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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로스의 종말

에로스의 종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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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15년 10월 05일
쪽수, 무게, 크기 110쪽 | 144g | 125*200*20mm
ISBN13 9788932027838
ISBN10 89320278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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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목차 보이기/감추기

서문 사랑의 재발명_알랭 바디우

1장 멜랑콜리아
2장 할 수 있을 수 없음
3장 벌거벗은 삶
4장 포르노
5장 환상
6장 에로스의 정치
7장 이론의 종말

미주
용어 해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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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한 의미의 사랑은 사실상 현대 세계, 세속화된 자본주의 세계의 이 모든 규범에 반항한
다. 왜냐하면 사랑이란 결코 그저 두 개인 사이의 기분 좋은 동거를 목적으로 하는 계약이 아니라, 타자의 실존에 관한 근원적인 경험이며, 아마도 현 시점에서 사랑 외에는 그런 경험을 찾아볼 수 없기 때문이다. 한병철은 성적인 사랑을 포함한 진정한 사랑에 관한 일종의 현상학과 오늘날 사랑을 위협하는 실제적 힘에 대한 다양한 조사를 결합한다. [……] 한병철의 주목할 만한 에세이를 읽는 것은 고도의 지적 경험이며, 이 경험은 우리로 하여금 오늘날 가장 절실하게 필요한 투쟁 가운데 하나에 명확한 의식을 가지고 참여할 수 있게 해줄 것이다. 그것은 곧 사랑의 수호, 혹은 랭보가 말하듯이 사랑의 재발명을 위한 투쟁이다. ---「알랭 바디우의 서문 「사랑의 재발명」」중에서

에로스는 강한 의미의 타자, 즉 나의 지배 영역에 포섭되지 않는 타자를 향한 것이다. 따라서 점점 더 동일자의 지옥을 닮아가는 오늘의 사회에서는, 에로스적 경험도 있을 수 없다. 에로스적 경험은 타자의 비대칭성과 외재성을 전제한다. ---「멜랑콜리아」중에서

사랑과 우울증의 긴장 관계는 「멜랑콜리아」의 영화 담론을 처음부터 규정한다. 영화의 음
악적 틀을 제공하는 「트리스탄과 이졸데」 서곡은 사랑의 힘을 강하게 환기한다. 우울증은 사랑의 불가능성을 의미한다. 또는 불가능한 사랑이 우울증을 낳는다. 아토포스적 타자인 멜랑콜리아라는 행성이 동일자의 지옥 속으로 돌입할 때 비로소 저스틴에게 에로틱한 갈망이 불붙는다. 강가 절벽 위의 누드 장면에서 관객은 사랑하는 한 여인의 몸, 쾌락으로 충만한 몸을 본다. 저스틴은 죽음을 가져오는 행성의 푸른빛 속에서 기대에 찬 표정으로 팔다리를 활짝 벌린다. 이 장면은 마치 저스틴이 아토포스적 천체와의 치명적인 충돌을 더없이 갈망하는 듯한 인상을 불러일으킨다. ---「멜랑콜리아」중에서

부재의 부정성은 애무와 쾌락에 있어서 본질적 계기를 이룬다. 애무는 “달아나는 것과의 놀이,” 끊임없이 미래를 향해 사라져가는 무언가를 찾아가는 행위다. 애무의 갈망은 아직 오지 않은 것을 양분으로 하여 자라난다. 쾌락의 강렬함 역시 감각의 공유 속에서도 타자가 부재한다는 사실에서 나온다. 오늘날 사랑은 욕구, 만족, 향락 이상의 의미를 지니지 못하기에 타자의 결핍이나 지체를 받아들이지 못한다. 검색 엔진이자 소비 엔진으로서의 사회는 찾을 수 없고, 붙잡을 수 없고, 소비할 수 없는 부재자를 향한 모든 갈망을 폐기한다.---「할 수 있을 수 없음」중에서

사랑은 피치노에 따르면 “전염병 중에서도 최악의 전염병”이다. 그것은 “변신”이다. 사랑은 “인간에게서 고유한 본성을 빼앗고 그에게 타인의 본성을 불어넣는다.” 바로 이러한 변신과 상처가 사랑의 부정적 본질을 이룬다. 하지만 오늘날 사랑이 점점 더 긍정화되고 길들여짐에 따라 사랑의 부정성도 희귀해져간다. 사람들은 자기 동일성을 버리지 않으며 타자에게서 그저 자기 자신을 확인하려 할 따름이다. ---「벌거벗은 삶」중에서

