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곱 개의 가지로 된 상징물로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바로 백제왕이 일본국에 하사한 것으로 알려지고 현재는 일본 국보로 지정되어 있는 칠지도일 것이다. 칠지도에 새겨진 명문 해석 때문에 한일 역사학자들 사이에 논란이 많지만 정작 이 칠지도가 왜 일곱 가지로 만들어졌으며 이 일곱 가지가 무엇을 상지앟는지를 심도있게 제대로 해석한 이는 없었다. 그러나 많은 상징물과 문양을 비교 분석하였던 나로서는 어렵지 않게 그 일곱 가지의 비밀을 해석할 수 있었다. 그 실마리는 바로 아메리카 네바다주에 있는 암굴 벽화 속의 문양이었다. 그 암굴벽화에는 여러가지 문양이 그려져 있는데 나의 흥미를 끈 것은 바로 일곱 가지 나무와 뱀 문양이었다. 일곱 가지 나무와 뱀이 같이 그려진 그 문양은 칠지도의 모양과 흡사하게 닮았고 중요한 것은 뱀이 함께 그려져 있다는 것이었다.
즉 일곱 가지 나무와 뱀 문양은 바로 앞에서 언급한 칠두사, 즉 일곱 머리의 뱀신을 상징화시킨 것이라고 해석이 되었다. 일곱 개의 별에서 온 하늘의 신들, 그리고 그들이 지구야생여성을 취해 관계를 가짐으로서 새로운 인류를 탄생시킨 신화의 비밀스런 내용이 바로 일곱 머리 뱀신, 일곱 가지의 나무, 칠성신을 형상화한 문양 속에 상징화되어 있는 것이다. 신라의 왕관과 가야 시대의 왕관을 보면 일곱 가지의 문양이 정면에 세워져 있고 옆쪽에는 나무 끝에 앉아 있는 새가 조각되어 있다. 이 조각 역시 인류의 조상 칠성신을 상징화시켜 왕권이 하늘로부터 이어졌고 왕이 그들의 자손임을 나타내는 것이라고 봐야 한다. 백제의 칠지도는 우리가 일곱 개의 별에서 온 하늘의 신, 칠성신들의 후손들이며 이 사실을 칠지도에 상징화시키고 그것을 영원히 기억하라는 의미로 백제 왕이 일본 왕에게 하사한 것으로 판단된다.
이런 일곱 가지와 칠성신, 뱀신에 관한 필자의 해석은 아메리카 인디언이 그린 모래 그림 두 점에서 더욱더 강하게 뒷받침되었다. 이 두 그림은 한쌍처럼 그려져 있으며 하나는 남성상이고 하나는 여성상이다. 먼저 남성상을 살펴보면 남성의 머리 위에 나뭇가지 문양이 눈에 띄는데 이것은 바로 일곱 가지의 나무임을 알 수 있다. 즉 이 남성상은 칠성신을 의미한다고 보여진다. 그리고 양팔에는 남성의 성기 네개가 뻗어 있는데 성기는 씨, 즉 새로운 종족을 탄생시켰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많은 신화에서 언급된 네 가지 종족의 인류탄생(황인, 백인, 흑인, 청인)을 상징화시킨 것으로 보여지며 이들 모두가 남성상의 주인공, 즉 일곱별에서 온 칠성신의 자손임을 나타낸 그림이라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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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시대에 비교적세력이 약한 나라로 알려진 가야국은 여러 가지 점에서 신비에 싸여 있다. 최근 일본학자 아라다 씨는 일본 왕의 조상은 가야 김수로 왕의 게보라는 주장을 펴고 그 증거를 들었다.
가야국을 세운 이들은 누구인가? 그들은 어디서 온 사람들인가? 이런 의문점에 대해 심도있는 고찰이 이종기 씨와 김병모 교수에 의해서 발표되었다. 그는 허황옥이 아유타국에서 왔다는 사실과 김수로왕과 왕비의 능에 새겨진 쌍어문 문양의 기원을 찾는데서 해답을 얻으려고 시도하였다. 분명 왕릉에 있는 쌍어문의 문양은 우연히, 아무 뜻 없이 새겨지지는 않았을 것이며 삼국유사의 기록에 등장하는 허황옥의 고향 아유타국도 실존했으리라 볼 수 있다. 아유타라고 불리는 지명을 조사한 끝에 인도 갠지즈강 유역에 자리잡고 있는 인도의 성지로 알려진 아요디아가 지목되었고 놀랍게도 그 지방의 문장이 쌍어문이었다는 것이다. 그 지방의 힌드교 사원, 택시 번호판, 경찰 제복 등에서 상어문 문양은 십게 발견된다고 한다. 두 마리 물고기가 마주보고 있는 형상의 그 문양은 분명 김수로왕과 허 항후의 능에 새겨진 쌍어문과 같은 기원으로 볼 수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가락, 가야는 인도 고어로 물고기라는 사실이 흥미롭다. 결국 김해 김씨와 김해 허씨의 시조는 아유타국, 즉 인도의 아요디아에서 이주해온 것으로 추정되는 것이다. 그리고 가락, 가야는 인도 고어로 물고기라는 사실이 흥미롭다.
