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혼 중에서 가장 악폐적인 것이 민며느리제이다. 민며느리제는 조혼의 또 다른 특이형태로서 농업노동사회에 있는 일반적 현상으로 노동력을 구하기 위하여 또는 가난 극복의 방법으로 여아를 매매하여 생계하고자 한 데서 조혼이 행해졌던 것이다. 민며느리들은 너무 어려 판단력이 없고 가난한 하층민이었으므로 필요한 영양공급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신체와 지능 발육에 영양이 충분히 공급되어야 함에도 항상 굶주렸고, 시부모들도 영양상태를 고려하지 않았다. 영양상태가 나쁜 민며느기는 허약했고, 자기 주장을 할 능력이 없는 어린 나이로 굶주림의 학대 속에서도 며느리로서의 인내와 자제력을 요구받았다.
(……)
그 폐해의 사례로 부인의 정조를 의심하여 고문처럼 私刑을 가한 일이 있었다. 14세에 민며느리로 가서 18세에 성혼하였으나 가정불화로 삼촌 집에 가 있던 부인을 남편이 시모와 함께 새끼로 수족을 결박하고 인두로 화침질을 하여 전신에 50여 군데ㅐ에 화상을 입어 병원에 입원하였으나 생명이 위독한 지경에 이르렀다. 이런 학대의 이유가 여성에게 정부가 있음을 의심하고 자백을 받아내기 위함이었다.
다음은 빈곤이 원인이 된 시모의 학대 사례이다. 7살 밖에 안된 민며느리가 아침 7시에 오줌 누고 돌아오다가 김치를 꺼내어 먹었는데 장래 일가의 주부 될 계집애가 철없이 더러운 손을 김치 속에 넣어 꺼내먹는 못된 짓을 했다고 그 어린것을 집어들어 마루 아래로 던졌다. 결국 커다란 섬돌 위에 떨어져 뇌일혈로 죽었다는 끔찍한 사례가 있다.
--- pp.361-362
아버지나 어머니 살해 요소 등 일상적이거나 '사람들이 해서는 안되는 금기사항의 내용'의 얘기는 신화의 세계로 경험한다. 신화 속의 원형적인 욕구, 원초적 모습이다. 아들에 의한 아버지 살해 화소는 시공을 초월해 문제로 화두로 변명으로 많은 인간들의 노력을 쌓아왔다. 우리의 이 바보형제 이야기 어머니 살해 화소는 '바보 형제 컴플렉스'로 명명하여 그 변명을, 혹은 그 옹호나 그에 대한 비판이나 그 욕구에 대한 해소를 쌓아올려야 되지 않을까? 모성에 대한 적대감인가, 남성들의 여성에의 배제를 위한 동맹맺기의 재맹약식인가? 상황이 자신의 아버지인줄 모르고 죽이게 했다는 것이나 (영악하며 남성중심적 유대감과 의식이 깨어 있는 남성이 가까이서 멀리서 지켜보는 가운데), 바보로서 어머니를 죽이는 일이 무엇인지 어머니 자체도 자기 어머니인 줄은 더더욱 '모르고' 살인했다는 것은 같다. 아들에 의해서 저질러진 것도 같다. 단지 아버지냐 어머니냐이다. 어머니 살해에는 바보로 설정했기에 딜레마나 후회도 회한도 없는 살인이다. 남성들의 입장에선 '위대한' 여성거부로서의 살인이다.
남성들의 조직력과 유대는 농경의 시작과 더불어 남성이 여성의 생산 재생산 노동을 통제하는 제도를 수립하는 기반이 되었다. 이 '바보형제 모살해' 이야기에서도 남성간의 조직과 강한 결속이 보인다. 그들은 그 조직과 유대 내에서 체계적으로 역할을 분담하고 수행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각자의 능력이나 특질에 맞는 역할주기의 기획 감독자는 숨어서 지켜본다. 자신들의 의도대로 일이 수행되는지를 살펴본 것이다. 남성유대로 형성한 가부장제는 여성억압을 위해 몇 가지 기반을 다진 것에 의해 유지되고 있다. 생물학적, 계급적, 경제적, 폭력적 기반, 신화적 인류학적, 정치적 교육적 기반을 바탕으로 여성무력화를 기질, 역할, 지위를 통해 이루어 가고 있는 것이다.
--- pp.632-633
나혜석 등 11명이 모인 가운데 김마리아는 어제 남학생들이 먼저 독립운동을 시작했는데 여자쪽은 어떻게 하면 좋겠는가라는 의견을 제시하였다. 이에 대하여 황애시덕은 다음과 같이 3가지 안을 제시하였다. 첫째, 부인단체를 조직하여 조선의 독립운동을 전개할 것. 둘째, 남자단체와 여자단체와의 사이에 연락을 취할 것. 셋째, 남자단체에서 활동할 수 없을 때에는 여자단체가 그것을 대신하여 운동할 것 등이었다.
이에 대하여 나혜석은 첫째안과 둘째안에 찬동을 표하였다. 이어 활동 자금 문제가 논의되었고 나혜석 등은 자금은 개개인이 마련하자고 결의하였다. 아울러 김마리아의 제안으로 이 단체를 영구히 지속화시키기 위하여 회장을 선출하자고 제의하였다. 그리고 향후계획은 3월 4일 다시 모여서 구체적으로 논의하기로 하고 헤어졌다. 한편 그들은 이날 모임에서 각 학교가 휴교할 것, 3월 5일 남학생들의 독립운동에 가담할 것 등을 결의하는 한편 박인덕, 신준려 등이 학생들을 동원하기로 하였다.
--- p.181
… 남성은 생물학적인 우연의 결과이다. Y(남성) 인자는 불완전한 X(여성) 인자로서 불완전한 염색채 모습을 하고 있다. 달리 말하면 남성은 불완전한 여성이며, 유전자 단계에서 퇴화된 걸어 다니는 불구이다. 남성이 된다는 것은 결함을 가지며 정서적으로 제한되어 있다는 것이므로 남성이라는 것은 결핍증이며 남성은 감정의 불구자이다.… …
이미 지적한 바 있지만, 위 인용문의 주장은 그리스의 철학자인 아리스토텔레스의 생물학을 뒤집어 설명한 내용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여성은 남성의 불구형태이다'라고 단언하였다. 이 지적 전통에 대한 반발로 남성이야말로 여성의 불구형태라고 응수하는 심정을 이해하지 못할 바는 아니다. 그리고 여성의 특성인 모성이 새로운 세계의 중심 도덕률이 되어야 한다는 주장도 어찌 보면 그럴듯해 보이지만 이 역시 여성 우월주의를 함축하고 있다. 남성성으로 대표되는 공격성 합리성을 은연중에 하위에 놓는 구도인 것이다.
사실상 남성의 특성으로 대변되는 공격성은 강간의 문제와 연관되어 많은 비난의 대상이 되는데, 이 남성성도 각 시대가 요구하는 도덕률로서 시기마다 조금씩 변해왔음을 볼 수 있다. 유럽에서 민족주의가 대두된 계몽주의 시기에 남성다움은 '성적 절제였고 결혼과 가족의 신성함을 지키는 것'이었다. 19세기 초반 남성성은 성적 욕망으로부터 자유, 국가 사회의 지도자로서 관능성을 승화시키는 것이었다. 일차 세계대전 이후에 남성성의 본보기는 강하고, 엄격하고, 의지에 찬 남성이 찬양되었다. 아마도 남성의 공격성은 전쟁을 거치면서 더욱 강화된 듯이 보인다.
--- pp.655-65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