오늘날 세워지는 국경의 철조망이나 장벽은 더 이상 환상을 자극하지 못한다. 철조망과 장벽은 타자를 발생시키지 못하며, 오히려 경제적 법칙만이 지배하는 동일자의 지옥을 관통한다. 그리하여 부자와 가난한 자가 분리된다. 이 새로운 경계를 낳는 것은 자본이다. 하지만 돈은 모든 것을 원칙적으로 동일하게 만든다. 돈은 본질적 차이들을 지우며 평준화한다. 새로운 경계는 배제하고 쫓아내는 장치로서, 타자에 대한 환상을 철폐한다. ---「환상」중에서

사랑을 새롭게 발명하는 것은 초현실주의의 핵심 관심사였다. [……] 초현실주의자들에게 에로스는 언어와 현실의 시적 혁명을 위한 매체다. 에로스는 갱신의 에너지원으로 숭배되며, 정치적 행위도 그러한 에로스에서 양분을 얻어야 한다. 에로스는 그 보편적 힘으로 예술적인 것과 실존적인 것, 정치적인 것을 한데 묶는다. 에로스는 완전히 다른 삶의 형식, 완전히 다른 사회를 향한 혁명적 욕망으로 나타난다. 그렇다. 에로스는 도래할 것을 향한 충실한 마음을 지탱해준다.
---「에로스의 정치」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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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독 철학자 한병철의 또 하나의 논쟁적 저작!
‘사랑이 불가능한 시대’에 대한 통렬한 분석


『피로사회』 『심리정치』의 저자 한병철 교수(베를린 예술대학)의 신작 『에로스의 종말』(김태환 옮김)이 출간되었다. 전작 『피로사회』가 ‘할 수 있다’라는 성과사회의 명령 아래 소진되어가는 현대인의 모습을 비판적으로 관찰하고, 『심리정치』가 자유와 욕망까지 착취하는 신자유주의 시스템의 은밀한 통치술을 파헤쳤다면, 이번 책에서는 오늘날의 세계에서 진정한 사랑이 왜 위기에 처하게 되었는가에 대한 흥미로운 분석을 펼쳐나간다. 저자는 에로스가 “완전히 다른 삶의 형식, 완전히 다른 사회를 향한 혁명적 욕망”으로 이어질 수 있음을 이야기하며, 우리에게 오늘날 가장 절실하게 필요한 투쟁 가운데 하나인 ‘사랑의 재발명을 위한 투쟁’에 참여할 것을 제안한다.

2013년 독일에서 출간된 Agonie des Eros를 번역한 것으로, 프랑스의 철학자 알랭 바디우가 이 책의 불어판(Le Desir: Ou l’enfer de l’identique, 2015)에 쓴 서문 「사랑의 재발명」이 함께 수록되어 있다. 한국에 소개되는 한병철의 여섯번째 책.

“환상이 사라진 세계,
경제적인 법칙만이 지배하는 동일자의 지옥에서
에로스는 위기에 처할 수밖에 없다”


『에로스의 종말』은 “최근 사랑의 종말을 고하는 목소리가 자주 들려온다”라는 문장으로 시작된다. 역사의 오랜 전통 속에서 사랑에 강렬한 의미가 부여되어왔다면, 오늘날에는 바로 그러한 의미의 사랑이 위협받고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오늘날 사랑을 불가능하게 만드는 적은 과연 누구일까? 한병철은 에로스란 “강한 의미의 타자, 즉 나의 지배 영역에 포섭되지 않는 타자를 향한 것”인데, 환상이 사라지고 경제적인 법칙만이 지배하는 세계, 점점 더 “동일자의 지옥”을 닮아가는 오늘날의 사회에서는 에로스적 경험도 있을 수 없다고 말한다.

