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에는 부드럽게 휘어진 팔걸이와 쿠션 달린 발판이 있는 커다란 안락의자가 있었다. 이 안락의자는 거실의 안락한 벽난로 옆 구석에 놓여 있었다. 그리고 그 옆에는 배부른 통 모양의 테이블이 있었다. 내 생각에 나는 언제나 이 안락의자에 큰 대자로 드러누워 앙상하고 지저분한 다리를 팔걸이에 걸친 채 책을 읽었다. "날씨가 좋구나"라고 어머니가 말씀하셨다. "네 친구들은 모두 밖에 있단다" 그것은 사실이었다. 그들은 언제나 밖에 있었다. 때로 나는 친구들과 함께 밖으로 나갔다. 내가 본능적으로 알고 있었던 정상적인 어린시절의 유혹에 넘어가서, 내가 본능적으로 알고 있었던 정상적인 어린아이가 이 세상에서 사는 것처럼 하고 싶은 존재의 약속에 구슬려 거리로 달려나가거나 개울가를 따라내려갔다.
나는 그런 종류의 생활을 생생하게 기억한다. 개울에서 바위를 들어올려 왕새우를 찾으려고 내일러 시내를 간지럽히고 다니던 것을, 트롤리가 지나가는 선로 위에 동전을 올려놓았다가 트롤리가 지나가고 난 뒤 납작해진 동전을 주우려 달려가던 것을 기억한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그런 것은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나에게 최상의 것은 언제나 집에 있었으며, 내 자리를 표시하듯 테이블 위에 펼쳐진 책 속에 있었다. 그곳에서는 상상의 인물들이 그들에게 생명을 불어넣어 주고 그들의 생명을 되돌려받기 위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리얼한 사람들이 있는 곳은 바로 그곳이었으며, 그곳에는 바람에 흔들리는 나무와 조용하고 어두운 바다가 있었다. 나는 그 시절 철자 알아맞히기 시합에서 이겨 장서표를 받았는데, 그 장서표에는 금박으로 다음과 같은 몽테뉴의 격언이 적혀 있었다. "현명한 책이건 멍청한 책이건 간에 책을 읽을 때면 나는 그 책들이 살아서 나에게 말을 거는 것처럼 느꼈다."
---pp17~18
미국의 특징 가운데 하나는 목적 없는 독서에 대해 내심 적대적이라는 점이다. 말하자면 발전의 도구 이상으로 간주되는 독서를 의심하는 측면이 있다. 자신감을 좋아하지만 오만을 경멸하는 이 나라는 '책에 코를 박고 있는 것'을 윈프리의 어머니가 그랬던 것처럼 은밀한 우월감과 동일시한다. 또한 미국은 사회성과 공동체를 찬양하는 나라이다. 이로 인해 심리적인 도미노 효과가 수용되는 나라이기도 하다. 혼자라는 것은 고독한 자로 연결되고 고독한 자는 패자로 연결된다. 그중에서도 특히 미국의 국가적인 핵심 특징으로 보이는, 즉 밖으로 나가 함께 어울리는 정서에 방해가 되는 행동이면 무엇이든 수상하게 본다는 점이다. 미국 대통령에게 따라다니는 이미지는 그들을 행동하는 사람으로 그려내는 것이다. 데오도르 루스벨트는 사파리에 심취하고 케네디 대통령은 형제들과 함께 풋볼을 한다. 상습적인 독서에서 위안을 느끼는 유일한 인물이 링컨인데, 그는 불가에 앉아 고독하게 중얼거리는 인물로 되어 있다 "최상의 친구는 내가 아직 읽지 않은 책을 선물하는 사람이다"라고.
내가 자라던 시절 미국에서는 일종의 출세지상주의가 부상하고 있었다. 출세지상주의는 혜택이 되는 경우에만 독서를 인정했다. 전국에서 최고의 인문학부 대학에서 철학이나 영문학을 전공하던 학생들은 끊임없이 "그 전공으로 뭘 할 거냐"라는 질문을 받아야 했다. 지식을 위한 지식의 추구가 전성기가 끝나 현실의 압력에 굴했던 것처럼 말이다. 즐기기 위한 독서는 목적을 위한 독서, 엄격하게 자기 향상을 위한 독서의 일종으로 대체되었다. 반면 회사의 경영진은 <백경> <회색 플란넬 슈트를 입은 남자>로부터 훨씬 많은 것을 배울 수도 있다. 그런 사람이 읽었을 만한 책은 <성공하느 사람들의 7가지 습관>일 터이지만.
--- pp 23~24
모든 독서 행위는 우리 자신에게 이름붙이는 방식을 찾아가는 진정한 길이다. 혹은 우리 주변에 있는 다른 사람들에게 이름을 부여함으로써 그들이 더 이상 이방인으로 느껴지지 않도록 하는 일이다. 크루소와 프라이데이. 이슈마엔과 에이헙. 데이지와 게츠비. 핍과 에스텔라. 그리고 나에게, 나에게, 나에게. 나는 혼자가 아니다. 나는 내가 누구인지, 내가 느낀 것에 대해 왜 그렇게 느끼는지, 그 이유를 나에게 말해주는 단어에 둘러싸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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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읽었던 다른 많은 책과 마찬가지로 이 책 역시 나에게는 단지 책으로만 여겨진 적이 한번도 없었다. 내가 살았던 장소처럼 나는 그곳을 방문하고 또 다시 방문하곤 했다. 먼저 그곳에 서 살았던 축북받은 모든 사람과 마찬가지로 나는 그 곳을 방문했다. 그린 게이블의 애너 헤이디, 제이 캐트비, 엘리자베스 베넷, 스카렛 오하라, 달과 스카웃, 미스 마플, 허클 쁘와로 등은 내가 아는 어떤 사람들보다 더욱 리얼했다. 우리 집은 필라델피아 근교의 쾌적한 곳에 자리잡고 있었지만 실제로 나는 엔제나 다른 곳에 살았다. 나는 책표지 안에 살았으며 나에게 그런 책들은 어떤 실제 생활보다 더욱더 현실적이었다. 어쩌면 일상의 생활에 진정으로 만족하지 못하는 아이들이 내가 그랬던 것처럼 책에 매료당할 수 있다. 또 불안은 헌신적으로 문학에 몰두하는 필연적인 결과인지도 모른다.
--- pp.17-18