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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비꽃 여인숙

제비꽃 여인숙

민음의 시-105이동
리뷰 총점8.1 리뷰 4건 | 판매지수 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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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01년 09월 30일
쪽수, 무게, 크기 107쪽 | 243g | 124*210*20mm
ISBN13 9788937406980
ISBN10 8937406985

책소개 책소개 보이기/감추기

목차 목차 보이기/감추기

1. 아름다운 녹
슬픔 / 주걱 / 얼음 도마 / 아름다운 녹 / 얼음 목탁 / 흠집 / 나무젓가락 단청 / 빨래를 훔쳐보다 / 현운묵서 / 나무기저귀 / 운주사 천불천탑

2. 제비꽃 아래
뻘에 와서 소주를 / 제비꽃 아래 / 내 품에, 그대 눈물을 / 토끼 / 배웅 / 기차표를 끊으며 / 마지막 편지 / 느슨해진다는 것 / 한문 선생 / 관계 / 알밤 / 붉은풍금새 / 식도 / 싸락눈 / 모서리의 힘 / 노을 / 새벽 이슬

3. 돌의 이마를 짚다
강 / 가재 / 한숨의 처소 / 대나무 / 줄탁 / 저 수컷을 매우 쳐라 / 쓰라린 젖꼭지 / 소가죽 가방 / 바람아래 / 목이 부러진 숟가락 / 돌의 이마를 짚다 / 송화 / 가뭄 / 금강초롱 / 희망의 거처 / 수로

4. 눈송이에 둥지를 트는 새
생선의 전부 / 둥구나무의 말 / 염소 / 물의 뼈 / 고기만두 / 숲 / 눈송이에 둥지를 트는 새 / 흰 별 / 둥구나무의 말 / 병따개가 없는 술집 / 무덤에서 무를 꺼내다 / 차선 그리는 남자 / 씨눈 / 38 / 참 좋은 일요일

저자 소개 (1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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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걱은
생을 마친 나무의 혀다
나무라면, 나도
주걱으로 마무리되고 싶다
나를 패서 나로 지은
그 뼈저린 밥솥에 온몸을 묻고
눈물 흘려보는 것, 참회도
필생의 바람이 될 수 있는 것이다
뜨건 밥풀에 혀가 데어서
하얗게 살갗이 벗겨진 밥주걱으로
늘씬 얻어맞고 싶은 새벽,
지상 최고의 선자(善者)에다
세 치 혀를 댄다, 참회도
밥처럼 식어 딱딱해지거나
쉬어버리기도 하는 것임을,
순백의 나무 한 그루가
내 혓바닥 위에
잔뿌리를 들이민다
--- p.14
어미의 부리가
닿는 곳마다

별이 뜬다

한번에 깨지는 알 껍질이 있겠는가

밤하늘엔
나를 꺼내려는 어미의
빗나간 부리질이 있다

반짝, 먼 나라의 별빛이
젖은 내 눈을 친다
--- p.67
양수를 여섯 번이나 담았던
당신의 아랫배는
생명의 곳간, 옆으로 누우면
내가 제일 고생 많았다며
방바닥에 너부러진다
긴장을 놓아버린 아름다운 아랫배
누가 숨소리 싱싱한 저 방앗간을
똥배라 비웃을 수 있는가
허벅지와 아랫배의 터진 살은
마른 들녘을 적셔 나가는 은빛 강
깊고 아늑한 중심으로 도도히 흘러드는
눈부신 강줄기에 딸려들고파
나 문득 취수장의 물처럼 소용돌이친다 (후략)
--- p.63

출판사 리뷰 출판사 리뷰 보이기/감추기

이정록 시집 『제비꽃 여인숙』이 민음사에서 출간되었다. 이정록은 그간 『벌레의 집은 아늑하다』,『풋사과의 주름살』,『버드나무 껍질에 세들고 싶다』 등의 시집을 통해 작고 여린 존재들이 지닌 생명력을 정감 어린 시선으로 노래해 왔다. 제목에서도 엿볼 수 있듯 이번 시집에서도 세상을 보는 따뜻한 시심이 물씬 배어나온다.