저자에 따르면, 사랑은 위험을 감수하지 않고 과잉이나 광기에 빠지지 않은 채 즐길 수 있는, 두 개인 사이의 가벼운 계약 관계가 아니라, 타자의 실존에 대한 근원적인 경험이다. 이는 필연적으로 자아의 파괴를 동반할 수밖에 없다. 그는 라스 폰 트리에의 영화 「멜랑콜리아」와 피터르 브뤼헐의 그림 「눈 속의 사냥꾼들」, 바그너의 악극 「트리스탄과 이졸데」 등을 예로 하여, 절대적 타자성의 경험으로서의 사랑, 완전한 타자의 파국적 침입에 의해 주체의 정상적인 균형 상태를 깨뜨리는 재난으로서의 사랑에 대해 이야기한다.

타자성에 대한 숭고한 찬가이자
소진되고 개별화된 주체에 대한 가차 없는 비판


한편으로, 안락함과 나르시시즘적 만족 외에는 관심이 없는 오늘의 세계에서 에로스의 가능성을 짓누르고 있는 실제적인 힘들을 집중적으로 파헤친다. 한병철에 따르면, 에로스는 성과와 ‘할 수 있음’의 피안에서 성립하는 타자와의 관계다. 즉, “다르다는 것의 부정성, 즉 할 수 있음의 영역을 완전히 벗어나 있는 타자의 아토피아(atopia)가 에로스적 경험의 본질적 성분을 이룬다.” 사랑의 경험은 불능에 의해 만들어지며, 불능은 타자의 완전한 현현을 위해 지불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성과 원리가 삶의 전 영역을 지배하고 있는 현대의 세속화된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사랑은 긍정화되고 아무런 부정성을 알지 못하는 단순한 ‘성애’로 변질된다. 한병철은 여기서 베스트셀러 소설 『그레이의 50가지 그림자』를 예로 드는데, 여기서 여주인공은 그녀의 파트너가 자신과의 관계를 마치 “정해진 근무 시간, 명료하게 정의된 업무, 성과의 질을 보장해주는 철저한 방법을 갖춘 일자리”처럼 생각하는 것에 대해 어리둥절해한다. 소설 속에서 묘사되는 사도마조히즘은 성행위 중의 기분전환용 놀이에 지나지 않는 것으로, 위반과 일탈의 부정성이 전혀 없다. 오히려 그것은 소비 가능한 것만이 허용되는 긍정성의 세계에서 우리가 마주하게 되는 성애의 전형에 가깝다.

이 책은 진정한 사랑의 최소 조건, 즉 사랑을 위해서는 타자의 발견을 위해 자아를 파괴할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하다는 데 대한 철두철미한 논증인 동시에, 전적으로 안락함과 나르시시즘적 만족 외에는 관심이 없는 오늘의 세계에서 에로스의 싹을 짓누르고 있는 온갖 함정과 위협 들을 깨닫게 해준다.

에로스의 정치학―
“에로스는 완전히 다른 삶의 형식,
완전히 다른 사회를 향한 혁명적 욕망으로 나타난다.”


모든 삶의 영역에서 타자의 침식 과정이 진행되고 이와 아울러 자아의 나르시시스트화 경향이 강화되면서 사랑 역시 소멸되어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타자의 실존에 대한 근원적인 경험을 가능케 하는 것은, 아마도 현 시점에서는 사랑 외에는 없을 것이다. 진정한 의미의 사랑은 현대 세계, 세속화된 자본주의 세계의 이 모든 규범에 반항한다. 한병철은 여기서 에로스의 정치적 가능성을 이야기한다. 다른 삶의 형식, 다른 세계, 더 정의로운 세계에 대한 공동의 욕망에서 나오는 정치적 행위는 어떤 심층적인 차원에서는 에로스와 상관관계를 이룬다. 에로스는 정치적 저항의 에너지원이다. 에로스는 그 보편적인 힘으로 예술적인 것과 실존적인 것, 정치적인 것을 한데 묶는다.

알랭 바디우는 이 책의 「서문」에서, “긴장감 있고 풍부한 내용을 담고 있는 이 작은 책은 타자성에 대한 숭고한 찬가이자 소진되고 개별화된 현대의 주체, 우울한 나르시시스트에 대한 가차 없는 비판으로서, 앞으로 다양한 토론과 논의를 불러일으킬 것”이라고 말했다. 독자들도 함께 완전히 다른 삶의 형식, 완전히 다른 사회를 가능케 할, ‘진정한 사랑’을 새롭게 발명해낼 방법을 모색해보길 기대한다.

