확장메뉴
주요메뉴


닫기
사이즈 비교
소득공제
비평가의 임무

비평가의 임무

[ 양장 ]
리뷰 총점10.0 리뷰 1건 | 판매지수 24
정가
25,000
판매가
22,500 (10% 할인)

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15년 10월 16일
판형 양장?
쪽수, 무게, 크기 608쪽 | 722g | 135*205*35mm
ISBN13 9788937432156
ISBN10 8937432153

책소개 책소개 보이기/감추기

목차 목차 보이기/감추기

한국어판 서문
감사의 말
서문

1 샐퍼드|케임브리지
2 신좌파|교회
3 개인|사회
4 정치|미학
5 비평|이데올로기
6 마르크스주의|페미니즘
7 이론|실천
8 옥스퍼드|더블린
9 문화|문명
10 죽음|사랑
결론


함께 읽을 책
참고 문헌
옮긴이의 말
인명 색인

저자 소개 (3명)

출판사 리뷰 출판사 리뷰 보이기/감추기

◆ 시대정신에 반항한 헌신적인 사회주의자이자,
우리 시대의 뛰어난 문학 이론가이자 비평가인
테리 이글턴의 지적 자서전


영국의 마르크스주의 비평가 테리 이글턴과 유니버시티 칼리지 런던(UCL)의 영문학자인 매슈 보몬트가 2008년에서 2009년 사이의 9개월간 나눈 일련의 대담을 엮은 이 책은 이글턴의 어린 시절부터 시작해 그가 집필한 모든 책, 그리고 가장 최근의 비평적 화두에 이르기까지 그의 전 생애를 포괄하고 있다. 초점은 비평가로서의 이글턴의 학문적 여정에 맞춰져 있는데, 근 반세기가 넘는 기간에 걸쳐 이글턴이 실존주의, 페미니즘, 포스트모더니즘 등 일련의 이론적 담론들을 취하여 어떻게 마르크스주의를 심화하고 갱신하고 재정립하는지를 낱낱이 보여 준다. 끊임없이 사유하고 새로운 지적 도전들에 대응하며 계속 발전하고 변화해 가는 모범적 능력을 보여 주는 이글턴을 만날 수 있다.

지적 유산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아일랜드계 노동자 계급 집안에서 태어난 이글턴은 14세 무렵부터 ‘좌파 지식인’이 되기를 꿈꾸며 청년 사회주의자 클럽에 가입하고, 케임브리지 영문과에 입학해 당대 최고의 영문학자 리비스의 강의를 듣다가, 리비스의 제자이면서 그를 마르크스주의 문학 이론으로 돌파하는 레이먼드 윌리엄스를 만나면서 그의 제자가 되고, 1960년대 후반 구조주의와 정신분석, 포스트모더니즘 등으로 대표되는 프랑스 이론을 만나고, 이를 섭렵하면서도 마르크스주의의 관점을 확고히 유지하면서 옥스브리지의 이단아가 되며, 출간하는 책마다 비평계 안팎의 논란을 불러일으킨다.

이 책을 돋보이게 만드는 것은 무엇보다도 철저하게 이글턴의 저서들을 탐독하고 질문하는 매슈 보몬트의 성실성이다. 그의 사려 깊은 통찰력으로 인해 이 책은 그의 책들을 몇 권 읽지 않은 일반 독자에게도, 평생을 마르크스주의자로 살아온 한 문학 비평가의 학문적 행로를 통해 현대 문학 비평의 흐름을 한눈에 파악할 수 있게 하는 입문서로서 손색이 없다. 또한 레이먼드 윌리엄스, 비트겐슈타인, 루카치, 골드만, 알튀세르, 벤야민, 브레히트, 아도르노, 라캉, 제임슨, 지젝 등 수많은 비평가 및 이론가와의 만남, 지난 50년간 좌파에게 있어 가장 중요한 역사적 사건들에 대한 이글턴의 개인적, 정치적 반응을 상세히 그려 냄으로써 서구 문학 비평과 근현대 사상에 관한 역사서를 읽는 듯한 재미를 선사한다.

