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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기독교, 어떻게 국가적 종교가 되었는가

한국 기독교, 어떻게 국가적 종교가 되었는가

[ 반양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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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15년 12월 25일
판형 반양장?
쪽수, 무게, 크기 272쪽 | 359g | 128*188*20mm
ISBN13 9791186293416
ISBN10 1186293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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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관련자료 보이기/감추기

저자 : 아사미 마사카즈
1962년 도쿄 출생. 게이오기주쿠대학 대학원에서 문학연구과 석사과정을 수료했으며, 도쿄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도쿄대학 사료편찬소 조수?조교수, 하버드대학 객원연구원 등을 거쳐, 현재 게이오기주쿠대학 문학부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전공은 기독교사이며, 지은 책으로 《기리시탄 시대의 우상 숭배》(도쿄대학출판부, 2009), 《프란시스코 사비에르》(야마카와출판사, 2011) 등이 있다.
저자 : 안정원
서울 출생. 도쿄대학 문학부 동양사학과를 졸업했으며, 도쿄대학 대학원에서 석사와 박사학위를 받았다. 포르투갈 신리스본대학 대학원에서 유학했으며, 현재 게이오기주쿠대학 강사이다. 전공은 동아시아 기독교사이며, 지은 책으로 《기리시탄 시대의 혼인 문제》(교분칸, 2012), 《호소카와 가라샤》(추코신서, 2014)가 있다.
역자 : 양현혜
이화여자대학교 기독교학과를 졸업했으며, 도쿄대학교 대학원에서 종교사학으로 석사와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이화여자대학교 기독교학부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 《윤치호와 김교신》, 《근대 한일 관계사 속의 기독교》 등이 있으며, 옮긴 책으로 《일본 사회의 인간관계》, 《탕자의 정신사》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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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적으로 서구 종교라고 인식되어 있는 기독교를 한국인이 폭넓게 믿고 있음이 기이하게 느껴질지도 모른다. 일본에서 기독교가 거의 수용되고 있지 않음을 고려한다면, 한국 기독교를 둘러싼 현상에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1988년에 개최된 서울 올림픽대회 전후부터 한국은 놀라운 속도로 경제를 발전시켰다. 기독교회도 국가의 경제 발전과 그 궤를 함께하며 서울을 비롯한 도시의 종교로서 확대되어 왔다. 20세기 초 한국에서는 기독교회가 현재보다 규모는 작았지만 사회의 지주로서 시대를 선도하는 역할을 담당하는 존경할 만한 존재라고 인식되고 있었다. 그러나 교회 관계자들도 인정하는 것처럼 1990년 이후, 국가 전체로 보자면 한국 교회의 성장은 정체의 징후를 보이고 있고, 한국 사회는 기독교를 부정하는 움직임까지 보이고 있다. --- p.8

한국 개신교회의 특징 중 하나는 목사 한 사람이 새로운 교회를 세우는 식으로 각 교회의 독립성이 강하다는 점이다. 대형교회의 부목사가 독립하여 담임목사로서 새로 교회를 세우는 것은 한국에서는 드문 일이 아니다. 담임목사는 그 밑에 서 일하는 부목사 등의 목회자를 통솔하며 그 교회 전체를 지도하는 책임을 맡는 목사를 말한다. 한국 개신교회는 분점을 차리는 것처럼 곁가지를 내가면서 확대되어왔다. 이처럼 목사가 독립할 경우 이전에 소속됐던 교회로부터 지원받는 일은 있어도 강하게 제약받는 것은 거의 없는 듯하다. --- p.28

기업 경영자의 세습이 드물지 않는 한국에서는, 일부에서 교회 목회자의 세습도 같은 차원의 문제로서 간주되는 경향이 있다. 이 경우 아들이 교회의 담임목사로서 부목사를 비롯한 목회자들 위에 갑자기 서게 되기 때문에 주위와 알력을 빚는 경우도 적지 않다. 교회가 세습될 경우, 보통은 교회 건물을 비롯한 재산도 법인의 책임자에게 동시에 세습된다. 대형 교회에는 출판사, 신문사, 방송국 등이 병설된 경우도 있어서, 교회가 막대한 재산을 소유하고 있기 때문에 세습되는 재산도 막대하다. 이러한 목회자의 세습화에 대해 교회 내부에서도 반대의 움직임이 있으며, 때에 따라서는 내부 분열이 생기는 곳도 있다. --- p.32

