품목정보
발행일 | 2015년 11월 02일 |
---|---|
쪽수, 무게, 크기 | 264쪽 | 333g | 135*205*16mm |
ISBN13 | 9788954638142 |
ISBN10 | 8954638147 |
발행일 | 2015년 11월 02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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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수, 무게, 크기 | 264쪽 | 333g | 135*205*16mm |
ISBN13 | 9788954638142 |
ISBN10 | 8954638147 |
들어가며: 로마사에서 무엇을 배울 것인가? 로마사를 이해하기 위한 키워드 S·P·Q·R/ 로마법/ 가풍/ 파트로누스와 클리엔스/ 다신교와 일신교 기/ 건국에서 카르타고 멸망까지(B.C. 753~B.C. 146) 1장 왜 로마인은 공화정을 선택했을까? 암늑대가 기른 최초의 왕/ 로마에 군림한 에트루리아인/ 오만한 왕을 추방하다/ 자유민이라는 의식/ 독재는 싫어도 ‘독재관’을 둔 이유/ ‘공화제’와 ‘공화정’/ 원로원 귀족/ 여성 부족 현상과 ‘신부 안고 들어가기’/ 귀족과 평민의 격차/ 신분투쟁의 시작/ 그리스 정치와 로마 정치의 차이/ 민주정을 채택하지 않은 이유/ ‘조국’을 발명한 로마인/ 공화정 군국주의 2장 왜 로마군은 강했을까? 엄격한 군기/ 밀집대형/ 임기응변에 강한 로마군의 전법/ 로마군의 진정한 힘/ 사기를 진작시킨 연설/ 패장도 받아들이는 로마군/ 칸나이 전투/ 패전으로부터 배운 스키피오/ 남자의 질투에 패배한 스키피오/ 카르타고는 왜 패배했는가?/ ‘호노르’를 위하여 싸우다/ 권위로 세상을 통치하라/ 카르타고는 왜 철저하게 파괴되었는가?/ 기원전 146년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 승/ 내란의 세기에서 네로 황제의 자살까지(B.C. 146~A.D. 68) 3장 왜 로마는 대제국이 되었을까? 구귀족 ‘파트리키이’와 신귀족 ‘노빌레스’/ 신분만큼 중요했던 재력/ 유산 상속의 특징/ 거대한 제국의 ‘작은 정부’/ 큰 의미가 없었던 관리의 급료/ 공공사업은 귀족의 자원봉사?/ 귀족의 의무였던 부의 재분배/ 농지 개혁의 실패/ 군사 제도 개혁의 성과/ 귀족의 역습과 술라의 개혁/ 카이사르가 출세하기 위해 택한 방법/ 카이사르는 왜 암살당했는가?/ 계급 사이의 결속/ 최대의 가치는 명예와 용기 4장 왜 로마는 속주민에까지 시민권을 주었을까? 로마의 통치법/ 처음에는 인기가 없었던 로마 시민권/ 시민권과 불완전 시민권/ 시민권의 권리와 의무/ 어머니가 시민이 아니면 시민이 될 수 없다/ 시민법과 만민법의 차이/ 라틴 시민권/ 소유물로서의 노예/ 노예에서 해방되는 방법/ 노예의 반란/ 카이사르 사후의 정국/ 초대 황제 아우구스투스/ 노예 공급원의 변화/ 로마를 지탱한 버려진 아이들/ 버려진 아이들이 많았던 이유 전/ 오현제에서 세베루스 왕조의 종언까지(69~235) 5장 왜 황제는 빵과 서커스를 제공했을까? 오현제와 삼악제/ 최악의 황제와 ‘기억의 단죄’/ 로마인과 로마 사회의 변화/ 농민의 양극화/ 빵을 주는 것은 복지였을까?