결국 김해 김씨와 김해 허씨의 시조는 아유타국, 즉 인도의 아요디아에서 이주해온 것으로 추정되는 것이다. 허 황후의 무덤에 있는 비석에는 '보주태후허씨능'이라는 문구가 나오는데 이 보주는 중국 사천성 안악의 옛 이름으로 추적되었다. 허 황후는 아유타국이 고향이었으나 도중에 중국으로 이주하여 사천성 보주에 정착했었다는 사실을 암시하는 구절이라고 할 수 있다. 결론적으로 전쟁에 휘말린 인도 아요디아의 브라만 사제 일부가 중국서남쪽 사천 지방 보주로 이동하여 신전을 짓고 신앙생활을 햇는데 이때 허황옥이 태어났다. 중국 한나라 정부는 사천 지방에서 실세력을 확보한 무속사례들이 자주 중앙정부에 반란을 일으켜 이들을 진압하자 그들은 다시 무창으로 쫓겨갔으며 이때 허황옥은 가락국으로 이주한 것이라고 김병모 교수는 추론하엿다.
여기서 허황옥의 허는 성씨가 아니라 일종의 무속직업의 계급을 칭하는 것이라 했는데 이 내용은 주목할 필요가 있다. 김병모 씨는 <삼국유사>의 내용에서 김수로왕과 허황옥은 통역 없이 의사소통했다는 점, 허황옥이 타고 온 배에 많은 보물과 물건이 실려 있었다는 점에서 중국 남부 지방과 가야국 사이에는 많은 왕래가 있었던 것으로 보았다. 아울러 김수로왕과 허황옥의 만남을 국제결혼으로 추정하였다. 그런데 필자는 김수로왕 역시 아유타국 사람이었고 피치 못할 사정으로 그곳을 빠져나와 한반도 남부에 정착해서 나라를 세운 뒤 이미 결혼을 약조한 바 있는 아유타국 공주인 허황옥을 뒤에 불러 왕비로 맞이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본다. 문제의 쌍어문 문양은 인도의 아요디아 지방에만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바빌로니아, 페르시아, 중국, 티벳, 네팔 등 중앙아시아 전역에 걸쳐 나타난다는 것이 주목을 끈다. 그리고 불교, 힌두교, 라마교, 중국 밀교에서도 쌍어문 상징이 나타나고 있으며 기독교에서도 물고기 문양이 특별한 의미로 사용되고 있다는 점이 또한 흥미롭다. 쌍어문이 상징하는 것과 그 기원에 대해 김병모 씨는 이렇게 주장한다.
서기 8세기경 바빌로니아 지방의 종족 중 특별한 신앙을 가진 주민들이 있었는데 그들은 오아네즈라는 신을 모셨으며 신전으로 들어가는 사람에게 물을 뿌리는 물고기 모양의 제복을 입은 두 사람을 신전의 입구에 세워두었다고 한다. 인간의 죄를 씻어주고 악으로부터 보호하는 쌍어의 신앙이 이곳에서 퍼져나간 것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핵심적인 고찰이 아니다.
왜 쌍어문은 중앙아시아 일대 국가와 종교권에 함입되었을까? 두 마리의 물고기는 실제로 무엇을 가리키는가? 그것의 기원은 또한 무엇인가? 이 모든 의문에 대한 해답은 쌍어문의 그림을 자세히 고찰함으로써 얻을 수 있다. 쌍어문 그림의 특징은 양쪽에 물고기 두 마리가 마주보고 있고 물고기들 가운데 독특한 형상을 한 상징물이 있는 것이다. 그리고 연꽃이 쌍어문에 중요한 구성요소로 등장하는 것 또한 특징이다. 두 물고기를 마주 바라보고 있는 이 상징물 의미를 모르고서는 쌍어문의 진정한 의미는 파악할 수가 없는 것이다. 본인은 그 가운데 상징물을 보자마자 그것은 무우 제국의 상징도형이자 불교 탄드라 그림에 등장하는 금강저라는 것을 금방 알아낼 수 있었다. 금강저는 무우 제국의 왕과 그 식민제국의 왕이 홀로 사용하였다는 것과 불교 탄드라 그림 형상에서 삼신사상의 요체가 된다는 것은 이미 삼신사상의 고찰에서 언급한 바 있다.
우선 김수로왕의 안쪽능 정문에 새겨진 쌍어문을 자세히 살펴보자. 전체적인 그림은 두 눈과 두 귀, 큰 코와 입으로 구성된 한 마리 코끼리 형상을 하고 있다. 인도에서 코끼리는 신성한 신으로 여겨졌음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또한 불교에서도 코끼리는 신성함의 상징으로 그려진다. 코끼리의 귀는 연꽃으로 그려져 있는데 이것을 바로 무우 제국의 상징문양이 연꽃임을 상기시키며 연꽃은 브라만, 창조신, 천신으로 상징되었다는 사실 또한 주목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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