하나의 교회가 수만 명의 신자를 거느리고 있는 이상, 교회 건물은 그만큼 거대해야 한다. 교회에 따라서는 건물 외관만 봐서는 상상이 안 될 만큼 많은 신자를 수용할 수 있는 곳도 있다. 앞서 말한 여의도 순복음교회는 한 번의 예배에 약 2만 5000명을 수용할 수 있다고 한다. 그렇더라도 신자가 많으면 한 번의 예배에 교회의 모든 신자를 수용할 수 없기 때문에 일요일에는 예배를 하루에 몇 차례나 반복하는 것이 보통이다. 본 예배당에 들어가지 못한 사람들은 별도의 방에서 텔레비전 화면으로 예배 중계방송을 보게 된다. 어린아이를 데리고 온 신자를 위해 소규모의 놀이 시설을 구비한 곳도 있다. 대형교회일 경우 1회 예배에 5000명에서 6000명 정도를 수용할 수 있는데, 예배를 6번 반복한다고 한다면 주일예배는 하루에 대략 3만 명 이상이 참가하는 것이 된다. 개신교회의 경우 1회 예배는 보통 1시간 반에서 2시간 정도 걸린다. 담임목사는 그때마다 거의 같은 내용의 설교를 하게 된다. --- p.36

해외 선교를 위한 경쟁이 격화된 데에는, 선전 효과 이외에 부목사에게 해외 선교 활동이 교회 일을 주도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기회라는 요인이 있다고 히데무라는 지적한다. 단일 교회가 거대화되면서 부목사가 주일 예배 때 많은 신자 앞에서 설교하는 것은 기본적으로 허락되지 않는다. 그들은 평상시에 담당 지역 신자의 목회를 담당한다. 독립해서 새로운 교회를 세우지 않는 한, 그들이 목회자로서 스포트라이트를 받을 기회는 별로 없다. 즉 해외 선교는 개신 교회 내부의 필요에 의해 촉진된 측면도 있음을 알 수 있다. --- p.51

루이스 데 메디나의 연구는 지금까지 부분적으로만 알려졌던 사실을 상세히 해명한 획기적인 것이었다. 그는 1592년에서 1593년경이 한국 교회의 탄생 시기라고 설명하고, 1620년대에 일본에서 개종한 조선인이 고국에 돌아간 사례가 있다고 추정한다. 나아가 이 시기를 한국 교회의 ‘첫 열매’라고 불렀다. 루이스 데 메디나의 연구는 한국에서 커다란 반향을 불러 일으켰다. 반향이라고 해도 그 대부분은 그의 견해에 대한 비판 내지는 비난이었다. 한국 측의 사료에서 교회가 존재했다는 흔적은 확인되지 않는다. 그럼에도 그것을 한국 교회의 기원이라고 하는 점이 문제시된 것이다. 또한 한국의 주요 종교가 된 기독교의 기원이 일본의 침략 전쟁에 의해 전파된 것이라는 말이 되기 때문에, 한국인 가톨릭 신자로서 이 사실을 받아들이기에 심리적 저항이 있는 것은 당연할지도 모른다. 이들 비판은 학문적인 것에서부터 감정적으로 보이는 것까지 다양했다.--- p.78

또 다른 특징으로서 신앙을 받아들였다는 이유로 박해받아 순교한 유학자들의 다수가 같은 정치적 당파에 속하거나 친인척 관계에 있었던 점을 들 수 있다. 천주교에 내재된 체제나 전통에 반대하는 요소 이상으로, 초기의 박해는 정치적 분쟁에 연루되어 일어났던 것이었다. 박해는 18세기 말부터 약 1세기에 걸쳐 행해졌는데, 박해 후반이 되면 순교자 수가 증가한다. 이는 신자 수가 증가하고 있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시간이 흐를수록 조선의 쇄국 정책과 맞물려 외래 종교인 천주교에 대한 박해가 행해지고, 제국주의 아래 조선에 진출한 서양 열강에 대한 저항으로서 박해 규모도 확대되어 갔다. 이 시기 조선 기독교의 역사는 곧 조선 가톨릭교회의 박해와 순교의 역사였다. --- p.94