무엇보다도 이 책은 노동 계급 출신의 마르크스주의 비평가가 리비스주의, 문화 연구, 구조주의, 페미니즘, 포스트모더니즘, 포스트식민주의 등 당대의 이론적 물결들을 어떻게 겪어 내는지, 그 속에서 무엇을 흡수하고 무엇을 거부하는지, 그러면서도 끝까지 자신을 규정하는 ‘마르크스주의 비평가’라는 정체성을 어떻게 지켜 내는지를 보여 준다.

◆ 이론은 곧 실천이자 민주적인 것

테리 이글턴에 따르면, 이론이란 우리가 습관적으로 하고 있는 일에 대해 불편한 질문을 제기하는 것이다. 이글턴에게 이론은 소수의 전유물이나 전문적인 방법을 요하는 문제이기보다는, 우리가 일상적으로 행하는 실천 행위들에 대해 일반적인 질문을 던지는 하나의 방식이다. 따라서 인간은 이론의 도움으로 자신의 삶을 숙고하고 발전해 나갈 수 있다.

%%저는 이론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이론은 우리가 습관적으로 행하는 일들에 대해 불편한 질문들을 제기하기 때문입니다. 이론은 우리의 습관적인 추정과 실천이 어떤 이유에서든 무너지기 시작하는 지점에서 생겨나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론은 그러한 현실에서 한 발 물러나 ‘실제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거지? 우리는 무엇을 하고 있으며, 그건 현실과 어떤 관련성이 있는 거지?’ 하고 물음을 던지는 하나의 방식입니다. 이런 질문들이야말로 습관적인 실천이 광범위한 권력 구조와 어떻게 관련되어 있는지 묻는다는 점에서 진정 정치적인 것이라고 생각합니다.(322쪽)%%

‘이론(theory)’이라는 단어의 어원인 그리스어 ‘theoria’가 기본적으로 ‘보다(to look)’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는 점은 의미심장하다. 영문도 모른 채 뭔가를 습관적으로 하면서 그것을 상식이자 진리라고 생각하는 우리에게 이론은 ‘볼’ 것을 주문한다. 따라서 이론을 공부하는 가장 일차적인 목적 역시 새롭게 보는 것, 다르게 보는 것, 뒤집어 보는 것에 있다. 살펴볼 수 있는 이론적 자세가 없이는 실천 역시 맹목적이 될 가능성이 높다.

이글턴은 현상학, 해석학, 기호학, 구조주의, 포스트모더니즘, 정신분석 등 이론들을 점검하면서 그 이론의 핵심적 개념과 가치관들을 언제나 그것이 탄생하게 되는 사회적, 역사적 배경과 그것이 수용되고 활용되는 정치적 맥락 속에서 바라본다. 이글턴에게 마르크스주의 비평이나 이론은 텍스트를 경유하여 역사와 현실을 거꾸로 해독하고 읽어 내는 태도를 가리킨다.

그러므로 모든 비평은 어떤 의미에서 언제나 정치적인 것이다. 비평 자체의 다양한 조류가 이데올로기적 조건들에 의해 형성되고, 아무리 스스로를 비정치적인 것으로 내세운다 해도 비평은 이미 정치적 함의를 불가피하게 담고 있는 문화를 전파하고 해석하는 전술적 역할을 수행하기 때문이다. 이글턴은 비평이 새로운 사회적, 지적 참여에 매진할 수 있는 방법, 그리고 사회에서 정치적 기능을 완수하는 일에 대한 비평가의 책임을 탐구하는 데 전념한다.

◆ 억압받고 착취당하는 자들이 다수가 된 세계에서
비평가의 임무란 무엇인가?


%%저는 대중화하는 것을 좋아합니다. 저는 더 많은 관중을 위해 글을 쓰고 싶어요. 실제로 『문학 이론 입문』에 대한 가장 흥미로운 반응은 대학이 어떻게 생겼는지 본 적도 없는 사람들로부터 온 것들입니다. 이들은 그 분야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알고 싶어 하는 현명한 일반 독자들일 뿐이지요. 급진적 지식인은 더 넓은 지지층을 끌어내야 할 의무, 혹은 적어도 자신의 지지층이 이해할 수 있는 글을 쓸 의무가 있습니다.(325쪽)%%

이글턴은 이미 학문적 위치를 확립하고 광범위한 독자들에게 다가갈 수 있으면서도 그런 일에는 관심조차 없고 이를 자신들의 정치적 책임의 일부로 여기지도 않는 급진적 지식인들을 신랄히 비판한다. 가야트리 스피박이나 호미 바바가 대중이 그들의 글을 이해하려는 마음조차 먹지 못하게 만드는 방식으로 글을 쓴다고 비판하는 그의 지적은 날카롭고 가차 없다.