※ 한병철 교수는 한국 출신의 철학자로서 독일 주요 언론에서 집중적으로 주목받고 광범위한 독자들의 반응을 이끌어낸 최초의 사례로 기록될 것이다. 독일의 주요 미디어들은 『피로사회』(2010) 때부터 저자를 주목해왔으며, 이후 출간된 『투명사회』와 『에로스의 종말』 역시 독일 사회에 많은 화제와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그의 저서들은 한국과 독일을 넘어 이탈리아, 스페인, 그리스 등 세계 여러 나라에 소개되었다. 특히 스페인의 일간지 『엘 파이스』는 이 책 『에로스의 종말』(스페인어판, 2014)이 출간되자 이를 집중적으로 조명하는 기사를 싣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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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매 파워문화리뷰 사랑의 의미를 생각해 보다! 내용 평점3점   편집/디자인 평점3점 YES마니아 : 로얄 스타블로거 : 수퍼스타 i*****n | 2020.08.09 | 추천16 | 댓글2 리뷰제목
사랑을 한 마디로 정의하는 것이 가능할까? 사랑 역시 사람의 감정에 대한 표현이기에, 그 구체적인 모습과 감정들은 겪는 이들마다 조금씩 다르게 나타날 수밖에 없다.기본적으로  사람의 감정은 항상 동등한 수치로 교환되는 것이 아니기에, 어느 한편으로 감정의 무게가 기울면 더 이상 사랑이라는 이름을 붙일 수가 없는 경우도 있다. 그래서 독자들은 누군가의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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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을 한 마디로 정의하는 것이 가능할까? 사랑 역시 사람의 감정에 대한 표현이기에, 그 구체적인 모습과 감정들은 겪는 이들마다 조금씩 다르게 나타날 수밖에 없다.기본적으로  사람의 감정은 항상 동등한 수치로 교환되는 것이 아니기에, 어느 한편으로 감정의 무게가 기울면 더 이상 사랑이라는 이름을 붙일 수가 없는 경우도 있다. 그래서 독자들은 누군가의 사랑 얘기에 공감하기도 하지만, 어떤 스토리에 대해서는 사랑이라는 이름을 붙이는 것에 공감을 하지 못하기도 한다. 이 책에서 제목으로 설정하고 있는 에로스역시 사랑의 한 형태로 지칭되는 용어이다.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신의 이름이기도 하며, '에로틱'이라는 수식어에서 연상되듯 흔히 격정적인 사랑의 형태를 의미하는 것으로 이해되고 있다.

 

독일에서 활동하는 철학자 한병철의 예술이론에 관한 책으로, 사랑의 한 범주로 여겨지는 '에로스'의 문제를 다루고 있다. 이 책에는 독특하게 저자 서문이 아닌 알랭 바디유의 글이 서문으로 수록되어 있으며, 에로스의 관점에서 '사랑의 재발견'이라는 관점에서 저자의 글을 평하고 있다. 책의 목차에 따라 세밀하게 정리하고 있어, 책을 읽기 전에 서문을 통해서 일차적으로 내용에 대해서 점검해볼 수 있었다. 그러나 본문의 내용들은 처음에는 다소 어렵게 느껴졌는데, 그것은 아마도 저자가 특정 예술 작품을 예로 들면서 설명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여겨진다. 영화와 그림 그리고 음악 등을 전거로 하여 펼쳐낸 저자의 사랑론이라고 할 수 있으며, 그 논의가 추상적으로 전개되어 다소 이해하기가 쉽지 않았다. 저자가 제시한 영화 등의 작품에 대한 이해가 전제되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라고 여겨진다.

 

문고본의 크기로 100면 남짓의 간략한 분량이지만, 그 속에 담긴 내용은 그리 간단치 않다고 생각되었다. 전체 7장으로 구분하여 '에로스와 사랑'이라는 주제를 다루고 있는데, 세밀한 목차에 걸맞게 다양한 차원에서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멜랑콜리아라는 제목의 1장은 라스폰 트리에의 영화 멜랑콜리아와 그 작품에 등장하는 그림과 음악 등을 예로 들어 에로스의 본질에 대해서 질문을 던지고 있다. ‘할 수 있을 수 없음이라는 다소 역설적인 문장으로 이뤄진 2장의 내용 역시 푸코와 레비나스 등의 이론을 끌어들여, 사랑의 복잡하면서도 미묘한 성격을 제시하고 있다. 이어지는 항목들에서도 헤겔과 아감벤 그리고 바르트 등 다양한 사상가들의 이론이 동원되면서, ‘포르노환상등의 제목으로 에로스와의 관련을 설명하고 있다.

