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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내가 아니다

나는 내가 아니다

: 프란츠 파농 평전

패트릭 엘렌 저 / 곽명단 역 | 우물이있는집 | 2001년 09월 30일   저자/출판사 더보기/감추기
리뷰 총점7.0 리뷰 8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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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일 2001년 09월 30일
쪽수, 무게, 크기 304쪽 | 441g | 크기확인중
ISBN13 9788989824008
ISBN10 8989824001

책소개 책소개 보이기/감추기

목차 목차 보이기/감추기

1. 나는 누구인가
2. 서글픈 흑인
3. 내부로부터의 전쟁, 외부로터의 전쟁
4. 모국
5. 귀향
6. 가면들
7. 의식의 해방자
8. 혁명
9. 투쟁
10. 태양 속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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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패트릭 엘렌
사회연구를 위한 새로운 학교에서 심리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으며 할렘의 외래 진료 정신병원에서 일했다. 프랑스와 베네주엘라에서 살았으며 유진 랭 칼리지에서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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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윽고 얼마간의 격렬한 질의응답을 마친 다음, 시험관들이 엉격하게 선정한 환자들을 검진하는 시간이 되었다. 그 환자들 중에 프랑스 여자가 있었는데, 파농이 다가가자 그녀는 벌떡 일어나 냅다 소리를 질렀다. "이 흑인을 내 앞에서 치워 주세요!" 파농은 이것도 시험 - 자신만을 위한 특별한 시험 - 의 일부라는 것, 이 환자는 오직 자신을 시험하기 위해 심사관들이 특별히 선정한 환자라는 것을 충분히 알 수 있었다. 그러나 이미 이와 비슷한 일을 여러번 겪었던 데다 충분히 예상하고 있던 상황이었기 때문에, 파농은 계속 거세게 진료를 거부하는 시험 대상 환자에게 다가가 정중하게 질문을 했다. 어느 틈에 해는 져서 사위가 어스름에 잠기고 시험장 안에서는 때아닌 구경거리가 벌어졌다. 창 너머로 프랑스의 해방을 축하하는 폭죽이 터지기 시작하면서 더없는 진풍경이 연출되었다. 조시와 조비가 숨을 죽이며 귀를 기울이고 있을 때, 마침 대기실로 나온 한 수험생이 그들의 일그러진 표정을 보았다.
"지금 시험을 보고 있는 저 의사를 아시오?" 라고 물었다.
"그렇소, 내 동생이오만." 이라고 조비가 대답했다.
느닷없이 터뜨린 그 수험생의 웃음소리에서 조시와 조비는 일말의 안도감을 느꼈다. 그 수험생은 "저이는 정말 대단한 사람이오!"라고 감탄하면서 불꽃이 솟구치는 창 너머를 가리켰다. "야외 불꽃놀이라!" 하더니, 여전히 실랑이가 벌어지고 있는 시험장을 기웃거리며. "실내에서도 불꽃이 튀는군!" 했다.
--- pp.195-196
리베 학살에서 가족 2명을 잃은 한 소년이 어느날, 프랑스군이 모든 알제리인들을 말살할 것이라는 말을 엿듣고는, 자신을 도와줄 알제리인 친구와 함께 유럽인 친구를 야산으로 유인해 온몸을 칼로 찔러 죽였다. 그런 다음. 저들이 그랬던 것처럼 그 모습을 사진을 찍었다. 두 소년은 순순히 범행을 자백했고, 정신 감정을 받기 위해 파농에게 보내졌다.
파농이 소년에게 왜 그런 일을 했는지 묻자, 그 아이는 이렇게 대답했다. "그애는 우리와 친한 친구였어요. 그 친구를 죽여야겠다고 마음먹은 건, 유럽인들이 우리 아랍인들을 모두 죽이려 하기 때문이에요. 우리가 어른들을 죽일 순 없잖아요. 그렇지만 우리랑 또래가 비슷한 친구를 죽일 순 있을 것 같았어요. 우린 어떻게 죽여야 할지 몰라 도랑에 처박았는데, 죽진 않고 상처만 났거든요. 그래서 집에서 칼을 가져와 찔러 죽인 거예요." 파농이 왜 그 친구를 선택했느냐고 묻자, 소년의 설명은 이랬다. "그 아인 우리랑 자주 놀았어요. 다른 아이는 우리랑 같이 산에 가지 않을 것 같아서요."
--- p.81
로마에서 파농은 생명을 잃을 뻔한 고비를 몇 번이나 넘기는 행운을 누렸다. 첫 번째 행운은 그를 병원으로 이송해줄 차량이 마중하러 공항으로 가는 도중 엔진에 설치되어 있던 폭탄이 도로에서 미리 터져 차가 전소되는 바람에 목숨을 건진 것이었다. 그 폭탄에는 모두 알제리 식민주의자 테러단인 멩 루즈(Main Rouge)라는 이름이 찍혀 있었다. 두 번째 행운은 로마에서 가장 솜씨 좋은 의사를 만나 하반신이 영구적으로 마비되기 직전에 지뢰 폭발로 손상된 척추를 치료받은 것이다. 마지막 행운은, 점점 깊어지는 파농의 피해망상 덕분에 얻은 것이었다. 회복하기 위해 병실에 누워있던 어느날, 오마르라는 의사―병원에 입원할 때 기재한 파농의 가명―가 도착했다는 소식과 함께 병원 이름과 병실 호수까지 상세히 기록된 신문기사가 짤막하게 난 것을 뒤늦게 발견한 파농은 기겁을 했다. 그는 곧바로 간호사를 불러 다른 층에 있는 다른 병실로, 쥐도 새도 모르게 자신을 옮겨달라고 부탁했다. 병원 직원들은 별것도 아닌 일로 유난스럽게 군다고 못마땅해했지만, 다음날 아침에 보니 파농이 누워있던 그 침대는 밤새 총격을 받아 산산조각이 나 있었다.
