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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나키스트 이회영과 젊은 그들

아나키스트 이회영과 젊은 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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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01년 05월 31일
쪽수, 무게, 크기 334쪽 | 617g | 크기확인중
ISBN13 9788901033099
ISBN10 89010330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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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1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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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일구국연맹을 이끌던 지도자들이 거주한 상해 뒷골목은 여전히 옛 흔적을 간직하고 있다. 건물은 그대로인데 사람만 바뀌어 세상사의 무상함을 안겨준다. 현재 거주 중인 사람들은 자신의 거처에 독립투사가 살았던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다. 알려 준다 해도 관심 밖이다.우당이 대련으로 떠나기 위해 승선하던 상해탄은 국내외 관광객으로 넘실댄다. 비장한 마음을 주고 받던 독립 투사들의 온기는 그 어느 곳에서도 느낄 수 없고 중국을 찾은 한국 관광객도 물결의 아름다움과 예스러움을 고스란히 간직한 주변 건물을 감상하며 사진 찍기에 분주할 뿐이다. 풍찬노숙하면서 의기를 잃지 않은 항일 투쟁가들의 활동은 이제 역사가 입에서만 노닐고 많은 이에겐 잊혀진 기억에 불과한지도 모를 일이다. '역사를 두려워하는 민족만이 미래가 열려 있다'는 잠언이 새삼 떠오른다.
--- p.92
유자명을 나타키즘에 경도되게 만든 이론은 크로포트킨의 '상호부조론'이었다. 당시 일본 유학생들 사이에서는 치열한 생존경쟁이 생물진화의 동력이라고 주장하는 다윈의 '진화론'이 유행했다. 그러나 진화론을 받아들이는 순간 식민지 출신의 유학생들은 제국주의의 침략논리를 용인해야 한다는 모순에 빠져야 했다.

진화론을 국가 사이에 적용하면 우성인 일본이 열성인 한국을 점령한 것이 당연한 사회법칙이 되기 때문이었다. 한국의 유학생들은 선진 과학이론을 받아들일 수도, 받아들이지 않을 수도 없는 자기 모순에 빠지게 되었다.

상호부조론은 이런 모순에서 벗어날 수 있는 이론이었다. 상호부조론은 경쟁이 아니라 서로 돕는 협과 생물진화의 중요인자라고 주장하고 있었으므로 진화론에 빗댄 침략이론을 무력화시킬 수 있었던 것이다.

유자명은 크로포트킨의 자서전『한 혁명자의 회억』을 읽고 "나의 사상 전반에 큰 영향을 주었으나 나중에는 무정부주의자로 되게 하였다." 라고 만년에 사회주의 국가 중국에서 쓴 회고록에 고백할 정도로 확고한 아나키스트가 되었다.

1919년에 창립된 의열단의 전성기는 1920년대였다. 그리고 오장환이 "1920년대 중국 내 한인 아나키즘운동에서 간과할 수 없는 중요한 것은 대표적인 민족주의적 항일 독립운동 단체였던 의열단에 미친 영향이다."라고 쓴 것처럼 의열단의 활동이 가장 활발했던 1920년대에는 아나키즘 단체가 그 중심에 있었고 그 배경이 유자명에 있었다.
--- p. 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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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회 영 (1867 -1932)
본관 경주. 호는 우당. 대한민국 초대 부통령인 이시형의 중형(仲兄). 독립운동가. 아나키스트. 1962년 건국훈장 독립장 추서. 비밀 독립 결사인 신민회의 창설 멤버였으며, 무장독립운동의 기반인 신흥무관학교를 건립했고, 헤이그 특사 파견, 고종 망명 계획의 주도 인물이었다. 의열단과 다물단의 막후 인물로 나석주 의사의 의거를 지원했으며, 북경 거주 시절 신채호, 김창숙 등과 함께 북경 독립 운동가들의 대부였다. 열정적인 실천가이기도 했던 그는 재중국조선무정부주의자연맹과 남화한인청년연맹을 결성하고 대일본 무장독립운동에 힘썼다.

