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만 관심을 가지면, 경제는 결코 어렵거나 멀리 있지 않다. 셰익스피어의 사랑에도 피가로의 결혼에서도 사랑을 전달하는 장미의 기사에서도 보이지 않는 시장의 힘이 있다. 누군가를 기다리는데도 비용이 있고, 성냥개비를 만드는데도, 장바구니에도, 슈퍼스타가 탄생하는데도 시장의 비밀이 움직인다.
머리말 중에서
열보다 아홉이 더 크다? 크고 많은 것만을 좋아하는 세상에 너무나 황당한 얘기이다. 초등학교 산수에도 어긋나는 이 논리가 과연 맞는 말인가. 그래도 진리는 가까운 곳에 숨어 있을 때가 있다. 사람들은 열보다 아홉을 더 귀중하게 느낄 때가 많다. 여성들은 29세에 오래 머물러 있고 싶어하지 않는가. 그래서 29세 더하기 몇 개월이라는 새로운 나이 계산법도 등장한다. 남자들도 50보다는 49세에 더 머무르고 싶어한다. '아직은 마흔아홉'이라는 드라마도 있지 않았는가. 가는 세월을 아쉬워하며, 아홉에서 열로 넘어가는 데 상당한 저항을 느끼기 때문이다. 그래서 비록 수학으로는 맞지 않아도, 마음으로는 아홉이 열보다 더 귀하게 느껴진다.
그러나 열보다 아홉을 선호하는 계산법은 비단 나이에만 통용되는 것은 아니다. 합리적인 분석으로도 증명이 가능하다. 사회과학의 여왕이라는 경제학에서도 흔히 나타나는 현상이다. 실제로 아홉이 열보다 더 크다는 논리는 5,000년 전 중국의 제왕신화에 나오는 하도에도 수록되어 있다고 한다. 물론 우리가 어떻게 심오한 역의 세계를 쉽게 이해할 수 있겠는가. 다만 고급 수학을 많이 활용한다는 경제학에서조차 그런 엉뚱한 산수가 있다니, 한번 눈여겨 살펴볼 일이다.
---pp.23-24
숲과 나무의 관계와 같이 미시경제를 구성하고 있는 경제 주체들이 건강해야만 거시경제도 초록으로 보인다. 그러나 진한 녹음의 숲에도 병충해에 시달리는 나무가 잇듯이, 거시경제가 호황이라도 현미경속에 나타난 일부 경제주체들은 불황에 시달릴 수도 있다. 숲이 잡목으로 우거져도 파랗게 보일수 있는 것처럼 경제도 거시경제만 파랗다고 모든 것이 좋은 것은 아니다. 아카시아처럼 독점기업이 시장을 지배할 수도 있고, 통화량은 많이 풀렸어도 중소기업에는 돈 가뭄이 지속될 수 있다.
따라서 경제정책은 거시경제와 미시경제를 효율적으로 조화시키는 것이어야 한다. 정원사가 나무 하나하나를 손질하면서 조경을 생각하듯이. 그래야 솔숲 끝으로 해맑은 햇살이 찾아와, 나뭇가지에 서려있는 근심을 모두 덜어줄 수 있지 않겠는가.
--- p.50
세계최대의 거부인 마이크로소프트의 빌 게이츠가 길을 가고 있는데 10만원이 떨어져 있다고 하자. 이때 돈을 줍는 것이 현명한가? 그냥 지나치는 것이 현명한가? 그의 재산이 900억달러이고 창업한지 대략 25년이 되니 이자수익을 무시한다면 매초당 114달러, 즉 14만원 가량을 버는 셈이다. 기회비용을 이해한 사람이라면 그냥 지나치라고 권할 것이다. 행복하게도 그가 허리를 굽혀 돈을 줍는 시간의 기회비용이 줍는 돈보다 많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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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 경제문제의 본질은 시대에 따라 변함이 없었다. 실업과 인플레이션, 저성장과 무역적자, 재정적자 등 고전적인 경제문제들은 인류 역사와 부리를 같이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해결하려는 경제학적 처방은 시대에 따라 달랐다. 때로는 서로 상충되는 논리가 등장하기도 했고, 같은 처방이라도 정책의 강도가 각양각색이었다. 그래서 노벨 경제학상은 서로 상반된 논리를 주장한 두 사람이 모두 받을 수도 있지 않은가. 모든 경제문제를 동시에 해결하는 만병통치약은 결코 경제학 사전에는 없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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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학에서는 자신의 행동이 사후적으로 불러오는 부정적인 영향을 '부메랑 효과'라고 부른다. 부메랑은 호주의 원주민들이 사용하던 사냥도구로서 멀리 던지면 다시 돌아오게 만들어져 있다. 원래 부메랑 효과는 선진국으로부터 기술과 자본을 제공받은 후진국이 경쟁력을 갖추어 선진국과 경쟁할 때 나타나는 현상으로 쓰여졌다. 자동차와 전자제품이 대표적인 사례이다. 선진국이 로열티를 받고 기술을 제공했지만, 나중에는 선진국 제품과 경쟁하기 때문이다. 이런 사례는 특히 해외 직접투자에서 많이 발생했다. 초기의 이윤추구를 위한 투자결정이 부메랑으로 되돌아와 다국적 기업을 고통스럽게 만드는 것이다. 그래서 해외투자에는 최신 기술을 제공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
금융위기가 지속되는 경제 상황에서는 부메랑이 어디로 날아올지 알 수가 없다. 눈앞의 이익만 생각하지 말고, 부메랑 효과도 고려해보자. '드라큘라' 속의 감미로운 아리아처럼 결국 '우리는 하나'가 아닌가.
---pp.39-40
'결혼은 같이 사는 기쁨을 증대시키고, 떨어져 있는 아쉬움의 비용은 감소시킨다. 두 사람이 소득과 집, 성적 호감을 공유하고, 집안관리 육아 등을 위해 동업하며, 따로 살기 때문에 지불했던 비용을 줄이게 된다. 이 과정에서 규모의 경제와 분업의 장점도 나타난다. 이렇게 보면 가정도 기업과 크게 다를 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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