--- p.260
그의 삶을 돌이켜보면, 오로지 다음과 같은 한 가지 물음을 원칙으로 삶을 선택했던 것 같다. 과연 이 선택이 사슬에 묶인 영혼들을 해방시키는 길인가? 더 나아가 이 길로 가면 더 큰 인간 해방을 이룰 수 있을 것인가? 이처럼 끝없이 자문하며 파농은 나찌에 저항했고, 자기 자신과 싸웠다. 병든 정신을 치유하기 위해 분투했으며, 알제리의 프랑스 식민주의자들에게 처절하게 항거했다.
--- p.12
1943년 어느 화창한 봄날 아침, 철학 담당 교사인 조제프 앙리는 교실 절반 남짓 자리가 비었다는 것을 알았다.
"여러분 오늘은 빈자리가 많군. 필리베르는 어디 있나?"
"도미니카에 있는 프랑스 해방군에 지원했습니다."
학생들이 대답했다.
조제프 앙리 선생님은 계속 물었다.
"시세롱은?"
똑같은 대답이었다.
"그럼 데 에타제는 어딨나?"
역시 똑같은 대답이었다. 그렇게 한참동안 똑같은 질문에 똑같은 대답이 반복되는 가운데, 앙리 선생은 교실을 오락가락했다. 마침내 입을 꾹 다물고 학생들 앞에 선 선생은 오랫동안 생각에 잠겼다.
"여러분." 이윽고 선생이 말문을 열었다.
"여러분의 학우들은 지원해서 전쟁터로 떠났다."
그는 심각한 눈빛으로 학생들의 얼굴을 하나하나 바라보았다.
"여러분은 신중하게 처신하기 바란다. 전쟁은 장난이 아니다. 불은 태우게 마련이고 전쟁은 반드시 인명을 앗아간다. 죽은 영웅의 여자친구는 행복하게 살아남은 친구와 결혼할 것이다. 잘 들어두어라. 지금 유럽에서 벌어지고 있는 전쟁은 우리의 관심사가 아니다. 그건 우리와는 무관한 일이다. 여러분의 목표가 무엇인지 혼동하지 말기를 바란다. 내 말을 명심해라. 백인들이 서로 죽이고 죽을 때, 그건 흑인들에게는 축복이다."
조제프 앙리 선생의 말은 참전 문제를 심각하게 고민하고 있던 조비를 비롯하여, 파농의 형제들은 물론 마르티니크 섬에 남아있던 모든 청년들에게 큰 충격이었다.
--- pp.79-80
"형한테 할 말이 있어."하고 입을 뗀 파농의 얼굴은 몹시 굳어있었다. 조비를 한쪽으로 끌고 간 파농은 다급하게 말했다.
"형, 나 말이야. 두세 시간 뒤에 도미니카로 떠나. 프랑스 해방군에 지원할거야."
침묵이 흘렀다. 조비는 바로 앞에 보이는 성당의 첨탑을 응시하더니, 눈을 돌려 저 멀리 우뚝 솟아있는 산을 바라보았다. 방금 전까지 누렸던 평화로운 일상 - 형의 결혼을 준비하면서 주고받았던 유머, 평온, 만족감 - 이 순식간에 와르르 무너져 내렸다. 그가 동생을 잘 몰랐더라면, 지금 파농이 한 말을 농담으로 받아들였을 것이다. 조비는 자신의 입이 열리고 말을 하고 있는 것을 느꼈다. 절대 그래선 안 된다고, 그건 생각조차 할 수 없는 일이라고 말하는 자신의 목소리가 마치 꿈결인 듯 희미하게 들려왔다. 온 가족의 경사인 오늘 같이 좋은 날, 불확실한 이상과 환상을 좇아 홀연히 떠나도 되는 것일까? 그건 도리가 아니었다. 파농이 자신의 결정을 완강하게 고집하자, 격렬한 말다툼이 벌어졌다. 더 이상 설득이 통하지 않겠다고 판단한 조비는 마지막으로 조제프 앙리 선생의 말을 떠올렸다. 그는 단 한마디도 빼지 않고 자신이 받았던 느낌 그대로 옮겨 말해 주려고 애썼다. 말을 다 마치고 조비는 파농의 얼굴에서 모멸감으로 가득 찬 분노를 보았다. 파농이 말했다.
"형, 자유와 관련된 문제는 백인종, 흑인종, 황인종에 상관없이 우리 모두의 일이야 형 선생님은 한낱 겁쟁이에 불과해. 오늘 형한테 분명히 말해두지만, 언제 어디서고 자유가 위협당한다면, 목숨 걸고 지킬거야."
--- p.82-83
"형한테 할 말이 있어."하고 입을 뗀 파농의 얼굴은 몹시 굳어있었다. 조비를 한쪽으로 끌고 간 파농은 다급하게 말했다.
"형, 나 말이야. 두세 시간 뒤에 도미니카로 떠나. 프랑스 해방군에 지원할거야."
침묵이 흘렀다. 조비는 바로 앞에 보이는 성당의 첨탑을 응시하더니, 눈을 돌려 저 멀리 우뚝 솟아있는 산을 바라보았다. 방금 전까지 누렸던 평화로운 일상 - 형의 결혼을 준비하면서 주고받았던 유머, 평온, 만족감 - 이 순식간에 와르르 무너져 내렸다. 그가 동생을 잘 몰랐더라면, 지금 파농이 한 말을 농담으로 받아들였을 것이다. 조비는 자신의 입이 열리고 말을 하고 있는 것을 느꼈다. 절대 그래선 안 된다고, 그건 생각조차 할 수 없는 일이라고 말하는 자신의 목소리가 마치 꿈결인 듯 희미하게 들려왔다. 온 가족의 경사인 오늘 같이 좋은 날, 불확실한 이상과 환상을 좇아 홀연히 떠나도 되는 것일까? 그건 도리가 아니었다. 파농이 자신의 결정을 완강하게 고집하자, 격렬한 말다툼이 벌어졌다. 더 이상 설득이 통하지 않겠다고 판단한 조비는 마지막으로 조제프 앙리 선생의 말을 떠올렸다. 그는 단 한마디도 빼지 않고 자신이 받았던 느낌 그대로 옮겨 말해 주려고 애썼다. 말을 다 마치고 조비는 파농의 얼굴에서 모멸감으로 가득 찬 분노를 보았다. 파농이 말했다.
"형, 자유와 관련된 문제는 백인종, 흑인종, 황인종에 상관없이 우리 모두의 일이야 형 선생님은 한낱 겁쟁이에 불과해. 오늘 형한테 분명히 말해두지만, 언제 어디서고 자유가 위협당한다면, 목숨 걸고 지킬거야."
--- p.82-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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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격렬하게 자신의 정체성을 문제삼은 사람은 역사이래 없었다