‘공적 지식인’이란 학문 연구와 교육이라는 전통적 지식인의 역할에 더해 공적으로 관심사가 되는 일(public affairs)에 적극적으로 의견을 개진하며 참여하는 지식인을 의미한다. 이글턴은 오늘날 학계 너머의 영역들을 발견하는 공적 지식인이 극소수라고 말한다. 그래서 그는 반전 집회, 노동자교육협회의 수업, 노동자 작가 모임 등으로부터 강연 요청을 받으면 언제나 적극적으로 참여하며, 영국 무슬림 집단을 향한 마틴 에이미스의 끔찍한 인종주의적 공격에 대한 논쟁이 보여 주듯 기득권 세력에 맞서길 주저하지 않는다.

전문적인 글쓰기와 대중적인 글쓰기를 병행하는 이글턴의 관점에서 문학 비평은, 자본주의 사회에서의 그 주변적 지위에도 불구하고 경시할 만한 분야가 아니다. 이글턴은 지난 반세기 동안 내내 전통적 지식인의 고고학을 재구성하고 유기적 지식인에게 열려 있는 정치적 가능성들을 모색하면서, 자본주의 사회에서의 지식인의 역할을 계속해서 추궁해 왔다.

전 세계를 휩쓰는 신자유주의적 세계화의 광풍, 9·11 이후 끊임없이 이어지는 전쟁, 테러리즘과 종교적 근본주의의 번성, 핵 개발과 기후 변화의 위협 등으로 오늘날의 세계는 전 인류가 경험해 보지 못한 재난 상태에 직면해 있다. 새로운 대안이 필요하지만 출구가 보이지 않는다. 이글턴은 우리로 하여금 이런 상황에서 우리가 처한 문제들을 다시금 고민하게 한다. 그리고 이론을 그 출발점으로 삼는다.

이글턴은, 윤리와 정치는 “분리된 영역이 아니라 동일한 대상에 대한 각기 다른 관점이다. 전자가 필요, 욕망, 질, 가치 같은 문제를 탐구한다면, 후자는 그러한 문제들을 이해할 수 있게 만들어 주는 관습, 권력 형태, 제도, 사회적 관계를 점검한다.”라고 주장하면서, 자신의 윤리학을 “타인 또한 그 본성을 실현할 공간을 만들어 내는 방식으로 자신의 본성을 실현하는 것”이라고 요약했는데, 바로 이러한 윤리가 실제로 사회를 정치적으로 완전히 변환시키는 일을 수반한다. 벤야민에 따르면 위대한 비평가란 “자신의 비평적 분석을 토대로 다른 이들이 자신들의 의견을 형성할 수 있도록” 하는 사람이다. 이 책은 저 벤야민의 금언에 대한 전형적인 예를 이글턴을 통해 보여 준다.

회원리뷰 (1건) 리뷰 총점10.0

혜택 및 유의사항?
이론, 비평, 혁명적 주체, 『비평가의 임무』 내용 평점5점   편집/디자인 평점5점 YES마니아 : 골드 c*****3 | 2023.03.12 | 추천0 | 댓글0 리뷰제목
테리 이글턴의 『비평가의 임무』는 매슈 보몬트와 테리 이글턴의 대담집이다. 인터뷰어인 매슈 보몬트는 인터뷰이인 테리 이글턴의 인터뷰가 진행될 당시까지의 모든 저작을 검토하고, 테리 이글턴의 삶과 그의 사유를 둘러싼 사회적 맥락을 폭넓게 건드린다. 테리 이글턴의 반대자들 비판까지도 꼼꼼하게 살펴보고 인터뷰이에게 제시하여 그의 논리를 더욱 명료하게 확인한다. 그러니까;
리뷰제목