1. 무너지는 나라를 붙잡으려 - 헤이그 특사 사건의 숨은 주역
헤이그 만국평화회의 개최 사실을 알게 된 이회영은 해외 열강에 을사조약의 부당함을 호소할 수 있는 중요한 기회라고 판단하였다. 그러나 당시 고종은 일제의 엄중한 감시 아래 있었기에 특사 파견을 추진한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이회영은 사돈인 조정구(궁내부 협판, 대원군의 사위)와 궁내의 인맥을 통해 특사 파견을 조심스럽게 추진하였다. 어렵게 고종과의 언로(言路)를 뚫은 이회영이 그의 지우이자 동지인 이상설을 추천하며 헤이그 만국평화회의에 특사를 파견할 것을 주청하였고 흔쾌히 승낙을 얻었다.

이회영은 한국 평론(Korea Review)의 편집장인 헐버트(Homer B hurbert)를 통해 고종의 신임장을 전달받아 당시 간도에 있었던 이상설에게 전달해 헤이그 특사 파견을 가능케 하였다.

2. 가족의 집단 망명과 신흥무관학교 건설
대한제국이 일제에 의해 멸망하자 이회영은 신민회 간부회의의 결정에 따라 해외 독립운동 기지 건설과 군관학교 설치를 위해 온 가족을 이끌고 만주로 이주하였다. 대한제국이 멸망한 후 대다수의 양반들이 일제의 합방공로작과 은사금에 기뻐하고 있을 때 이회영, 이석영, 이시영 등 그의 일가는 국내의 모든 재산을 처분해 독립운동을 위해 만주로 떠났던 것이다.

만주에 정착한 이회영 일가는 먼저 도착해 있던 이동녕, 이상룡 등 신민회원들과 함께 경학사와 신흥무관학교를 설립하였다. 신흥무관학교는 이후 만주지역 무장 독립 운동의 인재를 배출하는 산파 역할을 하였다. (당시 신흥무관학교가 한국 청년들에게 어떤 의미였는지는 님웨일즈의 <아리랑>에서 김산을 통해 잘 알 수 있다.)

실제 독립운동사의 혁혁한 전과라고 할 수 있는 청산리 전투와 봉오동 전투의 주요 일선 지휘관들은 그 대부분이 신흥무관학교 출신이었다. 또한 의열단의 김원봉, 서로군정서의 김학규, 백광운 등이 그들이다.

3. 국내잠입 - 고종망명계획
이회영은 부족한 독립 운동 자금을 모금하기 위해 국내로 잠입하였다. 이 과정에서 이회영은 한국 독립운동사를 바꿀 만한 일을 추진하였다. 바로 고종의 국외 망명 계획이었다. 이는 그가 고종과 남다른 인연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이회영의 아들 이규학은 조정구의 딸인 조계진과 결혼을 한 사이였는데 바로 며느리인 조계진이 대원군의 외손녀이자 고종의 조카였었다.

이회영은 아들 이규학과 조계진의 때늦은 신부례를 이용하여 고종과 망명 계획을 주고받는다. 북경에 고종이 거주할 행궁이 마련되었고 고종망명계획은 모든 것이 순조로워 보였다.

당시 고종의 망명이 성공했다면 독립 운동의 역사는 바뀌었을 것이다. 한일합방의 허구성을 세계에 알리는 성과뿐만 아니라 해외 군주제 국가의 한국 독립지지가 뒤이었을 것이고, 고종이 만약 전백성에게 일본과 싸우라는 개전 조칙을 내리게 되었다면 조선 전역은 일제가 통제할 수 없는 상황으로 치달았을 것이다.

그러나 이런 계획은 고종의 갑작스런 죽음으로 좌절되었다. 일제와 친일파에 의한 독살로 추정되는 고종의 죽음은 이후 3.1 운동의 직접적인 계기가 되었다.

4. 북경의 생활 -- 아나키즘으로의 전향
이회영은 임시정부를 조직하려는 당시의 대세와 다르게 정부 조직을 만드는 것을 반대하였다. 이회영은 정부라는 행정적 조직형태보다 각 독립단체들이 중복과 마찰없이 독립운동을 전개할 수 있도록 조정하는 연합체를 세우려고 했다.

정부라는 조직 형태를 취하면 정부 내의 지위와 권력을 다투는 내분이 끊이지 않을 것이라는 염려도 정부 조직을 반대한 이유 중 하나였다. 그러나 이회영의 이런 제안은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이회영은 이시영, 김규식, 이광, 신채호 등과 함께 상해를 떠나 북경에서 머물게 되었다.