나의 육체여! 나를 끊임없이 회의하는 인간을 만들어다오! ―프란츠 파농
이 한마디 절규는 프란츠 파농의 모든 것을 압축하고 있다. 그는 프랑스 식민지에서 태어난 흑인이었던 것이다. 그는 어릴 때부터 극심한 정체성의 혼란을 겪으며 자랐다. '나는 프랑스인이다, 우리는 골족이다'라는 왜곡된 교육을 받았고, 일기장에 '나는 볼이 발그레해져서 집으로 돌아갑니다'라고 쓰면서 자랐던 것이다. 이러한사회정치적 환경은 그로 하여금 끊임없이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고민하게 하였다. 피부색이 좀 더 희거나, 프랑스어를 잘 구사하거나, 프랑스의 문화를 잘 받아들이는 사람에게만 계급상승의 길이 열렸으므로 식민지 원주민들은 백인처럼 행동하고 생각하고 싶어했다. 검은 피부를 가진 흑인들은 누구나 흰 가면을 쓰고 싶어했던 것이다.
2차 세계대전이 터지고, 파농은 프랑스군에 자원 입대해 나치에 맞서 싸웠다. 자유를 수호하기 위해서 맞서 싸우는 것에는 흑인과 백인의 구별도, 민족과 국가의 구별도 있을 수 없다는 것이 파농의 생각이었다. 하지만 그에게 돌아온 것은 흑인에 대한 온갖 멸시와 천대뿐이었다. 이런 과정을 통해 그의 정체성에 대한 심오한 사유는 점점 정치하게 확립되었던 것이다.