/ 빵보다 서커스를 바랐던 민중/ 인류 역사상 유일하게 공인된 살인 경기/ 스타가 된 검투사/ 사망률 증가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로마인이 사랑한 ‘테르마이’/ ‘테르마이’가 지속되지 않은 이유/ 최고의 황제는 누구인가?/ ‘평화로운 시대’의 종말 6장 왜 그리스도교는 탄압을 받았을까? 로마인이 믿은 신/ 로마인의 경건함에 놀란 그리스인/ 로마인은 무엇을 빌었는가?/ 로마인의 생사관/ 로마인은 묘지에 무엇을 묻었을까?/ 카이사르는 로마 교황이었다?/ 황제와 대신관/ 유대교의 특수성/ 그리스도교 신도 수의 변화/ 아직껏 해명되지 않은 그리스도교의 수수께끼/ 그리스도교만 탄압 받은 이유 결/ 군인 황제에서 서로마 제국의 멸망까지(235~476) 7장 왜 로마는 멸망했을까? 돈으로 산 황제 자리/ 50년 동안 70명의 황제가 교체되다/ 황제 암살과 친위대/ 제국의 분할/ 로마의 금화와 미국의 달러/ 인류의 역사를 바꾼 그리스도교 공인/ 로마 제국 멸망의 날/ 첫째 이유: 이민족의 침입/ 둘째 이유: 인프라의 노후화/ 셋째 이유: 이탈리아의 쇠락/ 로마의 멸망은 ‘노쇠’이다 옮긴이의 말 |
1,200년에 걸친 로마사를 이해하기 쉽도록 중요한 키워드를 소개한 뒤 본론을 기승전결로 나누어 친절하게 설명한다. 먼저 기에서는 고대 로마가 공화정을 선택한 이유와 로마군이 강했던 이유에 대해. 승에서는 카르타고와의 싸움에서 승리하여 지중해를 제패한 시대, 이어 내란의 시대와 폭군 네로의 시대. 전에서는 오현제에서 세베루스 왕조의 종언까지. 결은 로마 제국이 무너져가는 과정에 대한 이야기다.
현명한 사람은 역사로부터 배운다. 역사를 배우는 일은 미래를 가꾸는 일이며, 일본의 마루야마 마사오는 “로마의 역사에는 인류의 모든 경험이 들어 있다”고 말한바 있다.
처음 읽는 로마사
모토무라 료지/이민희
고유서가/2015.11.2.
snbaram
<처음 읽는 로마사>는 1,200년에 걸친 로마사를 이해하기 쉽도록 중요한 키워드를 소개한 뒤 본론을 기승전결로 나누어 7가지 테마를 중심으로 친절하게 설명한다. 먼저 起에서는 고대 로마가 공화정을 선택한 이유와 로마군이 강했던 이유에 대해. 承에서는 카르타고와의 싸움에서 승리하여 지중해를 제패한 시대, 이어 내란의 시대와 폭군 네로의 시대. 轉에서는 오현제에서 세베루스 왕조의 종언까지. 結은 로마 제국이 무너져가는 과정에 대한 이야기다. 고대 로마사를 전공한 저자는 도쿄대학 명예교수, 와세다대학 국제 교양학부 특임교수로 재직 중이다. 저서로 <다신교와 일신교>, <지중해 세계와 로마제국>등이 있다.
로마사를 이해하기 위한 키워드를 살펴보면 “‘S. P. Q. R’이라는 말은 ‘Senatus(원로원)과 Populus(인민)que Romanus’의 머리글자를 딴 것으로, 직역하면 ‘로마의 원로원과 인민’입니다. 로마의 신분제 질서를 보여주면서 리더십을 행사하는 주체는 어디까지나 원로원이라는 사실을 상징하고 있습니다.(p.20)” 원로원은 귀족으로 구성되었으며 최초의 원로원 귀족은 30개 씨족의 장에 해당하는 사람들 가운데서 선출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왕정 초기 귀족과 평민은 거의 구별이 없었기에 명확한 차이가 있지는 않았다. 공화정 초기에 300명으로 구성 되었던 원로원은 후기에 600명으로 정원을 늘리기도 했다.