최초의 박해에서는 상당수의 양반이 배교하고 석방되었다. 예를 들면 최초의 세례자인 이승훈은 최초의 박해 때 배교하고 [벽이문(闢異文)]이라는 배야문(排耶文)을 썼다. 배야문이란 야소교, 즉 기독교를 배척하는 글을 말한다. 그러나 이승훈은 1801년 신유교난으로 처형되었다. 그의 배교가 관헌에 의한 선전용 위장이라는 연구도 있는데, 그렇게 볼 근거는 희박하다. 일본에서도 다수의 배교서가 작성되었으며, 그와 유사한 배교서들이 조선에 존재한다. 기독교 수용의 초기 단계에 유학자들은 유교 경전의 논리에 따라 한역 서학서를 반박하였다. 배교서는 초기에 집중되어 있고, 그 대부분은 관헌이 주도하기보다 유학자들 사이에 기독교를 수용하는 측과 배격하는 측의 논쟁 결과였다고 생각된다.
배교를 강요하는 것은 다른 박해에서도 흔히 보이지만, 달레의 기술에 의하면 조선 후기의 박해에서는 신자가 배교한다고 선언하더라도 위정자가 석방하는 척하다가 그 장소에서 다른 곳으로 옮겨 죽였다고 한다. 본보기로 보이기 위한 처형이 많았던 듯하나, 후기로 갈수록 교회의 기반이 지배층에서 빈곤층으로 바뀌면서 처벌이 더 가혹해진 것으로 보인다. --- p.108

한편 일본 교회의 조선 포교는 한일병합을 전후로 본격적으로 진행되었다. 1858년에 미일수호통상조약이 체결되었고, 다음 해부터 많은 미국 선교사들이 일본에 거주하기 시작했다. 1865년에는 일본 개신교회에서 최초의 세례자가 탄생했다. 1872년에 성서의 일부가 처음으로 일본어로 번역되었고, 1880년에는 《신약성서》의 일본어 번역이 완성되었다. 선교사로 일본에 체재하고 있던 녹스나 매클레이가 어떻게 조선 선교에 관여했는지는 앞서 언급했다. 이후 선교사들이 조선에서 온 유학생이나, 일본에 오거나 망명한 조선 정치가들과 접촉한 것이 조선 선교에 영향을 미쳤다. 그 후에도 성서 번역이나 조선에 들어가는 선교사들의 기항지로서, 일본은 조선 선교와 밀접하게 연결되었다. 일본 교회는 초기에 조선에 있는 일본인을 포교의 대상으로 삼았으나, 점차 일본의 국익을 선전하기 위해 조선인들을 포교의 대상으로 해야 한다는 ‘조선전도론(朝鮮傳道論)’을 제창하였다. --- p.125

가톨릭은 개신교보다 조선 선교에 앞섰으나, 자유로운 선교 활동은 개신교 선교사보다 입국이 늦어져 1890년대가 되어서야 시작되었다. 개신교 선교사들은 조선 선교를 개시하면서 가톨릭 신자의 도움을 받아 조선 사정을 듣고 한국어를 공부했다. 이처럼 가톨릭과 개신교는 당초에 우호적인 관계를 맺었으나, 개신교 선교가 안정된 후에는 서로 견제하고 대립하는 관계로 변하게 되었다. 선교사들 사이의 대립은 점차 양쪽 신자들 사이에까지 미쳐, 1899년에는 신자들이 충돌하는 사건이 일어났다. 1900년대 황해도에서는 기독교 세력이 확대됨에 따라 선교사의 치외법권에 의지해 기독교도가 되는 사람들이 비약적으로 늘어났으며, 그들 사이에서 충돌이 빈번하게 일어났다. 참고로 1898년 조선의 장로교 신자는 약 7500명이었다고 하는데, 그 가운데 약 80퍼센트가 조선 서북부(평안도?황해도)의 신자였다고 한다. --- p.132