* 제비꽃 아래, 그 고운 생명의 숨결

표제 <제비꽃 여인숙>은 「제비꽃 아래」라는 시와 관련이 있다. <요구르트 빈 병에 작은 풀꽃을 심으려고) 밭두둑에 나가 제비꽃 옆에 앉았다>가 제비꽃 아래에 모로 누워 있는 굼벵이 한 마리를 보게 된 시인, 그는 그 작은 생명의 숨결을 놓치지 않는다.

울음보만 바라보며 몇 년을 기다려온 굼벵이) 그 아름다운 허리를 오래 내려다본다) 할 말 아끼다가 멍이 든 제비꽃에게도 합장을 한다) 문득 내 손가락의 실반지 그 해묵은 뿌리에도 땀이 찬다) 제비꽃 아래의 고운 숨결에 동침하고 싶어) 내 마음 감나무 새순처 럼 윤이 난다 - 「제비꽃 아래」부분

매미가 되기 전 제비꽃 아래에 오랫동안 머물러 있어야 하는 굼벵이에게 제비꽃은 일종의 여인숙이다. 그러한 제비꽃처럼, 시인은 길손을 맞이하는 따뜻한 주인장 같은 마음으로 독자들을 끌어안는다.

* 시작 태도에서 엿보이는 장인 정신

이정록은 일상 혹은 자연 속에서 접할 수 있는 소소한 것들을 섬세한 눈길로 관찰하고 거기에서 아름다운 잠언을 이끌어내는 알레고리적 수법을 즐겨 사용한다. 그는 핫도그를 먹고 남은, 기름에 전 나무젓가락을 보고는 <끓는 기름을 들이마신/ 깡마른 고행의 자리가/ 슬프게도 더 늦게 썩을 것이>라며 생각에 잠기고(「나무젓가락 단청」), 시멘트 건물 외벽의 틈바구니에 뿌리를 내린 개망초 꽃을 보고 <칠흑 속으로/ 수도 없이 번개가 치고 있다>는 깨달음을 얻는다(「수로(水路)」).

시작(詩作) 초기나 지금이나 한결같은 시인의 태도에서는 일종의 장인 정신마저 엿보인다. 그는 마치 석수(石手)가 항상 같은 돌로 보다 더 완성된 조각을 만들어내려고 돌을 연마하듯, 더욱 정제된 언어로 보다 견고한 시적 세계를 추구해 나가고 있다.

* 수컷들은 알지 못하는 어미들의 세계

평론가 문혜원은 이정록의 시가 자연 예찬으로 일관되는 관념적인 생명시들과 구분되는 것은, 생명이 그 원천인 여성성과 체험적으로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라고 언급한 바 있다. 이정록은 「가재」라는 시에서 <붉노란 알을 한 아름 웅크린 모든 어미들이/ 이 땅을 짱짱하게 다져왔음을 깨닫는다>며 <껍질을 억만 번 벗어도 수컷은 알지 못한다>라고 단언한다. 이처럼 그가 그리는 생명의 세계는 여성성, 구체적으로는 모성애가 근간이 된다. 시인 스스로도 월간 현대시 와의 인터뷰(2000년 6월)에서 사람으로 다시 태어난다면 어머니로 태어나고 싶다고 말한 적이 있을 정도로 그의 시세계에서 여성적 생명력은 커다란 의미를 지닌다.

