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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몰랐던 또 하나의 유럽 스칸디나비아

우리가 몰랐던 또 하나의 유럽 스칸디나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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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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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일 2006년 08월 25일
쪽수, 무게, 크기 239쪽 | 482g | 크기확인중
ISBN13 9788959890392
ISBN10 89598903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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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관련자료 보이기/감추기

저자 : 토니 그리피스
1940년 시그널 사우스 오스트레일리아에서 태어남. 아델라이데 대학에서 석사학위, 캠브리지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수여. 동 대학에서 부교수를 역임. 오스트레일리아와 스칸디나비아의 역사를 강의. 현재 플린더즈대학의 ‘스칸디나비아 학문을 위한 센터’ 소장.

저서:『Contemporary Australia』『Irish Culture and Nationalism 1750-1950』『Scandinavia』『Beautiful Life』
역자 : 차혁
서강대학교 대학원 사회학과 정치사회학 및 사회사(근현대경제사) 전공. 한국사회과학연구소 연구원 역임. 번역서 『페레스트로이카를 넘어서 Beyond Perestroika』(1991) 외에 기타 정치평론, 역사자료, 논문 다수 번역. 연구 프로젝트 번역 분야 다수 참여. 현재 프리랜서 번역가로 활동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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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칸디나비아의 기원과 역사
스칸디나비아인들의 기원은 이처럼 시간의 비밀에 묻혀 있기 때문에 항상 논쟁과 분쟁을 일으켜 왔다. 언어학적으로 보았을 때 덴마크, 스웨덴, 노르웨이는 아주 친밀하게 연결되어 있지만, 핀란드는 완전히 분리되어 있다. 핀란드인은 비슷한 성향, 가치관, 정책 등으로 스칸디나비아인들로 구분되며 다른 북유럽 민족들과의 의사소통도 매우 힘들다. 실제로 핀란드어의 문법과 단어는 익히기 어려우며 핀 족이 아니라면 핀란드어에 능숙하기가 매우 힘들다.
스칸디나비아인들은 인종에 있어서는 그 순수성을 유지하고 있다. 스칸디나비아는 역사상 인종의 도가니였던 적이 없다. 심지어 최근 핀란드를 제외한 북유럽 국가들의 이민정책 자유화와 망명자 수용에도 불구하고 스칸디나비아인의 혈통은 유지되고 있다. 영토는 광활했지만 살기 힘든 기후 조건과 지리적 고립 상태는 북으로의 이주를 어렵게 만들었고, 이러한 이유로 스칸디나비아는 내부적으로 인종의 순수성을 유지할 수 있었다.
스칸디나비아는 그럴듯한 역사를 갖고 있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결코 패배한 역사는 아니다. 스칸디나비아는 바이킹 시대의 눈부신 활약으로 고립의 장벽을 허물기 전에는 유럽 다른 나라와의 교역은 거의 없었다. 더군다나 바이킹 시대의 피해자들은 스칸디나비아인들에게 힘든 시기와 굴욕의 역사를 상기시킨다. 바이킹 정복의 건설적인 면을 중시하는 몇몇 학자들의 연구에도 불구하고 최근의 아일랜드 더블린의 우드 키(Wood Quay) 지방에서의 고고학 발굴 자료에서 볼 수 있듯이 바이킹의 잔인한 행적들이 여기저기서 발견된다. 이외에도 아일랜드 종교인들과 프랑스의 시인들은 바이킹의 파괴적인 공포를 증언하고 있다.
- 본문 14p


슐레스비히­홀스타인 분쟁
덴마크의 슐레스비히?홀스타인 영유권 상실은 두 단계를 거쳐 진행되었다. 첫 번째 위기는 1848년 독일의 혁명과 더불어 시작되었다. 독일 민족주의자들은 독일 북부 국경 지역의 영유권 확보를 요구했다. 국경 지역의 전체 면적은 약 6천 제곱마일에 달했으며, 슐레스비히를 비롯해 키일, 플렌스부르크 등 전략적으로 중요한 도시들이 포함되어 있었다. 북부 국경 지역은 중앙을 관통하는 아이더 강에 의해 슐레스비히와 홀스타인으로 나뉘어졌다. 1846년 7월 8일, 크리스티안 8세는 영유권 분쟁의 두 주역인 덴마크와 독일 모두에게 보내는 공개서한을 발표했다. 서한에서 그는 슐레스비히?홀스타인 통합을 재확인하고, 아울러 슐레스비히가 변함없는 덴마크 영토임을 선포했다. 1848년 1월, 크리스티안 8세가 사망하고 프레데릭 7세가 즉위했다. 프레데릭 7세는 슐레스비히 주민들에게 슐레스비히 공국을 덴마크에 통합한다는 내용의 법안(1849년 자유헌법)을 공포했다. 한편 두 공국에 있는 대다수 독일인들은 ‘슐레스비히?홀스타인주의’를 표방하면서, 덴마크로부터의 독립을 요구했다. 그들은 또한 두 공국을 합쳐 독일 연방에 통합시킬 것을 주장했다. 1848년 당시 독일 혁명의 급진파들은 이 지역 독일인들의 대의를 민주적 열정의 하나로 간주했다.
- 본문 50p