테리 이글턴의 『비평가의 임무』는 매슈 보몬트와 테리 이글턴의 대담집이다. 인터뷰어인 매슈 보몬트는 인터뷰이인 테리 이글턴의 인터뷰가 진행될 당시까지의 모든 저작을 검토하고, 테리 이글턴의 삶과 그의 사유를 둘러싼 사회적 맥락을 폭넓게 건드린다. 테리 이글턴의 반대자들 비판까지도 꼼꼼하게 살펴보고 인터뷰이에게 제시하여 그의 논리를 더욱 명료하게 확인한다. 그러니까 테리 이글턴을 숭상하기 위해 기획된 인터뷰가 아닌 것이다. 물론 매슈 보몬트는 테리 이글턴에게 동조적인 입장에 서 있지만, 인터뷰를 대화적인 분위기에 더해 논쟁적으로 이끌어 간다. 지금까지 읽었던 인터뷰집 중에서 가장 성실하고 꼼꼼하며 상대방에 대한 존중과 관심이 진하게 묻어난다. 테리 이글턴에게 애정이 없다면 그토록 방대한 내용을 예리하게 물어볼 수 없으리라.

 

이 책은 테리 이글턴에 대해서 조금은 알고 있는 사람에게, 그의 저작이 약간 어렵게 느껴지는 경우에 읽기 최적화된 책이다. 그가 저술한 책 중에서는 『문학 이론 입문』이 가장 유명하다. 그 책은 문학 이론에 대해서 나름의 체계와 맥락과 관점을 녹여서 서술한다. 인터뷰집에서도 언급하고 있듯 그 책은 사실 마르크스주의에 대해서 언급하지 않으면서도 여타 문학 이론들을 마르크스주의로 흡수하는 놀라운 솜씨를 보여준다. 처음 그의 책을 접한 독자라면 책의 마지막 결론을 읽으면서 어리둥절할 것이다. 대체 그래서 어떤 이론이 가장 좋다는 거지? 인터뷰집에는 『문학 이론 입문』을 논하면서 테리 이글턴의 반대자들이 그에게 '복화술사'라는 별명을 붙여주었다는 언급이 있다. 그의 서술 솜씨가 탁월함을 보여주는 사례라 하겠다. 인터뷰집은 테리 이글턴이 저술한 책을 두고 저작 배경이나 논쟁적 맥락을 소상히 알려준다.

 

방대한 인터뷰 과정을 모두 요약하기에는 벅차고 비평에 대한 생각을 발전시키는 데에 도움이 되었던 지점을 되짚는 것에 만족하려 한다. 내가 테리 이글턴에게 궁금했던 것은 1) 도대체 이론은 무엇인가? 어떤 쓸모가 있는가? 2) 비평은 무엇이며, 비평가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3) 그가 전개한 사상의 핵심은 무엇인가? 였다.

 

내가 이론을 궁금해하는 까닭은 이론이 비평에서 차지하는 위치가 모호하기 때문이다. 문학 연구 내지 비평은 반드시 작품을 대하는 방법론을 요구하게 마련이다. 이 때 방법론으로 흔히 차용되는 것이 문학 이론인데, 문학 이론에 따라 문학 텍스트들은 제각기 다양한 의미를 산출한다. 신비평, 구조주의비평, 신역사주의비평, 독자중심비평, 전기비평, 마르크스주의비평, 탈구조주의비평, 문화비평, 정신분석비평 등등 20세기에 만개했던 다양한 이론들은 문학을 해석하는 관점을 제공해 주었다. 그런데 각각의 이론들은 제각기 유행하는 시기가 있으며, 유행이 지나면 시들해졌다. 다양한 이론의 흥망성쇠는 이론의 상대주의를 낳았다. 이제 이론은 자동차 옵션을 고르듯 취향이나 필요에 따라 선택 가능한 것이 되었다. 상대주의는 동시에 허무주의를 낳는다. 절대적인 진리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생각은 이론에 대한, 해석에 대한 회의를 불러일으킨다.