억압받는 세계에 대한 정체성을 드러내준 파농

제3세계가 자신에 대해 알게 된 것도, 자신에 대해 얘기할 수 있게 된 것도 그를 통해서이다. ―장 폴 사르트르
파농의 정체성에 대한 고뇌는 자신이라는 한 존재가 아니라 집단으로 확대되었다. 그리하여 마침내 흑인의 정체성과 제3세계의 정체성을 확립했던 것이다. 이러한 그의 사상은 독자적인 것이다. 그의 이론을 접하고서야 많은 흑인들이 자신의 처지에 눈을 떴고, 제3세계 역시 자신의 처지가 서구제국주의와도, 소련의 제국주의적 사회주의와도 다르다는 것을 인식하게 되었던 것이다.

체 게바라와 프란츠 파농

체 게바라와 프란츠 파농은 비슷한 점이 많다. 의사라는 점이 그렇고, 자신의 국적을 버리고 제3국의 독립운동에 헌신한 점이 그렇다. 파농은 정신병리학 의사이고, 프랑스 국적을 버리고 알제리의 해방운동에 투신하였다. 이런 의미에서 파농 역시 게바라처럼 세계인으로서 살았다. 그는 숱한 암살기도로부터 살아남았고 미국 CIA의 감시를 받은 요주 인물이었다. 그러나 미국 CIA요원은 적임에도 불구하고 프란츠 파농을 매우 존경하고 좋아하게 되어 임종 마지막까지 곁에서 보살폈다. 인간적인 매력으로 적조차도 포용하고 마는 대목도 게바라와 비슷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파농이 게바라만큼 알려지지 않은 것은 단 한가지 이유 때문인 것 같다. 흑인이라는.

