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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자폭탄 그 빗나간 열정의 역사

원자폭탄 그 빗나간 열정의 역사

: 마리 퀴리에서 히로시마까지

[ 양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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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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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일 2006년 08월 14일
쪽수, 무게, 크기 610쪽 | 876g | 크기확인중
ISBN13 9788990024558
ISBN10 89900245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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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1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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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다이애나 프레스턴 Diana Preston
옥스퍼드대학교 출신의 역사가이자 저술가, 방송인이다. 현재 런던에 살고 있다.

지은 책으로는 『컬로든 전투가 있기까지The Road to Culloden War』, 『일급비극: 로버트 팰컨 스콧과 남극점 정복 경쟁A First Rate Tragedy: Robert Falcon Scott and the Race to the South Pole』, 『의화단운동The Boxer Rebellion』, 『모살: 루시타니아 호의 침몰Wilful Murder: The Sinking of the Lusitania』, 『멋쟁이 해적: 윌리엄 댐피어의 인생A Pirate of Exquisite Mind: The Life of William Dampier』(마이클 프레스턴과 공저)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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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속에 히로시마를 단단히 새겨 넣었던 그 가공할 섬광은 50년에 걸친 과학적 창조성과 50년 이상에 걸친 정치적?군사적 소용돌이가 일구어낸 최고의 성과였다. 바로 그 순간을 위해 물리학자들은 여러 세대에 걸쳐 힘을 바쳤다. 그러나 물질의 비밀을 처음으로 들춰내기 시작했을 무렵에는, 심지어 미래의 노벨상 수상자들조차도 자신들의 선구적인 통찰들이 과학 외적인 사건들과 결부되어 그처럼 역사를 가름하는 순간을 이루어내리라고는 짐작조차 하지 못했을 것이다. 이 이야기에 등장하는 모든 사람들처럼, 그 과학자들도 그저 사람일 뿐이었다. (…) 오랫동안, 자기들 연구가 막대한 에너지를 해방시켜 가공할 만한 신무기를 만들어내리라고, 아니 실지로 적절하게 활용하면 도시 전체에 전기를 공급할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깨달은 사람은 없었다. 20세기가 시작됐을 즈음에는, X선을 이용해서 병을 진단하고, 또 암을 비롯한 여러 질병을 방사능물질을 이용해 치료하는 등, 방사능이란 것은 그저 건강에 이로운 것으로밖에는 생각되지 않았다. 당시 물리학은 새로운 분야였다.(12쪽)

히로시마 피폭이 있고 2주 뒤, 『라이프』지의 한 사설은 이렇게 언급했다. “야만상태로 역행할 크나큰 위험으로부터 우리를 보호해주는 유일한 것은 각 개인의 양심으로 하여금 옳고 그름을 분간하도록 다그치는 도덕성이다. 원자폭탄에 맞설 수 있는 것이 개인의 양심이라? 그렇다. 다른 방도는 없다. 우리가 제우스가 아님을 잊지 않는다면, 우리가 지닌 프로메테우스적인 재능의 끝이 어디일지 누가 알겠는가.” 원폭프로젝트의 성공 자체가 도리어 관계자들의 도덕적 가책을 벼려놓았다. 어떤 사람들은 그것을 과학이 순결함을 상실한 것으로 상징화했다. 맨해튼프로젝트의 과학책임자였던 로버트 오펜하이머의 사람됨 안에선 건전한 감각과 섬세한 감수성이 불편하게 공존했다. 임무를 완수하는 동안, 그는 가장 비인간적인 무기를 만들어내기 위해 인간적 도리를 억제해야 했다. 그러나 나중에는 이렇게 말했다. “물리학자들은 그것이 죄임을 알고 있었다.” 그 자신도 개인적으로 “죄책감에서 완전히 자유로운 것은 아니었다.” 또 다른 선도적인 과학자는 그 폭탄이 “아름다운 분야를 죽여버렸다”고 말했다.(16쪽)

