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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아름다운 녹
슬픔 / 주걱 / 얼음 도마 / 아름다운 녹 / 얼음 목탁 / 흠집 / 나무젓가락 단청 / 빨래를 훔쳐보다 / 현운묵서 / 나무기저귀 / 운주사 천불천탑 2. 제비꽃 아래 뻘에 와서 소주를 / 제비꽃 아래 / 내 품에, 그대 눈물을 / 토끼 / 배웅 / 기차표를 끊으며 / 마지막 편지 / 느슨해진다는 것 / 한문 선생 / 관계 / 알밤 / 붉은풍금새 / 식도 / 싸락눈 / 모서리의 힘 / 노을 / 새벽 이슬 3. 돌의 이마를 짚다 강 / 가재 / 한숨의 처소 / 대나무 / 줄탁 / 저 수컷을 매우 쳐라 / 쓰라린 젖꼭지 / 소가죽 가방 / 바람아래 / 목이 부러진 숟가락 / 돌의 이마를 짚다 / 송화 / 가뭄 / 금강초롱 / 희망의 거처 / 수로 4. 눈송이에 둥지를 트는 새 생선의 전부 / 둥구나무의 말 / 염소 / 물의 뼈 / 고기만두 / 숲 / 눈송이에 둥지를 트는 새 / 흰 별 / 둥구나무의 말 / 병따개가 없는 술집 / 무덤에서 무를 꺼내다 / 차선 그리는 남자 / 씨눈 / 38 / 참 좋은 일요일 |
저이정록
관심작가 알림신청Lee Jeong loc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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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걱은
생을 마친 나무의 혀다 나무라면, 나도 주걱으로 마무리되고 싶다 나를 패서 나로 지은 그 뼈저린 밥솥에 온몸을 묻고 눈물 흘려보는 것, 참회도 필생의 바람이 될 수 있는 것이다 뜨건 밥풀에 혀가 데어서 하얗게 살갗이 벗겨진 밥주걱으로 늘씬 얻어맞고 싶은 새벽, 지상 최고의 선자(善者)에다 세 치 혀를 댄다, 참회도 밥처럼 식어 딱딱해지거나 쉬어버리기도 하는 것임을, 순백의 나무 한 그루가 내 혓바닥 위에 잔뿌리를 들이민다 --- p.14 |
어미의 부리가
닿는 곳마다 별이 뜬다 한번에 깨지는 알 껍질이 있겠는가 밤하늘엔 나를 꺼내려는 어미의 빗나간 부리질이 있다 반짝, 먼 나라의 별빛이 젖은 내 눈을 친다 --- p.67 |
양수를 여섯 번이나 담았던
당신의 아랫배는 생명의 곳간, 옆으로 누우면 내가 제일 고생 많았다며 방바닥에 너부러진다 긴장을 놓아버린 아름다운 아랫배 누가 숨소리 싱싱한 저 방앗간을 똥배라 비웃을 수 있는가 허벅지와 아랫배의 터진 살은 마른 들녘을 적셔 나가는 은빛 강 깊고 아늑한 중심으로 도도히 흘러드는 눈부신 강줄기에 딸려들고파 나 문득 취수장의 물처럼 소용돌이친다 (후략) --- p.63 |
이정록 시집 『제비꽃 여인숙』이 민음사에서 출간되었다. 이정록은 그간 『벌레의 집은 아늑하다』,『풋사과의 주름살』,『버드나무 껍질에 세들고 싶다』 등의 시집을 통해 작고 여린 존재들이 지닌 생명력을 정감 어린 시선으로 노래해 왔다. 제목에서도 엿볼 수 있듯 이번 시집에서도 세상을 보는 따뜻한 시심이 물씬 배어나온다.
* 제비꽃 아래, 그 고운 생명의 숨결 표제 <제비꽃 여인숙>은 「제비꽃 아래」라는 시와 관련이 있다. <요구르트 빈 병에 작은 풀꽃을 심으려고) 밭두둑에 나가 제비꽃 옆에 앉았다>가 제비꽃 아래에 모로 누워 있는 굼벵이 한 마리를 보게 된 시인, 그는 그 작은 생명의 숨결을 놓치지 않는다. 울음보만 바라보며 몇 년을 기다려온 굼벵이) 그 아름다운 허리를 오래 내려다본다) 할 말 아끼다가 멍이 든 제비꽃에게도 합장을 한다) 문득 내 손가락의 실반지 그 해묵은 뿌리에도 땀이 찬다) 제비꽃 아래의 고운 숨결에 동침하고 싶어) 내 마음 감나무 새순처 럼 윤이 난다 - 「제비꽃 아래」부분 매미가 되기 전 제비꽃 아래에 오랫동안 머물러 있어야 하는 굼벵이에게 제비꽃은 일종의 여인숙이다. 그러한 제비꽃처럼, 시인은 길손을 맞이하는 따뜻한 주인장 같은 마음으로 독자들을 끌어안는다. * 시작 태도에서 엿보이는 장인 정신 이정록은 일상 혹은 자연 속에서 접할 수 있는 소소한 것들을 섬세한 눈길로 관찰하고 거기에서 아름다운 잠언을 이끌어내는 알레고리적 수법을 즐겨 사용한다. 그는 핫도그를 먹고 남은, 기름에 전 나무젓가락을 보고는 <끓는 기름을 들이마신/ 깡마른 고행의 자리가/ 슬프게도 더 늦게 썩을 것이>라며 생각에 잠기고(「나무젓가락 단청」), 시멘트 건물 외벽의 틈바구니에 뿌리를 내린 개망초 꽃을 보고 <칠흑 속으로/ 수도 없이 번개가 치고 있다>는 깨달음을 얻는다(「수로(水路)」). 시작(詩作) 초기나 지금이나 한결같은 시인의 태도에서는 일종의 장인 정신마저 엿보인다. 그는 마치 석수(石手)가 항상 같은 돌로 보다 더 완성된 조각을 만들어내려고 돌을 연마하듯, 더욱 정제된 언어로 보다 견고한 시적 세계를 추구해 나가고 있다. * 수컷들은 알지 못하는 어미들의 세계 평론가 문혜원은 이정록의 시가 자연 예찬으로 일관되는 관념적인 생명시들과 구분되는 것은, 생명이 그 원천인 여성성과 체험적으로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라고 언급한 바 있다. 이정록은 「가재」라는 시에서 <붉노란 알을 한 아름 웅크린 모든 어미들이/ 이 땅을 짱짱하게 다져왔음을 깨닫는다>며 <껍질을 억만 번 벗어도 수컷은 알지 못한다>라고 단언한다. 이처럼 그가 그리는 생명의 세계는 여성성, 구체적으로는 모성애가 근간이 된다. 시인 스스로도 월간 현대시 와의 인터뷰(2000년 6월)에서 사람으로 다시 태어난다면 어머니로 태어나고 싶다고 말한 적이 있을 정도로 그의 시세계에서 여성적 생명력은 커다란 의미를 지닌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