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세의 임금들은 천명을 받아 천위(天位)에 오른 만큼 그 책임이 지극히 무겁고 지극히 큼이 어느 정도이겠습니까마는, 이처럼 엄하게 자신을 다스리는 도구는 하나도 갖추어지지 않았습니다. 왕공(王公)이라는 높은 자리, 억조 백성들이 떠받드는 자리에서 편안히 스스로 성인인 체하고 오만하게 스스로 방종하니, 마침내 어지럽게 되어 멸망하게 되는 것 또한 어찌 이상하게 여길 만한 일이겠습니까? 그러므로 이런 때에 신하된 사람으로서 임금을 도에 맞도록 인도하려는 자는 진실로 그 마음을 다하지 않음이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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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재란 존재하는 모든 것을 의미한다. 주희(1130~1200)는 "천지 사이에 가득찬 소리와 빛깔, 모양과 형상이 있는 모든 것이 물(物)이다."라고 하였다. 주희가 말하는 물은 흔히 사물이라고 일컬어지며, 대체로 개별자를 의미하며, 서양철학의 존재자라는 개념에 상응한다. 여기서 필자가 논하고자 하는 존재도 주희가 말하는 물과 같은 개념이다. 그러나 이 때의 존재는 개별자로서 존재하는 존재자 뿐 아니라 그것의 총체인 자연 또는 우주까지도 포괄하는 개념이라고 할 수 있다. 서양철학에서 말하는 존재 개념은 너무나도 다양하여 한가지 의미로 단정하기 힘들다. 서양철학의 존재기념이 '가장 추상적인 최고류 개념으로서의 존재'라고 한다면, 적어도 그처럼 추상적 의미의 존재는 아님을 밝혀둔다. 여기서 말하는 존재는 생성변화 과정에 있는 존재하는 모든 것을 가리킨다.
존재는 선이나 면으로 존재하지 아니하고 3차원 내지 4차원적으로 존재하기 때문에 모든 존재는 내면과 이면으로 이루어져 있다. 서양철학의 본질과 현상, 역(易)의 형이상과 형이하, 도(道)와 기(器) 등의 대비된 개념들은 존재를 양면성으로 이해하는 관점들이다. 존재를 양면성으로 이해하는 관점 자체가 이미 존재를 현상적으로만 바라보는 관점과 대립되는 관점이듯이 대부분의 존재에 관한 이론은 존재를 현상적으로 이해하는 데 만족하지 못한다. 현상에 대한 연구라고 하더라도 현상을 보다 깊게 이해하려는 자세에는 현상을 현상이게끔 하는 존재내면의 원리에 대한 관심이 함께 하고 있다.
서양철학사에는 관념적 사변철학에 입각한 다양한 존재론과 형이상학이 있었으나 사변철학은 존재를 실상대로 설명할 수 없었다. 이는 존재를 추상화하여 존재의 구체성을 상실함으로써 존재를 이해할 수 있는 기반인 존재와의 직접적인 관계를 스스로 끊어버렸기 때문이다. 관념적 사변철학으로서의 존재론과 형이상학은 경험론적 인식론에 입각한 자연과학이 발달하기 시작하면서 '존재 이해의 학문'으로서의 자격을 상실하게 되었다. 그러나 자연과학이 존재의 참된 모습을 해명해 줄 것이라고 믿는 사람은 드물다. 과학은 과학적 입장을 바탕으로 한 자연에 대한 연구로서, 이미 자연의 비밀 가운데서 많은 것을 밝혀주지만 과학적으로 인식된 것이 곧 자연의 참된 모습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
관념적 사변철학에 의해서는 물론이며, 과학에 의해서도 존재의 온전한 해명에 대한 자신을 상실한 서양의 과학자나 철학자들이 동양고전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하는 것은 당연한 현상이다. 동양의 철인 현자가 지녔던 존재 이해의 바업이 아직 확연하게 밝혀지지는 않았다. 그러나 서양인의 방법이 객관적, 논리적, 분석적인데 반하여 동양인의 방법이 주관적, 직관적, 종합적이라는 지적은 많이 있었다. 존재 이해의 방법이 이렇게 서로 다르다는 지적은 있었지만 근본적인 원인이 어디에 있는가는 잘 밝혀지지 않고 있다. 필자는 그 차이가 존재 이해의 시각이 다름에서 온다고 본다. 서양인은 존재를 객체화시켜 외면으로부터 논리적으로 분석하기를 좋아한다. 동양인은 존재를 객체화하기를 좋아하지 않는다. 주체와 객체는 다같이 유기적인 관계를 맺고 잇는 전체 자연의 부분이라고 보기 때문에 존재 이해의 시각은 내면의 주체로부터 시작된다. 주체의 온전한 이해를 통한 주관의 열림을 통하여 존재 세계를 존재의 내면으로부터 외면에 이르기까지 직관에 의해 종합적 통일적으로 바라보고자 한다.
--- pp 110~112
공부를 하며 깊은 맛이 조금씩 느껴질 때는 "진리가 마음을 기쁘게 하는 것이 소고기 돼지고기가 입을 즐겁게 하는 정도만이 아니라"는 퇴계의 말에 고개를끄덕이게 된다. 기쁨이 조금씩 쌓이며 가슴 속이 훤하게 밝아오면 '아, 인간의 위대함이여! 진리의 위대함이여!' 하는 탄성이 새어 나오기도 한다. 그러나 사물에 대하여 과학적 시각이 길러준 벽이 너무나 두터워 사람들은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보기를 거부한다 .긴 역사를 통하여 수많은 철인과 현인들이 삶의 진리를 역설하였지만, 모든 사상이 과학 앞에 빛이 바래버렸다. 동아시아 문화권에서 긴 역사를 통해 엄청난 영향을 미친 공자와 맹자, 그리고 여러 선현들이 몸소 실천하며 직접 체험한 것을 바탕으로 가르치고 보여준 내용이 경전 가운데 그대로 남아있지만 아무도 믿지 않을 뿐만 아니라, 온통 비판의 음성만 높다. 설익은 주제에 음성을 높였다가는 빗발치는 비판을 스스로 견디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선현에게도 누만 끼치게 될가 두려울 뿐이다.
--- 옮긴이의 말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