추천평 추천평 보이기/감추기

누가 뭐래도 우리는 <숨소리 싱싱한 방앗간>에서 태어났다. <허벅지와 아랫배 터진 살>에서 태어났다. 그 강의 젖줄을 빨아먹고 그 골짜기에서 자라 결국 그 속으로 사라진다. 그 속으로 들어간다는 것은 단순한 퇴행이 아니라, 영원히 사는 일이다. 터진 골짜기는 불멸의, 저 끝없이 재생 가능한 샘이다. 목마른 수컷들아 멀리 갈 것 없다. 이 아랫목이, 저 똥배가, 그 위에 달린 말라빠진 젖꼭지가 너희들 고향이다. 낮아지면서 풍성해지는 무덤이다. 허물을 수없이 벗고 목이 날아간 빈 병처럼 아슬아슬한 세상을 건너왔다고 큰소리 쳐대지만, 어른이 되었다고, 지어미와 새끼들 거느린 어엿한 가장이 되었다고 술 취한 어깨를 함부로 흔들어보지만, <껍질을 억만 번 벗어도 수컷들은 알지 못한다>.
--- 유용주(시인)

회원리뷰 (4건) 리뷰 총점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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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 끝나지 않는 어머니의 노래 내용 평점4점   편집/디자인 평점5점 c***s | 2002.11.24 | 추천1 | 댓글0 리뷰제목
계절보다 더 무서운 힘으로 제 몸을 바꾸는 생명체들이 있다. 이정록의 「제비꽃 여인숙」은 그 작고 여린 존재들의 깊은 생명력을 일상적이지만 힘 있는 언어로 잘 표현해내고 있다. 작가의 시선은 자연에 대한 깊은 이해로부터 출발, 아이를 낳고 돌보는 이 땅 어머니들의 모성에로 향한다. 시인은 생명 현상이 세상에 던지는 미묘한 울림을 내밀하게 응시하는 작업으로 시집을 시작하;
리뷰제목
계절보다 더 무서운 힘으로 제 몸을 바꾸는 생명체들이 있다. 이정록의 「제비꽃 여인숙」은 그 작고 여린 존재들의 깊은 생명력을 일상적이지만 힘 있는 언어로 잘 표현해내고 있다. 작가의 시선은 자연에 대한 깊은 이해로부터 출발, 아이를 낳고 돌보는 이 땅 어머니들의 모성에로 향한다. 시인은 생명 현상이 세상에 던지는 미묘한 울림을 내밀하게 응시하는 작업으로 시집을 시작하고 있다. 특히 (시집 제목과도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는) “제비꽃 아래”라는 시편이 작지만 경이로운 생명의 신비를 잘 표현하고 있다. 그런데 아니, 뿌리 사이에 굼벵이 한 마리 모로 누워 있다) 아기 부처님처럼 주무시고 있다 (…) 요구르트 병 허리를 매만지다가, 안에 고여 있는 젖 몇 방울을 본다) (…) 울음보만 바라보며 몇 년을 기다려온 굼벵이) 그 아름다운 허리를 오래 내려다본다) 할 말 아끼다가 멍이 든 제비꽃에게도 합장을 한다) 문득 내 손가락의 실 반지 그 해묵은 뿌리에 땀이 찬다) 제비꽃 아래의 고운 숨결에 동침하고 싶어) 내 마음 감나무 새순처럼 윤이 난다. - <제비꽃 아래> 中 꽃을 심으러 나갔던 시인이 제비꽃 아래 누워 있는 굼벵이 한 마리를 보면서 시는 시작된다. 요구르트 병은 “젖 몇 방울”을 올려 굼벵이를 먹이고 있고 제비꽃은 마치 “여인숙”처럼 굼벵이를 품는다. 차돌도 뿌리도 굼벵이의 잠을 방해할까, 살짝 그를 피해간다. 