1903년 초, 방사선요법에 라듐이 최초로 쓰였다. 프랑스에서는 ‘퀴리요법’으로 알려진 이 치료법은 암뿐만 아니라 피부병인 루푸스, 혈관종, 다래끼에까지 라듐을 이용했다. 나아가 여러 치료법들이 개발되었다. 상처부위를 라듐용액으로 씻는 것부터 해서, 라듐주사, 라듐 ‘강장제’를 마시는 것까지 다양했다. (…) 퀴리 부부는 그 ‘기적의’ 물질로 사적으로 경제적 이득을 보지는 않았다. 그들은 라듐추출공정에 대한 특허를 얻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상업적인 이득을 추구하는 것은 과학의 정신에 위배되는 것으로 믿었던 것이다. 즉 지식은 만인에게 공유되어야 하는 것이었다. 마리 퀴리의 라듐 발견은, 이제 막 아원자라는 신세계를 향해 열리기 시작하고 있던 문을 결정적으로 밀어젖힌 것이었다. 아원자세계가 담고 있는 함의는 오랫동안 견지되어왔던 믿음을 뒤흔들었다.(45~46쪽)

1910년 12월, 가이거의 회상에 따르면, ‘유난스럽게 기운이 백배한’ 러더퍼드가 가이거의 방으로 뛰어 들어와 흥분한 목소리로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이제 원자의 생김새를 알아냈어.” 원자의 모습이 J. J. 톰슨 등의 사람들이 주장했던 대로 푸딩 속에 건포도가 박힌 것처럼 전자들이 점점이 박혀 있는 속이 꽉 찬 구조가 아님을 밝혀냈던 것이다. 러더퍼드가 그려냈던 원자의 모습은 거의 텅 비어 있었다. 원자의 거의 모든 질량은, 강력한 전하를 띠기는 하지만 크기는 매우 작은 원자핵에 집중되어 있었다. (…) 러더퍼드의 원자 해석은 혁명적이었다. 즉 전자들이 미세한 원자핵 둘레를 돌고 있다는 태양계 형태의 원자모델을 설정했을 뿐만 아니라, 주변세계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생각을 영원히 바꿔버렸던 것이다. (…)
러더퍼드는 (…) 1911년 초, 입을 다물지 못하는 동료 과학자들 앞에서 원자핵의 발견을 공표했다. 뒷날 누군가가 회고한 것처럼, 그것은 ‘청천벽력 같은’ 폭로였다.(69~70쪽)

1905년은 스물여섯 살의 아인슈타인에게 여러 면에서 생산적인 해였다. 생각조차 할 수 없는 것까지 생각할 수 있는 능력 덕분에 아인슈타인은 플랑크의 양자론을 지지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그를 가장 유명하게 만든 발견들까지 이뤄낼 수 있었다. (…) 아인슈타인은 만일 물체가 에너지를 발산한다면, 그 물체의 질량이 반드시 그에 비례해서 감소해야 한다고 논하고 있다. 달리 말하면, 빛이 질량을 나른다는 것이다. 아인슈타인은 그 생각을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방정식―에너지는 질량 곱하기 광속의 제곱―으로 표현했다. 즉 에너지와 질량은 각각 독립된 현상이 아니라 상호 교환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은 광속의 크기가 어마어마하기 때문에, 미량의 질량에서도 어마어마한 양의 에너지가 빠져나올 수 있다는 가능성을 함축하고 있었다. 하지만 과학자들이 마침내 그 에너지를 손에 넣는 방법을 이해하게 된 때는 30년 이상이 지난 뒤였다.(74~75쪽)
1911년 11월, 아직도 스캔들 파문이 수그러들지 않고 있었을 때, 마리 퀴리가 두 번째 노벨상을 수상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이번에는 마리가 애초에 수행했던 순수한 라듐 분리를 인정한 노벨화학상이었다. 전례가 없는 영광이었으나, 언론의 공격은 그치지 않았다. 단순히 가식적인 도덕적 모욕을 넘어, 어떤 언론은 좀더 음흉한 저의를 담았다. 그때는 드레퓌스 사건이 끝난 지 5년밖에 되지 않았기 때문에, 언론들은 마리가 외국인이라는 사실을 독자들에게 상기시켰으며, 그녀가 유태인일 확률이 아주 높다는 터무니없는 주장까지 펼쳤다. 그들은 마리가 소르본에서 물러나 폴란드로 되돌아갈 것을 요구했다. 그러다가 결국 문제가 정점에 이르게 되었다. 주간지 『뢰브르L'Oeuvre』 편집자인 구스타브 테리Gustave Tery가 퀴리-랑주뱅 간의 편지 일부를 발췌해 실어 ‘라듐의 성녀’가 “피에르 퀴리의 후광으로 성공했으며, 이번에는 랑주뱅의 후광을 붙들려고 애쓰는 야심만만한 폴란드인”이라며 비꼬았던 것이다. 랑주뱅은 테리에게 결투를 신청했다. 그는 친구에게 이렇게 말했다. “유치한 일이지만 꼭 결투를 해야겠어.” 그러나 결투는 촌극으로 끝을 맺었다. (…) 이런 우스운 만남이 있고 나서 대중의 관심은 시들해졌다. 그렇지만 랑주뱅 염문설로 인해 퀴리 부인의 옹호자와 명예훼손자 사이에 최소한 네 번의 결투가 더 있기는 했다.(78~80쪽)

