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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을 대표하는 문제 소설

2000년을 대표하는 문제 소설

한국비평문학회 | 한국문화사 | 2001년 07월 31일   저자/출판사 더보기/감추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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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01년 07월 31일
쪽수, 무게, 크기 514쪽 | 730g | 153*224*35mm
ISBN13 9788977358379
ISBN10 897735837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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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여자는 자살을 하려고 내 차에 뛰어든 것이 분명했다. 마치 100미터 달리기 경주 출발 신호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처럼, 내 차가 45도 각도로 어슷하게 꺾어지는 고속도로의 커브를 막 돌아서는 순간 난데없이 이 여자가 바람처럼 도로 복판으로 뛰어들었다. 나는 커다란 비닐 뭉치가 날아오는 것으로 알았다.

1차선 쪽으로 급하게 핸들을 꺾었기에 망정이지, 하마터면 이 여자는 내 차에 받쳐 풋볼처럼 허공으로 치솟았다가 고속도로 바닥에 떨어져 박살이 났을 것이다. 길바닥에 핏덩이처럼 싯삘건 속살을 드러내놓은 으깨진 수박을 연상하면서 나는 잠깐동안 눈을 감은 채 진저리를 쳤다. 내 생애에서 이때처럼 위기의 순간을 경험해 보기는 처음이다.

핸들을 꺾었을 때 1차선으로 달리던 차량이 있었더라면 나 역시 살아남지 못했을 것이다. 어차피 죽음을 생각하면서 자동차 여행을 시작하기는 했어도 그것은 내가 원하는 최후가 아니었다. 나는 어떤 경우에도 내 의지대로 죽음을 선택하고 싶었다.

그때 나는 목적지도 없이 무작정 서울을 떠나서 경부고속도로 회덕분기점을 지나 30분쯤 달리다가 갑자기 요의를 느껴 간이 휴게소에 잠깐 들렀었다. 오줌을 털고 화장실에서 나와 자판기에서 커피 한 잔을 빼 마시고 다시 차에 올라 느긋하게 고속도로에 접어들었다. 막연한 생각으로 아파트 주차장을 빠져나올 때까지만 해도 불안하고 우울했는데 서울 톨게이트를 지나면서부터 왠지 기분이 봄날 아침 햇살처럼 화사하게 가벼워졌다.

돌아오지 못할 마지막 여행이 될지도 오랜만에 멀리 떠난다는 것 때문에 마음이 달뜬 것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한껏 여행 기분을 즐기며 발부리에 힘을 주고 자동차에 속력이 붙기를 기다리며 고속도로 오른쪽의 야트막한 참나무 숲 모퉁이를 휘어 돌고 있던 참이었다. 아마 시속 1백 킬로로 달렸더라면 미처 핸들을 꺽지 못했을 터였다.
--- pp.174~1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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