그리하여 그가 노래하는 세계는 생명이 생명을 보듬고 키우는 세계, 굼벵이가 매미가 되기까지 “사랑은 여러해살이”인 세계가 되는 것이다. 자연에 대한 시인의 이러한 시각은 여타 생명시와 구분될 수 있다. 단순히 예찬적이고 추상적인 생명시들은 그 뿌리에 힘이 없어 우리의 관심을 환기하지 못하기 일쑤이다. 그러나 관념이 아닌 일상으로부터 출발하는 그의 시선은, 대지와 대지에 발 붙인 사물들이 긴밀하게 연관되어 있는 생명 현상에 대한 즐거운 관심을 유발할 수 있다고 보여진다. 그것이 “나무로 다가가는 바람과 햇살과 빗물의 종교, 푸른 잎으로 외는 주문” 이며 “밤하늘 별자리를 통째로 품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생명에 대한 그의 관심은 그것을 돌보는 힘, 모성에의 관찰로 자연스럽게 옮겨 간다. 대지의 생산성이 여성의 육체, 모성성과 연관지어지는 것은 오랜 비유이다. 생산과 돌봄의 이미지, 아니 행위를 공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은 처지고 터진 살이라 해도 “숨소리 싱싱한 저 방앗간”으로부터 인간이 태어나고 자란 것이다. 그 방앗간은 “밀물 썰물 몽땅 품을 수 있는 오지랖”이며 “낙숫물을 받들고 있는” 돌이다. 흔히 말하는 모성이며, “껍질을 억만 번 벗어도 수컷은 알지 못”하는 세계이다. 그리하여 종일 시간과 말을 낭비하고 있는 “저 수컷을 매우 치라”고 소리치며, “궁둥이를 중심으로 온몸이 뭉쳐져 있”는 어머니들의 자리를 쓰다듬고자 하는 것이다. 모성에 대한 그의 발언은 단순 예찬적이지 않기에 위험하지 않다. 사실 모성 예찬적 발언은 여성들을 가두는 올가미로 작용하기 쉽다는 위험성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그에게 있어 어머니가 가진 여성적 생명력을 탐구한다는 것은 자신이 본래 태어난 곳을 찾는다는 의미인 동시에, 이 땅에 무수히 잠재한 모성을 이끌어냄으로써 영원히 사는 세계를 발견하는 것으로 보여진다. 그리움이자 영원에 대한 갈구인 것이다. 모성을 통해서야 비로소 자연의 신비와 하나될 수 있으며 작은 존재들을 돌볼 수 있기 때문이다. 봄이면 싹이 돋고 가을 되면 낙엽 지는 자연의 신비는 단순히 표면적인 것이 아니다. 그 안에는 대지의 고른 흙이, 곤충의 도움이, 바람의 흐름이, 물의 소리가 있었던 것이다. 이정록의 시는 단순히 자연 예찬적인 관념을 넘어서 더욱 근원적인 생명, 모성으로 깊이 들어가 있다는 점에서 높이 평가할 만하다. 그가 말하는 모성이 단순히 인간의 어머니가 아닌, 세계의 어머니로 승화될 수 있다는 점에서 또한 그러하다. 영원의 어머니이다. 생명, 끝나지 않는 어머니의 노래. 사족을 달자면, 모성에 대한 그의 인식에서는 어쩔 수 없는 한계가 느껴진다. 자신에게 일종의 면죄부를 주고 있다는 느낌. 그러나 어쩌랴, 제 몸으로 아이를 낳는 여자와 그것을 지켜보는 남자의 감성이 일치할 수는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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깔끔하고 아름답다. 그러나 힘이 있는 이정록의 시. 내용 평점4점   편집/디자인 평점5점 써**니 | 2001.10.26 | 추천0 | 댓글0 리뷰제목