러더퍼드는 고생스럽고 혼란스러운 전쟁 통에서도 꿋꿋하게 또 하나의 중요한 발견을 하게 되었다. 즉 원자를 쪼개는 방법을 발견한 것이다. (…) 이는 최초로 사람의 손으로 원자를 쪼갠 사건이었다.(97~98쪽)

1922년 바로 그해, 좀머펠트는 하이젠베르크에게 라이프치히의 과학회의에 참석할 것을 권했다. 거기서 아인슈타인이 강연을 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하이젠베르크가 강연장에 들어갈 때, 한 젊은이가 빨간 전단지를 억지로 손에 쥐어주었다. 그 전단지에는 아인슈타인에 대한 공격과 상대성이론은 독일 문화에 어울리지 않으며 유태인 언론에 의해 퍼뜨려지고 있는 거칠고 위험한 사변이라는 비방의 내용이 실려 있었다. 강연은 진행되고 있었지만, 하이젠베르크는 그토록 ‘비틀린 정치적 감정’에 물든 과학에 대한 분개로 마음이 어지러워 집중을 할 수가 없었다. 뒷날 그는 강연이 끝났을 때 아인슈타인과 인사를 나누려는 마음도 없었다고 회고했다. 그가 ‘과학과 정치 사이의 위험한 완충지대’라고 부른 것을 경험한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다. 그러나 결코 마지막은 아니었다.(113~114쪽)

1927년, 하이젠베르크의 다음 행보는 바로 그 유명한 ‘불확정성 원리’였다. (…) 뉴턴 물리학의 역학적인 세계에서는 과거에 일어난 일이 정확하게 규정될 수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미래의 행동도 확정적으로 예측될 수 있다. 그러나 하이젠베르크의 원리에 따르면, 과거의 행동도 정확하게 알려질 수 있고, 미래의 행동도 확률에 기초한 일련의 근삿값들을 사용하면 대체적으로 예측될 수 있는 반면, 개개의 원자가 보일 미래의 행동은 본래 불확정성이 지배하고 있다. 하이젠베르크의 이런 생각은 처음에는 보어의 격렬한 반발을 불러일으켰다. 보어는 하이젠베르크가 기존의 해석들에 대들고 있다고 책망했고, 하이젠베르크는 보어의 완강한 태도에 비탄에 빠졌다. 서로의 마음이 진정되었을 때, 그 두 사람은 각자의 접근법이 결국은 화해될 수 있다는 점에 의견일치를 보았다. (…) 하지만 하이젠베르크의 불확정성 원리는 아인슈타인과의 유명한 언쟁을 불러왔다. 아인슈타인은 확률은 물리세계를 평가하는 도구치고는 너무나 모호하다고 논했다. “신이 가진 카드를 몰래 엿보는 일은 힘들 것이다. 그러나 신이 주사위를 던지고 텔레파시 같은 방법을 쓴다는 것은…… 나로서는 단 한 순간도 믿을 수 없는 것이다.” 아인슈타인은 물론 다른 어느 과학자도 그때까지는 이렇게 속속 출현하는 새로운 지적인 도구들이 장차 원자를 쪼개는 방법을 예측하여 그 안에 숨은 에너지를 폭발적으로 발산하게끔 하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하고 있었다.(117~118쪽)

