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면 이 책을 읽고 "식구들을 글감으로 삼다니." 하고 비판하는 사람도 있을지 모르고(실제로 있었다, 그런 사람이), 자칫 우리 부모와 장인 장모가 부끄럽다고 울지 모르지만, 아내가 재미있다고 해주었으니 그 다음은 누가 뭐라 해도 상관없다. 실제로 연재를 할 때 '이런 글은 쓰는 남편보다 허락해주는 아내가 백 배 훌륭하다'고 여기저기에서 말을 많이 들었다. 좀 억울하지만 옳은 말이라고 생각한다.
도 이 원고에 대해 가장 적확한 평가를 한 것도 아내였다.
"이거, 아이가 귀엽다느니, 출산과 육아에 남자도 적극 동참합시다, 하는 책 아니지? 대체로 이 책을 읽은 사람들은 '이 사람 참 애처가구나'라고 생각할 거야. 나로서는 행운이지만, 그러나 좀더 읽다 보면 이 사람은 단순한 자기 마니아라고 생각할걸. 아내의 임신을 이야깃거리 삼아 자신이 어떻게 행동했는지 무엇을 생각했는지를 재미있게 쓰고 있을 뿐이잖아."
그런 이유로 당연히 이 책은 아내에게 바친다.
그러나 인세는 우리 아들인 나츠야에게 바친다. '유익하게' 사용하는 것은 나겠지만.
--- 후기 中에서
아내가 임신한 이후 줄곧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아내에게 '입덧'이라는 증세가 나타나지 않는다.
나는 임신한 여자들은 누구나 회사 휴게실에서 동료들과 수다를 떨다 갑자기 '우욱' 하고 입을 막고 화장실로 뛰어가 왝왝 토하며 입덧을 하는 줄 알았다. 그런데 아내에게는 도무지 그런 기미가 없다. 게다가 임신부는 보통 시큼한 것을 병째로 안고 먹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피클은커녕 레몬이나 식초도 전혀 먹고 싶어하지 않았다. 너무나 평범한 것이다.
정말 임신한 걸까?
신 것이 아니어도 좋다. 장모는 임신했을 대 수박이 먹고 싶어 죽는 줄 알았다고 했다. 겨울에 수박을 찾아도 곤란하긴 하지만, 뭔가 식생활의 변화가 있어야할 것 같다.
아주 조금 나온 듯한 느낌이 드는 배만이 내게 '아내는 임신중'이라는 사실을 확인시키는 유일한 근거이다. 그런데 어느 날, "아, 개운해. 요즘 변비였거든." 하고 화장실에서 나오는 아내의 배는 완전히 납작해져 있었다.
똥이었던 거야?
내 머릿속에 '상상임신'이라는 네 글자가 반짝거리기 시작했다. 의사에게 받아온 초음파 사진에 비친 하얀 선, 그것이 똥이었던 건가? 나는 솔직히 그렇게 생각했지만, 이 이야기는 '너무도 수준 낮은 개그' 정도로 받아들여졌는지 사람들에게 비웃음만 사고 말았다.
아내는 아침에 일어났을 때 속이 메슥거리는 것 같다고 했다. 하지만 그것도 뭔가 먹거나 마시고 나면 이내 가라앉는다고 했다. 또 아내는 "임신하니까 잠이 너무 많이 와." 하고서 휴일에는 소파에서 잠만 자고 있지만, 그녀는 임신하기 전에도 눈만 감으면 3초 안에 골아떨어지는 여자였다.
이런 말을 하면 화를 내겠지만 정말 뭔가 시시하다.
아내는 지금까지와 전혀 다를 바 없이 매일 아침 건강하게 회사에 간다. 주로 집에서 일을 하는 나는 지금까지와 하나도 달라지지 않은 상태에서 고양이를 안고 "다녀와." 하고 배웅하며, 밤이 되면 또 고양이를 안고 "어서 와." 하고 아내를 맞이한다.
아내가 임신했다는 사실이 생활 속에서 너무나 실감나지 않는다. 심한 입덧을 기대한 것도 아니고, 어머니도 "어머나, 입덧이 없으면 없는 대로 좋지 뭘 그래." 하고 말하지만, 그런 문제가 아니다. 그런 것은 나도 알고 있다. 단지 말도 안 되는 변명이란 것은 충분히 알고 있지만, "나는 임신부의 남편이다."라는 실감을 하고 싶었던 것이다.
의사나 선배들의 충고에 따라 밤늦게 돌아다니지 않는다, 무거운 것을 들지 않는다 등 모체에 악영향을 주는 일은 시키지 않도록 신경 쓰고 있지만, 그것만으로 임신을 실감해야 한다는 것은 너무 쓸쓸하다.
이렇게 심드렁한 기분으로 지내고 있을 무렵, 어느 날 아내가 말했다.
"있잖아, 나, 가슴이 커졌다고 생각 안 해? 브래지어가 작아진 것 같아."
뭐?!
나는 뛰어나왔다. 드디어 알기 쉬운 신체의 변화, 그것도 나쁜 것이 아니라 여자의 매력을 한껏 과시하는 부위인 가슴이 커졌다는 사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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