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죽음의 경계선에서 피어나는 우정과 헌신의 감동적인 드라마
「헬싱키 로카마티오 일가 이면의 사실들」
에이즈로 죽어가는 친구 폴의 몸과 마음이 황폐해지는 것을 보다 못한 주인공 ‘나’는 친구의 영혼을 유지시키고, 마지막 순간까지 함께 시간을 보내고 싶은 마음에 공동으로 소설을 쓸 것을 제의한다. 두 사람이 만든 소설은 헬싱키에 사는 가공의 로카마티오 가족에 관한 것으로, 가족은 20세기 역사의 흐름에 따라 부침을 거듭한다. 한편, ‘나’와 폴은 로카마티오 일가의 이야기를 쓰기 위해 20세기 역사를 조사하면서 피로 얼룩진 20세기 역사와 에이즈로 부서져가는 폴의 상태가 유사하다는 점을 발견한다. 예컨대, 폴의 몸이 바이러스에 의해 서서히 파괴되는 장면 다음에 나치 치하에서 자행되는 유태인 대량학살이라는 실제 사건이 병치되는 것이다. ‘나’와 폴, 그리고 독자는 고통과 피와 눈물로 얼룩진 20세기 역사와 천형인 에이즈의 공포와 위력을 동시에 지켜보면서 비감에 젖게 된다. 그러나 과연 이 세계에는 절망만이 존재할까? 20세기 역사에도 모두의 축복을 받으며 태어난 다섯쌍둥이의 탄생을 비롯한 아름다운 순간은 있었고, 에이즈로 고통받는 폴에게도 친구 ‘나’와의 우정이라는 소중한 마음이 있었다. 이 작품이 비극적이면서도 마냥 슬프지만은 않은 것은 우정과 헌신, 희망과 믿음이라는 가치들이 비극적 사건 이면에 깊이 자리잡고 있기 때문이다.
베트남 전쟁의 상흔을 음악으로 치유하는 베트남전 참전용사 빌딩 청소부
「미국 작곡가 존 모턴의 <도널드 J. 랭킨 일병 바이올린 협주곡>을 들었을 때」
대학 졸업을 앞둔 캐나다 학생이 워싱턴 D.C.를 방문한다. 우연히 허름한 극장에서 열리는 콘서트에 참석하게 된 그는 그곳에서 영혼을 뒤흔드는 협주곡을 듣게 된다. 깊이 감동한 학생은 콘서트가 끝나고 협주곡의 작곡가이자 바이올린 연주자인 존 모턴이라는 음악가의 뒤를 무작정 쫓다가, 의외의 사실을 알게 된다. 존 모턴은 빌딩의 야간 청소부였던 것이다. 학생은 존 모턴과 대화를 나누며 그의 지난 인생에 대해 듣게 된다. 베트남 전쟁 참전용사였던 존 모턴은 집중 포위공격을 당하던 격전지 한복판에서 내면의 평화를 위해, 동료 병사들에게 위로와 안정의 한순간을 주기 위해 바이올린을 켰던 것이다. 가장 참혹한 절망의 순간에도 음악에 날개를 달아 숭고한 희망의 메시지를 전하겠다는 존 모턴의 절절한 의지가 가슴을 깊이 울리는 명단편이다.
사형을 기다리는 한 죄수가 죽음에 이르는 여러 가지 방식들에 대한 보고서
「죽는 방식」
이 작품은 교도소장이 사형수의 어머니에게 보내는 편지글 형식을 띄고 있다. 교도소장은 18번째 편지부터 1096번째 편지에 이르기까지 많은 편지를 보내 사형수의 다양한 종말의 순간을 기록하고 있다. 재미있는 것은 수록된 편지글의 기본 형식은 대동소이하며, 몇 가지 세세한 부분만이 달라진다는 것이다. 이를테면 사형수에게 제공된 마지막 식사, 사형수와 신부와의 면담 시간, 교수대를 본 사형수의 반응, 마지막으로 죽는 방식 등이 그렇다. 사형수는 평온하게 교수형을 당하는가 하면, 형집행 전에 자살을 하기도 하며, 공포로 인해 심장마비로 죽기도 한다. 이처럼 한 사형수에게 다가오는 다양한 방식의 죽음은 보편적인 인류의 그것을 상징한다고 봐도 무리가 없을 것이다. 우리 인간들은 집에서 조용히 누워 죽음을 맞기도 하고, 사형을 당하기도 하며, 사고의 희생자가 되기도 한다. 확실한 것은 「죽는 방식」의 사형수처럼 누구도 죽음을 피할 수 없다는 것뿐이다. 결코 피할 수 없는 죽음을 앞두고도 강렬한 삶에의 애착을 보이는 사형수와 우리 인간 모두는 그렇게 닮아 있는 것이다. 이 작품에서 가장 돋보이는 장면은 교수대를 보자마자 심장마비를 일으키는 사형수에게 심폐소생술을 해주며 살리려고 기를 쓰는 의사가 나오는 부분이다. 사형수를 살려서 뭐하겠는가? 죽이기밖에 더하겠는가. 얀 마텔 특유의 블랙 유머의 진수를 보여주는 명장면으로 손색이 없다.
기억의 소중함, 그 아름다움에 관한 환상적인 이야기
「비타 애터나 거울 회사: 왕국이 올 때까지 견고할 거울들」
이 작품은 형식적으로 가장 독특하다고 할 수 있는 단편으로, 물건을 버리는 법이 없는 할머니와 물질주의를 경멸하는 ‘나’의 이야기다. 무엇보다 먼저 눈을 사로잡는 독특한 이 작품의 형식은 한 페이지를 세로로 이분할해 왼쪽 면은 할머니의 이야기가, 오른쪽 면은 나의 이야기가 나란히 진행된다는 것이다. 우리가 실제 나누는 대화의 분위기를 고스란히 책장에 재현해놓은 듯한 이런 형식은 얀 마텔의 기발한 실험정신의 단면을 엿볼 수 있게 한다. 할머니의 잡동사니 속에서 우연히 찾아낸 거울 만드는 기계, 그런데 그 기계의 원동력은 누군가의 기억이다. 할머니는 할아버지와의 첫 만남에서부터 안타까운 사별의 순간까지를 담담하게, 그러나 어쩔 수 없는 이별의 순간에는 격정적으로 토로한다. 기억이 더해질수록 기계는 요란하게 돌아가고 마침내 매끄러운 은빛 거울이 완성된다. 이 모든 과정을 지켜보는 ‘나’는 인간적인 것이외에는 바라지 않고, 소유의 노예가 되고 싶지 않다고 말하는 물질 혐오자이다. 그러나 소중한 기억이 거울로 재탄생하는 과정을 지켜보며 모든 물질에는 사용자의 기억이, 그 영혼이 스며 있음을 배우게 된다. 일종의 환상소설에 가까운 신비로운 분위기에 여운이 오래 남는 보석 같은 단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