톨스토이이 어록에 이런 말이 있다.
'행복한 가정은 모두 엇비슷하지만, 이혼하는 부부는 서로 다른 불행을 껴안고 있다.'
나는 남들 눈에는 불행한 가정으로 자라난 사람으로 보일 것이다. 열한 살 때, 엄마는 나와 둘째 남동생을 데리고 집을 나왔고, 아버지와 첫째 남동생과 여동생은 우리가 그때까지 살았던 집에 그대로 남았다. 그렇다고 나는 내 가족들이 수치스럽다거나 가엾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아니 오히려 기억 속에 가족들을 가두어 놓고 남몰래 추억하고 있다. 불행한 가족일수록 이루지 못한 꿈을 좇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 p.53--- 가족은 소리 없이 붕괴한다.. 중에서
일곱살때부터 나는 일기를 썼습니다. 내 안에서 용트림한느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죽여버릴거야'라는 욕망을 갓 배운 글자로 써 내려갔습니다. 일기속에서 나는 선생님을, 우리 반 아이들을 죽였습니다. 젊은 나이에 귀가 잘 들리지 않는 엄마도, 빨래 더미, 이불자락, 가디건, 신문지 같은 것들에 머리를 쿡 쳐박고 자는 야윈 여동생과 남동생들도.... 그리고 가장 증오스런 나자신, 어딘지는 모르겠지만 불구인 나 자신을 몇번이고 몇번이고 죽였습니다. 일기 속에서 죽이지 않으면 현실 속에서 정말 죽여버릴 것 같아 두려웠기 때문입니다. 일곱살 때 쓴 일기가 나의 출발점입니다.
--- p.217
'생일날, 뭐 갖고 싶니?'
이런 질문에도 뭐라 답하면 좋을지 난감하다. 갖고 싶은 것은 있지만 말을 하지 못한다. 집요하게 물으면 전혀 상관없는 갚싼 물건의 이름을 아야기한다. 동정심에 주는 선물이 아닌데도 호의를 견디지 못하는 것이다. 나는 어쩌면 무의식적으로 모두가 나를 배신하고 비웃고 피해를 주는 존재이기를 바라고 있는 것이 아닐까. 그렇지 않으면 마음이 놓이지 않는 것이 아닐까
--- p.130
나는 초등학교 자연 시간에 죽음에 대해 배우기 전까지는 모든 살아 있는 것의 죽음은 자연사가 아니라 자살에 의한 것이라고 믿고 있었다. 나비의 자살을 방조하기 위해서 나는 아버지의 책상 제일 윗서랍에 들어 있던 외제 라이터를 몰래 꺼내 주머니에 넣고 한여름 한낮의 들판으로 나갔다. 내 자신의 짤막한 그림자를 깡충깡충 밟으면서. 그러고는 잠자리채 안에 나비를 가둬놓고 오른손 집게손가락과 엄지손가락으로 살며시 날개를 잡아 가져온 라이터로 불을 붙였다. 나비는 불타오르며 8월의 하얀 태양을 향해 나풀나풀 날아오르다 금세 땅으로 떨어졌다.
나는 아마도 그 나비처럼 죽으리라.
--- pp.25-26
나는 나를 내 자신안에 가둬두기 위하여 쓸 수 있는 모든 것을 쓰고, 아픔의 물로 내 자신을 포위하였다. 헤엄치지도, 떠오르지도, 가라앉지도 않고 침묵과 아픔 속에 정지해 있는 물고기-물고기는 때로 아픔에 겨운 나머지 입을 벌리지만 물에 에워싸여 있어 소리가 나지 않는다. 거품이 수면으로 올라갈 뿐이다.
--- 머리말 중에서
『물고기가 꾼 꿈』이라고 제목을 정했다. 물고기는 물에 에워싸여 있다. 물이 없으면 살 수 없다. 내가 물고기라면, 물은 아픔이다. 아픔이 없어지면 나는 쓸 수 없다. 그리고 글을 씀으로 하여 내 아픔의 수위는 더욱 높아진다. 나는 나를 나 자신으로부터 구해내겠다는 생각 따위는 하지 않는다. 오래도록 나를 구해줄 누군가를 꿈꿔왔지만, 두 남자와의 결별을 끝으로 꿈꾸기를 그만두었다.
나는 나를 내 자신 안에 가둬두기 위하여 쓸 수 있는 모든 것을 쓰고, 아픔의 물로 내 자신을 포위하였다. 헤엄치지도, 떠오르지도, 가라앉지도 않고 침묵과 아픔 속에 정지해 있는 물고기 - 물고기는 때로 아픔에 겨운 나머지 입을 벌리지만 물에 에워싸여 있어 소리가 나지 않는다. 거품이 수면으로 올라갈 뿐이다.
아무쪼록 수면을 응시하고, 귀기울여 주시기를......
--- pp.9 <글머리에>에서
『물고기가 꾼 꿈』이라고 제목을 정했다. 물고기는 물에 에워싸여 있다. 물이 없으면 살 수 없다. 내가 물고기라면, 물은 아픔이다. 아픔이 없어지면 나는 쓸 수 없다. 그리고 글을 씀으로 하여 내 아픔의 수위는 더욱 높아진다. 나는 나를 나 자신으로부터 구해내겠다는 생각 따위는 하지 않는다. 오래도록 나를 구해줄 누군가를 꿈꿔왔지만, 두 남자와의 결별을 끝으로 꿈꾸기를 그만두었다.
나는 나를 내 자신 안에 가둬두기 위하여 쓸 수 있는 모든 것을 쓰고, 아픔의 물로 내 자신을 포위하였다. 헤엄치지도, 떠오르지도, 가라앉지도 않고 침묵과 아픔 속에 정지해 있는 물고기 - 물고기는 때로 아픔에 겨운 나머지 입을 벌리지만 물에 에워싸여 있어 소리가 나지 않는다. 거품이 수면으로 올라갈 뿐이다.
아무쪼록 수면을 응시하고, 귀기울여 주시기를......
--- pp.9 <글머리에>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