이정록의 시는 사물에 대한 깊은 이해가 담겨있다.그는 요즘 유행하는 다른 시인들이 보여주는 사물에 대한 피상성과 추상적인 어투를 피한다. 그러나 그는 우리에게 익숙한 어투로 우리가 보지 못하는 이면을 보게 만든다. 거기에서 이정록시인의 시가 힘을 얻는게 아닐까? 어물전이며 싸전, 골목골목 좌판을 펼치고 있는 사람들, 십중팔구 여자다. 여자라고 부르기에도 뭐한 여자다;
리뷰제목
이정록의 시는 사물에 대한 깊은 이해가 담겨있다.그는 요즘 유행하는 다른 시인들이 보여주는 사물에 대한 피상성과 추상적인 어투를 피한다. 그러나 그는 우리에게 익숙한 어투로 우리가 보지 못하는 이면을 보게 만든다. 거기에서 이정록시인의 시가 힘을 얻는게 아닐까? 어물전이며 싸전, 골목골목 좌판을 펼치고 있는 사람들, 십중팔구 여자다. 여자라고 부르기에도 뭐한 여자다. 서로 여자라는 것을 알려주려는 듯, 심심찮게 이 여편네 저 여펜네 악다구니를 끼얹는, 세 바퀴 반을 돌린 돌린 털목도리들이다. 생선 비늘 덕지덕지한 스폰지 파카들이다. 좌판이 키워왔는지 궁둥이를 중심으로 온몸이 뭉쳐져 있다 저 자리들을 모두 수컷으로 바꿔놓고 싶다. 마늘전 김봉길 씨와 옹기전 심정구 씨만 빼고, 썬그라스와 방수 시계를 파는 서부사나이만 놔두고, 종일 내기 윷 노는 담뱃진들과 주정이 천직인 저 가래덩이들을 검정 비닐봉지에 한 열흘 집어넣었다가 좌판에 꿇어앉히고 싶다. 나오자마자, 파주옥이나 당진집으로 달려갈 저 수컷들을 한장 토막이라도 돼지쓸개처럼 묶어 말리고 싶다. 선거 철에만 막걸리 거품처럼 부풀어 오르는 저 수컷도 아닌 수컷들을 외양간 천장이나 헛간 추녀에 매달아 놓고 싶다. 궁둥이들의 가슴을 보아라. 밥이란 밥 다 퍼주고, 이제 구멍이 나서 불길까지 솟구치는 솥 단지가 있다. (이 땅의 여인들에게선 불내가 난다. 수컷들에게서도 설익은 불내가 나지만, 그것은 너무 오래 쓰다듬어주기만 한 여인들에게서 옮겨 간 것이다.) 깔고 앉았던 박스를 접고 천원짜리 몇을 다든고 있는 갈퀴 손으로 저 잡것들의 버르장머리부터 쳐라. 그리하여 다리몽둥이 절룩거리는 파장이 되게 하라. 돌아가 저녁상을 차리고, 밤새 또 술 주정을 받아내야 하는 솥단지들이여. 삼밭 장작불처럼, 이 수컷을 매우 쳐라. 저 수컷을 매우 쳐라 이 시에서 이정록은 자신의 관찰력과 사건들의 의미를 잘 조합하고 있다. 그리고 우리가 자주 쓰는 단어들로 구어체적인 문장 전개를 하고 있다. 그리하여 사건과 사물들이 우리 눈에 보여지듯이 기술되고 있으며 그 가운데에서도 의미의 흐름을 잘 유도하고 있다. 이 시가 이정록의 시 셰계를 대변한다고 할 수 없다. 그러나 이 시에서는 그만의 독특한 시 셰계가 잘 드러나 있다고 할 수 있다. 한가지 아쉬운 부분이 있다면 마지막의 '저 수컷을 매우 치라'는 화자의 집적적인 언질이 없었다면 더욱 힘이 실리지 않았을까 생각되는 점이다. 너무 화자가 드러나 이야기 한다는 것이 아쉽다. 전체적으로 이 시집은 윗 시에서 보았듯이 힘이 있다. 그리고 깔끔한 맛이 난다. 그리고 아름답다. 시가 힘을 가지게 될때, 즉 시가 호소력을 가질때 그 시는 보이지 않는 아름다움을 발산하게 된다. 갓 중학교에 들어간 단발머리 소녀처럼 깔끔한 그의 시에서는 이리와 같은 속내가 있고 그러나 얼굴은 싱글싱글 웃고있다. 이것이 바로 이정록의 시이다.