 

에로스의 종말이라는 책의 제목은, 아마도 진정한 사랑이란 자신을 포기함으로써 이루어진다는 의미를 제목에 담은 것이라 이해된다. 다양한 이론을 통해서 에로스의 본질과 의미를 설명하고 있는 이 책이, 마지막 7장에서 이론의 종말이라는 제목을 붙인 것은 의미심장하게 생각되었다. 에로스를 포함한 사랑의 본질은 결국 이론을 통해서는 완벽하게 설명되지 않는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고 해석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에도 저자는 이 장의 내용 역시 다양한 이론들로 채우고 있다. 실제로 사랑의 본질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한다는 것이 쉽지 않을 뿐더러 그에 대한 관점도 사람마다 차이가 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이 책을 읽는 사람들이 저자의 논리에 공감할 수 있는지의 여부는 각자의 판단에 맡길 수밖에 없다. 나 역시 그 본질을 제대로 이해했는지는 별개로, 이 책을 읽으면서 사랑에 대해 재삼 음미할 수 있었던 시간을 가졌던 것에 만족하고자 한다.(차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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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매 파워문화리뷰 에로스의 종말/ 한병철 내용 평점4점   편집/디자인 평점4점 파***거 | 2020.06.29 | 추천14 | 댓글10 리뷰제목
사랑의 발명   살다가 살아보다가 더는 못 살 것 같으면아무도 없는 산비탈에 구덩이를 파고 들어가누워 곡기를 끊겠다고 너는 말했지나라도 곁에 없으면당장 일어나 산으로 떠날 것처럼두 손에 심장을 꺼내 쥔 사람처럼취해 말했지나는 너무 놀라 번개같이, 번개같이 사랑을 발명해야만 했네   이영광 시인의 이 시를 처음 읽었을 때 깜짝 놀랐던 기억이 난다. 번개같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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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발명

 

살다가 살아보다가 더는 못 살 것 같으면

아무도 없는 산비탈에 구덩이를 파고 들어가

누워 곡기를 끊겠다고 너는 말했지

나라도 곁에 없으면

당장 일어나 산으로 떠날 것처럼

두 손에 심장을 꺼내 쥔 사람처럼

취해 말했지

나는 너무 놀라 번개같이,

번개같이 사랑을 발명해야만 했네

 

이영광 시인의 이 시를 처음 읽었을 때 깜짝 놀랐던 기억이 난다. 번개같이 사랑을 발명해야한다는 마지막 행이 신선해서 좋았기 때문이다. 이 책을 읽다가 재독 철학자인 저자 또한 사랑을 발명해야한다는 대목이 있어서 얼른(번개같이) 이 시를 다시 읽어보았다. 역시 마지막 행이 압권이다.

 

사랑을 새롭게 발명하는 것은 초현실주의의 핵심 관심사였다. 초현실주의의 새로운 사랑의 정의는 예술적, 실존적, 정치적 행동으로서 의미를 지닌다. (87)

 

7장으로 구성된 이 책은 얇아서(98) 좋다. 더 좋은 것은 저자가 쓴 이 책의 내용이 도통 무슨 말인지 갈피를 잡을 수 없을 때 알랭 바디우(프랑스 철학자)가 쓴 서문이 좋은 참고서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저자는 이 책에서 자본주의 사회인 현대는 이타적 사랑인 에로스가 죽었다고 주장한다. (에로스는 이타적 사랑이라고 봐도 무방할 듯하다.) 자신의 자아를 깨트려야만 타인이 들어올 수 있는 공간을 만들 수 있는데 성과 위주의 현대사회에서 그런 이타성을 더 이상 찾기가 어렵다고 보고 있다. 이것을 증명하기 위해 저자의 지식을 풍부하게 사용하기 때문에 철학에 관심이 적었던 독자가 읽기에는 어렵고, 평소 철학에 관심이 있던 독자라면 좀 더 쉽게 저자의 주장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나는 서문에 정리해놓은 내용을 길잡이 삼아 읽었다.

