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3월 11일 날이 저물 무렵, 라 로셸 북쪽 어느 구역에서 아버지는 엽총으로 목숨을 끊었다. 그는 주차장에 차를 세워놓고 조수석에 앉아 있었는데, 아마도 핸들이 걸리적거려 그랬던 것 같다. 그는 좌석을 조금 뒤로 젖히고 두 다리를 쭉 뻗은 다음, 총신을 몸에 걸친 채 총구를 입안에 넣고 아주 민첩한 동작으로 방아쇠를 당겼다. 하얀 가운, 가무잡잡한 얼굴빛, 태양의 남자답게 눈부신 미소를 띤 그, 바조주 거리의 물리치료사였던 시절 황금 손의 사나이로 불렸던 그가. --- p.7쪽)
어느 날 저녁 브누아트 그루가 들려준 폴 기마르의 말이 생각난다. 『삶의 문제들』의 저자이기도 한 그에게 누군가가 이렇게 물었다. 앞으로 살 수 있는 시간이 딱 십오 분 남았다는 걸 안다면 뭘 하겠습니까? 기마르는 이렇게 대답했다고 한다. 손목시계를 풀어 멀리 던져버리겠소. 아버지는 오래전에 자신의 손목시계를 멀리 던져버렸다. 그는 더는 남은 시간을 계산하지 않았다. 그는 모래시계를 박살내버렸다. --- p.28~29
하지만 그전에, 영안실과 그 어색한 침묵의 행렬, 그리고 조심스러운 물음이 있었다. “아버님을 보시겠습니까?” 우리 세 사람 모두 아버지의 얼굴을 눈앞에 마주하게 된다는 생각에 소리내어 말은 하지 않았지만 서로를 겁에 질린 표정으로 쳐다보았다. 아무리 그래도 십이 구경 총알이 아버지의 얼굴을 뚫고 지나가지 않았던가…… 남자는 우리를 격려했다. 그랬다. 그자는 준비를 해두었다. 그는 우리에게 아버지를 소개할 수 있었다. 우리에게 아버지를 소개하다니? 나는 몸이 떨렸다. 낯모르는 사람이 우리에게 우리 아버지를 소개하는, 햇빛도 들어오지 않는 이곳은 도대체 어떤 세상이란 말인가? 나는 그 낯선 이에게 말하고 싶었다. 우리는 그를 알고 있다고, 당신에게 그를 소개할 사람은 바로 우리라고. 하지만 나는 이내 고쳐 생각했다. 내가 알고 있는 건 살아 있는 아버지였다. 나는 그를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죽은 그를. --- p.33~34
가무잡잡한 갈색 피부에 축구공을 자유자재로 다루는, 아버지를 빼닮은 프랑수아. 엄마처럼 주근깨가 있고 아버지처럼 활짝 짓는 미소, 좌중을 휘어잡는 유머 감각의 소유자이자 몽상가인 금발머리 장. 그들과 그는 누구라도 한눈에 알아차릴 수 있는 몇몇 면모와 번갯불처럼 순간적으로 드러나곤 하는 습관들이 서로 닮았다. 표정, 말투, 눈썹을 활처럼 휘게 하고 눈가에 주름이 잡히게 하는 독특한 표정, 침착한 태도. 진부한 두세 단어로 말하는 화법, 웃음을 터뜨리는 방식. 제2의 천성, 그건 그들의 얼굴에 새겨져 몇 초 동안 그대로 있다가 점차 희미해지고 그러다가 돌연히 다시 나타난다. 아버지는 그들의 신경섬유 하나하나에 살아 있다. 그들은 그가 움직이는 것을 느낄 게 틀림없다. 그러므로 이제 그들이 자신들의 몸속에 그를 간직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 p.36
우리가 함께한 삶은 엽총으로 결말을 맺기 훨씬 전부터 덧없이 사라져가고 있었다. 시골집에 잠들어 있는 어머니의 사진첩에서 아버지의 흔적이 지워진 지는 이미 오래다. 사진을 떼어낸 자리에는 마치 오랜 세월 벽에 붙어 있던 액자를 떼어냈을 때처럼 하얀 자국이 남아 있었다. 결별은 가족 박물관에는 별로 유익하지 않다. 추억은 쿵 하는 소리만 들어도 재빨리 달아나는 겁쟁이처럼 뿔뿔이 흩어진다. --- p.82
나는 상상한다. 그는 나에게 편지를 쓰기 위해, 내 동생들에게 편지를 쓰기 위해 부엌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제일 먼저 누구에게 쓰기 시작했을까? 그 순간 그의 얼굴은 어땠을까? 그는 편안했을까? 침착했을까? 그래, 나는 그가 아주 침착했을 거라고, 완전히 자유로웠을 거라고 짐작한다. 아주 편한 몸과 마음으로 자유롭게, 종이 위에 읽기 쉬운 글씨체로 글을 써나갈 수 있었을 거라고. 그는 라디오를 켜지 않았던 게 분명하다. 오직 자신에게만 귀를 기울이면서, 떠나기 전에 우리에게 말하고 싶은 것들에 집중한다. 그는 결연히, 자유로운 인간의 완벽하게 논리적인 일관성을 유지하고 있다. 그는 자유를 되찾는다. --- p.101
차를 몰고 파리로 되돌아오는 길에 나는 한 남자와 그의 어린 아들을 지나쳐간다. 그 남자, 거무스레한 얼굴의 그 남자는 달린다. 그 아이, 7월의 태양 아래 놀랄 정도로 새하얀 그 아이는 온 힘을 다해 페달을 밟는다. 그건 그일 수도 있을 것이다. 그건 나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들은 거의 사십 년 전의 우리일지도 몰랐다. 라디오에서 앙리 뒤티외의 심란한 첼로 연주곡, 울지 않을 수 없게 만드는 [첼로를 위한 세 개의 노래]가 흘러나온다. 내 차의 사이드미러 안에서, 그 남자는 달리고 그 아이는 페달을 밟는다. 그들은 아주, 아주 작아져간다.
--- p.140~14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