“로마에서 제정한 법률인 로마법은 12표법과 그로부터 대략 천년이 지난 후에 집대성한 로마법 대전(유스티니아누스법전)을 가리킵니다.(p.22)” 12표법은 기원전450년에 공포되었는데, 로마인들은 이 법을 동판에 새겨 시가지 중심지에 내걸고 아이들에게 외우게 하였다고 한다. 함무라비 법전에서는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하여 받은 대로 되갚아주는 것이었지만, 로마법에서는 ‘당사자끼리의 화해’를 우선시 했다. 또한 로마법은 관습법이었다. 그러기에 속주에서는 그 지방에 내려오는 관습에 의해 법이 독자적으로 시행되었다.
“로마인은 법률 이상으로 사람을 중시했습니다. 그러나 그런 로마인이 가장 중요하게 여긴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가풍입니다.(p.27)” 그렇기 때문에 아버지는 자식을 직접 가르치며 가풍을 이어가게 했는데, 읽고 쓰기는 물론 법률, 무술, 승마 등 필요한 것은 무엇이든지 가르쳤다고 한다. 그리고 선조들의 흉상을 집안에 비치하여 선조들의 활약상을 후손에게 수시로 들려주었다. 아버지는 명예로운 선조들 뒤를 이어갈 수 있는 인간이 되도록 교육했으며, 자식들 앞에서 모범을 보였다.
“‘파트로누스’는 라틴어로 ‘보호자’를, ‘클리엔스’는 ‘피보호자’를 의미합니다. 기본적으로 파트로누스는 부유한 ‘귀족(파트리키)’이며 클리엔스는 ‘평민(플레브스)’으로, 파트로누스가 클리엔스를 돌봐줌으로써 성립되는 종속적 인간관계입니다.(p.29)” 그러나 일방적인 관계이기 보다는 공과 사적인 면에서 상호 보완적인 관계였다고 한다. 로마 사회는 곳곳에 파트로누스와 클리엔스의 관계가 존재함으로써 돌아갔다. “로마법에서 귀족과 평민은 기본적으로 평등합니다. 따라서 로마 시민이면 누구나 공직에 입후보할 자격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실제로 입후보한 사람은 어느 정도 이상의 부를 축적할 수 있었던 극소수에 한정되어 있었습니다. 그래서 집정관을 여럿 배출한 가문은 새로운 귀족으로 대우받기 시작했는데 이리하여 탄생한 신귀족이 ‘노빌레스’입니다.(p.110)”
“로마에서는 공공사업에 드는 비용이나 공무원의 급료를 부유한 귀족이 전부 개인적으로 부담했습니다. 이런 로마의 관습을 계승한 것이 유럽이나 미국에 생생히 살아 있는 ‘노블레스 오블리주(고귀한 자는 사회적 의무를 진다)’라는 기부나 후원 관습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p.120)” 뿐만 아니라 마리우스가 내세운 군사 제도 개혁의 중심 내용은 로마군의 주력을 징집에 의한 농민병에서 지원병으로 바꾸는 것이었다. 이것 또한 파트로누스와 클리엔스의 관계를 군제에 도입한 것이다. 당시 용병은 대부분 재산이 없는 시민이었기 때문에 장비를 마련할 돈이 없었다. 그러자 용병의 장비는 파트로누스인 장군이 모두 준비하게 되었다.
“독자적인 신화가 없었던 로마는 그리스의 영향을 받으면서 문화와 함께 신화도 받아들여 자신들의 것으로 삼았습니다. 때문에 로마는 그리스 신화의 제우스는 주피터, 아프로디테는 비너스로 부르는 것처럼 이름은 다르지만 같은 신화를 가진 같은 신들을 믿고 있었습니다. (p.204)” 엄밀히 말하면 그리스 신화이지 로마 신화는 아니라는 것이다. 로마인들은 그리스신화에 나오는 여러 신들을 믿었다. “로마가 다신교에서 일신교로 전환한 것(313년 밀라노칙령)은 단순히 종교에 대한 로마인의 의식을 바꾼 것이 아니라 이후 세계를 크게 바꾼 대사건인 셈입니다.(p.35)” 처음에 그리스도교를 탄압했던 이유는 로마인의 신을 부정하는 유일신의 교리를 굽히지 않았기 때문에 체제 유지상 필요에 의해서 였다고 한다.