 

이론이 가지고 있는 또 다른 문제점은 이론이 텍스트를 집어 삼키는 경우도 있다는 것이다. 이론이 텍스트에 앞서서 모든 텍스트가 이론을 뒷받침하는 증거로 전도되는 경우가 발생하기도 한다. 환원주의의 위험이 있는 것이다. 이 책에서도 『유배자와 망명자』를 언급하면서 현대적 작가치고 유배자가 아닌 작가가 있겠느냐고 매슈 보몬트가 질문하는데, 테리 이글턴도 그 난점을 그대로 인정한다. 특정한 개념으로 문학 작품들을 포착할 때 개념의 범주가 지나치게 크면, 모든 작가, 모든 작품이 다 개념적 의미로 환원될 위험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론 없이 문학 작품을 해석하기란 불가능하다. 비평하는 누군가가 자신은 이론을 활용하지 않는다고 말한다면 이론이 없는 척하는 이론을 사용하고 있다고 보아도 좋다. 달리 말하자면, 그 때의 이론은 이미 지배적 담론이기 때문에 이론이라고 굳이 이름 붙일 필요가 없으리라는 혐의를 피할 수 없다. 상식은 지배적 이데올로기와 등가인 셈이다. 이를 거꾸로 말하면, 이론은 상식 바깥을 사유하게 하는 도구이다. 편견과 고정관념으로 굳어진 우리의 인식론적 관성을 이론의 도움으로 파괴할 수 있다. 그 때에 문학 텍스트는 다시 태어난다. 부활한다.

 

제가 느끼기에 이론이 중요한 이유는 그것이 우리가 습관적으로 행하는 일들에 대해 불편한 질문을 제기하기 때문이었습니다. 이론은 우리의 습관적인 추정과 실천이 어떤 이유에서든 무너지기 시작하는 지점에서 생겨나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론은 그저 그러한 현실에서 한 발 물러나 '실제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거지? 우리는 무엇을 하고 있으며, 그건 현실과 어떤 관련성이 있는 거지?' 하고 물음을 던지려 하는 하나의 방식입니다. 저는 이론이란 우리의 습관적 실천들에 대해 일반적인 질문을 제기하는 한 방식으로 보지, 어떤 난해한 것, 전문적 방법론의 문제로 보지 않습니다. 저는 이런 질문들이야말로 습관적 실천이 광범위한 권력 구조와 맺는 관계를 묻는다는 점에서 진정 정치적인 질문들이라고 생각합니다. (322쪽)

 

 

카프카식으로 말하자면 이론은 상식과 편견으로 얼어붙은 우리의 인식의 바다를 깨뜨리는 도끼다. 아도르노의 미학 이론은 문학 텍스트를 고통의 결정화로 본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쓸모 없고 무력하다는 예술작품의 실존이 자본주의 사회의 최대 위협과 탄핵이 된다. 무용함의 유용성이다. 그러한 관점에서 문학 텍스트를 바라봤을 때, 매끈하게 다듬어진 서정주의 「국화 옆에서」보다는 균열과 파편으로 이어붙여진 이성복의 「그 날」이 더 진실한 텍스트로 다가온다.

 

그렇다면 비평은 무엇인가? 비평은 문학에 대한 분석, 해석, 가치평가를 포함한다. 그리하여 문학 작품의 소통을 촉진하는 담론을 유포한다. 비평은 텍스트에 대한 독서 기록으로서 잠재태에 머물러 있는 문학을 현실태로 일깨운다. 의미를 해석하고 텍스트의 가치를 평가하는 과정에서 작품을 정위한다. 그러므로 비평은 문학의 제도를 형성하는 강력한 권력이자 기제이다. 비평은 텍스트를 해방시키는 동시에 구속하는 이중적인 기능을 한다. "지식인의 비평 행위에는 심각하게 모순적인 데가 있어요. 해방적이 되는 것을 목표로 하는 바로 그 순간에 자신이 해방시키려 희망하는 그것으로부터 거리를 두고 있다는 점을 알게 될 테니까요."(373쪽)

 

