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20대 중반부터 청소년 상담을 시작했는데 그동안 많은 청소년들을 만났다. 그 가운데 전자오락과 도벽에 빠진 초등학교 5학년 남자아이가 기억에 남는다. 아이의 아버지는 만성 알코올중독자였고, 어머니는 장갑 공장에 다니며 어렵게 생계를 꾸려 나갔다. 어머니는 임신 8개월째에야 임신 사실을 알았을 만큼 바쁜 일상을 보내고 있었고, 그것은 아기가 태어난 뒤에도 변함이 없었다. 당장 목구멍이 포도청인지라 어머니는 아이를 집에 가둬 놓고 일을 나가야 했다. 아이는 태어나는 순간부터 부모와는 물론 어느 누구와도 관계를 맺지 못한 채 자랐다. 학교에 입학했으나 또래와 어울리는 방법을 몰랐던 아이는 자기만의 세계에 빠지기 시작했고, 마침내 전자오락의 세계에 빠져들어 중독되기에 이르렀다. 그런데 전자오락을 하려면 돈이 필요했으므로 급기야는 돈을 훔치기 시작했다.
아이는 나와 6개월간 상담을 해서 전자오락과 도벽을 끊을 수 있었지만 그것도 잠시, 머지않아 다시 그 세계에 빠져들었다. 나는 안타까운 마음에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상담 과정을 검토하다가 한 가지 사실을 깨달았다. 그 아이는 나와 상담하는 시간을 통해 태어나서 느껴 본 적 없는 관계의 즐거움을 경험했던 것이다. 상담이 끝나면 더 이상 나를 볼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상담을 계속하기 위해 다시 전자오락을 시작한 것이다. 내가 아이에게 다른 상담 목표가 있으면 계속 상담할 수 있다고 하자, 아이는 반색을 하며 6학년이 되면 성적이 오르는 것을 목표로 삼겠다고 했다.
나는 이 아이를 만나면서 어떤 아이든 계속해서 좌절의 경험을 하고 싶어 하지 않는다는 것과, 자신의 문제를 해결하고 성장하는 과정에서 적극적인 기쁨을 느끼고 싶어 한다는 사실을 알았다. 우리가 하나님 안에서 자라 가며 하나님의 뜻을 알고 그 뜻에 따라 살면서 느끼는 즐거움을 아이들도 경험하고 싶어 하는 것이다.
--- p.19~20
가정사역학자인 갈랜드(Garland)2)는 분노는 두려움을 피하기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어떤 두려움일까?
첫째, 신체적 위협으로부터 생기는 두려움이다. 길을 가는데 갑자기 차가 와서 치일 뻔했을 때, 우리는 신체적으로 위협을 느끼며 본능적으로 운전자에게 화를 내게 된다.
둘째, 힘과 통제에 의한 관계적 위협으로부터 생기는 두려움이다. 대부분의 아이들은 관계적 위협을 통해 두려움을 많이 느낀다. 부모가 모든 일에 간섭하고 통제하려고 들면, 아이들은 자기 자리가 없어질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을 느끼고 화를 내게 된다. 이럴 때, 부모는 아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물어보고 자녀 스스로 자신의 일을 결정할 수 있는 자유를 부여해야 한다.
셋째, 자존감의 위협으로부터 생기는 두려움이다. 자존감이 위협 당하면 수치심을 느끼게 된다. 사람들은 각자 부끄러움을 들키지 않기 위해 애를 쓴다.
--- p.28~29
부모는 사랑과 정성을 다해 자녀를 기르지만, 청소년 자녀들이 가진 분노의 기원은 대부분 부모에서 출발한다. 왜냐하면 부모의 분노가 해결되지 않은 상태로 자녀를 양육하기 때문이다. 분노가 해결되지 않은 부모는 자녀에게 그 분노를 폭발하기 쉽다.
당신은 아이들한테 화내지도 않고 분내지도 않는가? 하지만 나는 앞에서 좌절과 절망, 수치심, 슬픔 등도 분노의 또 다른 표현이라고 했다. 내게 결핍된 것들, 나를 두렵게 하는 것들도 분노의 또 다른 이 름들이다. 아직 해결되지 못한 이런 것들이 아이들에게 영향을 미쳐서 아이를 분노하게 만드는 것이다.
나의 큰아들은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PC방을 제 집처럼 드나들었다. 내가 상담해 온 게임 중독에 빠진 아이들과 다를 바 없었다. 큰 아들은 왜 그렇게 게임을 하러 다녔을까? 엄마인 내가 늘 집에 없었기 때문이다. 나는 우리 아이 둘을 방학을 이용해 출산했다. 출산 뒤에도 쉬지 않고 계속 일을 했다.
