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시기의 랭보의 마음속에는 반종교적인 열정이 다시 타오르기 시작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가 브르따뉴 아저씨를 자주 만난 일은 확실히 이 새로운 열정과 무관하지 않았다. 랭보는 브르따뉴의 집에 자주 갔고, 거기서 몇몇 친구들을 앉혀 놓고 자기가 최근에 쓴 신랄한 풍자적인 작품들을 읽어주곤 했는데, 그때마다 커다란 호응을 얻었다.
그가 낭송한 시는 「쭈그린 모습들」-밀로투스, 혹은 칼로투스 형제에게- 과 「첫번째 성체배령」같은 것들이었다. -후자는 1871년 5월 14일에 그의 여동생 이자벨이 첫 영성체를 받는 것을 보고 영감을 얻어 쓴 시이다- 그 시의 내용은 아이들에게 미사 준비를 시키는 사제에 대한 것인데, 그 사제가 들었다면 필경 눈살을 찌푸렸을 조롱을 담은 것이다.
    삭은 구두를 신은 검은 괴짜,
또한 교회에 나온 소녀들에 대한 빈정거림이기도 하다.
    계집애들은 사내들이 자기 이름을 불러 주는 게 좋아서
그리고 그들의 '무기력함'과 '지저분한 동정심', 또한 그리스도에 대해서도 시인은 조소한다.
    그리스도! 오, 그리스도, 정력의 영원한 도둑이시여.
증오심에 차서 입을 삐죽거리는 랭보는 베를렌느의 표현대로 '청년 사탄'과 닮았다고 해야 할 것이다.
벽 위에나 벤치에다, 그는 백묵으로 '신은 죽어라!'라고 써놓곤 했다. 랭보는 신부들을 만나면 독살스런 욕을 입에 올리곤 했다. 심지어 그런 때를 대비해서 자기 머리카락 속에 키우고 있던 이를 신부들에게 던지기까지 했다.
신부들 말고 랭보의 강짜의 희생물이 된 사람들은 에르네스트 들라에의 선생들이었다. 랭보는 이장바르의 후임자였던 앙리 뻬랭에게 에르네스트의 삼촌(레미이 레 뽀떼에 사는) 이름으로 글을 써 보냈다. 데스두에 교장은 필체를 보고 그 편지를 누가 썼는지 금방 알아차렸다. 그 편지가 교실에서 낭독되자 소동이 일어났다.
--- pp.161~163
비록 외모는 달라지지 않았다 해도 랭보는 더이상 옛날과 같지 않았다. 그는 여전히 아주 말쑥하고 단정한 소년이었다. 용모상으로, 그는 어린 시절의 모습을 그대로 지니고 있었다. 뾰로통한 표정, 밝은 안색, 곁에 있는 사람을 불안하게 하는 물망초 같고 천사 같기도 하고 무자비하게도 보이는 눈. 들라에느 랭보의 눈이 무엇보다 천사 같다고 하였다. "갈색 머리에 파란 눈동자. 그 파란색은 이중적인 색깔이었다. 짙은색과 밝은색 두 부분이 몽상을 하거나 깊이 생각할 때면 넓게 퍼지거나 짙어지곤 했다. 무언가를 찾거나 미지의 세계를 투시해서, 그의 정신의 눈길이 아주 멀리까지 다다를 때면, 눈꺼풀이 고양이처럼 붙어 버리고, 길고 실키 같은 눈썹이 가볍게 떨리곤 했다. 그런 때에도 그는 고개를 약간 숙인 채 꼼짝 않고 있었다."
학교에서 랭보는 반항적이지는 않으면서도 자신감에 차 있는 편이었다. 들라에는 랭보가 쉬이 얼굴을 붉혔고 소심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그는 무엇보다 남에게 인정받기에 충분한 개성을 지니고 있었다. 학교 친구 중 한 사람이 밝힌 바에 따르면 "사람들은 랭보가 소심하다고들 했지만, 그는 항상 명랑했고…… 대담한 편이었다고 할 수 있어요. 선생들이나 교장 선생에게도 침착하게 말을 했고, 장난삼아 친구들을 속이기를 좋아했지요."
