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어거스틴의 삶에서 두려움에서 나온 허영은 교만에서 나온 허영과 함께 발견된다. 《고백록》에서 가장 유명한 예는 어거스틴이 십 대 시절에 친구들과 배를 훔친 이야기다. 그 일화에서, 어거스틴의 허영은 교만만큼이나 부끄러움에 대한 두려움과 겉모습을 지키려는 필요에서 나왔다. 그는 그 도둑질에 대한 자신의 동기들을 되새겨 보면서, 물론 그 동기 중 하나는 교만이었지만, 또래 집단에게 거절당할 것 같은 두려움도 한몫했다고 인정한다.
그렇다면 왜 나는 혼자서는 하지 않았을 행동을 하며 즐거워했는가? … 혼자서라면 그랬을 리가 없고,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 친구가 위험한 적이 될 수 있다. … 누가 “가서 하자”라고 말하는 순간, 부끄러운 줄 모르고 하게 되기 때문이다.11
어거스틴은 2권에서 이런 고백으로 기조를 삼는다. “나는 인간의 인정을 받으려는 야심이 컸다.” 그는 “사랑하고 사랑받기를” 갈망했다. 《고백록》 전체에 메아리치는 주제다. 다음 문단에서 어거스틴은 친구들의 주목과 인정을 받으려는 갈망에 어떻게 지배되었는지 자세히 회고한다. 그는 “덜 뻔뻔한 것이 부끄러웠다”고 말함으로써 인생의 그 시기에 두려움에서 나온 허영에 지배당했음을 밝힌다.
나는 그렇게 맹목적으로 죽자사자 매달렸고, 친구들보다 덜 뻔뻔한 것이 부끄러웠다. 친구들은 자기들이 저지른 만행을 떠벌렸다. 그들은 야비함이 심할수록 영광을 받았다. 내가 그런 만행을 부리며 즐거워한 것은 사실 그 자체의 쾌락 때문만이 아니라 주로 칭찬을 듣기 위해서였다. 그게 더 나빴다. … 나는 실제보다 나쁜 척해서 더 칭찬을 받아냈다. 그룹 내에 나보다 더 최악인 친구가 있을 때는 내가 하지 않은교만이었지만, 또래 집단에게 거절당할 않은 나쁜 것도 했다고 했다. 그들보다 착하거나 올바르기 때문에 무시당하거나 존경받지 못할 일이 없게 했다.
4세기 스타일의 천박하고 너저분한 사물함 잡담이 따로 없다. 어거스틴의 인생 초기의 친구 관계는 ‘친구들 중의 하나’로 받아들여져서 칭찬과 용납을 받기 위한 거짓말로 점철되었다.
주목받으려는 어거스틴의 절박함은 가짜 친구 관계로 이어졌다. 어거스틴은 사람들에게 인정받고 사랑받기를 원해서 허영된 허풍과 가장을 친구들에게 늘어놓았지만 그가 정말로 바란 용납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는 친구들로부터 부서지기 쉽고 피상적이며 사실과 다른 인정을 받았다.
관계뿐 아니라 경력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그를 뛰어난 학생으로, 뛰어난 웅변가로 몰아간 것은 교만에서 나온 허영에 추가해서 좋은 평판을 얻으려는 집착이었다. 그는 인간의 의견은 변덕스러고 가치가 없음을 인정하면서도 그 무분별한 욕구에 휘둘렸다. 로마의 웅변가인 히에리우스(Hierus)를 어거스틴이 어떻게 묘사하는지 들어보면 어거스틴의 갈망이 어땠는지 알 수 있다.
나는 그를 본 적이 없었지만, 그의 높은 교양에 대한 명성을 듣고 그 사람을 사랑했다. 그가 말한 것을 듣고 좋아했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내가 그를 사랑한 것은 남들이 그를 좋것 같은 두려움도 한몫했다고 인정한다.
