확장메뉴
주요메뉴


닫기
사이즈 비교
소득공제
근현대 교회사
제럴드 크랙, 알렉 비들러 저 / 송인설 역 | CH북스(크리스천다이제스트) | 2001년 11월 30일   저자/출판사 더보기/감추기
리뷰 총점9.0 리뷰 2건 | 판매지수 36
정가
26,000
판매가
23,400 (10% 할인)
배송안내
서울특별시 영등포구 은행로 11(여의도동, 일신빌딩)
지역변경
  • 배송비 : 무료 ?
eBook이 출간되면 알려드립니다. eBook 출간 알림 신청
  •  해외배송 가능
  •  최저가 보상
  •  문화비소득공제 신청가능

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01년 11월 30일
쪽수, 무게, 크기 579쪽 | 825g | 153*224*35mm
ISBN13 9788944703300
ISBN10 8944703302

목차 목차 보이기/감추기

저자 소개 관련자료 보이기/감추기

저자 : 알렉 비들러
1899년생으로, 케임브리지 대학교 셀윈 칼리지 졸업. 뉴 캐슬과 버밍엄에서 목회한 후, 1948년부터 1956년까지는 윈저의 성 조지 채플 참사회원이었고, 1956년부터 1966년까지 케임브리지 대학교 킹스 칼리지 학장을 역임했다. 케임브리지의 문학박사, 에든버러와 토론토 대학의 명예 신학박사. 저서로「세속의 절망과 기독교 신앙」「사회적 가톨릭 교회 백년사」「20세기 신앙의 변증가들」「가톨릭 근대주의자들」「모리스와 친구들」등이 있다.
저자 : 제럴드 크랙 (근대 교회사)
캐나다 토론토 대학과 영국 케임브리지 대학교 트리니티 칼리지, 웨스트민스터 칼리지를 졸업했다. 캐나다 연말교회의 목사로, 맥길 대학교 신학교수였고, 1958년부터 앤도버 뉴턴 신학교 교회사 교수 역임. 그는 수년 동안 세계교회협의회, 특히 신앙과 직제 위원회에 참여하였다. 저서로「청교도 운동부터 이성의 시대까지」「대박해 시대의 청교도주의」「18세기의 이성과 권위」「케임브리지 풀라톤주의자들」 등이 있다.

책 속으로 책속으로 보이기/감추기

바로크 건축은 예술적 목표를 분명하게 의식하고 있고 또 전통의 강한 지지를 받고 있다는 확신을 가지고 발전하였다. 바로크는 겉보기에 양립할 수 없을 거 같은 여러 힘들을 하나로 결합한 데 그 특징이 있었다. 그것은 대조의 시대(age of contrast)의 산물이었다. 그것은 극단들이 불안정하게 서로 균형을 이루느 사회에서 발전하였다. 무절제한 자기 방종과 새로운 수도회의 금욕적인 자기 부정이 함게 있었다. 과학이 과학의 제국을 팽창시키고 있었고, 미신도 분명히 자기의 세계를 확장하고 있었다. 자선 사업과 범죄가 나란히 번창하였다. 화려함과 천박함이 모두 이 문명의 주요한 특징으로 보였다. 바로크 건축은 다양한 미학적, 종교적, 사회적 영향력들이 상호 작용한 산물이었다. 그것은 대 교회와 군주의 왕궁들이 선호하는 양식이었고, 수도원과 대 저택의 적합한 양식이었다.

남부 독일의 많은 바로크풍 교회들은 루이 14세가 군주의 표준으로 확립한 양식을 따름으로써 세상의 통치자들과 함께하고 싶어하는 성직자들의 열망을 반영하고 있었다. 그러나 바로크는 또한 반동 종교개혁의 건축이었다. 그것은 예수회와 함께 유럽으로 전파되었다. 처음에 그것은 조심스럽고 절도가 있었고, 실지를 재정복하려는 군대의 전초 기지에 적합한 양식이었다. 확실한 승리의 암시가 있었다. (...) 그래서 이 양식은 석조 건물 안에서 반동 종교개혁과 한 쌍을 이루었다. 그것은 전투하는 교회를 상징했다. 그것은 또한 세속적 정신에 쉽게 동화된 양식이었다.

로마는 바로크 예술의 수도였다. 여기서 바로크 예술은 그 독특한 특징을 발전시켰다. 사치스러운 장식이 점점 드러나는 양식의 표지가 되었다. 모든 세세한 부분이 똑같이 호화롭게 처리되었고 명백하게 동등한 중요성을 주장할 수 있었다. 교회는 이제까지 유례가 없을 정도로 회화로 장식되었다. 다채로운 대리석을 풍부하게 사용함으로써 그 효과를 증폭되었다. 금속작업은 새롭게 중요해졋을 뿐만 아니라 새롭게 복잡해졌다. (...) 건축과 조각이 긴밀하게 서로 의존하게 되었고, 회화는 비록 부수적 역할을 담당하였더라도 장엄함과 호화스러움과 동적 효과를 강화해 주었다. 예술에 대한 이러한 종합적 접근 방식은 바로크 시대의 가장 뚜렷한 특징이었고, 그것은 로마 유파의 주목할 만한 공헌이었다.(...)