1932년이 특별한 해로 기억되는 이유는 중성자의 발견 때문만은 아니었다. 그해 1월, 채드윅의 쾌거가 있기 겨우 몇 주 전, 미국의 화학자 해럴드 유리Harold Urey는 러더퍼드가 오랫동안 예견해왔던 또 하나의 발견을 이루었다. 컬럼비아대학교에서 연구하고 있던 그는 자연 상태의 수소를 이루는 것은 99.985퍼센트가 일반적인 수소이지만, 나머지 0.015퍼센트는 ‘무거운 수소’―‘중수소’라는 이름이 붙은 수소 동위원소이다―이며, 자연 상태에서는 산소와 결합된 형태의 물로도 존재한다는 사실을 발견했던 것이다. 이른바 ‘중수’로 불리는 이것은 맨눈으로는 보통의 물과 구별되지 않지만, 끓는점과 어는점이 다르고, 또 10퍼센트가 더 무거웠다. 그로부터 10년 후, 나치가 애달아서 찾아다니게 되고, 나치에게 제공하기를 거부한 사람들을 죽음으로 내몰게 될 것이 바로 이 중수였다.(133쪽)

사실 국제적인 과학 공동체에 속했던 많은 사람들의 삶에 바야흐로 변화가 오고 있었다. 오랫동안 당연하게 누려왔던 많은 것들, 이를테면 개방성, 여행의 자유, 생각의 교류, 정치에 구애되지 않고 과학을 추구할 권리 등이 곧 침해될 것이었다. 다가올 난국의 낌새를 챈 몇 안 되는 사람 중의 하나가 바로 로버트 오펜하이머였다. 그는 음울하지만 날카로운 통찰력으로 이렇게 썼다. “우리가 이 다음 삼십 년 동안 살게 될 세상은 대단히 불안정하고 고통스러운 세상이 될 것이다. 그렇게 될 것이냐, 안 될 것이냐 사이에 가능한 타협의 여지가 많을 것이라고는 생각지 않는다.”(144쪽)

이듬해[1935년], 졸리오-퀴리 부부는 인공방사능 발견의 공로로 노벨화학상을 수상했다. 수상연설에서 프레데리크 졸리오는 이렇게 말했다. “원소들을 자유자재로 조립하고 분해할 수 있다면, 과학자들은 또한 폭발력을 가진 핵변환을 이뤄낼 수도 있을 것이다.” 이런 선지적인 말에 관심을 기울인 사람은 거의 없었다. 1933년, 영국과학발전협회 회의에서 어니스트 러더퍼드는, 원자 에너지가 대규모로 방출될 수 있으리라고 믿는 사람은 누구나 ‘뜬구름 잡는 소리’를 하는 거라고 주장했다. 닐스 보어는 설사 핵에서 폭발력을 끄집어내는 것이 이론적으로 가능하기는 하지만, 현실적으로는 이루기 어렵다고 믿었다. (…) 아인슈타인에게 다량의 에너지를 방출시킬 가능성은 “어둔 밤에 장님이 오리가 극히 적은 지역에서 똑바로 공중에 대고 엽총을 쏴서 오리를 사냥하는” 것과 다를 바 없었다. 당분간 핵물리학은 앎의 기쁨을 누리기 위해 공개적으로 연구되는 분야로 인식되었다.(162~163쪽)

에드워드 텔러가 적은 바에 따르면, 그 무엇보다도 ‘놀라웠던’ 것은 바로 “분열의 비밀이 그동안 내내 모든 이들의 시선에서 벗어나 있었다”는 점이었다. 한이 말한 대로, “우리가 해냈는데도 깨닫지 못했다.” 페르미도 분열을 알아보지 못했다. 이렌 졸리오-퀴리도 마찬가지였다. (…) 심지어 위대한 러더퍼드도 잘못 생각했었다. 흥분한 오토 프리시가 코펜하겐으로 돌아와 그 소식을 닐스 보어에게 알리자, 보어는 “손으로 이마를 탁 치며” 이렇게 외쳤다. “우리 모두 바보였어.”(194쪽)

버클리에서 로버트 오펜하이머는 분열소식을 듣고 처음에는 “그건 불가능하다”는 반응을 보였지만, 며칠 가지 않아 생각을 바꿔 이 분열이 “폭탄을 만들어낼 수도 있다”는 생각까지 하고 있었다. 그 새로운 지식이 그때보다 더 나쁜 시기에 나타날 수는 없었을 것이다. 1938년 10월, 나치 독일은 뮌헨협정에 따라 독일과 체코슬로바키아 국경지역인 수데텐을 합병하게 되었다.(197쪽)