 

1장은 멜랑콜리아로 동명의 영화를 사례로 들면서 파괴된 사랑을 되찾을 수 있는 방법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오늘날 사랑이 위기인 것은 삶의 영역에 타자가 사라지면서 자아의 나르시시스트화 경향이 강화되는 것이라고 한다. 에로스(사랑)는 타자를 향해 가야하는데 현대의 성과주체들은 자신의 그림자 속에서 나오지 못하고 익사하고 만다. 이런 우리를 구원할 수 있는 것은 영화처럼 파국적 재난이 올 때라야 가능하다는 것이다. “임박한 죽음 앞에서 그녀는 타자를 향해 열린다는 것처럼 재앙이야말로 자기애에서 빠져나와 타인을 볼 수 있는 구원의 길이 된다는 내용이다.

 

책 전체에 인용된 좋은 문장이 많아서 그것을 곱씹어보는 것도 좋았다. 책을 읽다가 밑줄 그은 문장이 새 저자를 만나 긍정되거나 반박을 거쳐 재해석 되면서 또 다른 저서로 탄생하는 법이다. 저자는 강력하게 자본주의를 비판하고 있다. 대상을 사랑하기 위해선 자기 안에 그 대상을 위한 자리를 마련해야하는데 동일성의 지옥에 빠진 현대인에게 그런 기미는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우리 안에서 사랑이 죽음과 같지 않다면 그것은 사랑이 아니다’, 라든가 사랑의 종말은 자본화에 의한 동일성때문이라고 하는 것처럼 주장하는 내용이 다소 강하다. 현대인의 사랑에 대해 고찰하고 싶은 독자라면 저자가 던지는 질문에 새로운 질문을 만들어가며 사유할 수 있는 독서가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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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은 나와 타자의 다름을 인정하는 것.. 내용 평점4점   편집/디자인 평점4점 스타블로거 : 블루스타 초* | 2016.02.01 | 추천9 | 댓글16 리뷰제목
한병철 교수의 책은 이번이 두번째다. 전에 [피로사회]를 읽었지만 쉽게 읽혀지는 책이 아니었기에 며칠을 두고 읽었는지 모른다. 이 책 역시 어렵기는 마찬가지다. 아니 [피로사회]보다 이해하기는 더 어려웠다. 아마 철학계통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하기 때문에 더 그런지도 모른다. 그런데도 왜 이렇게 어려운 책들을 고르는지, 그리고 읽다가 어려우면 관두면 될 것을 굳이 꾸역꾸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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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병철 교수의 책은 이번이 두번째다. 전에 [피로사회]를 읽었지만 쉽게 읽혀지는 책이 아니었기에 며칠을 두고 읽었는지 모른다. 이 책 역시 어렵기는 마찬가지다. 아니 [피로사회]보다 이해하기는 더 어려웠다. 아마 철학계통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하기 때문에 더 그런지도 모른다. 그런데도 왜 이렇게 어려운 책들을 고르는지, 그리고 읽다가 어려우면 관두면 될 것을 굳이 꾸역꾸역 읽으려고 하는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

 

이전의 세계는 금지명령을 발하고 '해야 한다'라는 당위를 동원하는 규율사회였다면, 지금은 성과사회라고 저자는 전작 [피로사회]에서 말하였다. 그는 성과사회는 '할 수 있다'라는 조동사의 지배아래 놓여있는 긍정의 사회라고 정의한다. 이런 사회에서 각 개인은 자유롭다고 할 수 있지만, 오직 자신의 능력과 성과를 통해서 성공이라는 단어로 존재감을 확인하기 위해 스스로를 착취하고 있기에 진정으로 자유롭지는 않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이런 성과사회는 자본주의의 진화가 낳은 결과이다. 우리사회의 경우도 예외는 아닐 것이다. 신자유주의와 함께 이 땅에 들어온 성과위주의 평가는 성공을 이루려는 개인들의 욕망을 자극함으로써 전체적인 생산성을 극대화 했다. 사람들은 자신의 성과를 위해 부단히 자기계발에 열을 올릴 수밖에 없었고, 이러한 자기착취는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의 기본원리로 자리잡아, 이전 세기의 타자착취보다 훨씬 효과적이고 성과가 있었음은 주지의 사실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각 개인은 자신이 예속된 주체가 아니라고 확신한다. 신자유주의 체제의 달콤함에 매몰되었기 때문이다.

