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번은 자동차 사고 현장을 취재하러나갔다가 운전석에 꼼짝없이 갇힌 채 죽어가는 여인을 보았다. 나는 그녀 곁에 무릎을 꿇고 내 스웨터를 그녀의 어깨에 둘러주며 그녀가 마지막 숨을 쉬는 동안 이야기를 건넸다. '당신은 정말 소중한 사람이랍니다. 당신은 혼자가 아니에요. 당신을 사랑해요. 당신이 걱정돼요. 당신과 이렇게 함께 있어서 정말 영광이에요.' 내가 한 행동들이 죽어 가는 사람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는 모르지만, 나는 그들의 마지막 여행길을 편안하게 해 주고 싶었다. 엄마에게 결코 하지 못했던 작별의 말을 하고 싶었다. 누군가 외로움과 무관심 속에서 세상을 떠난다는 것은 생각만 해도 가슴이 메어왔다.
--- p.233
이 세상 어딘가에는 네가 사람 대접을 받으며 살 만한 곳이 있단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길 인생은 만 가지 기쁨과 만 가지 슬픔으로 이루어져 있고. 그것들 하나 하나가 결국은 우리를 평안함으로 이끄는 디딤돌이 된다고 하셨어. 세상에 진정한 끝이란 없는 거야. 사람 목숨마저도 그래. 밤은 낮이 되고. 어둠은 빛이 되고, 죽으면 다시 태어나듯 세상사는 그렇게 돌고 도는 거란다.
--- p.14
외삼촌은 엄마의 머리채를 휘어잡아 일으켜 세우더니 외숙모에게 엄마의 손과 발을 묶으라고 했다. 엄마는 저항하지 않고 계속 눈을 감은 채 나지막이 자비로운 부처님을 향해 불경을 외웠다. 새하얀 한복은 더러워졌지만 그녀의 가슴위로 매어진 푸른색 옷고름은 완벽하게 비대칭을 이루며 조금도 흐트러지지 않았다.
--- p.19
손톱을 살 속에 박는 행위는 마음의 고통을 덜기 위해 내가 고안해 낸 방법 중 하나였고, 그 후 습관처럼 굳어졌다. 그로 인한 신체적 고통이나 상처에서 흘러내리는 뜨거운 핏방울은 내게 아무런 위안도 되지 않았지만, 최소한 그럼으로써 생각을 다른 데로 돌릴 수 는 있었다.
--- p.90
나는 늘 엄마가 돌아가시던 밤의 꿈을 꾸었다. 하지만 나이를 먹어감에 따라 꿈도 바뀌어 가고 이제는 그 꿈에서 위안을 얻을 정도가 되었다.
꿈 속에서 나는 그 방으로 들어가 밧줄을 자르고 엄마의 목에 걸려있는 밧줄을 풀어 엄마를 품에 안았다. 그리고 파랗게 질린 그 가여운 얼굴에 예전과 같은 아름다운 홍조가 다시 돌아올 때까지 키스를 했다. 옛날에 엄마가 그랬듯이 이제는 내가 엄마를 껴안고 앞뒤로 흔들었다. 그리고는 엄마의 부릅뜬 눈을 감기고 자장가를 불러 주었다.
엄마가 너무도 그리웠다.
그 꿈에서 어른이 된 나는 방으로 들어가 온몸이 피투성이가 된 채 겁에 질려 있는 아이에게 다가갔다. 그리고는 그 아이가 내 가슴 속으로 녹아들 때까지 꼭 껴안았다. 이제 다시는 외롭지 않을 거라고 나는 아이에게 말해 주었다. 엄마가 죽은 것이 네 잘못이 아니라는 말도 해 주었다.
삶이란 거대하고 다양한 빛깔의 모자이크를 이루는 한 파편에 불과했다. 그것들은 꿈의 덧없는 그림자와 같았다. 나는 창문 밖으로 세상을 바라보았다. 우리의 인생이란 이 아침에 나를 휘감는 짙은 안개와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진짜로 존재하는 듯이 보이며 모양과 형체도 있지만 해가 뜨면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렸다.
우리의 인생도 그와 같을지 몰랐다. 우리의 고통도 그와 같을지 몰랐다. 두려움과 희망, 꿈, 슬픔, 이 모든 것들은 안개처럼 녹아 버리고 남는 것은 우리의 가장 깊은 자아, 혹은 영혼, 혹은 그 무엇이든 간에 그것의 빛과 온기뿐이었다.
나는 이러한 삶 속에서 진정한 사랑을 원했다. 진정한 충만감과 평화를 원했다. 하지만 어쩌면 그러한 것들을 찾는 유일한 방법은 이 삶이 우리의 현실이라는 믿음을 버리는 것일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 pp.279-280
엄마에게
입술이 닳도록 나는 당신의 얼굴에 입맞춥니다.
열 번이고, 백 번이고, 천 번이고
눈꺼풀을 감기우고 머리칼을 부드럽게 어루만집니다.
고운 두 손은 가지런히 포개어 놓습니다.
나비처럼 연약한 날개로
세상을 에워싼 벽을 향해 끊임없이 날개짓하던 당신은
이제 저 드넓은 하늘 아래서 마음껏 팔랑이며 날아가고 있습니다.
나는 눈 먼 바람에 대고 내가 아는 단 하나의 진실을 속삭일 겁니다.
사랑해요, 사랑해요, 사랑해요.
--- p.5
엄마에게
입술이 닳도록 나는 당신의 얼굴에 입맞춥니다.
열 번이고, 백 번이고, 천 번이고
눈꺼풀을 감기우고 머리칼을 부드럽게 어루만집니다.
고운 두 손은 가지런히 포개어 놓습니다.
나비처럼 연약한 날개로
세상을 에워싼 벽을 향해 끊임없이 날개짓하던 당신은
이제 저 드넓은 하늘 아래서 마음껏 팔랑이며 날아가고 있습니다.
나는 눈 먼 바람에 대고 내가 아는 단 하나의 진실을 속삭일 겁니다.
사랑해요, 사랑해요, 사랑해요.
--- p.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