바로크 건축은 18세기의 다른 매체와 함께 세 가지 특징을 갖고 있다. 첫째, 그것은 기교를 목적 그 자체로서 중시한다. 그것은 세밀한 부분까지 관심을 가지고 스타일을 강조하였고, 장식을 그 자체로서 높이 평가하였다. 둘재, 그것은 유형에 대해 예민한 감각을 가지고 있었다. 그것은 예술적 창조를 영웅적 대구(coulpet)나 푸가(fugue) 같은 전통적 형식의 범위 안에 한정시켰다. 셋째, 그것은 소위 "풍부한 표현"(Eloquence)에 가치를 부여하였고, 격심한 감정을 불러일으키려는 시도보다는 표현적인 것을 더 강조하였다.

건축에서 이러한 기본적 원리들은 공간 자체가 어떻게 다루어졌는지를 잘 섦여해 준다. 건물은 그것이 놓여 있는 환경의 일부분이었다. 탁트인 광장이 설꼐되고 거리가 보이고 주랑과 분수를 활용하는 것 등은 인간의 작품이 환경과 어떻게 연관될 수 있는 가 하는 전체적 개념으로부터 분리될 수 없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바로크는 또한 '외형의 예술'이다. 그것은 건물의 외면에서 기념물이 될 가능성을 예민하게 지각하고 있었으나, 어떤 평면이든지 그 위에 장식하고 꾸밀 수 있는 기회를 잡았다. 여러 장식품을 사용하고 날카로운 대조를 주기 위해 표면을 분할하는 것은 강한 빛이 건축가가 의도하는 효과를 온전히 내기 위해 필요하다는 것을 의미했다. 바로크 양식은 건물 바깥뿐만 아니라 내부에서도 다량의 정교한 요소들에 의존해 있었다. 즉 높이 장식된 제단, 정교한 석고 잘품, 천장의 그림, 금속 창살, 오르간 케이스 등을 갖추었다. 때때로 그들은 실재의 감각에 의해 부과된 모든 제한들로부터 단절되어 자유로운 듯했다. 최악의 경우 그들은 왜곡된 외형과 화려한 색깔이 뒤죽박죽 혼합된 것으로 변질되었다. 최선의 경우 그들은 빛과 광선과 넘치는 기쁨이 놀랍게 조화를 이루었다. (...)

전성기 바로크의 화려함과 우월감은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은 지나가는 것이라는 불안한 지각에 의해서도 억제되지 않았다. 황금 빛의 성자들, 석고로 만든 구름, 대리석으로 조각된 천사들은 이 장소 이외의 어느 세상에도 속해 있지 않았다. 천사들은 그들의 천상의 본성과 정반대되는 부피와 심지어 감각적인 면까지 있었고, 관람자들은 "이렇게 너무 너무 단단한 육체는 녹아버릴 것"이라는 생각을 억제할 수 없었다. 세상을 전적으로 거부할 필요는 없을지 모르나, 열광적으로 세상과 관계를 맺는 것은 거의 바람직하지 않다. 바로크 건축은 왕궁에서 가장 두드러진 승리를 얻었ㄷ. 베르사유 궁전은 바로크 건축의 최고의 상징이었고, 바로크 건축은 교회를 섬길 때 왕궁에서 물든 세속적 정신으로부터 결코 저적으로 도피할 수 없었다. 그것은 종교 개혁에 상응하는 건축으로서 시작하였다. 18세기가 시작된 무렵, 바로크의 성취는 더이상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지 않았다. 그것은 신적 권리로 다스리는 왕들을 찬송하였다.
--- pp 253~259
19세기 러시아 정교회 안에는 보다 밝은 측면들도 있었다. 영성과 신학이 모두 부흥하였다. 영성의 부흥은 '스타르치(startsi) 혹은 장로들에 의해 이루어졌다. 서방의 독자들이 익숙하게 알고 있는 '스타레츠'의 모습은 도스토예프스키의 소설 <까라마조프의 형제들>에 나오는 신부 조시마라는 인물이다. 그들은 반드시 그런 것은 아니지만 대개 수도사들이었다. 그들은 공식적인 교회의 직분을 갖고 있지 않았다. 그들은 엄격한 금욕적 삶을 살았고, 영혼뿐만 아니라 육신을 치유하는 은사들을 갖고 있었고, 다수의 신자들의 방문을 받았다. 그들은 18세기 영국의 복음주의 각성 운동과 비슷한 운동을 일으켰다. 그들 중 많은 사람들은 특별히 <필로칼리아>를 통하여 교부들의 저작에 몰두하였다. <필로칼리아>는 영의 생활에 대한 교부들의 글을 모아 놓은 선집으로 대단한 인기를 누렸다. 이러한 종류의 영성은 활동적인 것이 아니라 정적주의적인 것이었다.

