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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도도한 항아리 2

내 도도한 항아리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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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15년 12월 31일
쪽수, 무게, 크기 560쪽 | 696g | 145*210*25mm
ISBN13 9788968850349
ISBN10 89688503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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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관련자료 보이기/감추기

저자 : 라혜원
라혜원 작가는 한국콘텐츠진흥원 원작소설 창작과정에 30대 1이 넘는 경쟁률을 뚫고 선발되어 1년여에 걸쳐 3,200매에 이르는 『내 도도한 항아리』의 원고를 탈고했다.
경북 콘텐츠진흥원 시나리오 공모전에서 『조선얼음왕』으로 대상을 차지하기도 한 작가는 소설에서도 캐릭터의 개성을 생생하게 살려내는 데 특유의 재능을 발휘하고 있다.
기발한 소재와 능청스런 대사, 긴장감 넘치는 설정 등은 읽는 내내 독자들에게 자신만의 사극 드라마를 연출하는 즐거움을 선사한다.

책 속으로 책속으로 보이기/감추기

그렇게 체탐꾼들이 혼을 잡아들이는 착혼꾼으로 변신해 활약을 한 지 십 수 년. 이제 더 이상은 사람들 사이에 섞여 이승을 떠도는 원귀들을 찾아보기 힘든 정도가 되었다.
자신들이 맡았던 혼백을 잡아들인 착혼꾼은 다시 본래의 역할로 돌아갔다. 임무를 완수 못한 착혼꾼들만이 기억의 미끼로 덫을 놓기를 반복하며 자신들의 혼백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던 차에 드디어 백함의 혼백이 나타났다.
그는 수 년 전 갑자기 종적을 감춰버린 혼백이었다. 저승으로도 올라가지 않았고, 이승에도 흔적이 남지 않은 혼백. 누가, 혹은 어떤 힘이 그를 숨겨주고 있었을까?
착혼꾼은 백함의 혼백에서 떨어져 나온 투명하고 동그란 흔적을 다시 한 번 쳐다보았다. 그것은 차사의 손가락 위에서 빙글빙글 돌며 푸르스름한 기운을 내비치고 있었다.
“헌데 말입니다, 차사님. 그 푸른 기운은 뭘까요?”
“나도 그것이 궁금해서 들여다보고 있던 참일세. 육신과 오랜 시간 떨어져 있으면 육신이 썩어가듯 혼백도 탁해져야 하는 것인데, 이 혼백에는 어찌 이리 푸른빛이 도는 것인가 하고 말이야.”
“차사님도 처음 보시는 겁니까?”
“간혹 불에 타 죽은 자들의 혼백이 이렇게 푸른빛을 띠기도 하네. 아니면 시신이 썩지 않고 온전한 상태로 보관되어 있거나. 허나 이자의 경우 둘 다 불가능한 이야기가 아닌가.”
“혹, 한동안 감쪽같이 사라졌다 나타난 것과 관련이 있을까요?”
착혼꾼의 가설에 차사가 고개를 저었다.
“그렇다 해도 육신에서 떨어져 지낸 건 마찬가지였을 터인데…….”
미간을 찌푸린 채 천천히 이야기를 이어가던 차사가 갑자기 말을 멈췄다. 짚이는 데가 있다는 얼굴이었다.
차사는 고개를 들어 착혼꾼을 보았다. 똑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던 것일까. 착혼꾼이 답을 발견했다는 듯 외쳤다.
“다른 자의 육신입니다! 지금껏 다른 자의 육신에 기생해왔던 겁니다. 그렇지 않고서야 혼백이 그리 생생한 기운을 내뿜고 있을 수는 없습니다!”


“어째서 진작 말을 하지 않은 겁니까?”
“그 사실을 알고 나면 네가 일부러 협정을 소홀히 할까 봐서 그랬다. 어차피 맺어질 가망도 없는 인연, 얼굴이나 실컷 보자며 능창군 그자의 몸속으로 날 밀어 넣으려 하면 큰일 아니냐. 내가 그자의 몸속에 들어가면 평생 네 곁에서 떨어질 수 없을 거라 착각하면서 말이다.”
참 나, 얼굴을 보고 싶다 했지 누가 얼굴만 능창군 나리면 된다 했습니까? 그리 발끈하며 대들 줄 알았는데 그렇지 않았다. 대신 수생은 물끄러미 백함을 쳐다보았다.
“그러고 보니 넌 전적도 있질 않느냐. 곤히 자는 날 깨워서 능창군으로 변신해달라며 억지까지 부려댄 게 불과 이틀 전의 일이니.”
백함은 다시 수생을 도발했다.
“약점을 들킬까 봐 겁이 나셨던 겁니까? 아니면 다른 이에게 얽매여 있는 것이 수치스러운 거예요? 그것도 이리 보잘 것 없고 신분도 낮은 계집한테 말입니다.”
백함은 불시에 일격을 당한 기분이었다. 자신의 마음 밑바닥에 가라앉아 있던 생각을 수생이 정확히 읽어낸 것에 대한 놀라움. 그리고 수생의 입을 통해 들은 제 생각이 얼마나 편협하고 옹졸한 것이었던가에 대한 새삼스러운 자각. 무엇보다도 쓰라리게 다가온 것은, 그렇게라도 귀신이 아닌 척, 인간인 척하고 싶었던 자신의 어리석은 미련이었다.
감추려던 마음을 알아챈 이에 대한 반발심이었을까. 백함의 입에서 퉁명스러운 대답이 튀어나왔다.
“어설프게 아는 척 말거라.”
“예, 맞습니다. 저는 잘나신 양반 나리들처럼 많이 배우지도 못했고, 아는 것도 그다지 많지 않습니다. 허나 배가 고플 땐 밥이 먹고 싶다고, 졸릴 땐 자고 싶다고 그리 말해야 한다는 건 압니다. 도움이 필요할 땐 도와달라고 말해야 한다는 것도 말입니다.”
수생은 지지 않고 백함의 잘난 척을 맞받아쳤다.
똑바로 부딪혀오는 시선을 잠시 마주보다 백함은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어찌 그리 매번 피해갈 줄을 모르는 것이냐…….
“그리 말하면 감당할 수는 있고? 거절도 못하는 주제에.”
가벼운 핀잔을 던짐으로써 백함은 맞부딪혀오는 수생을 피해가려 했다. 그런 백함을 수생이 막아섰다.
“그럼 한 번 해보십시오. 그쪽이 부탁을 더 못하는지, 제가 거절을 더 못하는지.”
이번에야말로 두 사람의 시선이 팽팽하게 맞섰다. 물러서는 쪽이 이 싸움에서 지는 것이었다.
--- 본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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