검은 예수, 프란츠 파농

흑인해방운동에 있어서 파농의 영향력은 절대적이다. 파농의 저서들은 흑인들에게일종의 '성서'로 읽혀지고 있으며, 마틴 루터 킹, 넬슨 만델라, 말콤 엑스와 같은 흑인 지도자들과 많은 인권지도자들이 파농에게 많은 영향을 받았다. 민족에 대한 파농의 사상은 카스트로에게도 영향을 주어 쿠바혁명을 성공시키는 데 일조했다. 정신분석학자이자 의사인 파농은 억압당하는 사람들의 영혼을 일깨주고 치료해주었다. 흑인들에게 파농은 '검은 예수'의 지위를 갖는다. 파농은 아프리카 식민지들을 모두 해방시킨 후 아프리카 전 민족이 연대하여 거대한 국가연합을 건설하는 계획을 추진했다. 이러한 생각이 너무 이상적이었을까? 그러한 계획은 아프리카 각국 대표들의 냉담한 반응과 서구식민주의국가들의 훼방으로 실행되지 못했다.

자신의 모든 에너지를 완전히 연소시킨 유일한 사람

나는 몸을 아끼는 사람을 좋아하지 않소. ―프란츠 파농
나는 그의 목숨을 앗아간 바로 그 정열에 감격했다. 그는 다른 사람에게 그 정열을 나누어주었다. 파농과 함께 있던 사람은 삶이 비극적 모험이요,때론 공포지만, 무한한 가치를 지니고 있다는 것을 느낄 것이다. ―시몬 드 보부아르
파농은 그의 삶의 에너지를 완전히 연소시킨 세계에 몇 안되는 사람 중의 하나다.그는 무료함을 잠시도 견디지 못했다. 아름다운 잔디와 정원이 둘러싸여 있고, 직원들은 상냥했으며, 환자들도 얌전해서 할 일이 거의 없는 한 병원에서 근무할 때 파농은 이렇게 말했다.
"죽으면 죽었지 여기엔 못 있겠어. 프랑스에는 환자들을 치료할 정신과 의사들이 수두룩해. 아프리카로 갈테야. 환자를 치료할 의사를 필요로 하는 나라로 가고 싶어."

프란츠 파농이 찾은 위대한 정체성

나는 흑인이다. 또한 백인이기도 하다. 나는 프랑스 사람이고, 마르티니크 사람이며, 알제리 사람이다. 나는 내 나라의 영웅이요, 반역자다. 나는 영화 속 우상이기도 하고, 악당이기도 하다. 내가 잘 생겼나? 물론, 잘 생겼다. 그러면서도 나는 추하다. 내 피부는 형보다 더 까맣고, 아버지의 피부보다는 훨씬 하얗다. 나는 우주보다 더 광대하다. 나는 즐겁게 노래를 부르다가도, 처절하게 울부짖으며, 때로는 춤을 춘다. 나는 곧 이 세상 모든 사람이면서, 정작 그 누구도 아니다. 나는 프란츠다. 프란츠 파농.
구도자로서 프란츠가 마지막으로 도달한 지점은 타인과 내가 다르지 않다는 것이었으며, 또한 세계와 내가 둘이 아니라는 동양적이기까지 한 진리였다. 예수나 석가가 도달한 지점에 한 흑인 혁명가가 도달한 것이다. 당시 나이 36세였다. 격렬한 폭풍이 지나간 후에 위대한 영혼은 마침내 제자리를 찾았던 것이다. 그의 삶은 인간이 얼마만큼 자신에게 혹독할 수 있으며, 인간이 도달할 수 있는 최정점이 어디까지인지를 보여준다. 이 책을 통하여 프란츠 파농은 '제3세계해방운동의 이론가'가 아니라 '진정한 정체성을 탐구했던 인간'으로서 마침내 부활되었다.