한 젊은 정교회 사제가 종교의 본성에 관하여 서방의 동료 학생에게 이렇게 이야기하였다. "우리는 당신들 서방인들이 갖고 있는 종교의 의미를 이해할 수 없습니다. 당신들은 항상 하나님을 위하여 무언가 행하기를 원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우리의 종교 개념은 정반대입니다. 하나님 앞에 조용히 머물러 있는 것이고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여 행하시도록 맡기는 것입니다."(...)

러시아의 지성인들은 19세기 내내 서방에서 들어온 자유주의 사상과 철학적 사변에 노출되어 잇었다. 이 서방의 사상은 일부 왕당파(The Tsars)에 의하여 선호되었다. 물론 다른 사람들은 반대하였지만 말이다. 많은 지성인들은 전적으로 기독교로부터 소외되어 있었다. '서구화파(Westermizers)'와 '친슬라브파(Slavophils)' 사이에 뿌리깊은 갈등이 계속 되었다. 서구화파들은 러시아가 자신을 서구의 문화와 무제한으로 동일시하기를 원하였고 러시아가 과학과 세속주의의 발전에 참여하기를 바랐다. 반면에 친슬라브파들은 러시아가 자신의 고유한 전통을 지키기를 원하였고, 세상에 대한 '거룩한 러시아'의 사명이라는 옛 개념을 근대화하려고 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그룹들은 날카롭게 경계가 그어져 있지 않았고, 두 그룹의 주요한 주제들이 많은 변화를 보이기도 하였다. 친슬라브파는 일반적으로 기존 교회 제도에 비판적이었다고 하더라도, 정교회의 정신에는 당연히 공감하고 있었다.

코미아코프, 포도르 도스토예프스키, 솔로비에프와 같은 몇몇 심오한 기독교 사상가들이 있었다. 이들은 러시아 영성의 오랜 전통으로부터 영감을 받았다. 그리고 혁명 직전에는 니콜라스 베르자예프, 세르기우스 불가코프 같은 지성인들이 있었다. 이들은 세속주의나 마르크스주의에 반대하여 기독교 신앙을 재발견하였고, 망명 중에 정교회 신학을 혁신한 선구자가 되어 서방에 큰 영향을 주었다.

마침내 1917년 혁명이 일어났을 때, 1905년 이후 계속되어온 교회 개혁 운동은 열매를 맺게 되었다. 케렌스키 임시 정부는 교회가 공의회를 소집하도록 허용하였고, 교구들은 공의회에 참석할 265명의 성직자와 299명의 평신도를 선출하였다. 1917년 8월 공의회는 새로운 교회 헌법을 승인하였다. 교회 헌법은 총대주교직의 부활, 각 교구의 주교 선출과 평신도의 교회 행정 참여를 규정하고 있었다. 임시 전부가 공산주의자들에 의해 전복된지 6일 후인 10월 31일, 모스크바의 메트로폴리탄인 바질 티콘이 총대주교로 선출되었다. 교회는 이렇게 하여 '구 제도'에서 떨어져 나와 민주적인 정신으로 스스로를 개혁할 기회를 얻었다. 그러나 교회의 지도자들은 어느 누구보다도 10월 혁명에서 볼셰비키들이 승리할 것을 전혀 예견하지 못하였다. 교회가 혁명적 상황에 대하여 자신의 태도를 결정해야 할 시점에 이르렀을 때, 새로운 교회 헌법은 결심을 맺을 수 없게 되었다. 이제 교회의 대변인이 된 총대주교의 노선이 갈팡질팡했다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볼셰비키들은 러시아 교회를 제대로 이해할 능력이 없었다. 그들은 교조적 마르크스주의자들이어쏙, 그들에게서 종교는 제거되어야 할 '민중의 아편'이었다. 엥겔스에 의하면, 기독교는 지배 계급이 하층 계급에게 굴레를 씌우는데 사용하는 지배 계급의 특권이 되었다. 이러한 견해는 서유럽에서는 어느 정도 정당화될 수 있을지 모르지만, 러시아에서는 비현실적인 분석이었다. 왜냐하면 러시아 교회는 본질적으로 민중의 교회였고 지배 계급들은 대부분 교회를 멀리하였기 때문이다. 공산주의자들이 종교를 근절하기 위하여 어떠한 조치를 취하였든지간에, 그것은 지배 계급이 아니라 농부들에게 큰 타격을 입혔다. 마르크스적 도그마와 러시아 교회의 성격 사이의 괴리는 부분적으로 1917년 이후 공사주의자들의 대 교회 정책이 이리저리 흔들린 이유를 어느 정도 설명해 준다.
--- pp 517~520