로마 제국이 무너져가는 과정에는 무엇보다 이민족의 침입, 인프라의 노후화, 이탈리아의 쇠퇴 등을 주된 요인으로 거론하고 있다. 서로마의 멸망에는 갖가지 요인이 복잡하게 얽혀 있었을 테지만, 그래도 천 년 이상 살아남았다는 사실 자체가 하나의 경이로서 그려진다.
이 책은 고대 로마의 역사를 한눈에 볼 수 있게 해주는 알찬 입문서다. 일본의 마루야마 마사오는 “로마의 역사에는 인류의 모든 경험이 들어 있다”(p.261)고 말한바 있다. 로마사를 통해 우리의 역사를 되돌아보아야 할 때다. 현명한 사람은 역사로부터 배운다고 했다. 역사를 배우는 일은 미래를 가꾸는 일이라는 생각으로 역사를 배우자.
(이 리뷰는 예스24 리뷰어클럽을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처음 읽는 로마사>는 1,200년에 걸친 로마사를 이해하기 쉽도록 중요한 키워드를 소개한 뒤 본론을 기승전결로 나누어 7가지 테마를 중심으로 친절하게 설명한다. 먼저 起에서는 고대 로마가 공화정을 선택한 이유와 로마군이 강했던 이유에 대해. 承에서는 카르타고와의 싸움에서 승리하여 지중해를 제패한 시대, 이어 내란의 시대와 폭군 네로의 시대. 轉에서는 오현제에서 세베루스 왕조의 종언까지. 結은 로마 제국이 무너져가는 과정에 대한 이야기다. 고대 로마사를 전공한 저자는 도쿄대학 명예교수, 와세다대학 국제 교양학부 특임교수로 재직 중이다. 저서로 <다신교와 일신교>, <지중해 세계와 로마제국>등이 있다.
로마사를 이해하기 위한 키워드를 살펴보면 “‘S. P. Q. R’이라는 말은 ‘Senatus(원로원)과 Populus(인민)que Romanus’의 머리글자를 딴 것으로, 직역하면 ‘로마의 원로원과 인민’입니다. 로마의 신분제 질서를 보여주면서 리더십을 행사하는 주체는 어디까지나 원로원이라는 사실을 상징하고 있습니다.(p.20)” 원로원은 귀족으로 구성되었으며 최초의 원로원 귀족은 30개 씨족의 장에 해당하는 사람들 가운데서 선출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왕정 초기 귀족과 평민은 거의 구별이 없었기에 명확한 차이가 있지는 않았다. 공화정 초기에 300명으로 구성 되었던 원로원은 후기에 600명으로 정원을 늘리기도 했다.
“로마에서 제정한 법률인 로마법은 12표법과 그로부터 대략 천년이 지난 후에 집대성한 로마법 대전(유스티니아누스법전)을 가리킵니다.(p.22)” 12표법은 기원전450년에 공포되었는데, 로마인들은 이 법을 동판에 새겨 시가지 중심지에 내걸고 아이들에게 외우게 하였다고 한다. 함무라비 법전에서는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하여 받은 대로 되갚아주는 것이었지만, 로마법에서는 ‘당사자끼리의 화해’를 우선시 했다. 또한 로마법은 관습법이었다. 그러기에 속주에서는 그 지방에 내려오는 관습에 의해 법이 독자적으로 시행되었다.
“로마인은 법률 이상으로 사람을 중시했습니다. 그러나 그런 로마인이 가장 중요하게 여긴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가풍입니다.(p.27)” 그렇기 때문에 아버지는 자식을 직접 가르치며 가풍을 이어가게 했는데, 읽고 쓰기는 물론 법률, 무술, 승마 등 필요한 것은 무엇이든지 가르쳤다고 한다. 그리고 선조들의 흉상을 집안에 비치하여 선조들의 활약상을 후손에게 수시로 들려주었다. 아버지는 명예로운 선조들 뒤를 이어갈 수 있는 인간이 되도록 교육했으며, 자식들 앞에서 모범을 보였다.