우리는 역사 선생인 윌렘름 신부와 랭보의 언쟁에 대해서 언급한 바 있다. 그는 부속 사제인 죠제프 질레도 골려주곤 했다. 하지만 그 사제는 화를 몹시 잘 내는 성격이었기 때문에 그를 대할 때는 약간 조심했다. 익명의 동창생이 전한 바에 따르면 어느날 메지에르의 이 통학생이 질레 신부에게 질문을 했는데, 그 내용인즉 교황청에서 발행한 화폐가 프랑스에서는 채택되지 않으니 교황은 사전꾼이 아니냐는 것이었다. 신부는 과장된 제스처로 깃 달린 벨벳 망토를 다시 매더니, 완전히 창백해진 채 소리를 지르면서 문고리를 잡았다.
"여러분들이 이 자리에서 나의 신조를 모욕했기 때문에 나는 나가겠어요!"
그 후 이 사건을 무마하기 위해 교장은 온갖 외교술을 동원해야만 했다.
친구들 사이에서 랭보는 '멋진 아이'로 통했다. 랭보의 위세 때문만이 아니라 학생들이 쓰는 은어처럼 그가 비굴하게 '핥는', 즉 아부하는 법이 없이 1등을 유지할 수 있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그래서 아이들은 도움을 청할 일이 있으면 항상 랭보를 생각했다. 랭보는 꼭 골동품 수집가 같았다고 이 동창생은 계속 말을 이어간다.
사소한 부탁이라도 받으면, 랭보는 친구가 원하는 책들을 시내에서 모두 구해보려고 애를 썼다. 때로는 일석이조였다. 일단, 책을 한 권 사서 페이지를 자르지도 않고 밤새 모두 읽어치우고, 다음날 그것을 서점에 돌려주었다. 실수로 다른 책을 골랐다고 변명을 하면서 정작 심부름을 맡은 책과 바뀌서, 그 책 역시 친구에게 건네 주기 전에 다 읽어 버렸다.
그가 몇 달 만에 읽은 책의 수는 믿을 수 없을 정도의 양이었다. 이장바르나 드브리에르, 그리고 브르따뉴뿐만 아니라 교장도 랭보에게 책을 빌려주었다. 랭보는 그 책 전부를 왕성한 욕구를 갖고 읽어치웠다. 철학, 사회학, 정치학 서적들, 띠에르, 미녜, 토끄빌, 에드가 끼네, 프루동, 루이 블랑의 저서들……. 그리고 당연히 고전 작가들, 시인들, 거기다 자주 성경 훑어보는 일도 빠뜨리지 않았다.
랭보는 학교에서 기숙생들이 벌이는 장난에는 끼지 않았다. 그들은 밤에 헛간을 여기저기 돌아다녔는데, 남은 사과나 교장과 그의 아내와 딸의 속옷을 주워 모으곤 했다. 아니면, 근처의 수녀원 숙소로 '기습'을 하든지, 뒤깔 광장의 까페 주인인 뒤떼름 씨 집으로 외출을 했다. 뒤떼름의 아들은 그 기숙생들이 필요로 했던 펜팔 상대를 그들에게 소개시켜 줘서 그들이 빨리 떠나도록 유도하곤 했다.
--- pp.85~87
4월이 되자 예상했던 대로, 자금 사정이 최악이었다. 게다가 빚까지 진 상태였다. -그가 만든 여행카드 때문이었을까?- 그때 한 가지 생각이 떠올랐다. 베를렌드에게 부탁하는 것이다. 그러면 거절하지 못하고 그리스도의 사랑을 베풀어 주겠지. 랭보는 용기를 내서, 들라에를 통해 베를렌느에게 몇 프랑 보내달라고 부탁했다.
이 시기에 그들의 사이는 나쁜 편이 아니었다. 슈투트가르트에서 지내기가 지겹다고 랭보가 불평하자 베를렌느는 -들라에를 통해서- 친절한 답장을 보내왔다. 음울한 생각을 걷어 버리고, 기분전환을 해봐, 까페에도 가보고 극장에도 가보는 것이 어때... 하지만 돈 요청에는 발끈했다. 아니 안돼지, 그 웃기는 이야기는 이제 집어치워! 황금알을 품던 거위는 이미 죽어 버렸어! 그는 한마디로 잘라 거절했다. 자기가 거절했을 경우 랭보가 협박조로 다시 요구할까봐 미리 엄포를 놓은 것이다. 얼마 안 있어 랭보는 독서로 가득 찬 편지를 한통 받았는데, 베를렌느가 술에 취해 횡설수설한 편지였다. -그는 이상한 표현을 쓰기도 했다. 가령 '신경질적인 젊은 남자의 변형들', '쓰레기들', '포타라다'등등-
완전히 절교였다.
--- pp.339~34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