[인상깊은구절]
어미의 부리가 닿는 곳마다 별이 뜬다 한번에 깨지는 알 껍질이 있겠는가 밤하늘엔 나를 꺼내려는 어미의 빗나간 부리질이 있다 반짝, 먼 나라의 별빛이 젖은 내 눈을 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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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토리뷰 시와 제비꽃 (제비꽃 여인숙) 내용 평점4점   편집/디자인 평점4점 스타블로거 : 수퍼스타 숲*래 | 2015.11.09 | 추천0 | 댓글0 리뷰제목
시를 말하는 시 105시와 제비꽃― 제비꽃 여인숙 이정록 글 민음사 펴냄, 2001.9.28. 8000원  겨울이 저물고 봄이 찾아올 무렵, 우리 집 둘레로 온갖 봄꽃이 핍니다. 봄까지꽃이 피고, 코딱지나물꽃이 피며, 냉이꽃에 꽃다지꽃에 갓꽃이랑 유채꽃이랑 곰밤부리꽃이랑 아기자기하게 어우러집니다. 그런데, 이들 봄꽃은 한겨울에도 피어나기 일쑤이고, 겨울을 앞둔 늦가을에;
리뷰제목

시를 말하는 시 105



시와 제비꽃

― 제비꽃 여인숙

 이정록 글

 민음사 펴냄, 2001.9.28. 8000원



  겨울이 저물고 봄이 찾아올 무렵, 우리 집 둘레로 온갖 봄꽃이 핍니다. 봄까지꽃이 피고, 코딱지나물꽃이 피며, 냉이꽃에 꽃다지꽃에 갓꽃이랑 유채꽃이랑 곰밤부리꽃이랑 아기자기하게 어우러집니다. 그런데, 이들 봄꽃은 한겨울에도 피어나기 일쑤이고, 겨울을 앞둔 늦가을에도 피어납니다.


  우리 집 마당하고 뒤꼍 곳곳에서 피는 제비꽃을 살피니, 이월에도 삼월에도 사월에도 피지만, 여름에도 한 차례 피고 지기도 하고, 구월과 시월과 십일월에도 피고 집니다. 그리고, 십이월과 일월에도 피고 집니다. 다만, 한 포기 사이에서 다달이 피고 지지는 않고, 한 포기 사이에서 해마다 두 차례씩 꽃하고 씨앗을 봅니다. 이 씩씩하면서 앙증맞도록 작은 꽃송이를 바라보는 동안 ‘보랏빛’이라는 빛깔을 ‘제비꽃빛’으로도 가리키면 더없이 곱겠네 하고 느껴요.



주걱은 / 생을 마친 나무의 혀다 / 나무라면, 나도 / 주걱으로 마무리되고 싶다 / 나를 패서 나로 지은 / 그 뼈저린 밥솥에 온몸을 묻고 / 눈물 흘려보는 것 (주걱)


고목이 쓰러진 뒤에 / 보았다, 까치집 속에 / 옷걸이가 박혀 있었다 / 빨래집게 같은 까치의 부리가 / 바람을 가르며 끌어올렸으리라 (아름다운 녹)



  이정록 님이 빚은 시집 《제비꽃 여인숙》(민음사,2001)을 읽습니다. 어른이 읽는 시도, 어린이가 읽는 시도, 또 어린이가 읽을 동화도 쓰는 이정록 님이 서른 한복판 나이를 가로지를 무렵 내놓은 시집입니다. 이제 쉰 살 나이를 지나가는 이정록 님인데, 서른다섯 살 무렵 바라보는 서른다섯이라는 나이하고, 쉰 살 무렵 바라보는 서른다섯이라는 나이는 서로 어떻게 다를까요. 앞으로 예순 살이나 일흔 살에 이르면, 서른다섯이라는 나이는 어떻게 돌아볼 만할까요.



