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 시골에서 자연을 벗하며 동물에 대한 관심과 애정을 키운 한 소년이 세계적인 동물학자로 성장하는 과정은, 유머 넘치는 문체 때문에 가볍게 보아 넘기기 쉽지만, 그 진솔한 묘사와 더불어 실로 감동적이다. 파란만장한 인생길 굽이굽이에서 만나는 사람과 동물들. 옥스퍼드의 상아탑 연구실에서 뛰쳐나와 텔레비전 해설자로 변신한 저자에게 시도 때도 없이 닥치는 온갖 해프닝들. 비록 동물원 우리 속에 갇혀 있지만, 동물들의 세계에서 벌어지는 신비롭고 흥미로운 장면들은 인간의 삶을 방불케 한다. 꿀벌들의 구애작전, 가시고기의 동성애, 두꺼비 군단의 엑소더스, 거미들의 스트립쇼, 얼룩무늬 되새의 삼각관계, 피카소도 감탄한 침팬지의 추상미술…….
모리스의 자서전이 재미와 감동과 교양을 두루 갖추고 있는 것은, 그가 몸소 체험하고 목격한 에피소드와 사례들을 풍부하고 생생하게 보여줄 뿐만 아니라, 그의 관찰과 문체 속에 동물에 대한 그의 타고난 애정이 깃들여 있기 때문이다. 또한 이 책은 두꺼비?곤충?물고기?새?포유동물로 연구 대상을 바꾸어간 끝에 마침내 인간에 대한 연구로 나아가 독창적 고지에 다다른 데스먼드 모리스의 학문적 탐험여행을 보여준다.
--- 옮긴이의 글
(대가들의 뒤에는 늘 좋은 어머니가 있었다)
어린 시절에 나는 항상 동물에 매혹되었고, 나의 애완동물 사육 활동은 점점 도를 지나치게 되었다. 다행히 나의 엉뚱하고 기발한 짓에 대한 어머니의 인내심은 끝이 없었다. 너무나 많은 부모들이 아들의 변덕스러운 취미활동을 억제하려고 애쓴다. 그러나 나는 행운아였다. 스윈던에 있는 우리 집과 정원과 차고는 내가 수집한 야생동물들로 넘쳐날 지경이었다. 대부분의 어머니들은 절망에 빠졌을 테지만, 우리 어머니는 동물에 매혹된 나를 느긋하고 호의적인 눈으로 보아주셨다.
- 1장 자연과의 첫 만남 중에서(13면)
(내성적인 성격의 아이가 익살꾼으로)
교장 선생님은 나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데스먼드 모리스는 조용하고 약간 수줍음을 타며 겸손한 아이입니다……. 데스먼드가 자신의 능력에 좀더 자신감을 가진다면 훨씬 잘 해낼 것입니다.” 사실 나는 나 자신에 대한 신뢰가 부족한 게 아니라(내 자아는 완전했다), 웬일인지 지나치게 나 혼자만의 세계에 틀어박히게 된 것뿐이었다. 내가 수줍었기 때문에 동물들을 동무로 삼으려 했는지, 아니면 동물들하고만 많은 시간을 보내며 즐기다 보니까 어느새 내성적인 성격이 되어버렸는지, 그건 나도 잘 알 수 없다.
- 2장 구멍 속의 두꺼비 중에서(22면)
나는 마치 나만의 세계에 대한 내적 욕망을 말살하려고 결심한 것처럼 내성적 성격에 대한 과잉 보상으로 고통스러울 만큼 외향적이 되곤 했다. 나는 익살꾼이 되었다. 예를 들어 박쥐에 대한 강연을 할 때는 교탁 위에 올라가 영국 박쥐의 온갖 자세와 동작을 흉내 내곤 했다.
- 2장 구멍 속의 두꺼비 중에서(25면)
내 속에 있는 ‘엉터리 배우’와 ‘진지한 학자’는 아직도 서로 싸우며 번갈아 우위를 차지하고 있다. 내성적인 학자적 요소는 끊임없이 탐구와 진지한 연구 쪽으로 나를 몰아간다. 그러면 엉터리 배우적 요소가 반격에 나서고, 나는 다시 대중 전달자와 익살꾼의 역할로 돌아간다. 어떤 면에서 나는 이 투쟁을 영원히 해결하고 싶지 않다. 이들 두 요소의 결합은 오랫동안 나에게 큰 보상을 주어왔기 때문이다. 학자적 요소가 없다면 새롭고 창의적인 이야깃거리가 생길 리 없고, 배우적 요소가 없다면 사람들이 이해할 수 있도록 쉽게 이야기할 수 없다.
--- 2장 구멍 속의 두꺼비 중에서(26면)
(진지하지만 무겁지 않았고, 발랄하지만 천박하지 않았다)
성공적인 학자는 실제로 지성적인 어린아이에 불과하며, 연구는 일종의 성인 유희라는 걸 나는 깨닫기 시작했다. 장난기와 호기심이 연구에서 사라지면 그 순간 연구는 죽어버린다. 점점 더 성숙한 어린아이가 되는 것이 나의 목표였고, 이것은 근본적으로 과학뿐 아니라 예술에도 똑같이 적용되는 것처럼 여겨졌다. 예술과 과학에 있어서 놀이는 서로 다른 규칙에 따라 진행되지만, 장난기는 양쪽에 다 존재했다.
---- 3장 래모나를 만나다 중에서(60면)
(연구하는 과학자와 동물학을 대중에게 전달하는 자 사이의 갈등)
내 성격의 두 측면-연구하는 과학자와 일반에게 널리 보급하는 전달자-사이의 균형은 점점 뒤집혀갔다. (……) ‘동물원 시간’을 보다 학구적인 것으로 만들어 거기에서 만족을 얻을 수는 없었기 때문에 나는 정반대로 돌진해간 것이다. 나는 더욱 ‘엉터리 배우’와 비슷해졌다. 마치 내가 나 자신에게 이렇게 말하고 있는 듯했다. 좋아. 우리가 더 진지해질 수 없다면, 즐기기나 하자.
--- 5장 동물들의 반란 중에서(213~214면)
(《털없는 원숭이》는 어떻게 탄생했나?)
동물학자의 눈으로, 나 자신이 속해 있는 인간이라는 동물을 더 오래, 더 깊이 바라보아야만 했다. 나는 다른 동물들에 관한 동물행동학적 연구에서 얻은 통찰력을 가지고 독자적인 방향에서 그 과제에 접근하고 있었기 때문에, 우리에게 너무나 친숙한 인간의 행동들을 전혀 새롭고 생소한 견지에서 바라볼 수 있다고 확신했다. 그 책은 하나의 종을 다른 종과 그럴듯하게 비교하는 내용이 아니라, 인간의 행동에 대한 관찰 결과를 약간 다른 방향에서 다루게 될 터였다.
--- 9장 모스크바로 떠난 밀사 중에서(417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