한국전쟁 후 개신교회가 확대되어가는 반면에 가톨릭교회가 현저하게 열세가 된 이유 중 하나로 식민지 시대에 신사 참배를 받아들인 것의 영향을 들 수 있다. 가톨릭교회는 식민지 시대에 항일운동에 관여하는 것을 꺼렸고 신사 참배 문제에서 보듯이 정치적 발언을 회피해왔다. 결과적으로 항일운동과 더불어 고양된 민족의식을 수용하지 못했다고 생각된다. 1920년대부터 조선에는 교의를 이지적?과학적으로 재해석하는 자유주의 신학이 소개되었는데, 당시 조선 교회가 직면한 신사 참배에 대응하는 문제를 둘러싸고 자유주의 신학과 보수주의 신학이 격렬하게 대립했다. 1930년대 조선 교회는 공식적으로는 일본의 정책에 따랐다. 1940년대 초에는 외국인 선교사가 추방되고, 여러 교파의 교회가 강제로 일본 기독교단에 편입되었다. 1945년 이후 이들 교회는 본래의 교파 교회로 되돌아갔으나, 신사 참배 문제의 후유증으로 교회 재건을 앞두고 생겨난 분열이 한국전쟁이 끝날 때까지 계속되었다. --- p.147

선교사들은 미국 유학 경험이 있는 한국인들을 군정청에 적극적으로 추천했다. 일제 강점기에 미국에 다녀온 유학생 태반이 기독교 신자이거나 기독교에 우호적인 사람들이었다. 초대 대통령 이승만이야말로 그 전형이었다. 미군에게 등용된 미국 유학 경험이 있는 한국인의 대부분이 교회에 관여하고 있었고, 특히 연희전문학교 관계자가 많았다. 또한 그들 대부분이 태평양전쟁 시기에 대일 전쟁을 수행하기 위한 중요한 일원으로 활약했기 때문에 그들과 해방 후 미군 통치에 참가한 사람들 사이에 연속성이 있다고 지적되고 있다. 일제 말기 한국인 엘리트가 그 후 한국 사회에서 주도적 입장에 선 것은 한국인 사이에 아직까지도 복잡한 감정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 p.154

이 사건에 이어서 같은 해 7월에 원주교구 지학순 주교(1921~1993)가 박정희 정권이 1972년에 공포한 유신헌법을 비판하는 ‘양심선언’을 했다. 이로 인해 지 주교는 체포되어 내란선동죄로 기소되었다. 뜻을 같이하는 가톨릭 성직자들이 ‘천주교 정의구현 전국 사제단’을 결성하고 지 주교의 석방을 요구했다. 이 움직임이 전국적으로 확대되었고, 성직자들에 대한 구속은 계속되었다. 그러나 가톨릭교회는 인권운동과 사회운동에서 주도적 역할을 담당함으로써 신자들로부터 강한 지지를 받게 되었다. 이러한 활동으로 인해 많은 한국인들이 가톨릭에 관심을 갖게 되고 가톨릭교회가 사회적 공신력과 영향력을 갖기에 이르렀다. --- p.163

제2장에서도 서술했으나, 18세기 말 이후의 일부 유학자들은 유교 경전에 있는 ‘천(天)’과 ‘상제(上帝)’의 개념을 중국에서 전해진 한역 서학서의 ‘천주(天主)’와 일치시켜 해석하려 했다. 그들은 주자학에 의문을 품고 유교 경전을 다른 방법으로 해석하고자 한 것이다. 창조주로서 천(天)이라는 개념은 유교에 존재하지 않으나, 유교의 ‘천’과 기독교의 ‘천주’의 관계를 비교?연구하는 것에는 충분한 공통점이 있었던 것이다. 주자학에 대한 비판에서 출발했다고는 하나, 유교가 기독교를 이성적으로 수용하는 기반을 만들게 된 것이었다. --- p.181