요구르트 빈 병에 작은 풀꽃을 심으려고) 밭두둑에 나가 제비꽃 옆에 앉았다) 나잇살이나 먹었는지 꽃대도 제법이고, 뿌리도 여러 가닥이다) 그런데 아니, 뿌리 사이에 굼벵이 한 마리 모로 누워 있다) 아기부처님처럼 주무시고 있다 (제비꽃 아래)



  우리한테는 모든 나이가 꼭 한 번씩입니다. 서른다섯 살도 한 번이고, 마흔다섯 살이나 쉰다섯 살도 한 번입니다. 스물다섯 살하고 열다섯 살도 오직 한 번뿐이지요. 그래서 이러한 나이를 거치는 동안 느끼거나 겪을 수 있는 삶도 오직 한 번뿐입니다.


  때로는 기쁨과 즐거움이 가득한 한때일 수 있습니다. 때로는 슬픔과 괴로움이 얼룩지는 한때일 수 있습니다. 때로는 바보스러울 수 있고, 때로는 훌륭할 수 있습니다. 때로는 웃음꽃이요, 때로는 눈물꽃일 수 있어요. 어떤 모습이든 우리는 저마다 꼭 한 번 누리는 ‘나이’를 거치면서 차근차근 자랍니다.


  아이도 자라고 어른도 자라지요. 아이뿐 아니라 어른도 몸이랑 마음이 함께 자라지요. 아이는 키가 크고 몸이 불어납니다. 어른은 키나 몸이 더 불지 않는다고 여길 만한데, 힘살이나 아귀힘이나 굳은살이나 여러 가지 모습이 새롭게 바뀌거나 거듭나요.



올해 나는 서른일곱이 되었다 이제 나는 무엇과 무엇으로 딱히 가르지 않는다 덤덤해졌다 내 아랫배처럼 두루뭉실해졌다 시도 때도 없이 두 아이의 이름이 섞이고 어머니와 아내가 섞이고 새끼토끼들의 고모와 이모가 섞이고 풀과 나무와 땔감이 섞이고 귀여운 토끼와 토끼탕이 섞이고 (토끼)



  시집 《제비꽃 여인숙》을 쓴 이정록 님이 읊은 서른일곱이 된 나이를 돌아봅니다. 아이들이 토끼처럼 자라는 모습을 물끄러미 지켜보는 눈빛을 헤아립니다. 이제 이 토끼 같은 아이들은 어떤 숨결로 이곳에 설까요. 토끼 같은 아이들은 어느덧 어른이 되어 ‘새로운 토끼’를 찾는 사랑을 꿈꿀까요.


  아침에 감알을 썰어 아이들한테 건네면, 아이들은 “고맙습니다. 잘 먹겠습니다. 사랑해.” 하고 감알을 보며 외칩니다. 나도 감 한 알을 집어서 함께 먹습니다. 나는 한 알을 먹고 아이들은 두 알씩 먹습니다. 나는 한 알로도 넉넉한데, 아이들은 두 알로도 모자랍니다. 다 먹고 더 달라 하면 더 줍니다. 몸뚱이로 보자면 어른인 내가 훨씬 크고 힘도 세지만, 먹고 싶은 밥그릇으로 대자면 아이들도 어른 못지않습니다.


  아마 이러한 삶은 스스로 누리지 않는다면 모를 만합니다. 스스로 아이를 낳고, 스스로 아이를 사랑하면서, 스스로 꿈을 새로 낳으면서, 스스로 내가 나를 사랑하는 길을 물끄러미 바라봅니다.



누나하고 부르면 / 내 가슴속에 / 붉은풍금새 한 마리 / 흐트러진 머리를 쓸어 올린다 (붉은풍금새)


새벽 이슬에 / 손마디가 / 부드러워지기 때문이다 (새벽 이슬)



  아침 낮 저녁으로 뒤꼍으로 오르면 십일월이 무르익는 요즈음은 유자 익는 냄새가 물씬 퍼집니다. 고닥 뒤꼍에 설 뿐이지만 내 코는 유자 냄새를 큼큼 맡으면서 즐겁습니다.