회원리뷰 (1건) 회원리뷰 이동

한줄평 (1건) 한줄평 이동

총 평점 10.0점 10.0 / 10.0

배송/반품/교환 안내

배송 안내
반품/교환 안내에 대한 내용입니다.
배송 구분 예스24 배송
  •  배송비 : 무료배송
포장 안내

안전하고 정확한 포장을 위해 CCTV를 설치하여 운영하고 있습니다.

고객님께 배송되는 모든 상품을 CCTV로 녹화하고 있으며, 철저한 모니터링을 통해 작업 과정에 문제가 없도록 최선을 다 하겠습니다.

목적 : 안전한 포장 관리
촬영범위 : 박스 포장 작업

  • 포장안내1
  • 포장안내2
  • 포장안내3
  • 포장안내4
반품/교환 안내

상품 설명에 반품/교환과 관련한 안내가 있는경우 아래 내용보다 우선합니다. (업체 사정에 따라 달라질 수 있습니다)

반품/교환 안내에 대한 내용입니다.
반품/교환 방법
  •  고객만족센터(1544-3800), 중고샵(1566-4295)
  •  판매자 배송 상품은 판매자와 반품/교환이 협의된 상품에 한해 가능합니다.
반품/교환 가능기간
  •  출고 완료 후 10일 이내의 주문 상품
  •  디지털 콘텐츠인 eBook의 경우 구매 후 7일 이내의 상품
  •  중고상품의 경우 출고 완료일로부터 6일 이내의 상품 (구매확정 전 상태)
반품/교환 비용
  •  고객의 단순변심 및 착오구매일 경우 상품 반송비용은 고객 부담임
  •  직수입양서/직수입일서중 일부는 변심 또는 착오로 취소시 해외주문취소수수료 20%를 부과할수 있음

    단, 아래의 주문/취소 조건인 경우, 취소 수수료 면제

    •  오늘 00시 ~ 06시 30분 주문을 오늘 오전 06시 30분 이전에 취소
    •  오늘 06시 30분 이후 주문을 익일 오전 06시 30분 이전에 취소
  •  직수입 음반/영상물/기프트 중 일부는 변심 또는 착오로 취소 시 해외주문취소수수료 30%를 부과할 수 있음

    단, 당일 00시~13시 사이의 주문은 취소 수수료 면제

  •  박스 포장은 택배 배송이 가능한 규격과 무게를 준수하며, 고객의 단순변심 및 착오구매일 경우 상품의 반송비용은 박스 당 부과됩니다.
반품/교환 불가사유
  •  소비자의 책임 있는 사유로 상품 등이 손실 또는 훼손된 경우
  •  소비자의 사용, 포장 개봉에 의해 상품 등의 가치가 현저히 감소한 경우 : 예) 화장품, 식품, 가전제품, 전자책 단말기 등
  •  복제가 가능한 상품 등의 포장을 훼손한 경우 : 예) CD/LP, DVD/Blu-ray, 소프트웨어, 만화책, 잡지, 영상 화보집
  •  소비자의 요청에 따라 개별적으로 주문 제작되는 상품의 경우
  •  디지털 컨텐츠인 eBook, 오디오북 등을 1회 이상 다운로드를 받았을 경우
  •  eBook 대여 상품은 대여 기간이 종료 되거나, 2회 이상 대여 했을 경우 취소 불가
  •  중고상품이 구매확정(자동 구매확정은 출고완료일로부터 7일)된 경우
  •  LP상품의 재생 불량 원인이 기기의 사양 및 문제인 경우 (All-in-One 일체형 일부 보급형 오디오 모델 사용 등)
  •  시간의 경과에 의해 재판매가 곤란한 정도로 가치가 현저히 감소한 경우
  •  전자상거래 등에서의 소비자보호에 관한 법률이 정하는 소비자 청약철회 제한 내용에 해당되는 경우
소비자 피해보상
  •  상품의 불량에 의한 반품, 교환, A/S, 환불, 품질보증 및 피해보상 등에 관한 사항은 소비자분쟁해결기준(공정거래위원회 고시)에 준하여 처리됨
환불 지연에
따른 배상
  •  대금 환불 및 환불 지연에 따른 배상금 지급 조건, 절차 등은 전자상거래 등에서의 소비자 보호에 관한 법률에 따라 처리
  •  쿠폰은 결제 시 적용해 주세요.
1   23,400
뒤로 앞으로 맨위로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