현대인들의 정체성 혼란

우리 사회의 정체성 혼란은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다. 인터넷의 익명성을 이용해 자신을 거짓으로 드러내면서 그것이 자신의 정체성인양 행동하는가 하면, 머리를 금발로 물들이고 높은 코와 긴 다리를 가지기 위해 몸부림치는 것이 당연하게 받아들여진다. 자신만의 개성을 찾기 위한 행위들이 아이러니하게도 백인추종주의에 영합하는 것이 되고 만다. 사회가 갈수록 복잡해지고 인간은 도구화되면서 인간관계의 붕괴도 급진전되고 있다. 전통적인 인간 관계망의 붕괴는 필연적으로 '나는 과연 누구인가'라는 생각을 낳게 된다. 자신의 정체성을 찾으려고 애쓰지만 그것은 쉽지 않다. 이러한 시기에 프란츠 파농의 삶은 진정한 정체성을 찾아나가는 하나의 전범으로서 읽힌다.

한국 최고 지식인 100명이 뽑은 유일한 흑인 지성

1997년 「출판저널」은 각 분야의 지식인 1백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하였다. 그 결과 "21세기에도 살아남을 20세기의 명저"에 프란츠 파농의 『대지의 저주받은 자들』이 선정되었다. 그것은 흑인의 저서로서는 유일한 것이다. 이 결과에서도 알 수 있듯이 프란츠 파농은 흑인의 대표적인 지성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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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란츠 파농은 1925년 프랑스 식민지 마르티니크라는 작은 섬에서 태어났다. 그는 정신과 의사이자 제3세계 해방운동을 연구한 사회철학자이다.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끊임없이 고뇌했던 실존주의자이고, 장 폴 사르트르의 절친한 친구이자 동지였다. 프랑스 국적을 버리고 알제리 독립투쟁에 헌신한 혁명가였으며 전 아프리카의 연합국가를 건설하려 했던 이상주의자이다. 그는 사회주의자였으나 엄밀한 의미에서 마르크스레닌주의자라고 하기는 힘들다.
흑인해방운동과 이론에 많은 영향을 준 선각자로서 그의 사상은 독자적이었다. 알제리민족해방전선(FLN)의지도적 이론가로, 임시혁명정부가 들어섰을 당시 가나 주재 대표를 역임했다. 또한 콩고의 혁명가이자 첫 수상 파트리스 루뭄바의 고문을 지냈고, 아프리카와 아메리카 흑인간에 연대감을 드높였다.
저서에 『검은 피부, 하얀 가면(Peau noire, masques blancs)』『대지의 저주받은 자들(Les Damne de la terre)』『아프리카의 혁명을 위하여(Pour la Revolution africaine)』 등이 있다.
올해로 프란츠 파농이 사망한 지 만 40주년이 되었다. 그의 생은 진정한 정체성을 향한 몸부림으로 점철되어 있다. 프랑스 식민지에서 태어난 그는 끊임없이 왜곡된 정체성을 강요받았고, 그를 극복하기 위해 끊임없이 '나는 누구인가'를 묻지 않을 수 없었다. 어느 누구도 파농만큼 자신에 대해 회의하고 진정한 정체성을 찾기 위해 격렬하게 투쟁한 사람은 없었다. 그는 잃어버린 흑인의 정체성을 찾기 위해 노력했고, 흑인의 정체성을 찾고 나서는 다시 그 울타리를 뛰어넘어 마침내 타자와 내가 다르지 않음을 깨달았다. 진정한 정체성은 그곳에 있었던 것이다. 그의 사상은 흑인들 사이에서 정신적 지주로서의 위상을 차지하며, 그의 저서는 흑인들 사이에서 일종의 성서처럼 읽힌다. 그를 알지 못하고서 흑인들을 이해하기란 쉽지 않다. 그는 명실공히 흑인들의 영웅이고 검은 예수이다. 그의 삶은 짧고 강렬한 하나의 불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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