이 위험을 감지했던 최초의 과학자 중의 한 사람이 바로 레오 실라르드Leo Szilard였다. 괴짜에다가 우쭐거리는 사람이기는 했으나, 당시 많은 사람들 눈에는 “지성과 독창성으로 번뜩이는” 인물이었다. 실라르드는 기이한 선견지명을 갖고 있었다. 유럽 유태인들에게 닥치고 있는 위기를 가장 빨리 포착했던 사람의 하나였던 그는 (…) 일찍부터 ‘세상을 구하는 일’에 몰두하는 모습을 보였다.(198쪽)

실라르드가 알아챈 것처럼, 핵폭탄을 만들어낼 수 있는 가능성은 스스로 지속되는 연쇄반응을 분열이 이끌어낼 수 있느냐 없느냐에 달려 있었다. 중성자들로 우라늄 원자들을 포격할 때, 우라늄 핵이 쪼개지는 데서 그치지 않고, 그 과정에서 충분히 많은 중성자들을 더 방출해서 다른 우라늄 핵들까지 차례로 때린다면, 스스로 지속되는 연쇄반응이 일어나게 되고, 그 결과 어마어마한 양의 에너지가 풀려나지 않을까? 실라르드는 1933년 9월부터 이미 이론적으로 그 아이디어를 생각하고 있었다. (…) 만일 중성자에 의해서 쪼개지는 원소를 찾아낼 수 있다면, 그 원소가 중성자 하나를 흡수하는 대신 중성자 두 개를 방출한다면, 그리고 그 원소가 충분히 큰 질량으로 뭉쳐 있다면, 핵연쇄반응을 지속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 과정을 이용해서 폭발물을 만들 수 있을 거라는 생각에까지 미친 실라르드는 1934년 봄에 자신이 구상한 그 과정에 대해 특허를 신청했다. 그는 안전을 우려하여 특허를 영국 해군본부에 양도했다. 그러나 그 이상의 일은 하지 않았다. 그로부터 4년 뒤, 분열은 현실로 나타났다.(200~201쪽)

버밍엄의 추운 방에서 한 망명자가 외투를 뒤집어쓰고 무릎 위에 반듯이 놓은 타자기를 곱은 손가락으로 쳐가면서 처음으로 선보인 프리시-펄스 비망록은 원자폭탄의 진정한 실현가능성을 과학적으로 입증한 최초의 기록이자, 나아가 그 충격적인 효과까지 기술한 최초의 기록이었다. 보안상의 이유로 두 과학자들은 직접 그 문서를 타자로 쳤으며, 복사본은 한 부만 만들어 올리펀트에게 주었다. 올리펀트는 1940년 3월, 그것을 헨리 티저드 경에게 보내 깜짝 놀라게 만들었다. 그 폭탄이 ‘현실적으로 불가항력적’일 것이라는 견해는, 당시 뒷걸음질치고 있던 영국의 원자폭탄프로그램에 다시 시동을 걸게 된다.(243쪽)

하이젠베르크가 적은 것처럼, 최종적으로 독일 과학자들은 “성급하게” 탄소를 감속재로 쓸 “모든 생각을 단념하고”, 대신 중수로 눈을 돌렸다. 만일 그들이 탄소를 계속 고려했었더라면, 탄소에 기초한 감속재를 이용하여 최초로 스스로 지속하는 연쇄반응을 이루어낸 나라는 미국이 아니라 나치 독일이 되었을 것이다.(271쪽)

연기기둥이 빠른 속도로 상승하고 있다. 그 속에는 불 같은 빨간 코어가 있다. 부글부글 끓는 덩어리, 자주색을 띤 회색, 그리고 빨간 코어. 대단히 사납다. 불길이 여기저기서 피어나고 있다. 거대한 탄층에서 불꽃들이 불쑥불쑥 튀어나오는 것 같다. 나는 불꽃의 수를 세기 시작했다. 하나, 둘, 셋, 넷, 다섯, 여섯…… 열넷, 열다섯…… 불가능하다. 너무 많아서 셀 수가 없다. 파슨스 대위가 말했던 버섯구름이 저기 있다. 이쪽으로 다가오고 있다. 너비는 1마일이나 2마일 정도, 높이는 반마일 정도 될 것 같다. 그런데 위로 계속 자라나고 있다. 위로, 위로. 우리와 거의 같은 높이까지 다다르더니, 멈추지 않고 계속 더 상승하고 있다. 대단히 검다. 그런데도 그 구름은 자줏빛 색조를 띠고 있다. 버섯구름의 아래 부분은 불길이 이리저리 내닫고 있는 무거운 구름 같다. 도시는 분명 저 아래에 있을 것이다. 불길과 연기가 굽이치면서 언덕들을 빙빙 돌고 있다. 연기에 뒤덮이면서 언덕들이 모습을 감추고 있다.