게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사람들은 그를 하늘 꼭대기까지 칭찬했다. 그리스어로 수사학 교육을 받은 시리아인이 라틴어로도 뛰어난 웅변가가 되었고 철학적 질문들의 연구에 박식하다는 것에 경탄했다. … 그래서 칭찬받는 사람은 사랑받는다는 것이 드러났다.
이는 요컨대 어거스틴의 전략이었다. 그는 칭찬과 영광을 받고자 했다. 사랑받는다고 느낄 필요가 절실했기 때문이다. 어거스틴이 촉망받는 웅변가로서 남들의 인정에 취약했다는 점은 자신을 히에리우스와 비교한 글에 잘 드러난다.
그 웅변가는 내가 너무 좋아해서 닮고 싶은 타입이었다. … 그러나 내가 그를 사랑한 것은 사람들이 그를 칭찬했기 때문이지 그의 실제 성취 때문이 아니었다. 어떻게 그걸 깨닫고 확신하며 이렇게 고백할 수 있는가? 만일 사람들이 그를 칭찬하기는커녕 조롱하고 비판하고 야유했다면, 나는 그에게 관심을 갖지 않았을 것이다. 분명히 실제 사실이나 그 사람에 대해 아무 신경도 안 썼을 것이다. 중요한 것은 [그에 대해] 말하는 사람들의 감정뿐이었다. … 나의 연설과 연구가 그에게 알려지는 것이 내겐 중요했다. 만일 그가 칭찬한다면, 나는 매우 기뻤을 것이다. 그러나 만일 그가 인정해 주지 않는다면, 내 허황된 마음은 상처를 받았을 것이다. 나에게 확고한 [하나님이] 계시지 않았기 때문이다.
어거스틴의 주 관심사는, 그의 일, 혹은 그가 대중의 인정을 받을 가치가 있느냐의 사실에 있지 않았다. 어거스틴은 히에리우스처럼 되는 것보다, 히에리우스처럼 인기 있고 칭송 받기를 원했다. 어거스틴의 주된 관심사는 알려지고 사랑받는 것이었지, 무엇으로 알려지고 사랑받느냐가 아니었다.
목표가 그러하기 때문에, 어거스틴이 거듭거듭 그와 같은 직업을 가진 대부분의 사람들은 갈채를 받기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말하고, 심지어 거짓말까지 서슴지 않는다고 이렇게 말하는 것이 놀랍지 않다. 어거스틴은 황제를 찬양하기 위한 연설을 준비했던 때를 이렇게 회상한다. “나는 수많은 거짓말을 하면서 그것이 사실이 아님을 아는 사람들로부터 좋은 평판을 들으려 했다.” 관객을 만족시키려면, 이미지가 중요하다.
어거스틴은 친구들을 위해 거짓말을 했듯이, 직업적 달변에 필요했기 때문에 거짓말을 했다. 스스로 말하듯이 “웅변 시장의 판매원”16이 되었다. 그러나 그 역할에 대한 불편한 마음은 그의 회심이 가까워질수록 커졌다. 그는 그 직업에 있는 사람들을 “헛된 일을 좋아하고 거짓을 구한다”(시 4:2)는 말로 묘사하기를 좋아한다. 취약한 자아가 주목과 인정에 의존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허영은 개인적, 직업적 성공에 필수적인 생활방식이다.
어거스틴의 삶에서 찾은 이 예들에서, 그리고 우리 많은 사람들 삶에서 알 수 있듯이, 거절에 대한 두려움과 남들의 인정에 대한 과도한 의존은 자신의 선함에 대한 부풀려진 인식만큼이나 강한 허영의 동기가 된다.
어거스틴의 《고백록》에 나오는 허영의 사연들은 우리가 남에게 어떻게 보이는가에 대한 염려가 자신을 거짓되게 드러낼 수 있음을 보여 준다. 자신의 위용에 대한 자랑과 과장은 교만에 근거할 수도 있지만, ‘영광이 절실히 필요한 궁핍한’ 자아 때문일 수도 있다. 항상 남들의 인정과 주목을 바라는 욕구 배후에는 자신에 대한 깊은 부적절감이 도사리고 있는 것이다.....
--- 본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