 첫 주인이 누리지 못한 장수의 기쁨을 만끽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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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브 생 로랑은 동업자 피에르 베르제Pierre Berge와 함께 1966년 처음 모로코를 여행하면서 마조렐 정원에 마음을 빼앗겼다. 그는 “우리는 마티스Matisse의 빛깔과 자연의 색이 어우러진 이 오아시스에 반했다.”라고 회상했다. 그들은 그늘이 드리워진 정원 산책길을 걸으면서 즐겁고 느긋한 시간을 보냈다. ‘순례길’에는 거의 늘 두 사람만 있었다. 1980년 무렵 마조렐 정원은 경영 악화로 호텔에 자리를 내주어야 할 운명에 놓였다. 생 로랑과 베르제는 정원 철거를 막으려고 온갖 노력을 기울이다가 마침내 정원을 사들였고, 그 안에 머물면서 마조렐 못지않게 헌신했다. 마조렐 정원은 이브 생 로랑에게 ‘마르지 않는 영감의 원천’이었으며 정원에 담긴 색과 형태는 그의 작품 속에 녹아들었다. 이브 생 로랑 또한 용설란agave과 선인장이 무성하고 수련이 만발한 연못에서 개구리가 개골개골 울어대는 곳에서 눈을 감지 못했다. 그러나 낭트Nantes 묘지에 아버지와 나란히 잠든 마조렐과 달리 이브 생 로랑의 유골은 마조렐 정원의 장미 꽃밭에 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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