어느 날, 같은 동네에 사는 아이 친구의 엄마가 나에게 당신 큰아들이 요즘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아느냐고 물었다. 나는 새벽 6시 반에 나가서 밤 11시에 들어오기 때문에 아이가 어떻게 지내는지 알 길이 없었다. 그녀는 당신 큰아들이 반 친구들을 PC방에 데려가서 돈을 대 주며 게임을 한다고 했다. 그 돈은 모두 내 지갑에서 나왔다. 하지만 나는 너무 바빠서 큰아들이 돈을 가져갔는지도 몰랐다. 게다가 큰아들의 상황을 알고도 직장을 그만두지 않았다.
큰아이가 중학교 2학년이 된 어느 날이었다. 청소년 약물 중독에 관한 자격시험 문제를 내고 집에 들어서는데 학교에서 전화가 왔다. 큰아이가 학교 옥상에서 담배를 피우다 걸렸으니 학교로 와 달라는 것이었다. 그 순간 나는 이 사건이 나와 아이의 문제가 아니라 나와 하나님의 문제라는 사실을 직감했다. “너는 내가 내 아들을 내어 줬는데 뭘 더하려고 그러니? 그걸로 충분하지 않니?” 하는 하나님의 안타까운 음성이 내 마음을 울렸다.
나의 어머니는 전쟁고아였다. 북한에서 피난 오던 중 할아버지는 미국의 폭격을 받고 대동강에서 행방불명이 되었고, 할머니는 무사히 남한까지 피난했으나 어머니가 열세 살 때 돌아가셨다. 그렇게 고아가 된 어머니는 깊은 상실감을 느끼며 살아야 했다. 그래서인지 어머니는 우리 세 남매에게 당신이 빼앗긴 인생을 보상받으려는 듯 끊임없이 “공부 잘해라, 더 많이 배워라” 하고 요구하셨다. 여기에 목회자인 아버지는 반듯하고 바르게 살 것을 요구하셨다.
나는 마흔이 다 되어서야 내가 누구보다 인정 욕구가 강한 사람임을 알았다. 그리고 그것이 어머니로부터 전해진 것이었음을 알았다. 돌아보니 나는 어머니의 한을 풀어 줘야 할 막중한 임무를 띠고 살아왔다. 내가 1등 인생을 위해 발버둥친 것도 내가 원한 게 아니라 어머니의 욕구와 분노가 반영된 것이었다. 그리고 이것은 고스란히 큰아이에게 대물림되었다.
내가 어머니로부터 부여받은 요구를 충족하느라 바쁠 때, 아이는 PC방을 드나들고 어린 나이에 담배를 피우면서 엄마의 따뜻한 품에 대한 욕구 좌절을 채우고 있었던 것이다.
욕구 좌절은 누구나 겪을 수밖에 없지만 우리는 욕구 좌절을 경험할 때 다르게 대처할 수 있다.
--- p.37~39
죄는 무엇인가? 바람을 피우고 게임에 중독되는 것, 당연히 죄의 현상이다. 그렇다면 죄의 본질은 무엇일까? 존 스토트는 그의 책 《제자도》에서 죄란 ‘인생을 나 자신의 힘으로 더 잘살아 보려고 시 도하는 모든 것’이라고 했다.
--- p.41
자녀들의 좌절과 분노가 해결되려면 시간이 걸린다. 하지만 그 시간을 하나님이 함께하신다. 그러므로 염려하여 내 힘으로 서둘러 고치려 들고 가르치려 하지 말자. 내 힘으로 어떻게 해보려는 것 자체가 죄다. 우리는 그저 우리 아이들이 하나님을 만나고 인격적인 관계를 맺기까지 기다려야 한다. 그리고 부모가 먼저 하나님 아버지를 인격적으로 만나며 그분의 사랑으로 재양육되어야 한다.
자녀가 좌절하고 절망하는 시간을 지나갈 때, 부모인 우리가 할 일은 하나님이 채워 주시고 만져 주실 것을 믿고 의지하는 것이다. 그럴 때 부모의 마음은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으로 채워진다. 그러면 부모는 비로소 심령이 가난해져 자녀가 자신 때문에 경험한 상처와 결핍에 대하여 진정 어린 사과를 할 수 있다. 부모가 먼저 하나님 아버지와 인격적 관계를 맺고 그분의 자녀로서 삶을 누릴 수 있을 때, 비로소 자녀가 바라는 것을 채워 줄 수 있는 부모가 되어 간다.
--- p.5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