한국의 기독교가 ‘서학에서 서교로’라는 도식에 의해 수용되는 과정을 2장에서 살펴보았다. 그러나 이 도식은 서학이 직접적으로 서교에 결합되었음을 나타내는 것은 아니다. 서학과 서교는 크게 우회하면서 연결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서학으로부터 그에 대항하여 동학이 생겨나고, 동학으로부터 그것을 지지하는 천도교가 탄생했다. 서학에 대한 대항으로 생겨난 종교였다고는 하나, 천도교라는 종교적 배경이 있었기 때문에 비로소 서학에 대한 이해의 길이 열려 그 근원인 기독교를 향하는 것이 가능하게 되었다고 생각된다. 즉 한국에서는 유럽의 가르침, 다시 말하면 서학(천주교)이, 직접적이 아닌 우회적인 길로 수용됨으로써 폭넓게 확대되어 민족종교로서의 지위를 확립할 수 있었다고 생각된다. 보편적 종교인 기독교가 한국적 민족종교가 될 수 있었던 것은, 동학에서 발전한 천도교가 기독교에 대한 이해를 돕는 기반으로 존재했다는 사정에 의거하는 면도 있다고 생각된다. --- p.190

한국에서는 기독교가 일제 강점기의 항일독립운동과 결합됨으로써 지식인 계급에 수용되어 그들의 사회적 결속을 강화시킨 측면이 있다. 독립운동가 모두가 기독교인이지는 않았다고 하더라도 기독교가 독립운동의 정신적 지주 역할을 담당했다고 할 수 있다. 기독교가 ‘독립’이라는 정치 목표, 그리고 ‘민족적 고난’으로부터 구원된다는 선민사상과 결합됨으로써 민족의식을 각성시킬 수 있었던 것이다. 이때부터 기독교가 한국의 민족종교라는 색채를 띠게 되었다. --- p.203

한국 교회의 분열은 개별교회주의를 초래하고, 개별교회주의는 대형교회주의를 만들어낸다. 대형교회는 개별교회주의가 극도로 현저해진 현상이라고 할 수 있다. 더구나 교회는 교세 확장을 경쟁하는 과정에서 신자들을 윤리적으로 지도하는 것을 거의 단념했다는 비판조차 받고 있다. 그 결과 교회는 다양한 행사나 사업을 할 때 한국 교회 전체의 이익을 생각하기보다는 자기 교회의 성장을 우선시하는 일이 종종 일어난다.
그러나 한국 교회는 더 이상 그 자체의 존립에 집착해야 할 소수의 종교 집단이 아니다. 사회에 커다란 영향을 미치고 있으며 사회를 주도할 만한 힘을 가지고 있음을 교회 스스로가 인식해야만 한다. 얼마나 많은 사람을 기독교인으로 만들었는가를 문제시하기보다 기독교인으로서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에 더 커다란 힘을 쏟아야 할 것이다. --- p.224

한미인권단체인 ‘순교자의 소리’에 의하면, 현재 북한 내에 수만에서 수십만 명 가량의 기독교인이 숨어서 신앙을 지키고 있다고 한다. 북한에 지하 교회가 존재하고 있다고 생각되는 것이다. 한국 교회의 북한에 대한 선교 방법의 하나로 북한어 성서 배포가 있다. 조선기독교도연맹이 1980년대에 신구약성서를 출판하고 1990년에도 합본을 출판했으나, 이것은 일반인에게는 배포되지 않고 당국이 세운 교회에서만 사용되고 있다. 따라서 탈북자들이 성서의 필요성을 주장했다. 한국어와 북한에서 사용되는 말 사이에는 같은 한글로 표기 되어도 표현이 미묘하게 다르다. 북한에서 사용되고 있는 말 은 ‘평양어’라고도 불린다. 평양어 성서는 탈북자를 중심으로 한국과 미국에서도 작성되고 있다. 예를 들어 한국 개신교회의 ‘모퉁이돌 선교회’는 신약성서의 평양어역을 간행하였고, 배포한 북한으로부터 이미 감사 편지를 받았다고 한다.
--- p.2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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