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토요일마다 산에 가는 이유는, 이제야 장애아 엄마들의 아픔을 조금이나마 알기 때문입니다. 우리 엄마들은 쉼이 없습니다. 긴장을 늦출 수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작은 수고가 장애아 부모들의 조그마한 쉼터가 되었으면 합니다. … 원칙 하나는 확실했습니다, ‘눈이 오나 비가 오나 매주 토요일에는 산에 간다!’ 그렇게 첫 산행을 시작한 날은 몹시도 무더운 날이었습니다. 가만히 있어도 콧등에 땀방울이 맺히는 날이었는데, 그 더위에 산을 오르느라 족히 땀 한 바가지는 흘렸던 기억이 납니다.
---「1부 산을 오르는 아이들 “우리의 수고로 엄마들의 쉼터를”」중에서
세상에 어느 누가 건강한 자녀를 바라지 않겠습니까. 아니 어느 누가, 발달장애를 가진 자녀가 내 삶의 평안을 깨고 불쑥 찾아올 수도 있다는 것을 상상이나 했겠습니까. 결혼 8년 만에 찾아온 귀한 자녀가 장애를 가졌다는 현실 앞에서, 나는 정체성의 일대 혼란과 파괴를 홀로 감당해야만 했습니다. … 확고한 목표 없이 방황하는 삶을 살던 내게, 어느 날 하나님이 관여하시기 시작했습니다. 장애를 가진 딸아이를 만나게 하신 것, 믿었던 남편의 사업 실패와 고이 가꾸어 온 가정이 깨지는 아픔을 통해 하나님은 내 삶을 180도 바꾸셨습니다. … 하나님께서 태희를 통해 엄마인 내게 허락하신 축복이 있음을 믿습니다.
소중한 인연도 이 아이를 통해 선물로 주셨습니다. 밀알천사 산행 팀을 알게 된 것은 내게 큰 축복이었습니다. … 예상대로 아이는 청계산 입구에서부터 올라가지 않겠다고 떼를 쓰며, 온 산이 쩌렁쩌렁 울리도록 비명을 질러댔고, 순간 식은땀이 흐르기 시작했습니다. 그때 황망해하던 나를 안심시키며 아이의 손을 냅다 잡고 올라가던 장로님과 남 대표님의 모습이 잊히질 않습니다.
---「2부 가슴으로 쓰는 편지 “축복처럼 내게 온 딸_ 진태희의 엄마”」중에서
누구든지 아플 때는 병원을 찾습니다. 그런데 우리 아이들이 아플 때 편히 갈 수 있는 병원은 많지 않습니다.
충치 치료를 하려면 전신마취를 해야 할 때도 있습니다. CT 촬영을 하려면 수면제를 투여해야 하는 경우도 있고요. 채혈할 때면 전쟁이 벌어집니다. 특히 덩치가 큰 아이들의 경우는 더욱 힘이 듭니다. 그러나 무엇보다 힘든 건, 같은 치료비를 내면서도 주변의 눈치를 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어떤 병원은 우리 아이들을 꺼리기도 합니다. 오래 전부터 우리 아이들과 그 가족을 위한
병원을 꿈꿔왔습니다. 그 꿈이 드디어 이루어졌습니다. 나와 같이 교회에서 자폐장애인 봉사를 하던 윤수진 선생님이 병원 개업을 결정하신 겁니다. … 이야기내과에서는 우리 아이들이 떼쓰고 울어도 됩니다. 아이들을 위한 진료시간이 이야기처럼 길어도 됩니다. 나도 가끔 호출당합니다. 아이들이 나를 보면 갑자기 얌전해지는 경우가 있기 때문입니다. 내 앞에서는 순순히 주사를 맞기도 합니다. 면허 없는 남자간호사 역할을 하는 겁니다.