 

에로스 역시 마찬가지이다. 사랑의 정의가 무엇이든지 간에 오늘날과 같은 성과사회에서는 사랑 역시 긍정화되어야 하고, 그 결과 성과주의의 지배아래 놓여 있는 성애로 변질되었다. 섹시함은 더 이상 환상이 아니라 증식되어야 하는 자본으로 간주된다. 사랑은 소비와 쾌락주의적 대상으로만 존재하게 된 것이다. 물론 전부가 다 그러는 것은 아니지만 소비문화는 욕망과 상상력을 자극하기에 사랑은, 성애는, 포르노화 될 수밖에 없다. 전근대적 상상력은 정보의 희박함으로 특징짓지만, 오늘날의 상상은 디지털 기술 덕분에 온갖 정보로 채워져 있다. 더불어 자본주의는 모든 것을 상품으로 묘사하고 구경거리로 만듦으로써 이러한 포르노화 경향을 더욱 부채질한다. 그래서 저자는 에로스가 종말을 맞이했다고 하는지도 모른다.

 

저자는 에로스를 '강한 의미의 타자, 즉 나의 지배영역에 포섭되지 않은 타자를 향한 것'이라고 말한다. 진정한 사랑이란 두 개인 사이의 가벼운 계약관계로 즐길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타자의 실존에 관한 근원적인 경험이라는 것이다. 그러기에 사랑의 최소조건은 타자의 발견을 위해 자아를 파괴할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하지만, 오늘날은 이러한 사랑의 싹을 짓누르는 온갖 함정과 위협들로 가득 차있다고 한다. 개인주의, 모든 것을 시장가격으로 환산하려는 태도, 개인의 행동을 조종하는 이해관계 등 경제법칙만이 지배하는 세상이 바로 그것이라는 것이다. 철학적인 표현 때문인지 어렵게 느껴지지만, 이것은 쉽게 말해서 타자가 나와 다름을 인정하고 이해해야 한다는 것이 아닐까 싶다. 또한 자아를 파괴할 수 있는 용기란 사랑하는 대상을 향한 숭고한 희생까지는 아니더라도, 나와 타자가 같은 곳을 바라볼 수 있도록 나의 모든 것을 고칠 수 있는 노력이 아닐까 싶다. 에로스를 사랑, 그리고 타자를 그()로 치환한다면 조금은 이해가 쉬울 것 같다.

 

사랑은 영혼의 모든 부분 즉, 충동과 용기와 이성을 전반적으로 지배한다고 저자는 말한다. 그리고 영혼의 모든 부분은 각기 자기 나름의 쾌락경험을 가지며, 아름다움 또한 각자의 방식으로 해석한다. 오늘날에는 충동이 영혼의 모든 쾌락경험을 지배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우리는 사랑을 충동과 혼동하면 안 된다고 한다. 사랑은 용기와 이성까지도 관장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사랑이 정치와 만나는 접점은 바로 용기라고 저자는 강조한다. 신자유주의는 사랑을 성애와 포르노그래피로 대체함으로써 사회의 탈정치화를 초래하고 있지만, 사랑은 정치적 저항의 에너지원이기도 하다. 그러기에 저자는 사랑의 재발명을 위한 투쟁에 나서자고 제안하고 있는 것 일 게다. 신자유주의가 전파하는 성과사회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라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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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줄평 (81건) 한줄평 총점 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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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매 평점3점
피로사회가 더 좋았습니다
2명이 이 한줄평을 추천합니다. 공감 2
p****n | 2020.12.18
평점3점
자본주의 사회는 에로스가 아닌 자기애 에만 빠져들게 한다. 넘치는 정보는 생각을 멎게한다.
2명이 이 한줄평을 추천합니다. 공감 2
트* | 2016.01.23
평점5점
짧지만 어마무시한 책
1명이 이 한줄평을 추천합니다. 공감 1
YES마니아 : 플래티넘 y*****n | 2018.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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