테리 이글턴은 비평에서의 꼼꼼히 읽기를 강조한다. 문학 비평은 무엇보다도 언어의 질감을 느끼는 일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텍스트를 잘 읽어 내기 위해서는 어조를 듣고, 질감을 느끼고, 속도나 분위기의 변화를 알아차릴 수 있어야만 해요. (중략) 비평은 우리가 속해 있고, 그래서 그 속에서 우리가 역량을 발휘해야 하는 매체, 즉 언어의 두께와 복잡함을 살피는 일입니다." (473쪽) 앞서 이론에 대해서 언급했듯, 이론이 지나치게 앞서게 되면 텍스트가 지닌 결에 둔감해지기 쉽다. 시에서 주로 발견되는 운율, 문장 구조, 이미지, 연과 행뿐만 아니라 구두점까지도 세심하게 살피면서 읽을 때 비로소 텍스트는 생기를 되찾는다.

 

그리하여 비평이 하려는 것은 무엇일까? 비평은 일부 교양 있는 혹은 양식 있는 지식인의 전유물인가? 오늘날 문학 비평이 소통되는 공간을 살펴보면 비평은 전문화, 고도기술화되어 가는 것 같다. 비평이 소통되는 공론장은 대체로 문예지를 벗어나지 않으며, 기껏해야 신춘문예 당선작으로 언론 매체에 일 년에 한 번 공개될 뿐이다. 문학 비평은 대중과 일상으로부터 멀어져 있고 훈련을 거친 전문가들 사이에서만 쓰이고 읽힌다. 그나마 비평이 독자와 만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시와 소설에 기생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시와 소설의 뒤에 해설 혹은 발문이라는 이름으로. 그러나 책을 해설해 준다는 의도로 쓰인 비평이 출판사, 작가와의 친분 같은 외적 압력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을지 의문이다. 안타깝게도 비평은 교양인의 전유물로 남아 있거나 동맥 경화에 걸린 것처럼 소통이 막혀 있다.

 

모든 비평은 정치적이다. 테리 이글턴은 고대 수사법 담론을 현대의 공적 담론으로 전유한다. 오늘날 수사법은 미문을 만드는 수단 정도로 이해되고 있지만, 고대의 수사법은 비유적 발화에 더하여 웅변술의 실천이라는 의미가 포함되어 있었다. "고전 고대 시기의 수사법은 크게 두 가지 의미를 가지는데, 하나는 비유적 발화 기술 혹은 학문이라는 의미이고, 다른 하나는 효과적인 공개 웅변술의 실천이라는 의미지요. 이 두 의미는 서로 얽혀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기록되어 있는 가장 오래된 비평 형식(수사법)은 텍스트와 정치의 결합인 것입니다. (중략) 페이지 위에 찍힌 전설적 단어들에 주의를 기울이는 일은 동시에 이 단어들을 구성하는 역사적 힘에 주의를 기울이는 작업이 되어야만 합니다." (474쪽) 그의 말에서 수사법을 비평으로 대체해도 좋을 것이다. 비평은 사회의 물질적 조건과 제도를 변형하는 데에 기여하는 텍스트가 되어야 한다. 허나 오늘날은 예술지상주의 내지는 교양중심주의와 같은 내재적인 효용성만 강조되고, 비평의 정치성은 억압되고 있다.

 

비평이 정치성을 회복할 때, 문학이 건드리고 다가가는 실재를 밝히면서 유토피아의 전망을 보여줄 것이다. 동시에 유토피아를 향한 실천을 가능케 할 것이다. 궁극적으로 독자는 좋은 비평을 읽으면서 지적 해방을 경험하고, 더 나은 사회를 향한 변화의 주체로 거듭난다. '혁명적 주체'는 그러한 해방, 주이상스, 실재를 실현하는 실존이다.