  봄에 뒤꼍에 서면 매화꽃 내음이 가득 퍼집니다. 매화꽃이 질 무렵에는 모과꽃 내음이 고루 퍼지고, 여름으로 접어들 무렵에는 찔레꽃이랑 감꽃이 온몸을 따사로이 어루만져 줍니다.


  철마다 다른 꽃과 열매가 철마다 다른 숨결로 스며듭니다. 철마다 다른 풀과 꽃이 돋으면서 철마다 새로운 노래와 이야기가 퍼집니다. 그러니까, 아이들이 무럭무럭 자라는 모습을 지켜보면 이 아이들은 꼭 한 번 지나가는 한 살 두 살 다섯 살 여섯 살 모두 새로운 모습입니다. 아홉 살 열 살도, 열네 살 열다섯 살도 새로운 몸짓이에요. 어른한테도 서른일곱 살이랑 마흔일곱 살이란 그야말로 새로우면서 재미난 삶자락 가운데 하나입니다.



어머니는 목이 부러진 / 내 알루미늄 숟가락을 버리지 않으셨다 / 부뚜막 작은 간장종지 아래에다 놔두셨는데 / 따뜻해서 갖고 놀기도 좋았다 눈두덩에도 대보고 / 배꼽 뚜껑을 만들기도 했다 / 둥근 조각칼처럼 생겼던 손잡이는 / 아끼기까지 하셨다 고구마나 감자를 삶을 때 / 외길로 둟고 간 벌레의 길을 파내시는 데 / 제격이었기 때문이었다 (목이 부러진 숟가락)



  시 한 줄을 읽으면서 노래 한 가락을 읊습니다. 시 두 줄을 읽으면서 노래 두 가락을 읊습니다. 아이들은 아이들 나름대로 사랑을 짓고, 아이에서 어른으로 자라는 사람들은 이러한 삶결대로 새로운 사랑을 짓습니다.


  이정록 님을 낳은 어머님이 건사한 ‘목이 부러진 숟가락’은 어떠한 사랑이었을까요. 언뜻 보자면 그냥 ‘목이 부러진 숟가락’이지만, 이 숟가락으로 밥을 먹고 노래를 부르고 무럭무럭 자란 오랜 이야기가 깃든 노래주머니일 수 있습니다. 쓰레기통에 던지면 쓰레기이지만, 살강에 가만히 얹으면 알뜰살뜰 누리는 살림살이 가운데 하나입니다.



집으로 돌아오는 / 먼 길, 내 책가방 속에는 / 돌멩이 가득했다 (돌의 이마를 짚다)



  삶을 노래하기에 시 한 줄입니다. 삶을 꿈꾸기에 시 두 줄입니다. 삶을 사랑하기에 시 석 줄입니다. 삶을 노래하지 못하면 시가 태어나지 못하고, 삶을 꿈꾸지 않으면 시가 자라지 못합니다. 그러니까, 삶을 사랑하는 사람이 시를 씁니다. 아픔도 시로 쓰고 슬픔도 시로 쓸 뿐 아니라, 기쁨과 보람과 자랑과 꿈과 이야기와 웃음 모두 시로 씁니다.


  오늘도 아침에 마당 한쪽에 쪼그려앉아서 제비꽃을 들여다봅니다. 어제그제 찬비가 내려서 마당 한쪽 제비꽃은 꽃송이를 야무지게 닫습니다. 꽃송이를 벌린 제비꽃도 곱고, 꽃송이를 꼭 닫은 제비꽃도 곱습니다. 우리는 모두 고운 숨결로 어깨동무를 하는 사람입니다. 4348.11.9.달.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시골에서 시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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