베저는 이렇게 기록했다. “폭탄이 작동되었다니 안심이다.” 루이스는 수첩에 이렇게 적었다. “신이시여, 대체 우리가 무슨 짓을 한 것입니까?”(490~491쪽)

오토 한은 BBC와의 한 인터뷰에서 그날 저녁의 일을 약간 다르게 회고했다. 리트너 소령이 “제게 원폭을 투하한 소식을 전했습니다. 물론 저는 놀랐지요. 아니면 대단히 슬펐다거나 절망했다고 말해야 할는지. 그리고 저는 그 사람에게 말했습니다. ‘다른 식으로 할 수는 없었을까요?’ 그러자 소령은 이렇게 대답하더군요. ‘우리가 두세 사람의 영국인이나 미국인을 구할 수 있다면, 10만 명이든 15만 명이든 일본 놈들이 죽는 것은 상관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 폭탄을 떨어뜨린 거지요.’ 그 사람은 원폭투하를 대단히 만족스럽게 여겼습니다.”(510~511쪽)

독일에 원폭을 투하하는 결정이 달라질 수도 있었다고 주장하는 유일한 논리가 있는데, 그 논리는 일본에 원폭투하를 결정하는 데 한 요인이 된 것이 인종주의라는 전제를 깔고 있다. 연합국측에선 확실히 인종주의가 있었다. 각 인종마다 성격을 부여하고, 그 고정관념을 토대로 개개인을 판단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 처칠 역시 아시아 인종에 대해 식민주의적 편견을 갖고 있었고, 인도인 등의 아시아인에 대한 영국인의 지배권을 보전하기 위해 싸웠다. 하지만 영국이든 미국이든 그런 견해들의 영향을 받아 다른 군사정책을 채택했다는 증거는 없으며, 히로시마의 원폭투하 결정에 인종주의적 요소가 개입했다는 그 어떤 증거도 없는 형편이다.
흥미를 당기는 물음이 또 하나 있다. 만일 1934년 독일의 화학자 이다 노닥의 핵분열 해석이 진지하게 받아들여졌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그 이전에 그녀가 발견했다고 주장했던 원소 마수륨을 실증해내는 데 실패했다는 이유와 더불어, 그녀의 해석이 무시되었던 이유들은 반여성주의와도 관련이 있다. 쉽게 잊어버리는 사실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마리 퀴리가 성과를 거둬가고 있었을 때, 여성이 투표권을 갖고 있던 유일한 나라는 어니스트 러더퍼드의 조국 뉴질랜드―1893년에 여성의 투표권이 인정되었다―뿐이었다는 것이다.(533, 535쪽)

마리 퀴리는 이렇게 주장했다. “과학에서 우리가 관심을 가져야 하는 것은 사물이지 사람이 아니다.” 윌리엄 페니는 거기서 더 나갔다. “사람은 중요하지 않다. 역사는 지나치게 사람을 많이 다룬다.” 두 사람 다 잘못 생각했다. 설사 과학사라 할지라도 역사는 본래적으로 사람에 관한 것이다.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했고, 그 생각으로 무엇을 했고, 주변 사람들과 어떻게 관계를 맺었고, 나아가 사회를 비롯해 더 넓은 세계 순으로 사람들이 어떻게 관계를 맺었는지를 다루는 것이다. 인종, 성별, 종교, 나이, 지능에 상관없이 이 이야기에 등장하는 모든 사람들은 각기 개인적으로 행동할 수 있는 가능성을 갖고 있었다. 역사를 생각할 때, 나아가 무엇보다도 미래를 생각할 때, 우리는 상황들에서 사람을 제거해서는 안 된다. 그리고 그 상황들, 그 상황들이 다른 사람들에게 미칠 결과에 대해 우리 자신이 개인적으로 책임이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551쪽)
--- 본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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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종일관 놓치지 않는 긴박감, 스릴러에서 뽑아낸 글을 읽는 듯한 느낌!
제아무리 과학에 무지하다 해도 독자들의 마음을 단박에 사로잡는다.
지극히 훌륭한 대중적 역사가가 들려주는
인간과 과학과 세상에 관한 깊이 있는 역사서”
― 선데이 텔레그래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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