 

성자나 순교자는 한 차원 높은, 새로이 변화된 존재로 나아갈 수 있다는 믿음에 입각해 자신의 현재 조건을 버릴 수 있는 용기를 가진 사람들입니다. 이것은 의기양양한 확신이 결코 아닙니다. 혁명적 주체에게 요청되는 일이 바로 이것, 즉 미래가 현재보다 훨씬 더 참담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사실 외에는 그 어떤 것도 보장된 바가 없는 상태에서도 사회를 적극적으로 재형성하기 위해 자기 자신을 소멸시키고 해체하는 행위입니다. 혁명적 주체는 그의 '죽음'으로부터 창조적인 무언가를 만들어 내야만 하는 것이지요. 이와 반대로, 악마적인 사람들은 죽음 충동의 손아귀에 있는 이들, 즉 죽음 충동이 주는 희열에 병적으로 매달림으로써 죽음 충동을 대리하는 삶을 영위하는 이들입니다. (462쪽)

 

문학의 공간이 개시하는 바깥(블랑쇼)에 육박하는 혁명적 주체는 테리 이글턴의 논의에서 파르마코스로 변주된다.

 

파르마코스는 폴 리쾨르의 표현에 따르면 “결백한 죄인(guilty innocent)”입니다. 희생양은 공동의 죄를 짊어지고, 오이디푸스처럼 끔찍하고 소름 끼치게 훼손된 인간이 됩니다. 마르크스에게 프롤레타리아가 인간의 총체적 상실과 변형을 체화하는 것처럼, 희생양은 집단 전체의 폭력과 증오가 수렴되는 지점입니다. 그러나 프롤레타리아가 그렇듯 파르마코스 역시 그 자체로 결백합니다. 그가 폭력에 휘말렸다면, 그것은 폭력이 그에게 행해진 것이지 그가 폭력을 저지른 게 아니니까요. 그리스도와 마찬가지로 이 희생양이 의도적으로 자신을 보편적 강탈을 가리키는 시퍼런 기표로 변모시키려 할수록 그는 더욱더 혐오스러워지지만, 같은 이유로 더욱더 헌신적이고 신성한 존재가 됩니다. 고대에 '성스럽다'는 말은 신성하다는 의미와 저주받았다는 의미를 함께 지니고 있었어요. 이런 의미에서 파르마코스는 차이를 흩트리고 관습적인 사회적 논리를 손상시킵니다. 그는 소멸이 권력이 되는 방식을 나타냅니다. 지상의 찌꺼기 같은 인간이 바로 자신이 겪은 그 강탈로 인해 힘을 획득하게 되는 거지요. 더 이상 떨어질 곳이 없는 이들은 아무것도 잃을 게 없기 때문에 위험합니다. 고대의 희생양은 따라서 근대의 혁명적 주체를 예비하는 전령입니다.(464~465쪽)

 

파르마코스는 저주/신성, 폐기/해방의 모순을 내재한다. 사회의 폭력을 수렴하면서 세계에 폭력을 가하는 기표이다. 기독교에서는 이를 메시아라고 지칭할 것이다. 카프카의 소설 『성』의 주인공 K는 가장 적실한 사례이다. 비평이 문학에서 밝히고 독자에게 개시해야 할 영역은 이처럼 상식의 이데올로기 바깥의 지점이다. 테리 이글턴은 그것을 '문화적 해방'이라고 명명한다.

 

1981년에 나온 벤야민에 관한 제 책에서 저는 사회주의 비평가의 주된 임무는 대중의 문화적 해방에 참여하는 것이라고 썼습니다. (중략) 이런 의미에서 비평가의 진정한 임무는 아직 도래하지 않은 상태입니다. 매순간 순간이 언제라도 메시아가 들어올 수 있는 좁은 문이라는 벤야민의 말이 문자 그대로 옳은 건 아닙니다. 그러나 진정 불시에 우리를 덮치는 것이야말로 미래가 곧잘 하는 일이지요. 이런 맥락에서 비평가의 임무를 사유하는 것, 그것은 도달한 미래 앞에서 우리가 무력해지지 않을 수 있는 한 방법입니다. (503쪽)

 

굳이 사회주의라는 말이 아니더라도 비평이 실천해야 할 소명은 아직 도래하지 않은 문화적 해방과 실천이다. 비평이 고상한 취미활동이나 지적 교양을 과시하는 이상이 되어야 하는 까닭도 여기에 있다.

이 리뷰가 도움이 되었나요? 공감 0 댓글 0
  •  쿠폰은 결제 시 적용해 주세요.
1   22,500
뒤로 앞으로 맨위로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