---「3부 카멜레온, 눈뜨기 사랑하기 “천사들의 주치의가 생겼어요”」중에서
자폐장애인들이 마음 편히 관람할 수 있는 공연을 보는 게 꿈이었습니다. 자폐의 특성상 자폐성 장애인과 가족들은 공연 관람을 엄두조차 내지 못합니다. 그래서 내가 직접 천사들과 가족 그리고 짝꿍만을 위한 콘서트를 열겠노라고 마음먹었습니다. 밀알천사 콘서트 “그래서 사랑하고 그래도 사랑한다”는 그렇게 시작됐습니다. … 마침내 공연이 열리던 날, 하나 둘 천사들이 무대 위에 모습을 드러내는 순간 가슴이 뭉클했습니다. 다들 열심히 갈고 닦은 솜씨를 자랑합니다. 절로 감사의 기도가 흘러나왔습니다. 오랜만에 우리 천사들과 가족들이 마음껏 웃고 박수하며 즐거워하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그 모습을 보니 기쁘면서도 마음 한 구석에서는 눈물이 납니다. ‘천사들과 산다는 것이 얼마나 힘들까?’ 이런 작은 것에도 기뻐하고 즐거워하는 모습이 마음속으로 울게 하네요.
---「3부 카멜레온, 눈뜨기 사랑하기 “저지르고 후회하고 그리고 감사하고”」중에서
래그랜느가 문을 열었습니다. 새로 설립한 회사의 이름이 바로 ‘래그랜느’(LES GRAINES)입니다. 불어로 ‘씨앗들’이라는 뜻입니다. … 사회적 기업인 래그랜느는 자폐장애인들에게 일자리를 제공해 꿈과 희망을 심어주겠다는 오랜 구상과 고뇌의 산물입니다. … 5년 전 래그랜느가 세워졌을 때, 많은 사람들이 무모하다며 얼마나 버티겠냐고 했습니다.
그러나 지금의 래그랜느는 많은 천사들과 가족들이 선망하는 일터요, 희망의 일터가 되었다고 자부합니다. 동시에 앞으로 우리가 나아갈 방향을 제시했다고 생각합니다. … 내 나이 60대 중반에 들어서지만, 갈렙처럼 80세에 하나님께 새 땅을
달라고 대담하게 외치는 자로 남고 싶습니다. 제2, 제3의 래그랜느가 생겨나 아이들 능력에 맞게 원하는 아이들은 모두 취업시키고 싶습니다. 결국에는 부모 없이도 스스로 일하면서 살아갈 수 있는 삶의 터전을 만들고 싶습니다. 내가 다시금 저지르고, 후회하며, 감사하게 해 주시길 간절히 기도드립니다. ---「4부 세상 밖으로 “오랜 고뇌의 산물, 래그랜느”」중에서
자폐장애인 작업장을 운영한 지도 10년이 지났습니다. 하면 할수록 부족함과 어려움을 느낍니다. 그리고 새로운 작업장에 대한 욕심은 한없이 생겨납니다. … 꿈을 꾸어봅니다. 서울 근교에 3천 평 정도의 땅이 있으면 좋겠습니다. 그 안에 제조공장이 있습니다.
더불어 우리 아이들이 사는 그룹홈도 지어야겠지요. 남은 땅에는 농사를 짓습니다. 우리 아이들이 1차 상품으로 판매하기는 힘들겠지요. 가공식품을 만들 농사를 짓고 싶습니다. 공장에서 일하다가 일거리가 없으면 농사를 짓고, 그 수확으로 간장, 된장, 효소, 쨈 등 2차 가공식품을 만듭니다. 우리가 있는 곳은 다른 장애우들의 체험실습장이 되겠지요. 여기 와서 일을 익히고 다른 곳에
취업하거나, 서너 명의 가족이 다른 공동체를 만들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 줄 장소가 되면 좋겠습니다. 꿈은 이루어진다고 했습니다. 내가 혼자 할 수는 없겠지요. 하나님의 선하시고 의로우신 손길과 인도하심을 기대해 봅니다.
---「4부 세상 밖으로 “세 가지 소원”」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