북경 생활 중에 이회영은 많은 한인 독립운동가의 든든한 지원자가 되었다. 자신은 비록 빚지고 굶더라도 따뜻하게 젊은 독립 운동가들을 후원했다. 이런 이회영의 인품에 끌려 많은 독립운동가들이 그와 교류를 했고 그 과정에 이회영은 신채호와 젊은 아나키스트들인 유자명, 이정규, 이을규 등을 만나 아나키즘에 접하게 된다.

볼세비키 러시아의 독재 정치와 민족주의 세력의 외교독립 노선 등에 실망한 그는 새로운 대안으로 자유연합주의의 아나키즘을 받아들이게 되었다. 이후 그는 당시 아나키즘적인 색채가 짙었던 의열단과 아나키즘 행동조직인 다물단을 막후 지원했으며, 신채호, 김창숙 등과 함께 북경 독립 운동의 실질적인 중심으로 활동을 하였다.

5. 누구도 억압하지 않고 누구에게도 억압당하지 않으리라
의열단과 다물단의 직접 행동의 여파는 이회영의 신변을 위태롭게 하였다. 배후로 지목받은 그는 나석주 의사 의거 이후 천진으로, 그리고 상해로 일제의 추적을 피해 다녀야 했다.

이러한 과정에서도 그의 열정은 식지 않았는데 그 대표적인 예가 시야 김종진을 아나키스트로 전향시킨 것이었다. (백야 김좌진의 조카인 김종진은 이후 만주에서 김좌진과 함께 한족총련을 결성해 활발한 독립 운동을 펴다 공산당에 의해 피살되었다.)

남화한인청년연맹 등을 결성하여 활발한 항일 운동을 펼치던 과정에 이회영은 큰 결심을 한다. 만주로 가 동포들을 조직해 무장독립운동을 추진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1932년 예순이 넘은 나이를 무릅쓰고 그는 만주로 향하였다.

그러나 밀정의 고발로 대련에서 체포되어 의문의 죽음을 당한다. 향년 67세, 억압과 압제가 없고 우리 민족이 서로 돕고 자유로울 수 있는 나라를 꿈꾸었던 그는 많은 동지들의 눈물을 뒤로 한 채 이역만리에서 압제자의 손에 의해 숨을 거두었다.
오늘 되살아나는 한 자유인의 초상
“역사를 연구하다 보면 이민 고인이 된 사람 중 유독 마음에 끌리는 사람이 있습니다. 필자의 경우 우당 이회영 선생이 그런 인물이었습니다. 조선 제일이란 뜻의 삼한갑족 출신으로 모든 것을 버리고 조국을 떠나 이국에서 ‘딸의 옷’까지 팔아먹을 정도로 곤궁한 삶 속에서 조국의 광복과 인간의 해방을 위해 모든 것을 바친 그의 삶이 주는 감동은 아주 특별했습니다.

늙은 노혁명가였지만 혈맥이 꿈틀대는 청년 정신으로 살았던 그의 모습과 묵란을 치고, 대금을 부는 예악을 갖춘 선비의 풍모, 고국을 떠나온 어린 청년을(상록수의 심훈) 살피는 자애로운 어른의 모습에서 저는 드물게 흠없는 한 인물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우당 이회영은 역사를 앞서간 선각자이며, 조국 광복과 혁명에 모든 것을 바친 순교자이며, 모든 압제에 저항하는 진정한 자유인이었습니다.

그런 그를 만나고 세상에 소개할 수 있다는 것은 역사 연구가 주는 아주 큰 깨달음이며 희열이었습니다. 이기주의가 만연하고 좌와 우의 극단적 이념 대립을 거친 오늘의 우리의 현실에서 우당 이회영의 삶을 만났다는 것은 그래서 더욱 의미가 있습니다. 노블레스 오블리제의 정신, 좌우 이념을 넘어서려는 아나키즘의 모습....

또한 우당의 삶을 따라 국내와 중국을 답사하며 발견한 사실이지만 한국 독립운동사에서 우당이 잊혀져 있다는 것이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헤이그 특사 파견, 의열단, 신흥무관학교 등 독립 운동의 중요한 업적 중에 그의 이름이 빠진 곳은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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