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SSI STORY “고향 로사리오는 축구 선수의 컨베이어 벨트였다”
로사리오에 산다면 축구를 사랑하며 자라는 것이 당연한 일이 된다. 로사리오에서는 축구가 일상이며, 축구가 지역 사회에 특별한 의미를 지닌다. 그렇다면 일찌감치 축구에 대한 상식과 기술, 목표의식이 자연스럽게 형성될 수밖에 없다. 축구를 잘하는 것이 이 지역에서는 칭찬받는 덕목으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메시의 집에서 200여 미터가량 떨어진 곳에 거칠기는 하지만 잔디가 있어서 축구를 할 수 있는 공터가 있었다. 메시의 형제와 사촌, 동네 친구들이 거리에서 하는 놀이는 거의 대부분 축구였다. 메시가 처음 유소년 축구 지도자의 눈에 띈 그란돌리(Grandoli) 축구 클럽도 할머니의 손을 잡고 찾아갈 수 있을 정도로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 집에서 15블록밖에 떨어지지 않은 위치에 있던 경기장은 걸어서 가기 충분했다. 쉽게 닿을 수 있는 곳에 축구 선수가 되기 위한 ‘시설’이 준비되어 있었다.
--- p.26
MESSI THEORY “환경이 뇌를 지배한다”
재능을 결정하는 요소는 선천적으로 이어받은 유전자와 후천적 계발을 통한 능력 계발에 있다. 후천적 능력 계발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유아기에 자란 지역의 환경이다. 말수가 많지 않은 편인 메시는 한 인터뷰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기억은 내 고향, 이웃 그리고 내가 태어난 곳이다”라며 출생지에 대한 애착을 드러냈다. 메시가 자란 환경이 그의 인생을 지배했다.
피츠버그대학교와 카네기멜론대학교의 연구진은 지능지수(IQ, intelligence Quotient)에 대한 연구에서 유전자가 IQ에 미치는 영향력이 48퍼센트에 불과하다고 발표했다. 이 연구에 대한 의견은 분분하지만, 대체적으로 유전적으로 이어받는 부분과 후천적으로 계발되는 부분이 5 대 5 정도로 동일한 정도의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 정설이다. 즉, 태내와 유아기에 좋은 교육 환경을 제공할수록 IQ가 높아진다는 이야기다.
--- p.30
실전 적용 TIP “축구장이 많은 도시에서 키워라”
축구를 생활화하기 위한 개인의 노력에는 한계가 있다. 당장 다이어트를 위해 헬스를 등록하거나 요가, 수영, 테니스 등의 강습에 다니더라도 집과의 거리가 어느 정도 가까운가에 따라 출석 빈도는 상당히 달라진다. 마찬가지로 메시와 같은 축구 천재가 되기 위해서는 먼저 집에서 걸어갈 수 있는 거리에 자유롭게 축구를 할 수 있는 환경이 갖춰져 있어야 한다. (…) 2002 한일월드컵 개최를 통해 생겨난 전국 각지의 축구전용구장(포항, 광양) 및 종합운동장에는 주경기장 외에도 훈련을 위한 보조 경기장과 시민들이 이용할 수 있는 체육 시설이 건립되어 있다. 월드컵경기장(서울 상암, 수원, 인천, 대전, 전주, 광주, 대구, 울산, 부산, 제주 서귀포)뿐 아니라 K리그 클래식(1부 리그), 챌린지(2부 리그), 내셔널리그(실업 축구), 챌린저스리그(대한축구협회 주관 아마추어 리그) 등의 팀이 연고를 맺고 있는 지역은 체육 시설 이용과 더불어 주말마다 국내 최고 수준에 있는 축구 선수들의 경기를 지켜볼 수 있고, 해당 팀들이 운영하는 유소년 축구팀에 들어가 배울 수 있는 기회도 있다.
이 모든 인프라는 사는 곳에서 쉽게 닿을 수 있어야 이용할 수 있다. 앞에서 설명한 모든 조건에 부합하는 곳에 산다면 아이는 언제든지 축구를 쉽게 접할 수 있다. ‘메시 육성’의 첫 걸음은 유아기에 축구를 하기 위한 최적의 입지조건에 집을 얻는 것이다.
--- p.34
KEYWORD M “맹모삼천지교와 모차르트”
모차르트는 1756년 1월 27일 잘츠부르크에서 태어났다. 잘츠부르크와 그 주변 지역은 약 1만 7천 명의 인구가 거주한 큰 도시였다. 잘츠부르크는 성 루프레히트 대성당 관할의 바로크교회들이 많은 동화 같은 분위기의 도시였다. 지금도 그렇지만, 수많은 여행객들의 감탄을 자아내는 풍광으로도 유명했다.
신성로마제국의 통치를 받던 잘츠부르크는 대주교들이 지방자치 통치자로 있었다. 대주교는 재정과 교육, 교회와 국가의 관계를 지배한, 현재의 대통령과 같다. 더불어 지역 주민이 즐기는 모든 음악과 연극, 축제를 후원한 것도 이들의 일이었다. 100개가 넘는 교회와 성, 궁전에서 음악을 즐긴 잘츠브루크는 교회와 도시를 위한 음악기관이 전문적으로 설립된 도시였다. 더불어 모차르트가 태어난 해는 ‘7년 전쟁’이 종식되면서 사회적 지배계급과 피지배계급의 권력 구조가 무너지기 시작한 때였다. 지방 도시이긴 했으나 선진 유럽 도시였던 잘츠부르크는 1764년에 대주교 지기스문트 폰 슈라텐바흐의 지시로 관 내 모든 피지배자들의 삶을 변화시킨 개혁을 단행했다. 공공 진료 기관에 거금을 기부했고, 사법 제도 개혁, 시민 결혼 실시, 보헤미아의 농노제 철폐, 종교적 관용의 장려 등 많은 면에서 열린 사회가 되었다. 민주주의에 이른 것은 아니지만 귀족이 아닌 이들에게 혜택을 주었고, 새롭게 귀족이 될 수 있는 문도 열어주었다. 당시 악사들은 궁정에 속한 하인의 위치에 있었기 때문에, 이러한 사회 분위기는 모차르트가 음악적 재능을 통해 능력을 인정받을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주었다.
--- p.3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