소련­핀란드 전쟁(겨울 전쟁)
소련은 11월 말 겨울전쟁(1939~1940년)의 직접 원인을 피에 굶주린 핀란드가 소련을 선제공격한 데 있다고 주장해왔다. 하지만 전쟁의 전개과정에 비추어볼 때, 보다 보편적인 견해는 러시아인들이 카렐리아 지협을 빼앗기 위해 개전 구실을 만든 것이라고 보고 있다. 소련 군대는 핀란드로 진격하자, 먼저 자국 군대 주둔지에 발포하여 전방 부대의 병사들을 사살한 다음 곧바로 군사 작전에 들어갔다. 그들은 몇 주 안에 핀란드 군대를 무력화시킬 수 있을 것이라고 장담했다. 하지만 당시 핀란드인들은 오히려 국경지대에 밀려드는 소련군의 시신을 어디에 묻을지를 걱정하고 있었다. 소련 군대가 핀란드 국경을 넘어섰을 당시, 핀란드의 공산당 창시자인 오토 쿠시넨(Otto Kuusinen, 1881~1954년)은 소련의 보호 아래 테리요키(Terijoki)에 세워진 핀란드 민주주의인민공화국 정부의 지도자였다. 레닌그라드와 헬싱키 사이의 짧은 거리와 양국 간의 긴 국경선 덕에 쿠시넨은 별 어려움 없이 핀란드에 들어갈 수 있었다. 하지만 쿠시넨은 1939년까지만 해도 핀란드 여론과 상당히 동떨어져 있었다. 쿠시넨은 핀란드 국민들에게 소위 괴뢰 정부의 정당성을 설득하려 했으나 반대 효과를 낳았다. 오히려 핀란드 국민들로 하여금 자기들도 발트 3국처럼 러시아화될 수도 있다는 위기의식을 갖게 해주었다. 소련 군대는 북극권에 위치한 페차모로부터 발트 해 남동부의 카렐리아에 이르는 국경 지역 약 1천 킬로미터에 걸쳐 여섯 갈래의 방향으로 공격했다. 헬싱키 하늘에 소련 폭격기의 폭격이 시작되었다. 핀란드는 영국과 프랑스의 지원군 파병을 요청했다. 하지만 스칸디나비아 국가들은 핀란드의 지원 요청을 거절하고 중립원칙을 고수했다. - 본문 164p

북유럽 협의회
지난 3세기 동안 세계는 스칸디나비아를 하나의 ‘사례’, 즉 때로는 밝고 계몽적이며 진취적인 사례로, 때로는 어둡고 우울한 비관적인 사례로 간주해왔다. 하지만 전반적으로 볼 때 스칸디나비아인들은 자신의 역사에서 가장 힘들고 괴로웠던 순간에도 결코 좌절하지 않았으며, 오히려 제도 개혁과 상호 협력에 기초한 역내 문제 해결에 매진함으로써 주변 국가들의 귀감이 되었다. 스칸디나비아인들의 공존을 위한 노력의 중심에는 ‘북유럽 협의회(Nordic Council)’가 있었다. 스칸디나비아 국가들의 공통 관심사에 대한 상호 협력과 유대를 목적으로 한 역내 기구 설립에 관한 구상이 처음 나타난 것은 제2차 세계대전 이전이었다. 하지만 그 결실은 1952년 3월에 와서야 맺어졌다.
북유럽 협의회는 경제, 사회, 법률, 문화, 교통, 통신 등 비정치 분야의 협력에 주안점을 두었다. 회원국 상호 간의 경제적·문화적 유대를 이루기 위해 주어진 모든 사회적·법적 기초를 개발, 통합시켜나갔다. 경제 분야의 협력은 비교적 성공적이어서 교역의 장애물이 점차 제거되었다. 역내의 원활한 교역을 위해 관세동맹 체결이 검토되었고, 여행 제한을 철폐했다. 아울러 통일된 도로교통법규를 제정하기 위한 노력이 뒤따랐다. 이제 국경을 넘는 것은 더 이상 복잡한 절차를 요구하지 않았다. 북유럽을 동과 서로 가르던 보트니아만 북쪽 끝의 스웨덴?핀란드 국경 도시 하파란다(Haparanda)는 이제 스웨덴과 핀란드의 교통 요충지로서 양국을 잇는 지름길이 되었다. …… 한편 스웨덴과 덴마크는 오레순드(Oresund) 해협을 가로질러 양국을 잇는 총 연장 14㎞에 이르는 오레순드 대교 건설에 합의했다. 하지만 핀란드는 다리 건설에 반대했다. 핀란드는 다리 건설이 자국의 주력 산업인 조선업에 타격을 줌은 물론, 교각의 높이 제한으로 선박의 이동이 감소할 수도 있다는 점을 이유로 들었다. 그들은 해양 환경의 파괴 위험을 지적했다.
- 본문 230~231p
--- 본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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