“‘파트로누스’는 라틴어로 ‘보호자’를, ‘클리엔스’는 ‘피보호자’를 의미합니다. 기본적으로 파트로누스는 부유한 ‘귀족(파트리키)’이며 클리엔스는 ‘평민(플레브스)’으로, 파트로누스가 클리엔스를 돌봐줌으로써 성립되는 종속적 인간관계입니다.(p.29)” 그러나 일방적인 관계이기 보다는 공과 사적인 면에서 상호 보완적인 관계였다고 한다. 로마 사회는 곳곳에 파트로누스와 클리엔스의 관계가 존재함으로써 돌아갔다. “로마법에서 귀족과 평민은 기본적으로 평등합니다. 따라서 로마 시민이면 누구나 공직에 입후보할 자격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실제로 입후보한 사람은 어느 정도 이상의 부를 축적할 수 있었던 극소수에 한정되어 있었습니다. 그래서 집정관을 여럿 배출한 가문은 새로운 귀족으로 대우받기 시작했는데 이리하여 탄생한 신귀족이 ‘노빌레스’입니다.(p.110)”
“로마에서는 공공사업에 드는 비용이나 공무원의 급료를 부유한 귀족이 전부 개인적으로 부담했습니다. 이런 로마의 관습을 계승한 것이 유럽이나 미국에 생생히 살아 있는 ‘노블레스 오블리주(고귀한 자는 사회적 의무를 진다)’라는 기부나 후원 관습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p.120)” 뿐만 아니라 마리우스가 내세운 군사 제도 개혁의 중심 내용은 로마군의 주력을 징집에 의한 농민병에서 지원병으로 바꾸는 것이었다. 이것 또한 파트로누스와 클리엔스의 관계를 군제에 도입한 것이다. 당시 용병은 대부분 재산이 없는 시민이었기 때문에 장비를 마련할 돈이 없었다. 그러자 용병의 장비는 파트로누스인 장군이 모두 준비하게 되었다.
“독자적인 신화가 없었던 로마는 그리스의 영향을 받으면서 문화와 함께 신화도 받아들여 자신들의 것으로 삼았습니다. 때문에 로마는 그리스 신화의 제우스는 주피터, 아프로디테는 비너스로 부르는 것처럼 이름은 다르지만 같은 신화를 가진 같은 신들을 믿고 있었습니다. (p.204)” 엄밀히 말하면 그리스 신화이지 로마 신화는 아니라는 것이다. 로마인들은 그리스신화에 나오는 여러 신들을 믿었다. “로마가 다신교에서 일신교로 전환한 것(313년 밀라노칙령)은 단순히 종교에 대한 로마인의 의식을 바꾼 것이 아니라 이후 세계를 크게 바꾼 대사건인 셈입니다.(p.35)” 처음에 그리스도교를 탄압했던 이유는 로마인의 신을 부정하는 유일신의 교리를 굽히지 않았기 때문에 체제 유지상 필요에 의해서 였다고 한다.
로마 제국이 무너져가는 과정에는 무엇보다 이민족의 침입, 인프라의 노후화, 이탈리아의 쇠퇴 등을 주된 요인으로 거론하고 있다. 서로마의 멸망에는 갖가지 요인이 복잡하게 얽혀 있었을 테지만, 그래도 천 년 이상 살아남았다는 사실 자체가 하나의 경이로서 그려진다.
이 책은 고대 로마의 역사를 한눈에 볼 수 있게 해주는 알찬 입문서다. 일본의 마루야마 마사오는 “로마의 역사에는 인류의 모든 경험이 들어 있다”(p.261)고 말한바 있다. 로마사를 통해 우리의 역사를 되돌아보아야 할 때다. 현명한 사람은 역사로부터 배운다고 했다. 역사를 배우는 일은 미래를 가꾸는 일이라는 생각으로 역사를 배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